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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문화스포츠부문 선임기자
람보 부시, 실업 벼랑 위의 대졸자 … 독일 잡지 표지로 보는 시대의 흐름
취재기자 270명, 기사 검증 90명 … 정론직필의 핵심
‘슈피겔’은 독일은 물론, 유럽과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로 꼽힌다. 172개 나라에 매주 약 120만 부가 배포돼 그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슈피겔(der spiegel)은 독일어로 ‘거울’이라는 뜻. 시대상을 거울처럼 반영하겠다는 발행인과 편집진의 의지가 담겨 있다. ‘슈피겔이 없었다면 독일 민주주의와 정치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란 말이 있을 만큼 정부의 부정행위와 스캔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공격형 탐사보도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독일의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가 “나는 그런 쓰레기 같은 잡지는 읽지 않는다”고 진저리를 쳤을까.
슈피겔은 1947년 1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루돌프 아우크슈타인을 편집장으로 첫 호가 발행되었다. 미국 잡지 ‘타임’을 모델로 해 표지를 붉은 띠로 두르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슈피겔이 세계 각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챙겨 읽는 잡지이자 고급 독일어 교재로 평가받는 이유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론 직필과 정확 간결하며 압축적인 문체 덕이다. 60년대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아데나워 보수정권을 교체할 만큼 집요한 권력 비판은 슈피겔에 ‘독일 민주주의의 지원 함포’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달아주었다.
2002년 봄, 슈피겔의 함부르크 본사에 1주일간 머물며 전 세계에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그 비결이 무엇인지 취재했던 고경태씨는 핵심 요인으로 ‘기사 검증 전문가’ 제도를 들었다.
“기본적으로 취재 환경이 달랐다. 일례로 국제 분쟁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단의 규모가 한국의 웬만한 일간신문사보다 열 배는 컸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기사 검증 전문가’였다. 덕분에 당시 독일을 다녀와 쓴 기사의 제목도 ‘270명이 쓰고 90명이 검증한다’였다. 90여 명으로 구성된 기사 검증 전문가들은 슈피겔이 가장 자랑하는 비밀무기였다. 제목 그대로 270명의 취재기자들이 쓴 기사를 석·박사로 이뤄진 90여 명의 전문가들이 꼼꼼하게 검증했다. 팩트는 올바른지, 통계는 정확한지, 취재원은 믿을 만한 인물인지, 분석은 타당한지, 단어와 숫자 하나하나에 현미경을 들이대듯 치밀하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유혹하는 에디터-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 노하우』 276~277쪽)
‘기사 검증 전문가’는 오늘의 슈피겔을 만든 한 요소일 뿐이다. 62년 서독군의 방위 태세를 문제 삼는 기사에 사법당국이 군사기밀 누설죄를 적용하며 촉발된 ‘슈피겔 사건’, 84년 경제장관 뇌물 스캔들 보도, 99년 기민당 비자금 폭로 등 성역 없는 취재와 언론자유 운동은 슈피겔을 특종 주간지이자 믿을 수 있는 언론으로 각인시켰다.
50여 년 간 표지 장식한 작품, 다음 달 국내 전시회
표지는 이런 슈피겔 정신을 집약한 잡지의 얼굴이다. 3월 5일 서울 순화동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전시실에서 막을 올릴 ‘슈피겔의 예술’은 50여 년 슈피겔의 표지를 장식했던 60명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2005년 슈피겔의 고향인 함부르크에서 출발해 독일의 베를린·프랑크푸르트·뮌헨과 오스트리아 빈, 스위스 바젤, 미국 뉴욕을 거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다. 주한독일문화원(원장 라이문트 뵈르데만)과 한국국제교류재단, 슈피겔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25일까지 이어진다.
슈피겔의 표지 편집부는 매주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표지 그림을 부탁한다. 마감시간의 압박, 그 주의 이슈에 걸맞은 주제화를 예술적으로 그려내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리면서도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커버스토리를 상징적이면서도 함축적으로 시각화하는 개성을 발휘했다.
수많은 후보작들 중 슈피겔의 표지를 1주일간 장식할 일러스트는 어떤 기준으로 뽑혔을까. 또 표지에 실리지 못한 나머지 후보작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번 전시는 이런 슈피겔 표지에 얽힌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내 시사주간지 편집자들과 언론계 사람들에게는 한국 잡지의 표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다.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세계 수준의 시사 일러스트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강의실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1956년부터 2009년까지 독일을 중심으로 인류사의 변천과 스타일 추이, 현대사의 쟁점 등을 짚어볼 수 있는 일종의 타임캡슐 파노라마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