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노벨경제학상 새뮤얼슨 집안의 후예 서머스… '신케인지언 학파 대부' 피셔의 제자 버냉키
입력 : 2015.06.27 03:04
이 두 천재는 공통점도 많지만 그 논쟁만큼이나 사상적 배경이 다르기도 하다.
서머스는 폴 새뮤얼슨 집안의 후예
서머스와 버냉키는 둘 다 유대인이며, 천재 경제학자에서 스타 경제 관료로 현실 경제에 참여했다. 1954년생인 서머스는 16세에 MIT에 입학한 영재였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1953년생인 버냉키 역시 SAT(미국의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기록할 만큼 수재였으며, 하버드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로 걸어온 과정과 배경은 서로 달랐다. 우선 서머스의 경제 사상을 얘기할 때 저명한 경제학자로 가득한 그의 집안 환경을 빼 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1970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새뮤얼슨 전 MIT 교수가 서머스의 친삼촌이고, 사회선택 이론과 일반균형 이론을 집대성한 공로로 197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케네스 애로 전 스탠퍼드대 교수가 외삼촌이다. 서머스의 부친인 로버트 서머스는 자신의 성을 새뮤얼슨에서 서머스로 바꾸었는데, 모친인 아니타 서머스와 함께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의 교수이다. 이쯤 되면 경제학계의 성골(聖骨) 집안이라 할 수 있겠다.
삼촌인 폴 새뮤얼슨은 신고전파 종합 이론 체계를 완성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케인스주의 이론과 신고전학파 이론을 접목한 것으로, 완전고용을 위해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지만, 일단 완전고용이 실현되면 수요 공급의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는 이론이다. 현재의 경기 침체를 타개할 효과적인 방안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옹호하는 서머스의 경제 사상적 근원은 이와 관련 있어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폴 새뮤얼슨을 지도했던 경제학자들은 슘페터, 레온티에프와 더불어 '미국의 케인스'라 불렸던 앨빈 한센 하버드대 교수다. 한센은 1930년대 기술 혁신의 고갈과 인구 증가 둔화에 따른 '장기 침체'를 예측했고, 케인스 이론을 대공황 당시 미국의 재정·금융 정책에 반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머스가 장기 침체 가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을 것이다.
버냉키, 케인지언 출신이지만 통화주의자 입장 반영
서머스에 비해 버냉키는 비교적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조부는 1921년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인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었다. 약사였던 조부는 1941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소도시인 딜런시에 약국을 차렸고, 부친은 이 약국을 물려받았으며 모친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버냉키는 하버드대 입학 전까지 딜런시에서 살았고, 인근 병원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버냉키의 박사 학위 지도교수는 현재 연준의 부의장인 스탠리 피셔이다. 피셔는 신(新)케인스주의 학파의 대부로 불리는데, 물가 안정과 실용적인 통화정책을 선호하는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피셔가 서머스의 삼촌인 새뮤얼슨의 제자라는 사실이다. 2014년 서머스가 장기 침체 가설을 제기했을 때 피셔는 미국 경기를 전망하며, 현재의 저조한 노동시장 참여율 등으로 "노동 공급과 기업 투자의 감소 추세가 계속되면 영구 경기 침체에 빠진다"고 발언했다. 서머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내용이다.
피셔는 버냉키의 존경하는 스승이지만, 버냉키 경제 사상의 근원은 통화주의자의 거두라고 할 수 있는 밀턴 프리드먼(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린스턴 대학 교수 시절 버냉키는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의 경제적, 정치적 원인을 분석하는 데 큰 관심을 보였고, 그의 연구는 통화주의자의 관점과 무척 가까웠다. 2002년 밀턴 프리드먼의 90세 생일에 당시 연준 위원이었던 버냉키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연준의 공식적인 대표자로서 제 신분을 살짝 모욕하면서 제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밀턴과 안나(밀턴의 공저자 안나 슈워츠)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옳았습니다. 우리(연준)가 그렇게(케인스주의적 정책을) 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지만 두 분 덕분에 우리는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는 대공황 심화의 원인이 연준의 미흡한 통화정책이었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에 대한 동의이며, 향후 적극적으로 통화정책을 사용할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실제 버냉키는 연준 기준금리를 0%로 인하하는 결정을 단행할 때 밀턴 프리드먼을 인용했다.
'경제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은 저무는데… 브릭스, 태양은 내일 다시 뜰 것인가 (0) | 2016.10.21 |
---|---|
[Weekly BIZ] 경제학 설전 五國志 (0) | 2016.10.21 |
美 연준 vs. BIS… 버냉키 vs. 서머스… 퍼거슨 vs. 크루그먼… 10여년을 달궜던 경제논쟁 '빅매치' (0) | 2016.10.21 |
"올 겨울도 못 팔면 다 망한다"…배수의 진 치고 나선 아웃도어업계 (0) | 2016.10.21 |
해외 低임금매력 상실·생산성 하락…리쇼어링 전환점 되나 (0) | 2016.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