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알카에다, 이제는 인터넷으로 돈·조직원 모으고 지휘까지
| 오사마 빈 라덴(왼쪽)이 알카에다의 2인자인 이집트 출신 아이만 알자와히리와 함께 카타르 민영방송인 알자지라를 통해 영상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중앙포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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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형 기자
소련의 무자헤딘 훈련 캠프서 유래
‘카에다(Qaeda)’는 아라비아어로 ‘기초·기본’을 뜻하고 군사기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알’은 정관사다. 빈 라덴은 2001년 10월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알카에다란 이름은 오래전 우연히 만들어졌다. 죽은 아부 에베이다 엘바나시리가 소련에 설치한 무자헤딘(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대항한 이슬람 무장세력) 훈련 캠프를 우리는 알카에다라고 부르곤 했고 이름은 후에도 남았다”고 말했다.
‘알카에다’가 무자헤딘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1988년 8월 알카에다란 이름을 건 단체가 정식으로 설립됐다는 설도 있다.
‘쿠트브’의 급진 이슬람 사상 추종
알카에다는 20세기 후반부터 발전해 온 급진 이슬람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샤리아(이슬람 율법)가 무너져 이슬람 세계가 마호메트 이전, 무지의 시대로 돌아갔다는 사이드 쿠트브(1906~1966)의 사상을 받들고 있다. 쿠트브는 샤리아를 실천하는 진정한 이슬람 국가 수립과 무슬림의 전위적 운동을 강조했다. 그는 샤리아를 수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현재 무슬림 국가의 지도자들을 배신자로 규정했고 무슬림 세계에서 사회주의·민족주의 등 비무슬림적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빈 라덴의 대학 시절 친구 모하메드 자말 칼리아는 “우리는 쿠트브의 저서들을 읽었다. 그는 우리 세대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라고 말했다.
빈 라덴, 1989년 조직의 1인자로 떠올라
알카에다는 소련의 아프간 침공(1979)에 대한 무장투쟁에 기원을 둔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과 이슬람 단체들의 촉구로 수많은 무슬림이 아프간에 들어가 저항 조직을 결성했다. 이 단체들 중 막탑 알히다마트(MAK)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몇몇 부호로부터 연간 6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했고 뉴욕 브루클린에 미국 지부를 둘 정도로 강성했다. MAK를 설립한 압둘라 유수프 아잠은 사우디의 부호 빈 라덴을 끌어들였다. 빈 라덴은 무자헤딘의 주요 물주가 됐고 사우디 왕가, 석유 재벌들과의 친분을 활용해 여론전을 폈다. 그와 아잠은 87년 아프간에 훈련 캠프를 건설했다.
빈 라덴은 이스라엘·카슈미르 등으로 무자헤딘 저항을 확장하려는 흐름에 동참, 기존 조직과 이집트 무슬림 단체를 결합해 알카에다로 불리는 새 단체를 88년 8월 결성한다. 이듬해 아잠이 암살되자 빈 라덴은 MAK를 흡수해 조직의 독보적 1인자가 됐다.
89년 소련이 아프간에서 철수하자 빈 라덴은 사우디로 돌아갔다. 이듬해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해 이웃한 사우디를 곤경에 빠뜨렸다. 빈 라덴은 자신의 조직으로 사우디를 방어할 것을 제안했지만 사우디 왕가는 이를 거절하고 대신 미국 등 연합군을 불러들였다. 빈 라덴은 연합군의 주둔이 성지에 대한 신성모독이라며 사우디 정부를 비난했고 92년 수단으로 쫓겨갔다.
수단의 친이슬람 정부 비호 아래 빈 라덴은 수단에 근거지를 건설하고 테러리스트를 훈련했다. 93년 오슬로 협정(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정)을 사우디가 지지하자 빈 라덴은 또다시 사우디 왕가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사우디 정부는 빈 라덴 가족의 재산을 동결했고 수단 정부에 그의 여권 박탈을 압박했다. 빈 라덴은 96년 또다시 쫓겨나 아프간으로 피신했다. 알카에다의 주요 분파인 이집트 이슬람 지하드(EIJ) 역시 95년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암살 실패로 이집트에서 축출됐다.
아프간은 소련군 철수 후 내전 상태가 계속됐다. 그 사이 이슬람 원리주의 교육을 받은 탈레반(‘학생’이란 뜻) 세력이 성장했고 96년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아프간이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황에서 탈레반은 알카에다에 최적의 근거지를 제공했다.
