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부역 언론’의 탄생
지난 9년간 감시와 견제 기능을 잃어버린 언론은 재벌·권력의 유착과 민간인의 국정농단에 침묵했다. 공영방송 KBS와 MBC의 추락은 그 가운데서도 두드러졌다.
이달 4일부터 두 방송사가 파업에 들어갔다. “국민의 방송을 돌려주겠다”는 파업 참가자들의 외침에는 9년간 ‘부역자’로 전락한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분노와 반성이 짙게 배어 있다.
■ 이명박 대통령과 낙하산 사장들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은 공영방송 장악에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언론인들의 정치 성향을 파악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왜곡된 피해의식에는 민주화 이후 KBS·MBC의 내부 권력이 정부·경영진에서 일반 사원·노조로 넘어가면서 두 차례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방송장악은 사람을 갈아치우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정연주 KBS 사장에게 사퇴를 압박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정 사장이 제 발로 물러나지 않자 “국세청을 상대로 한 세금 환급소송을 중단했다”며 배임 혐의를 씌워 몰아냈다. 정 전 사장 해임은 결국 위법한 것으로 판결났고 배임 혐의도 무죄를 받지만, 법원 판단은 이미 상황이 끝나고 한참 뒤에나 나왔다.
MBC의 경우 정권 초반에는 당시 엄기영 사장이 보수적 성향이었기 때문에 이슈로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8년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대규모 촛불집회를 촉발하는 등 정권에 위협이 되자 ‘자진사퇴’ 형식으로 엄 사장이 물러난다. 이어 2009년 취임한 김재철 전 사장은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밝힌 대로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도 까이고 매도 맞고 한 뒤 MBC 내부 좌파 70~80%를 정리했다”. 사장 아래 국장과 본부장급 간부진은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로 채워졌다. 안광한 전 사장과 김장겸 현 사장은 당시 편성본부장, 보도본부장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 ‘최측근’ 방통위원장 임명, 미디어법 개정…“방송장악의 완성”
이후 단계는 언론의 핵심 기능인 ‘비판적 목소리’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KBS의 대표적인 시사프로그램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는 없어졌다. MBC 「PD수첩」은 한진중공업 사태나 4대강 관련 아이템들이 줄줄이 불방됐다. 각 방송사의 지배구조를 거머쥐는 작업도 빼놓지 않았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멘토인 최시중씨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방통위는 공영방송사 이사를 추천·임명한다. MBC 사장을 선임하는 방문진과 KBS 이사회 모두 정부·여당 추천인사가 과반수를 차지했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는 2009년 “글로벌 미디어를 육성한다”며 미디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보수성향의 종합편성채널이 대거 생겨나면서 여론의 지형도는 오른쪽으로 대폭 기울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공영방송을 거머쥐는 동시에, 보수세력과 가까운 신문까지 방송시장으로 편입시키면서 넓은 의미의 언론장악을 완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인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2012년 1월 MBC가, 3월에는 KBS가 파업했다. MBC 노조의 170일간 파업에도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송 독립성 보장, 해직기자 복직 등을 공약했지만 백지수표에 그쳤다.
오히려 박근혜 정권은 극우 색채가 뚜렷한 이들을 이사진으로 선임하며 ‘방송장악 굳히기’에 들어갔다. KBS에는 뉴라이트 활동을 해온 이인호 이사장을, MBC 방문진에는 5·16 쿠데타를 “정신적 혁명”으로 미화한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이사장을 내려보냈다. 납득하기 힘든 사장 인사가 뒤를 따랐다. 2014년 임명된 안광한 전 MBC 사장은 파업 당시 부사장과 인사위원장을 지내며 대규모 징계·해고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고대영 KBS 현 사장은 보도국장 시절 기자들의 불신임을 받고 쫓겨난 적이 있다.
■ 파업과 보복, 노골적인 보도통제
박근혜 정부도 공영방송을 정권 홍보와 반대의견 탄압에 적극 활용했다. 지난해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폭로한 ‘세월호 보도개입’이 대표적이다. 당시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세월호 참사 때 해경 비판을 완화하라는 등의 노골적인 요구를 KBS에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 관련 리포트 순서를 앞쪽으로 당기고, 국정원 대선개입 뉴스는 자막을 내보내지 못하게 하는 등 보도 아이템과 분량, 순서까지 간섭했다. MBC는 2014년 10월 교양제작국을 해체해 비판적 성향의 PD들을 예능국 등으로 분산시켰다. 권력감시형 보도는 사라지고 동물·날씨 뉴스 같은 연성 아이템이 MBC <뉴스데스크>를 채워갔다.
공정방송을 요구한 기자와 PD들은 현장에 복귀하지 못했다. MBC에서 파업 후 징계·교육·전보 등으로 제자리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200명이 넘는다. 기자·PD들을 신사옥 건설현장이나 주차장 관리요원으로 발령내는 보복성 인사였다. 신규 채용된 경력직이 이들의 자리를 채웠다. MBC의 ‘유배자’ 중 한 명인 임명현 기자는 지난해 2월 낸 석사학위 논문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에서 “뉴스 조직 외부로 배제돼 저널리즘 실천 자체가 불가능했다”며 “기자들은 저널리즘을 위축시켜 나갔고, 그 배후에는 모멸감과 공포, 수치심과 무력감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썼다.
공영방송의 신뢰도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KBS와 MBC는 ‘보도 참사’라는 혹평까지 받았다. 지난해 9월 ‘시사인’ 조사에 따르면, MBC <뉴스데스크>는 2007년 ‘가장 신뢰하는 방송 프로그램’ 2위(14.7%)를 기록한 이후 9년 만에 5위로 내려앉았다. 신뢰도는 겨우 3%였다. 그럼에도 지난 4일 양대 방송 노조가 ‘공정방송’과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라 주장했다. 김서중 교수는 “2008년 정연주 전 사장을 쫓아낼 당시에는 구성원들의 평가를 무시한 채 외부권력이 강제로 쫓아냈던 것”이라며 “이번 파업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사태로 규정하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