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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과학과 사회]수학이 필요한 사람들

ngo2002 2012. 7. 26. 09:43

[서민의 과학과 사회]수학이 필요한 사람들

지난해 11월 말, 여의도 문화광장에서 ‘나꼼수 콘서트’가 열렸다. 날씨가 제법 추웠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메웠는데, 의자에 앉은 사람만 따져도 2만명은 됐고, 그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이 또 그만큼 됐으니, 거기 모인 군중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4만명은 넘었다.뉴시스라는 언론사는 참여 인원을 10만명으로 추산할 정도였는데, 신기하게도 경찰은 1만6000명이라고 주장했다. 혹시 1만6000 이상은 못 세는 걸까? 경찰이 이러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08년 6월 말,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국미사의 참가자는 주최 측 주장이 3만명인 반면 경찰은 8000명이라고 했다. 경찰의 말로는 참가인원을 따질 때 3.3㎡당 6~8명을 기준으로 한다는데, 서울광장의 면적이 1만3207㎡이니 경찰의 계산대로 해도 2만4013~3만2017명은 돼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추정인원을 8000명이라고 했으니, 곱하기에 치명적 약점이 있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각종 집회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어, “경찰 추산대로라면 우리나라 인구는 500만명”이란 조롱도 나온단다. 경찰 임용 때 수학에 비중을 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나도 수학을 그다지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대학입시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잘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하긴 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고교 졸업 후 미적분을 비롯한 고난도 수학을 써먹을 일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근의 공식을 외워보라’고 요구하기도 하지만, 그거야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지 수학적 관심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물론 수학이 전혀 필요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최소한 중학교 1학년까지의 수학은 배워야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니까. 나 같은 경우 오래된 유적에서 기생충 알을 찾는 일을 하는데, “흙 0.1g을 봐서 충란 3개를 발견했다면 1g에는 충란이 몇 개 들어 있을까?” 같은 걸 계산하려면 어느 정도의 수학적 지식은 필요하리라. 하지만 삼각함수나 미적분 같은 건 대체 왜 배웠을까 하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하도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 중 하나가 ‘세상을 보다 쉽게 살기 위해서’인데, 글쎄다. 수학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니, 수학이 없다면 오히려 세상이 더 쉬워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호어스트라는 독일 작가는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라는 책에서 우리가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직장 상사가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쓸데없는 일을 시켰을 때, 우리는 수학도 배웠는데 뭐, 이러면서 그 하찮은 일을 묵묵히 해낼 수 있다고. 수학을 배우는 이유 중 가장 공감 가는 답변이 아닐까?

이거야 우리끼리 하는 소리고, 교육 전문가들은 수학이 논리력 향상에 도움을 준단다. 매우 그럴 듯하다. 2에다 3을 더하면 5가 나오는 것처럼, 수학문제는 대부분 답이 있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리력이 길러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을, 당연히 수학도 잘했을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펴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예컨대 여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는 “4대강 사업은 친환경 치수사업”이라고 했다. 산을 뚫고 강을 파고 댐 수준의 보를 16개나 설치하는 일이 ‘친환경’이란다.

당연히 수학을 잘해야 하는 경제연구소들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경제효과를 수십조~수백조원으로 예측했는데, 그 돈이 다 어디로 샜는지 아무도 모른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와 일부 학자들은 종편으로 인해 2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글로벌 미디어그룹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시청률이 0%에 수렴하는 작금의 현실은 그게 다 헛소리였음을 말해준다. 불법사찰을 수사했던 특검팀은 ‘blue house’의 약자일 ‘BH’라든지 대통령을 뜻하는 VIP 같은 쪽지를 보고도 청와대와의 관련성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수학이 논리에 도움을 주긴 하겠지만, 수학을 배웠다고 다 논리적 사고를 하는 건 아닌 듯하다. 이들이 다 정치에 오염된 인사들인 걸로 보아, 정치에는 논리를 말살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지.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입력 : 2012-06-26 21:07:51수정 : 2012-06-27 01:4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