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471> 건강식품 김치의 세계
김치, 섭씨 7도서 한달 숙성해야 유산균 늘고 감칠맛 절정
박태균식품의약전문기자
김치는 유산균과 비타민·미네랄·식이섬유 등이 풍부한 웰빙 음식이다. 2006년 미국 건강전문지 ‘헬스(Health)’는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했다. 항암 효과, 염증 억제, 면역력 증진 등의 효능을 인정해서다. 최근엔 김치가 가장 맛있게 잘 익었을 때 그 효능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김치 종주국의 위상을 계속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김치에 대한 애정도 되살아나야 한다. 외식 문화, 서구화된 식생활, 어린이·청소년의 김치 기피로 김치 소비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200여 종에 달하던 김치의 가짓수도 크게 줄었다. 지금은 일반 가정에서 담그는 김치의 가짓수는 3∼5가지에 불과하다. 요즘 가장 흔히 먹는 통배추 김치가 만들어진 지 100여 년. 이제는 우리 김치가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를 준비할 때다.
김치는 세계인이 알아주는 웰빙 식품이다. 발효식품인 데다 유산균이 풍부해서다. 산소가 차단된 상태에서 늘 일정한 온도로 보관하면 김장 김치를 오래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유일한 재발효 채소
김치는 발효식품이다. 다른 나라에도 채소를 절인 식품은 있지만 김치 같은 발효식품은 찾기 힘들다. 중국은 절임 채소를 만들 때 숙채(熟菜)를 이용해 왔다. 김치를 흉내 내 만든 일본의 기무치는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김치는 외국의 절임 채소와는 달리 두 번 절인 것이 특징이다. 배추·무 등을 소금에 절이는 게 첫 번째다. 소금에 절였다가 세척·탈수하면서 각종 유해 미생물이 떨어져 나간다. 수분도 빠져나가면서 양념이 스며들어갈 충분한 공간이 확보된다. 발효가 잘되는 조건이다.
다음 생강·마늘·고추·부추 등 갖은 양념으로 버무리는데, 이게 두 번째 절임이다. 발효가 일어나면서 고명과 갖은 양념이 김치 안에 스며든다. 이때 유해 세균은 제거되고 장 건강에 유익한 유산균이 생성된다. 양념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건강 성분도 합성된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의 비결’
보기 좋은 김치가 맛도 좋다. 지금은 김치의 붉은색을 고춧가루로 내지만 옛날엔 맨드라미꽃으로 색을 냈다. 동치미엔 석류와 잣을 띄워낸다. 맛보다는 ‘멋’스러운 김치로 만들려는 노력의 하나다. 발효식품 특유의 감칠맛은 한번 맛들이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김치가 잘 익으면 감칠맛과 코끝을 톡 쏘는 맛이 최고조에 달한다. 우리 선조들은 이 맛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숨쉬는’ 옹기에 김치를 보관해 여름엔 석정(石井)에, 겨울엔 땅속에 묻었다. 김치 감칠맛의 비밀은 젓갈에 있고, 톡쏘는 맛은 김치가 익는 과정에서 생긴다. 서양인들이 김치에 ‘중독’되는 이유는 바로 이 두 가지 맛 때문이다.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무·대파 등을 별도 저장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해서 먹을 수 없게 되지만 재료들을 모아 소금에 절인 김치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미생물들의 발효 덕분이다.
김치는 한겨울 땅속 온도와 같은 섭씨 7도 내외에서 숙성시키면 발효가 진행되면서 맛이 더욱 좋아진다. 산도(酸度) pH 3.5∼4.5일 때 최고의 맛인 ‘시원하고 톡 쏘는 맛’이 나고, 가장 잘 익은 상태가 된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갓 담근 김치에선 겉절이 김치처럼 양념 맛과 아직 발효되지 않은 배추의 아삭함 정도만 느낄 수 있다. 담근 지 한 달가량 지난 김치에선 유산균 숫자가 늘어나면서 김치의 다양하고 오묘한 맛을 내는 발효 부산물이 생성된다. 시원하게 톡 쏘는 탄산의 맛과 감칠맛, 단맛, 약간의 신맛이 어우러져 절정의 맛에 이르는 게 이때쯤이다.
잘 익은 김치를 땅에 묻거나 김치 냉장고에 넣어두면 산소가 차단되고 늘 일정한 온도로 보관이 가능해져 수개월간 그 맛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식탁에 꺼내어 놓고 먹기 시작하면 공기와 접촉하고 김치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맛이 변한다.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한 김치에선 군내가 나고 물러지고, 신맛도 강해진다.

