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바둑이야기 - 1989년 제1회 응씨배 결승전 ④
‘빠른 창’ 조훈현 vs ‘철갑 방패’ 녜웨이핑 … 중국 언론 “승부는 하늘에 있다”

서호 풍광 속 요염하게 빛나던 바둑판
흥분과 열망 속에서 응씨배 결승전이 시작됐다. 중국의 TV가 계속해서 두 사람의 승부를 예고한 탓에 700명 정원의 해설장은 금방 가득 찼다. 항저우(杭州) 시내에도 두 개의 해설장이 더 마련돼 있다고 했다. 1989년 4월 25일 샹그릴라 호텔에서 시작된 결승 5번기의 1국. 날렵한 체구의 조훈현 9단과 두툼한 몸 집의 녜웨이핑 9단 사이에 바둑판 하나가 놓였다. 화창한 봄빛과 가슴 저미는 서호(西湖)의 풍광이 창 밖에 펼쳐지고 있었고 그 탓인지 바둑판은 더욱 매혹적이고 요염하게 빛났다. 그 위에서 조 9단의 ‘빠른 창’이 화려한 춤사위를 펼쳤다. ‘철의 수문장’으로 불리는 녜웨이핑 9단은 인내를 다해 기회를 노렸으나 7시간의 혈전은 결국 조훈현의 승리로 끝났다(백, 3집 승). 중국 측은 예상 외의 완패에 숙연했다. 잉창치도, 60여 명의 중국 기자도, 호텔을 가득 메운 중국 관계자들도 입을 꾹 닫고 말이 없었다.
1국 이긴 조훈현, 항저우 관광하며 휴식
서울서 열린 4강전 전야제에서 만나 기념사진을 찍은 멤버들. 왼쪽부터 조훈현, 린하이펑, 잉창치, 후지사와 슈코, 녜웨이핑. 이 중에서 조훈현과 녜웨이핑이 결승에 올랐다. [한국기원 제공]이튿날 중국 신문 1면엔 “녜웨이핑이 단 한 수의 불찰로 뼈아픈 1패를 당했다”는 패보와 함께 “창은 날카롭고 방패는 견고하니 승부는 하늘에 있다(矛
盾堅 勝負在天)”는 해설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그들도 이번 승부가 창과 방패의 대결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기자는 조훈현의 바둑을 ‘부드러운 바람, 빠른 창’이란 한마디로 요약한 적이 있다(중국에선 이를 유풍쾌창(柔風快槍)으로 번역해 썼다). 조 9단은 또한 독수리의 이미지를 풍긴다. 녜웨이핑은 어떤가. 그의 바둑은 만리장성처럼 높고 견고하다. 뚫리지 않는 방패다. 비록 한 판은 이겼으나 아직 승부는 멀었다.이틀을 쉬는 동안 녜웨이핑은 식사 시간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당시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특별히 보내줬다는 미녀 브리지 선수와 방에서 카드게임으로 머리를 식히고 있다는 소문만 들렸다. 조훈현은 항저우 인근을 돌아보며 관광을 즐겼다.
4월 28일 샹그릴라 호텔에서 제2국이 열렸다. 조 9단의 부인 정미화씨는 1국 때와 똑같이 영은사로 가 108배를 올렸다. 녜웨이핑의 부인 쿵상밍(孔尙明)은 프로기사 8단이었다. 그녀는 1국 때는 기성 우칭위안(吳淸源)이 주도하는 검토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번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2국은 조훈현이 일찌감치 난조를 보이며 승부가 빠르게 결정되고 말았다(조훈현 흑 9집 패). 녜웨이핑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대국장 주변은 곧 열광적인 환호 소리와 함께 수라장으로 변했다. 잉창치도 연신 환하게 웃고 있었다.
2국까지 1대1, 3국은 닝버(寧波)에서
응씨배 검토 장면. 당시 심판장을 맡았던 우칭위안(吳淸源) 9단은(왼쪽 두 번째) 1914년 생으로 올해 98세다. 중국인이지만 일본에서 ‘기성(棋聖)으로 불린 유일한 인물. 그 옆 턱을 괸 사람이 한국바둑의 대부 조남철 9단으로 6년전 작고했다.1국과 2국의 흐름을 보면 이미 승부는 기량과 무관한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둑이 이미 기량의 단계를 떠났다면 도대체 무엇이 승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의 얼굴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그 얼음장 아래로 광풍노도가 몰아치고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마음은 끝없이 출렁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과 열탕을 오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대국 당일 아침, 누가 더 냉정을 찾느냐, 누구의 기세가 더 강하고 누가 더 집중력을 보이느냐로 승부가 결정나고 있었다.
1국 때 TV 중계는 녜웨이핑의 패배가 확인되는 순간 슬그머니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2국에서 녜웨이핑이 승리하자 TV에선 밤 늦게까지 신나는 해설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튿날 우리는 항저우를 떠나 3국의 개최 장소인 닝버(寧波)로 떠났다. 샹그릴라 호텔에선 저녁식사를 하러 넓은 홀로 우리 일행이 들어서면 악사들이 ‘아리랑’을 연주해 줬다. 너무 극진한 배려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중국이란 나라는 참 통이 크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런 특이한 배려는 이후 20여 년간 다시 본 적이 없다.
