세금폭탄 날아들라…부가세에 발목잡힌 전원주택시장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입력 2018.01.25 14:39 수정 2018.01.26 09:29
지난 20여년 간 전문적으로 전원주택 건축시공사업을 해온 N업체의 L대표. 그는 얼마 전 사업을 접었다. 최근 3년 동안 두 차례에 걸친 세무조사를 통해 거금의 세금을 추징당하면서 사업을 계속 이어갈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L대표는 "주택 시공을 맡긴 건축주의 요구와 가격 경쟁력 등 업계 관행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누락한 게 결과적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와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전원주택 건축업계에 부가가치세(이하 부가세)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건축주의 요구와 건축 단가 경쟁력 제고 등을 위해 부가가치세를 불성실하게 신고했다가 가산세 등 세금 폭탄을 맞은 경우가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전원주택 등 소형 주택 건축시장의 세제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선 소유권 보존등기 신청 목록에 부과세 신고 필증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가세 내면 건축 수주전서 패배
부가세는 상품이 팔릴 때마다 과세되는 소비세를 말한다. 생산과 유통, 소비 등 각 단계마다 증가된 가치(부가가치)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법인의 경우 1년에 4번, 개인사업자는 1년에 2번에 걸쳐 주요 매입과 매출을 확정해 신고한다. 하지만 영세업체가 대부분인 전원주택 건축시장에서는 부가세에 대해 잘 모르거나 규모가 작아 신고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수도권에서 전원주택 시공업체를 운영 중인 한 건축업체는 "1년에 많이 지어봤다 3∼4채를 시공한다"며 "귀찮기도 하고 수익이 줄어 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싼 건축비만을 찾는 소비자들의 요구도 전원주택 업계의 부가세 누락 관행을 부추긴다. 대개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전원주택 수요자들은 집을 짓기 전에 여러 업체를 방문해 "평당 얼마에 지어줄 수 있느냐"만을 집중적으로 묻는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더 싼 건축비를 제시하는 업체가 나타나면 시공을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전원주택 건축업체 입장에서는 당장 건축 수주를 위해 울며겨자 먹기로 상대 업체보다 조금이라도 더 싼 건축비를 제시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건축업체로서는 세율 10%의 부가세가 큰 부담이 된다. 부과세까지 포함시켜 건축비를 산정하면 당장 3.3㎡당(평당) 30∼40만원 정도 올라가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32㎡(40평)짜리 목조주택을 지을 때 부가세를 제외하면 1억8000만원의 건축비가 들지만, 부가세를 포함시키면 건축비가 1억9200만원으로 뛴다. 경기도 양평에 사무실을 둔 한 전원주택건축업자는 "결국 무조건 건축비를 아끼려는 건축주와 싼 값에 공사를 따내려는 업체가 만나 부가세 불성실 신고라는, 이상한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 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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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에 날아든 세금 폭탄
하지만 부가세는 내가 신고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에서 신고하게 되면 의례 불성실 신고로 몇 년이 지난 후 ‘세금 폭탄’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실제로 2001∼2005년까지 경기도 가평에서 펜션 단지 조성과 건축사업을 했던 I업체의 W대표는 사업 종료 3년 뒤 세무조사를 통해 10여억원의 세금을 추징 당했다. 성남 대장동 일대에서 전원주택 건축용지를 팔던 L사장도 최근 3억여원의 세금을 추징 당하고 폐업 신고를 했다.
느슨한 전원주택 준공 규정도 문제다. 현재 전원주택을 짓고 입주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소유권 보존 등기를 해야 한다. 소유권 보존 등기를 하려면 먼저 사용 승인(준공 검사)를 받고 새로운 지은 전원주택을 건축물 대장에 올려야 한다. 그런 다음 법원 등기과에 소유권 보존등기 신청을 한다. 소유권 보존등기는 새로 지은 전원주택과 택지에 대한 소유권을 건축주 이름으로 보존하기 위한 등기다. 소유권 보존 등기를 마쳐야 법적 권리를 가진 완전한 주택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소유권 보존 등기를 위해 법원에 제출하는 제출하는 서류 목록(건축물대장 등본, 건축주 주민등록등본, 등록세 납부 영수증)에 부가세 신고 필증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건축주 입장에서는 굳이 시공업체에게 부가세 신고 필증을 요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원주택 업계에서는 소유권 보존등기 신청 서류 목록에 부가세 신고 필증만 들어가도 공정 경쟁이 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소형 단독주택 건축 관련 세금 질서가 바로 잡힐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스마트하우스 이영주 사장은 "소유권 보존 등기 신청 서류 목록에 부가세 신고 필증만 추가돼도 전원주택 건축업체들이 부가세 불성실 신고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소유권 보존등기 신청 서류 목록에 부가세 신고 필증을 포함시키면 부과세를 내지 않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사례도 막을 수 있다. 최근 일부 개인 건축주들의 경우 전문 시공업체에 전원주택 건축을 맡긴 뒤 부가세를 피하기 위해 건축주 직영 공사로 위장해 등기 신청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건축주가 본인이 직접 주택을 짓는 경우 가치의 증가로 보지 않아 부과세가 과세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정부는 이같은 편법을 막기 위해 건축주 직영 시공 범위를 연면적 200㎡ 이하로 축소하고, 연면적 200㎡를 초과하거나 연면적 200㎡ 이하 다중주택ㆍ다가구주택은 종합건설면허를 가진 업체를 통해 짓도록 건설산업기본법을 개정해 오는 6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전원주택 업계에서는 소형 건축업 면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원주택 등 소형 주택을 지을 때도 반드시소형 건축업 면허를 받은 업체를 통해서만 짓도록 의무화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국민주택 이하 규모 주택은 면세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하우스 이영주 사장은 "현재는 국민주택 규모 이하는 면세가 되는 것이 맞지만 종합건설면허업체에게 의뢰해 짓는 경우로만 한정해 소형 건물 건축에서는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