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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03> 한국 백화점의 역사

ngo2002 2012. 2. 21. 15:22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403> 한국 백화점의 역사

[중앙일보] 입력 2012.01.31 00:00 / 수정 2012.01.31 00:00

79년 ‘쇼핑센터’로 문 연 롯데, 당시 법 때문에 ‘백화점’ 간판 못 달았죠

“나는 어디로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중략)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략) 나는 또 회탁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이상(1910~37)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미쓰꼬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 미츠코시를 말합니다. 1930년대 격동의 시대, 휘황한 인테리어와 옥상정원, 서양식 상품을 줄줄이 늘어놓은 백화점은 장안의 구경거리였습니다. 이후 70여 년, 한국 백화점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채승기 기자


해방 전

1906년 미츠코시가 최초, 첫 한국자본 백화점은 화신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백화점 ‘화신백화점’의 모습. 1987년 여름 건물이 철거되면서 화신의 50년 역사는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은 1906년 지금의 명동 사보이호텔 자리에 들어선 미츠코시 오복점이었다. 일본 의상인 오복(吳服)을 주로 팔았다. 일본 미츠코시가 경성에 설치한 출장소 형태였다. 현대식 백화점의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다. 업무도 수출입 거래를 주로 하는 소점포 수준이었다. 미츠코시는 일본 최초의 백화점이기도 하다. 1904년 설립됐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은 1852년 파리에서 문 연 봉 마르셰(Bon Marche)였다. 미국에선 메이시(Macy), 영국은 휘틀리(W. Whiteley)가 각각 최초의 백화점이다.

  조선 경성의 미츠코시가 백화점 형태로 발전한 것은 1929년 일본 미츠코시가 서울 출장소를 지점으로 승격시키면서부터다. 미츠코시 경성점은 1930년 10월 24일 현재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있는 충무로에 건물을 완성했다. 최초 오픈 당시 미츠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면적 7335㎡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규모였다. 종업원 수도 약 360명에 달했다. 당시 1층에는 약국·여행안내소·선물코너·화장품 코너 같은 것들이 있었고 2층에는 오복 판매점이 들어섰다. 3층에는 신사양복·여성양장 코너가 있었고 매장 안에 재단사와 옷 만드는 공장이 있어 맞춤복 봉제도 했다. 4층에는 귀금속·가구매장·커피숍과 대형식당이 있었다. 오전에는 모닝커피를 즐기는 모던 손님으로 가득 찼고 점심·저녁 시간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1930년대 미츠코시·히라타·조지아 같은 일본계 백화점들이 영업을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조선인의 상권은 크게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평안도 출신 상인 박흥식이 종로 2가에 있는 귀금속 전문점 화신상회를 인수해 31년 화신백화점을 열었다. 민족자본으로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백화점인 셈이다. 이듬해 화신백화점은 최남이 세운 동아백화점을 인수했으나 35년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는다. 이 백화점은 2년 후 지하 1층·지상 6층의 당시로서는 초고층 건물로 재개장한다.


1945~80년대

롯데·신세계·미도파 … 건설·부동산업계도 가세


백화점 안내 직원들의 모습. 1980년대 백화점 업계는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들어서게 된다.
미츠코시는 해방 직후 동화백화점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그 뒤를 이어 1954년에는 미도파, 55년에는 신신백화점 등이 문을 열어 한동안 3파전이 이어졌다. 미츠코시는 62년 동방생명으로 소유권이 넘어갔고 63년 동방생명을 삼성이 인수하면서 신세계로 상호를 바꿨다. 롯데는 79년 서울 소공동에 롯데쇼핑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백화점 영업에 뛰어든다. 롯데는 개점 당시 ‘롯데쇼핑센터’라는 이름을 썼는데 이는 서울 도심에서는 백화점을 신설할 수 없다는 당시 규제 때문이었다.

 80년대 경제발전으로 소득이 늘면서 소비 패턴도 다양화됐다. 소비자들의 상품 선호 기준도 변화하면서 백화점이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한다. 80~85년에는 롯데 ·신세계·미도파 백화점이 마켓셰어를 형성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을 이뤘다. 84~87년에는 부도심 지역에 현대백화점·그랜드백화점·뉴코아신관·여의도백화점 등이 잇따라 개점했다. 특히 건설·부동산 업계의 백화점 진출이 두드러졌다. 당시 건설업계의 호황세를 보여준다.

