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덕 기자
Q 리스본 조약이 뭔가.
| EU는 지난해 11월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특별정상회의를 열어 ‘EU 대통령’격인 유럽이사회 상임의장과 외무장관에 해당하는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뽑았다. 회의가 끝난 뒤 한 참석자가 이들의 얼굴사진이 붙어 있는 루빅 큐브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헤르만 반 롬푀이 유럽이사회 상임의장, EU 총리 격인 조제 마누엘 바호주 집행위원장, 캐서린 애슈턴 외교안보 고위대표. [중앙포토] | |
관련핫이슈 | |
Q 리스본 조약은 폐기된 EU헌법 초안과 얼마나 유사한가.
“EU헌법 초안이 도입하려고 했던 많은 변화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2년6개월 임기의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을 신설한 것과 외교안보고위대표 자리를 새로 만든 것 등이 그것이다. 외교안보고위대표는 지난해까지 하비에르 솔라나가 맡았던 EU외교정책대표직과 EU 대외관계 담당 집행위원의 업무를 통합한 자리다. EU가 국제무대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외교 권한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 만들었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2014년부터 규모를 축소한다. 이에 따라 장관급인 집행위원 자리도 회원국 숫자보다 적어질 전망이다. 2014~17년 사이에 ‘가중다수결’ 방식에 적용되는 회원국 간 투표 가중치도 재조정한다. 가중다수결은 찬성하는 회원국 숫자와 인구를 각각 따져보고 가중치를 부여한 회원국별 투표수를 합산해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회원국 숫자에서는 55% 이상, EU인구 비율에서는 65%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가결되도록 조정할 예정이다.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 유럽사법재판소의 권한은 강화됐다. 예를 들어 유럽의회는 예산과 농업 등 대부분의 입법행위에 있어 EU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유럽이사회와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 소위 말하는 ‘공동결정’ 시스템에 따른 것이다.
기후 변화 방지, 에너지 안보, 긴급 구난 등 많은 분야에서 개별 회원국의 거부권은 삭제됐다. 만장일치 의결 시스템은 일부 분야에서 여전히 남아 있다. 세금과 외교정책, 국방, 치안 분야 등이 이에 속한다. 대부분의 회원국 지도자들은 리스본 조약이 당초 만든 EU헌법 초안의 요체들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Q 리스본 조약이 EU헌법 초안과 비슷한 요소들을 갖고 있다면, 왜 리스본 조약은 헌법이라고 부르지 않나.
“EU헌법은 기존에 있던 모든 EU 관련 조약을 대체할 목적으로 준비됐다. 반면 리스본 조약은 유럽연합에 관한 조약(마스트리히트 조약)과 유럽공동체 설립 조약(로마조약)을 개정한 것이다. 리스본 조약은 또 국기와 국가 등 EU 상징물에 관한 조항을 갖고 있지 않다.”
Q 조약에 동의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2001년 벨기에 라켄에서 열린 EU정상회의에서 처음 선언이 나왔다. 이 회의에서 ‘유럽의 미래에 관한 회의(유럽미래회의)’를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 EU조약의 간소화와 개정을 논의하기로 했다. 최종 결과가 헌법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유럽미래회의는 2002년 2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2년8개월 후인 2004년 10월 헌법 초안이 로마에서 서명됐다. 하지만 이 초안은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2007년 상반기, 독일이 순번의장국을 맡았을 때 대체조약을 만드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해 6월 EU정상회의에서 새로운 조약의 주요 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이후 최종안이 나올 때까지 회원국 간 막후 협상이 계속됐다. 결국 그해 10월 27개 회원국 정상들이 조약의 최종 초안에 동의했다.“
Q 헌법은 왜 폐기됐는가.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들은 2005년 헌법초안을 부결시킨 후 이에 대해 대폭적인 수정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때까지 투표를 하지 않은 영국도 헌법의 수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Q EU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규정한 기본권 헌장(Charter of Fundamental Rights)은 리스본 조약에 포함됐나.
“기본권 헌장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하다. 법률적인 구속력도 부여했다. 그러나 전문은 올라 있지 않다. 부속문서 형식으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영국은 기본권헌장이 유럽사법재판소에 의해 영국의 노동법과 사회적 권리를 다루는 다른 법률들을 바꾸는 데 활용되지 못하도록 문서화된 보증을 받아두었다. 폴란드는 낙태와 같은 가족과 도덕적인 이슈에 관한 일부 헌장 조항에 대해 예외적용(opt-out)을 받고 있다. 체코공화국 역시 재산권 등 일부 조항에 대해 예외를 인정받고 있다.”
Q 예외를 적용받고 싶어하는 다른 나라들이 또 있나.
