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마지막 편지](36) 백가흠 - ‘조 대리의 트렁크’ 조 대리
당신, 잘 지내시오? 실제로는 한번도 본 적 없지만, 내 머릿속에는 지금도 그대의 모습이 선명하다오. 당신도 나를 본 적 없을 테지만 당신 안에 내 모습 있을 테니, 그리 낯설지 않겠거니 짐작해보오. 이렇게 불쑥 편지를 전하게 되어 내 마음 민망함으로 그지없소. 허나 그대를 잊은 적 한번도 없으니 그간의 무심함 용서 바라오. 이해심 많은 사람이니 잘 이해해 줄 것으로 믿으오.
나는 그간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내었소.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고, 불안정한 나날이 몇 년간 계속되었소. 여러 일을 하느라 일상이라는 것이 사라진 시간이었다오. 무엇을 좇아가는지조차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시간이었소. 무슨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갖고자 욕망한 것도 아니었던 것 같소. 그저 나는 흘러가는 것들에 거의 모든 시간을 던진 셈이었는데, 지금도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오. 이유 없고 정체 없는 불안함으로 채워진 순간들이었소. 돌아보면 지난 시간이라는 것이 그간 쓴 몇몇 소설로밖에는 남지 않으니, 내 개인사는 그저 불연속적인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것 같소. 강의를 했었던 시간도, 여러 번의 여행도 모두 흘러가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뭔가 손해를 본 느낌마저 든다오. 나는 사라지고 간혹 소설이나 당신 같은 인물로나 남았으니, 일상생활의 시간과 맞바꾼 가치를 놓고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오. 개인사로만 보면 작가라는 직업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소. 요즘은 숙명으로 생각하고 잘 받아들이고 있다오.
마흔을 기다리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은 것 같으오. 당신과 처음 대면했었던 30대 초반과는 내 모습도, 마음도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고백하고 싶소. 인간의 불행을 목격하고 직시하던 자신감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오. 냉정하고 냉소적이었던 시선도 서서히 거두어들이고 있소.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것이라 치부하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불안함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이러다가 소설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제나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하고 나를 지켜보고 있다오. 나는, 그놈의 눈치를 보고 뭔가를 쓸지 말지 고민하오. 또 모두 다 그 나이, 기다리고 있는 마흔 때문인 것도 같기도 하오.
언젠가 한 독자가 인물을 이렇게 불행과 고통에 던져놓고 책임을 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진 적이 있었는데 요즘엔 자꾸 그 질문을 되새기곤 한다오. 물론 그때마다 당신을 떠올리곤 했소. 당신을 비롯해서 창조된 인물의 인생에 대해 골똘해지곤 하는데, 당신들이 처한 불행과 고통과 숙명을 정말로 내가 모른 척하고 나만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해지곤 한다오.
굳이 대답하자면 나만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소. 나는 때때로 당신들로 인해 고통스럽소. 당신들의 생을 바라보는 것이 버겁고,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소. 당신들로 인해, 내 개인사는 불연속적인 시간을 쓰고 있소. 나는 당신을 만들어냈지만, 창조주는 아니라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주관하고 관장하는 사람이 아니라오. 나는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에 불과하오. 당신의 생과 고통과 숙명을 바라보는 관찰자에 불과하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혹, 소설 속 인물이 날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오. 불행과 고통, 위선과 허위의 중심에 서게 한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오. 허나, 당신의 삶이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위안을 준다는 것, 나는 믿고 있소. 당신과 내가 운명으로 묶일 수밖에 없는 가장 확실한 이유이자, 우리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나는 믿으오. 우리의 숙명인 것을 어쩌겠소.
언젠가는 해야만 했던 고백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게 되어 어떨지 모르겠소. 다만, 여전히 보고 싶고 때때로 술도 한 잔 하고 싶으오.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바로 그것이었소. 한잔 합시다그려. 허나, 언제나 당신을 비롯해서, 여러 인물들이 여전히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뒷모습만 나는 보오. 나는 진심으로, 당신과 당신들이 잘 살길 바라오. 곧, 정말이지 머지않아 나에겐 마흔이 오면, 당신에겐 생의 굴곡이 가라앉고 편안해지면, 마주 앉아 술 한잔하고 싶소. 보고 싶소, 마주앉은 당신의 모습 기다리겠소.
<백가흠 | 소설가>
마흔을 기다리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은 것 같으오. 당신과 처음 대면했었던 30대 초반과는 내 모습도, 마음도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고백하고 싶소. 인간의 불행을 목격하고 직시하던 자신감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오. 냉정하고 냉소적이었던 시선도 서서히 거두어들이고 있소.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것이라 치부하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불안함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이러다가 소설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제나 머릿속 한 구석에 자리하고 나를 지켜보고 있다오. 나는, 그놈의 눈치를 보고 뭔가를 쓸지 말지 고민하오. 또 모두 다 그 나이, 기다리고 있는 마흔 때문인 것도 같기도 하오.
언젠가 한 독자가 인물을 이렇게 불행과 고통에 던져놓고 책임을 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진 적이 있었는데 요즘엔 자꾸 그 질문을 되새기곤 한다오. 물론 그때마다 당신을 떠올리곤 했소. 당신을 비롯해서 창조된 인물의 인생에 대해 골똘해지곤 하는데, 당신들이 처한 불행과 고통과 숙명을 정말로 내가 모른 척하고 나만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해지곤 한다오.
굳이 대답하자면 나만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소. 나는 때때로 당신들로 인해 고통스럽소. 당신들의 생을 바라보는 것이 버겁고,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소. 당신들로 인해, 내 개인사는 불연속적인 시간을 쓰고 있소. 나는 당신을 만들어냈지만, 창조주는 아니라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주관하고 관장하는 사람이 아니라오. 나는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에 불과하오. 당신의 생과 고통과 숙명을 바라보는 관찰자에 불과하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혹, 소설 속 인물이 날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오. 불행과 고통, 위선과 허위의 중심에 서게 한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오. 허나, 당신의 삶이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위안을 준다는 것, 나는 믿고 있소. 당신과 내가 운명으로 묶일 수밖에 없는 가장 확실한 이유이자, 우리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나는 믿으오. 우리의 숙명인 것을 어쩌겠소.
언젠가는 해야만 했던 고백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게 되어 어떨지 모르겠소. 다만, 여전히 보고 싶고 때때로 술도 한 잔 하고 싶으오.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바로 그것이었소. 한잔 합시다그려. 허나, 언제나 당신을 비롯해서, 여러 인물들이 여전히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뒷모습만 나는 보오. 나는 진심으로, 당신과 당신들이 잘 살길 바라오. 곧, 정말이지 머지않아 나에겐 마흔이 오면, 당신에겐 생의 굴곡이 가라앉고 편안해지면, 마주 앉아 술 한잔하고 싶소. 보고 싶소, 마주앉은 당신의 모습 기다리겠소.
<백가흠 | 소설가>
입력 : 2012-07-25 21:21:49ㅣ수정 : 2012-07-25 21: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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