  80년대 후반에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백화점들이 과다경쟁으로 도산하는 일이 빈번했다. 아케이드형 백화점이나 지하상가 같은 유사업종이 생겨나고 각종 규제가 늘어나면서 매출이 둔화되자 여의도백화점·유니버스백화점·파레스백화점·크리스탈백화점 등이 개점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

 
1990년대 초반

백화점 호황기 … 명동 벗어나 대형화·다점포화 열기


롯데의 여러 사업체와 브랜드가 몰려있는 서울 소공동 롯데타운의 전경. 롯데호텔-롯데백화점 본점-영플라자-명품관으로 이어지는 연면적 36만㎡(11만 평)의 대규모 ‘쇼핑타운’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경제는 유가·금리·달러가치 하락과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힘입어 성장가도를 달렸다. 92년 12월 문민정부가 탄생하면서 유통 관련 법규를 포함한 경제정책 전반에 변화가 일었다. 국가의 시장 개입을 줄이고 민간 경제주체들의 경제 활동을 장려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타고 백화점들도 대형화·다점포화·다각화하기 시작했다. 복합시설을 갖추고 면적도 1만~1만5000㎡ 규모에서 2만5000~3만5000㎡ 규모에 이르는 대형 매장을 앞다퉈 열었다. 롯데쇼핑은 88년 면적 3만6390㎡의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백화점(본점)을 완성하고 비슷한 규모의 잠실점을 추가로 개점했다. 신세계도 미아점을 개점하고 현대백화점도 무역센터점을 여는 등 롯데·신세계·현대·미도파·뉴코아 같은 브랜드의 다점포 체제가 본격화됐다. 또 기존의 명동 중심에서 강남·잠실·영등포·부산 같은 부도심과 지방으로 상권이 확대됐다. 백화점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대형할인점·편의점에도 손 뻗어 … 문화센터 붐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백화점들은 차별화를 위해 문화센터 같은 각종 고객편의시설을 만들었다.
90년대 중반 백화점들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백화점 업체들이 앞다퉈 타 업종인 외식사업 ·편의점·해외브랜드 사업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 롯데쇼핑은 세븐일레븐·로손 같은 편의점의 체인화를 시작했다. 신세계는 수퍼마켓을 발전시킨 할인점인 이마트를 시작하며 새로운 유통판로를 만들었다. 창고형 소매업인 프라이스클럽·킴스클럽과 인터넷쇼핑몰도 속속 등장했다. 이 같은 거대 유통업체의 공격적 시장 진출로 영세 수퍼마켓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백화점들은 타 매장과의 차별화를 위해 해외 유명 예술단체를 초청해 공연을 열거나 미술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백화점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센터도 잇따라 생겼다. 주부와 아이들을 위한 컴퓨터·창업·재테크·부동산 같은 다양한 강좌를 개설했다. 문화센터는 고정고객을 확보하며 홍보·판촉 기능을 대신해 더 많은 회원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문화센터의 인기가 꾸준히 높아지자 현대백화점은 아예 고객들만을 대상으로 한 자체 대형콘서트를 기획해 백화점 외부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2000년대

20~30대 겨냥한 영패션관, VIP 위한 명품관 만들어


세계 최대 백화점인 신세계 백화점 센텀시티점의 모습. 올해 개점 3주년을 맞은 이 백화점은 다양한 부대시설과 입점브랜드를 갖춰 부산 지역의 관광명소가 됐다. 부산지역의 상권 확대에도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 거주 30~40대가 주고객이던 백화점에도 변화의 바람이 시작됐다. 중국·일본 관광객이 늘고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낮았던 20~30대 초반 고객들도 백화점을 자주 찾기 시작했다. 이에 백화점들도 제품 나열식 판매에서 탈피해 특정 고객층을 위한 전문관을 만들거나 복합쇼핑몰로의 변신을 꾀했다. 롯데백화점(2003)·현대백화점(2009)이 각각 영플라자·유플렉스라는 20대 전문관을 만들고 10~20대를 겨냥한 제품을 들여놓았다. 운영방식도 기존 백화점과 차별점을 뒀다. 정장을 입고 고객을 응대하던 기존 판매사원들과 달리 청바지와 티셔츠에 염색까지 가능하게 해 자유롭고 젊은 이미지를 표출했다. 신세계는 부산 지역에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자 ‘동북아 랜드마크’를 표방하며 신세계 샌텀시티점을 2009년 오픈했다. 오락·이벤트·쇼핑을 한군데서 즐길 수 있게 기획했다. 영화관은 물론 스파랜드·아이스링크까지 갖췄다.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서관) 야경. 국내 최초로 최고급 고객(VIP)를 위한 명품관을 만들었다.
  최고급고객(VIP)을 위한 명품관들도 잇따라 생겼다. 90년 9월 ‘명품관’의 이름을 달고 재개장한 갤러리아 백화점이 국내 최초다. 갤러리아 명품관은 2000년 와인숍을 오픈하는가 하면 발레파킹 서비스도 제공했다. 샤넬·루이비통·까르띠에·구찌 같은 브랜드들도 갤러리아 명품관을 통해 처음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롯데는 서울 소공동 본점 옆의 옛 한일은행 건물을 새 단장해 아예 명품전문 백화점 애비뉴엘을 열었다. 1만7190㎡의 면적에 96개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유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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