“아일랜드와 영국은 현재 난민·비자·이민에 관한 EU 정책들로부터 예외 적용을 받고 있다. 리스본 조약 하에서 두 나라는 사법과 내무 전 분야에 걸쳐 적용 여부에 관한 자율권을 부여받았다. 아일랜드는 또한 리스본 조약이 조세와 가족문제, 그리고 국가의 중립성과 관련한 영역에서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았다. 덴마크도 현재 확보한 사법과 내무 분야의 예외 적용을 계속 유지하려 하고 있다.”
Q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이 선출되면서 기존에 운영되던 순번의장국 시스템은 폐기됐나.
“그렇지 않다. 리스본 조약 하에서도 회원국이 6개월씩 돌아가면서 의장국을 맡는 제도는 살아남았다. EU회원국 대부분이 순번 의장국 시스템을 통해 잠깐이나마 자국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해 남겼다는 후문이다. 올 1월 1일부터 6월 말까지는 스페인이 순번의장국이다. 헤르만 반 롬푀이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은 EU정상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 반면 순번의장국은 EU의 제도 개혁에 관한 업무를 책임진다. 구체적으로 EU의 사법·내무·경제·환경·농업·어업 등을 포함하는 일반 업무가 그것이다.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을 뽑으면서도 순번제 의장국 시스템을 살려둔 것이 리스본 조약의 최대 약점이라는 비판이 있다.”
Q 아일랜드는 리스본 조약 비준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한 유일한 나라였나.
“그렇다. 대부분의 EU 지도자들은 리스본 조약이 기존의 조약들을 약간 고쳤을 뿐이며, 따라서 국민투표에 부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아일랜드의 반대파와 영국의 야당인 보수당의 반발에 부닥쳤다. 게다가 아일랜드는 EU조약을 고치려면 아일랜드 헌법도 수정해야 한다는 1987년 대법원 판결 때문에 국민투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연합 이해하는 키워드 두 개
선출 지난해까지 유럽이사회 의장직은 회원국 정상들이 6개월씩 돌아가면서 맡았다. 하지만 리스본 조약 발효로 상임의장 자리가 새로 생겼다. 유럽이사회가 가중다수결(아래 설명 참조)로 상임의장을 선출한다. 임기는 2년 반이고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다. 상임의장이 임기 수행 도중 심각한 잘못을 범할 경우, 유럽이사회가 선출할 때와 동일한 절차를 밟아 임기를 중단시킬 수 있다. 상임의장은 유럽이사회가 끝날 때마다 이사회에서 채택한 보고서를 유럽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상임의장은 출신 국가에서 정치활동을 병행할 수가 없다.
기능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은 유럽의 대통령은 아니다. 리스본 조약은 상임의장의 권한을 유럽이사회와 연간 네 차례 열리는 EU정상회의를 준비하고 주재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있다. EU 회원국 정상과 유럽이사회 상임의장, EU 집행위원장의 모임인 유럽이사회는 EU의 일반적인 정치 현안과 방침을 결정한다. 유럽이사회는 입법 기능을 갖고 있지는 않다. 리스본 조약에 따르면,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은 국제정상회의에서 EU를 대표한다. 일부 정치분석가들은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의 역할과 관련, 임명되는 사람의 국제적 영향력에 달려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제적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 이 자리에 앉게 될 경우 그의 능력에 따라 업무 범위가 넓어질 것이란 얘기다.
●가중다수결(Qualified Majority)
가중다수결은 유럽이사회가 안건을 표결할 때 사용하는 투표 방식이다. 그동안 시행됐던 회원국 만장일치제에 의한 의사결정 속도가 너무 더디자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회원국들의 인구나 영향력 등을 감안해 각각 다르게 배정된 표를 합산해 가결 여부를 결정한다. 유럽공동체조약(EC조약) 205조 2항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원래 회원국별로 할당된 투표 수는 2000년 니스조약 합의 이후 1차적으로 조정됐다. 당시 국가별 투표수 조정을 통해 인구가 많은 나라에 대한 배려를 강화했다. 유럽이사회에서 결정하는 사안에 대해 인구 대표성에 기초를 둔 합법성이 보장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2007년 1월 1일 이후, 가중다수결은 전체 345표 중 255표 이상을 얻어야 안건을 통과시키는 것으로 조정됐다. 가중다수결은 찬성국가 수와 찬성국의 총인구를 따지는 ‘이중다수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득표 수가 255표 이상이라 하더라도 찬성하는 국가 숫자가 회원국 과반이 안 되거나 찬성국가의 총인구가 EU 전체 인구 중 62%에 미치지 못하면 해당 안건은 채택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