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와 플라맹고의 나라 스페인은 남부 유럽의 부국(富國)으로 손꼽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유로존 위기 발생 직전인 2011년 기준 스페인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7586억 달러로 독일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 유럽 5위, 세계 12위에 올라있었다. 당시 한국의 GDP규모가 세계 15위였다는 점과 비교해보면 스페인의 위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스페인에서 은행이 파산하고 외환보유가 바닥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이 올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6월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을 맞으면서 금융위기가 본격화됐다.
스페인 위기의 원인 ‘부동산’
스페인 은행들에게 2008년 금융위기는 오히려 큰 기회를 안겨다줬다. 산탄데르 은행을 비롯한 스페인계 은행들은 남미 지역에 진출해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고, 금융위기 당시 치솟는 연체율을 잘 관리하면서 금융위기의 파고를 순조롭게 헤쳐나갔다.
당시 천문학적인 파생금융상품 손실로 부실의 늪에 허덕이던 미국계 은행들에게 탄탄한 내수 기반의 산탄데르 은행은 신화와도 다름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도 두 번째 유럽 재정위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반 토막 나고 연체율이 치솟자 유럽은행들도 위기의 수렁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특히 스페인은 다른 국가들보다 전체자산에서 차지하는 부동산의 비중이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부동산 거품붕괴가 경기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 또한 강력했다.
유로화 출범 후 해외에서 유입된 자금에 힘입어 낮은 이자율을 유지하던 스페인에서는 저금리에 따른 실질소득 증가효과로 부동산 건축 붐이 일었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자연스럽게 금융기관의 대출 또한 크게 늘었다.
불씨를 키운 곳은 지방저축은행이었다. 우리나라 저축은행과 비슷한 구조였던 스페인의 지방저축은행들은 건축 붐에 편승해 부동산 대출에 몰두했다. 이런 와중에 지방자치정부와 결탁한 일부 지역기반 건설사들은 각종 건축수주 특혜를 받으며 부실대출의 원인이 됐다.
지방자치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재정 통제력이 약했던 스페인은 사실상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지방저축은행의 부실과 이로 인한 지방자치단체의 부채 부담이 위기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위기로 드러난 스페인의 민낯
스페인의 부동산 거품이 최고조에 이르던 2012년, 유로존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대출부실화가 현실화되고 가계와 지방자치정부 등 경제주체들의 부실까지 수면 밖으로 드러나면서 부동산 호황에 가려졌던 스페인의 민낯이 드러나게 됐다.
2012년 국제금융시장에서 10년짜리 스페인 장기국채금리는 7% 이상으로 치솟았고, 단기금리까지 급상승했다. 이로 인해 스페인 정부는 긴급자금조달조차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중앙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지방정부의 아우성이 이어졌고, 오래지 않아 중앙정부 조차 구제금융을 검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금융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스페인의 취약한 산업구조가 낱낱이 드러나 세계를 경악케했다. 2012년 당시 세계 200대 기업 중 스페인 기업은 5곳에 불과하며, 그나마 제조업 기반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마나 200위권 밖에 의류업체인 자라(Zara)가 이름을 올린 정도였다.
부동산 붐으로 각광받던 건설업체가 침체기에 빠져들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저하게 약해진 관광산업의 현실은 자연스럽게 실업률 증가로 연결됐는데,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스페인은 실업난과 금융위기를 헤쳐 나갈 동력을 찾지 못해 장기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맞았다.
컨설팅업체 롬바드 스트리트 리서치(LSR)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스페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는 9%를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당초 스페인 정부가 목표로 삼았던 6.3%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2011년 유럽연합(EU) 등으로부터 최소 600억 유로에 이르는 은행권 구제금융이 투입됐고, 스페인 정부가 잇따른 증세 정책을 펴면서 세수를 늘렸음에도 재정 건전성은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프랑스계 투자은행인 소시에테제너럴의 제임스 닉슨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스페인 부채 문제는 작년 내내 좋아진 것이 없다”며 “오히려 위기가 악화된 전형적 사례”라고 말했다.
글. 정일환 기자
'경제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를 뒤흔든 금융쇼크 ①블랙 먼데이[4] (0) | 2015.07.27 |
---|---|
세계를 뒤흔든 금융쇼크 ②리먼 브라더스 사태[1] (0) | 2015.07.27 |
세계를 뒤흔든 금융쇼크 (0) | 2015.07.27 |
세계를 뒤흔든 금융쇼크 3. 듀바이 쇼크 (0) | 2015.07.27 |
[글로벌와치]'오락가락' 하던 美 경제신호등 일제히 '파란불' 켰다머니투데이 (0) | 2015.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