김치는 항암(抗癌) 식품이다. 적어도 동물 실험에선 김치가 간암 등 다양한 암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치 안에 든 항암 성분이 발암물질을 해독(解毒)하고 암세포의 자살을 유도한 결과로 풀이된다. 김치의 항암 성분으론 인돌과 식이섬유 등이 꼽힌다. 인돌은 배추·무·순무·브로콜리·케일 등 배추과(科) 채소가 분해·절단·조리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식이섬유는 대장암 예방을 돕는다.
김치는 성인병과 노화의 주범인 유해(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抗酸化) 식품이다. 베타카로틴·비타민 C·비타민 E 등 항산화 비타민 외에 카로티노이드·플라보노이드·안토시아닌·폴리페놀·엽록소 등 다양한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다. 김치의 항산화 효과도 덜 익은 김치보다 잘 숙성된 김치가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갓김치와 배추김치의 항산화 능력이 특히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김치는 다이어트 식품이다. 김치에 든 고춧가루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이 체지방의 분해·연소를 촉진한다. 김치의 식이섬유도 다이어트를 돕는 성분이다. 최근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김치 붐이 부는 것은 이래서다.
●유산균의 보고(寶庫)
김치 속에서 찾아 낸 유산균의 종류는 200여 종. 산소가 차단된 환경에서 중(中)저온에 보관될 때 급격히 증가한다. 방금 담근 김치 1g당 유산균의 숫자는 1만 마리가량인데 비해 김치가 잘 익어 톡 쏘는 맛이 날 때면 6000만 마리로 늘어난다. 잘 익은 김치엔 유산균이 요구르트보다 최고 4배나(같은 무게 기준) 들어 있다.
과거엔 김치의 유산균은 대부분 살아서 장(腸)까지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위에서 위산(胃酸)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 죽는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부산대 김치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다르다. 김치를 하루 300g쯤 먹은 사람의 대장 내 유산균은 안 먹은 사람에 비해 100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김치의 유산균이 장에 안착했다는 증거다.
유산균은 면역력도 높여준다. 동물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이를 근거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근(SARS·사스)나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학계에서 제시됐다. 김치가 강력한 항균력(세균을 죽이는 힘)과 항바이러스 능력(바이러스를 죽이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잘 익을수록 건강 효과도 상승
김치의 유산균은 잘 익은 김치는 물론 덜 익은 김치·신김치·묵은지에도 들어 있다. 김치가 숙성하는 과정에서 유산균의 주류가 교체된다. 시어지기 전엔 류코노스톡이란 유산균, 시어진 뒤엔 락토바실러스(요구르트 등 유제품에 든 유산균)가 세(勢)를 이룬다. 잘 익은 김치에서 유산균의 주종(主種)을 이루는 류코노스톡은 ‘덱스트린’이라는 식이섬유를 만들어 내어 변비 예방을 돕는다. 혈전(피떡)을 없애는 데도 효과가 있다. 위암·위궤양 등 위장 질환의 주원인으로 알려진 헬리코박터균에도 강한 항균력(抗菌力)을 나타낸다.
그러나 김치에서 군내가 나기 시작한다면 유산균보다 잡균이 제 세상을 만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김치는 식용이 아닌 다른 용도로 돌리는 것이 낫다. 유산균은 김치의 핵심 건강 성분이면서 김치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치 유산균의 효과 중 널리 알려진 것은 장(腸)을 깨끗하게 하는, 정장 작용이다. 유산균이 장내에 다량 존재하면 병원균·잡균이 죽거나 힘을 쓰지 못한다.
지난해 농촌진흥청과 아주대병원은 잘 익은 김치가 비만 억제와 혈압 강하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공동 연구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김치를 냉장 상태(약 섭씨 5도)에서 한 달가량 숙성시켜 만든 최적의 발효 김치를 비만환자들에게 석 달간 제공했다. 또 다른 비만 환자 그룹에 생김치를 석 달간 먹게 한 뒤 두 그룹을 비교했다. 그 결과 잘 익은 김치를 먹은 그룹의 체중이 생김치를 먹은 그룹에 비해 평균 300g이나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잘 익은 김치를 먹은 그룹에서 체지방도 두 배 더 감소했고, 혈압·혈당 수치도 더 많이 떨어졌다. 잘 익은 김치 속엔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김치 유산균이 생김치보다 1만 배 이상 들어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묵은지를 먹으면 비만 억제 효과가 떨어졌다.

도움말 주신 분=경희대 약대 김동현 교수, LG전자 디오스 김치냉장고사업실 김은정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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