그 와중에 알카에다는 보스니아에서의 이슬람 테러에 개입하는 등 전 세계적 지하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96년 이슬람 땅에서 외세를 몰아내는 성전을 선포한 데 이어 98년 빈 라덴과 알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미국인과 그들의 동맹세력들을 죽이라”는 파트와(종교 칙령)를 선언했다. 그해 케냐·탄자니아 등지에서 터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로 300여 명이 사망했다. 미국은 보복으로 아프간의 알카에다 근거지에 크루즈 미사일을 퍼부었지만 큰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2000년 10월 예멘에서 미 구축함 공격에 성공한 알카에다는 미국 본토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9월 11일 이를 실행에 옮겼다.
9·11 이후에도 끊임없이 테러 기도
9·11 이후 알카에다 핵심 지도부는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에 은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 정보기관은 2009년 11월 현재 아프간엔 100명 이하의 알카에다 단원이 있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이들과 연계됐거나 알카에다를 자처하는 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예멘과 사우디의 알카에다 지부는 ‘아라비아 반도 알카에다(AQAP)’를 결성했다. 이 조직은 예멘에 본부를 두고 이 나라의 열악한 경제상황과 안보 불안을 이용해 세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8월 10년 만에 사우디 왕족 암살을 기도했고 12월 미국행 여객기 폭파를 계획했다.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이끄는 이라크 반군 세력에도 알카에다 세력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최근 몇 년간 자르카위 조직이 저지른 자살폭탄 테러의 30~42%는 이들이 수행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최근 알카에다가 조직원들을 이스라엘로 침투시켜 적절한 공격 시점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소말리아에선 어린이들에게 자살폭탄 테러 훈련을 시키고 젊은이들을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으로 보내 대미 전쟁에 참가시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북아프리카 이슬람 무장세력들의 테러가 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이 그룹들은 2006년 빈 라덴으로부터 ‘알카에다’란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승인받았다고 알려졌다.
영국 경찰과 정보기관은 2009년 미국·캐나다행 여객기 7기의 폭파를 모의한 혐의로 3명의 아랍계 영국인을 체포했다. 당국은 이 계획이 알카에다와 연결돼 있었고 파키스탄의 이슬람 무장군벌의 지도를 받았다고 밝혔다.
포트 후드 총격사건을 저지른 니달 말리크 하산은 미국 태생의 이슬람 이론가 안와르 알아와라키의 강의에 참석했고 그에게 여러 차례 e-메일을 보냈다. 알아와라키는 미국에서 알카에다 조직원을 영입하는 주요 인물로 알려져 있다. 9·11 테러범 중 3명도 그의 강연을 들었다. 미 정보 당국은 알아와라키를 “9·11 이후 알카에다가 미국에 침투한 사례”라고 언급했다.
국제사회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인터넷이 알카에다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됐다. 정보 보급과 수집·공유뿐만 아니라 재정과 조직원 영입, 네트워킹, 동원, 출판 등이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Azzam.com 등 전용 웹사이트를 통해 자살 테러를 부추기는 동영상과 게릴라 훈련 장면, 고 김선일씨 등 인질 참수 동영상 등을 내보낸다. 과거 빈 라덴의 음성이나 동영상 복사본을 알자지라에 보내면 방송국에선 사우디 왕가를 비난하는 내용 등을 편집해 공개했지만 2004년 12월 빈 라덴의 것으로 추정되는 음성메시지처럼 근래엔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직접 올리고 있다.
알카에다 실체 싸고 논란은 여전
알카에다가 체계를 갖춘 하나의 조직이라고 보는 시각은 대부분 자말 알파들(Jamal Al fadl)의 증언에 의존해 있다. 그는 알카에다의 창립멤버이자 빈 라덴의 부하였다가 1996년 미국에 투항했다. 그에 따르면 빈 라덴은 알카에다의 수장이자 최고사령관이다. 빈 라덴은 의사결정 때 20~30명 정도의 고위 조직원들로 구성된 슈라 평의회의 자문을 구한다. 알자와히리가 부사령관이다. 지도부 아래엔 군사위원회와 자금·사업위원회, 법률위원회, 신문을 발행하고 홍보를 책임지는 미디어위원회 등이 있다.
알카에다는 각 지역 거점 지도자들의 네트워크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2006년께 40개국에서 수천 명의 현장 지휘관이 활동했고 2009년엔 2000~3000명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 조직원의 62%가 대학 교육을 받았다는 보고도 있다.
반대로 알카에다를 조직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2005년 7월 런던 폭탄 테러와 알카에다의 연관성을 수사한 이언 블래어 런던 경시청장은 “알카에다는 조직이 아니라 (자살폭탄 테러 등) 하나의 행동방식이다”고 말했다. 알카에다를 추적한 영국 작가 애덤 커티스는 “무장단체들은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한다. 빈 라덴은 단지 자금을 대고 지원할 뿐 사령관이 아니다”며 “9·11 이후 미국인들이 ‘알카에다’란 용어를 썼지만 빈 라덴이 그런 명칭을 사용해 왔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강조했다.
알카에다의 실체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