바둑 승부도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당시의 중국은 진정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용광로 그 자체였다. 항저우 거리에선 비를 맞으며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얼마 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다). 거리에서 만난 나이 든 사람들은 깊게 팬 주름살에 무심한 눈빛, 몸에 밴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술이 얼근한 해방군과 카메라를 멘 젊은이들의 눈빛은 마냥 호기심으로 빛났다. 시장경제가 막 시작되고 있었고 한국을 포함한 ‘외국’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바람기가 살짝 든 시골 처녀 같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응씨배 결승전은 상상도 못할 관심을 집중시키며 폭주하고 있었다.
항구도시 닝버까지 우리는 4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갔다. 특별히 배정된 전용칸에 앉아 조훈현 9단은 무심히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 밖엔 물소들이 평화롭게 쟁기를 끌고 드넓은 논 사이사이의 수로에선 작은 배들이 뭔가를 실어나르고 있었다. 닝버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때아닌 함성에 깜짝 놀랐다. 창밖을 내다보니 플랫홈엔 사람들이 발을 디딜 장소가 없을 정도로 가득 몰려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특별한 환대 받으며 3국 … 허무한 역전패
처음엔 바둑 때문에 몰려나온 사람들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꼭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항저우에서 조 9단이 가는 곳마다 사인 공세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한국과는 다르다”고 느꼈지만 이런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닝버는 잉창치의 고향이다. 장제스(蔣介石)를 따라 대만으로 가 재벌이 된 잉창치가 막 개방 바람이 불기 시작한 고향 닝버에 금의환향하는 것도 이곳에선 또 다른 뉴스였다. 그 바람에 응씨배에 대한 보도가 더욱 많았고, 대회가 1대1로 팽팽하게 치달으면서 이런 믿어지지 않을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다(잉창치는 이곳 닝버에서 결승 3, 4, 5국을 모두 치르려 했으나 한국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호텔까지 수많은 인파가 따라왔다. 호텔에 들어서니 붉은 제복을 입은 전 직원이 두 줄로 도열해 지나가는 일행을 박수로 맞이했다. 조 9단의 뒤를 따라 그곳을 지나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과연 이런 들뜬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느냐. 그게 과제였다. 승부란 너무 집착해도 안 되고 너무 잊어도 안 된다. 다시 이틀간 휴식했다. 항저우에선 바둑 두 판을 두는 데 6박7일이 걸렸고, 이곳에선 딱 한 판을 두는 데 3박4일이 걸렸다. 낯설고 음식도 맞지 않는 중국에서 조 9단은 조금씩 지쳐갔다. 그래도 조 9단은 명랑하게 주최 측이 마련한 관광에 나섰다. 조 9단은 장제스 생가에 갔을 때 화려한 정자 위에서 ‘현현(玄玄)’이란 휘호를 남겼다.
쓰촨(四川)에서 온 중국 기자가 “중국엔 지금 자본주의식 자영상점이 10만 개 생겼는데 처음 1호가 이곳 닝버에서 생겨났다”고 알려준다. 일행은 호기심에 자영상점 팻말이 붙어 있는 바닷가 맥주집에 가봤다. 여자 종업원들과 사장은 외국인들이 오자 서빙도 중단한 채 밖으로 몰려와 단체사진 찍기에 골몰한다(그렇게 순진하던 중국이 지금처럼 살벌하게 바뀐 걸 보면 진짜 천지개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녜웨이핑은 관광이든 뭐든 일절 하지 않고 오직 브리지와 식도락만 즐긴다(술을 한 방울도 못하는 조 9단과 대조적으로 녜웨이핑은 점심 때 독한 고량주를 한 병씩 마시는 대주가다. 하지만 그바람에 녜웨이핑은 심장이 약하다).
그리하여 5월 2일, 승부의 기로라 할 제3국이 조 9단의 백번으로 시작됐다. 바둑은 우여곡절 끝에 조 9단이 크게 우세해졌다. 이대로 가면 완승이라 생각할 때 불각의 패착이 등장했다. 바둑은 허무하게 역전당했다. 모니터를 통해 녜웨이핑의 승리가 확인된 직후, 호텔 사방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얼마 후 제복 차림의 종업원들은 다시 두 줄로 서서 지나가는 녜웨이핑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퍼붓고 있었다.
기차 타고,배 타고 … 19시간 걸려 서울로
5월 3일 닝버를 떠났다. 항저우까지 5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남쪽의 광저우까지 비행기를 타고 갔다. 여기서 8시간 동안 배를 타고 홍콩으로 갔다. 국교가 없었기에 바로 코 앞의 서울을 놔두고 멀리 멀리 돌아갔다. 1승2패로 밀린 조 9단은 깜깜한 밤, 넓은 강을 따라 흘러가는 뱃전에 말없이 서 있었다. 이번 결승전은 비록 바둑 한 판이지만 저 강물처럼 도도한 역사의 흐름 위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로군에 밀려 대륙을 떠났던 장제스와 그를 수행했던 잉창치는 바둑대회를 통해 다시 금의환향했다. 중국과 잉창치는 녜웨이핑의 우승을 열망하고 그 우승을 통해 더욱 가까워지고 싶어한다. 그 소망을 왜 모르랴. 하지만 조훈현과 한국 바둑 역시 꼭 이겨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멀리 홍콩의 불빛이 보였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결승 4국(9월 5일)까지는 아직 넉 달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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