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북경 후퉁의 사합원과 오지 중의 오지 찬디샤마을

ngo2002 2011. 10. 29. 11:22

북경 후퉁의 사합원과 오지 중의 오지 찬디샤마을
[신현수의 걷기여행 ⑥] - 북경 잔장성, 후퉁, 찬디샤마을, 내몽골(하편)
[355호] 2010년 08월 31일 (화) 18:59:29 부평신문 webmaster@bpnews.kr
   
▲ 중국 북경의 찬디샤마을의 전경. 명나라 때부터 이루어진 마을이다. 전쟁을 거의 겪지 않아 마을 모습이 몇 백 년 전 모습 그대로다.
내몽고 타이푸스치 초원에서 6시간을 달려 다시 북경으로 왔다. 휴게소에서 한 번 쉬었다. 엊그제 내몽고에 갈 때 쉬었던 휴게소랑 모습과 파는 물건이 같아서 모든 휴게소가 비슷하게 생겼구나, 생각했는데 우리가 이미 들렀던 휴게소였다. 나의 눈썰미란 게 참으로 한심하다.

집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곳 ‘후퉁’

북경 후퉁에 있는 소박한 호텔에 짐을 풀었는데, 이틀 묵었던 ‘게르(=몽골 유목민들의 이동식 전통가옥)’에 비하면 이건 뭐 완전 천국이었다. 후퉁은 몽고어로 ‘우물’이라는 뜻이라는 설도 있고, ‘도시’라는 뜻의 몽고어 ‘하오터’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고, 여진족이나 몽고족을 뜻하는 ‘후인(胡人)의 대동’을 뜻하는 후인대동(胡人大同)의 줄임말이라는 설도 있다.

후퉁은 작은 골목에 이루어진 집들이 미로처럼 얽혀있어서 잘못 들어갔다가는 찾아 나오기도 어렵다. 자금성이 600년 됐는데, 이 골목은 그 이전부터 만들어졌으므로 약 800년 전부터 생성됐다고 본다. 2008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흉물이라고 하여 정리하다가 지금은 정책이 바뀌어 철거가 중단됐다. 북경의 후퉁 중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십찰해’ 후퉁이다.

건물이 사방으로 배치돼있어 ‘사합원’

   
▲ 북경의 후퉁 거리에서 현지인들이 카드놀이 같은 걸 하고 있다.
후퉁에는 중국 화북지방의 전통가옥 건축양식인 유명한 사합원이 있다. 말 그대로 건물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배치돼있다. 그래서 매우 조용한 공간이지만 냄새가 빠지지 않아 집집마다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동네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 공동화장실은 동네사람들이 아침마다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는 중요한 커뮤니티 장소다.

현재 사합원은 민박으로 사용하거나 관광객들을 상대로 입장료를 받는데, 사합원 한 채 가격이 우리 돈으로 50억원이 넘는다. 이연걸이 사합원을 60억원에 사서 자기 어머니에게 선물했다는 얘기도 있다. 현재 십찰해 후퉁지역에 40여 채가 남았는데, 관광객들에게 일곱 집이 개방된다. 우리가 방문한 사합원의 주인아저씨 아주머니가 갑자기 부러워지면서 다시 보인다.

후퉁 민가로 가서 민가식으로 저녁을 먹고 만두를 빚었다. 십찰해 밤거리를 구경하고 배를 탔다. 청년은 노를 젓고 예쁜 여인이 중국 전통 악기를 연주한다. 원래 열 개의 사찰이 있어서 십찰해라는 이름이 생긴 이곳은 은정교와 더불어 베이징에서 가장 각광받는 밤 문화의 명소이기도하다.

중국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넘친다. 십찰해 거리는 앞 사람 놓치기 딱 좋은 거리다. 꼬치 집에서 맥주 한잔도 마다하고 싶을 정도로 극도로 힘들고 피곤한 후퉁에서의 밤이다.

공정여행의 선구자 최정규 선생

   
▲ 안내원이 관광객들에게 사합원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8월 6일, 아침에 일어나 어젯밤 배를 탔던 십찰해 호수 근처의 카오로우지 식당으로 갔다. 만두와 빵, 죽 등을 파는 150년 된 식당인데, 노신도 이 식당에 자주 들러서 만두를 먹고 갔다고 한다.

카오로우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찬디샤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또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들었던 음악이 귀에 쏙 들어온다, 운남지방에서만 알려진 여자 가수의 노래라는데, 물론 가사의 뜻은 모른다. 왜 이리 귀에 쏙 들어오나 했는데, 공정여행 예비모임 때 앞 기수 분들이 만들었던 동영상을 봤는데 바로 그 동영상의 배경음악이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음악을 골라 들려주고 이번 공정여행을 애초에 계획하고 주도한 이는 유명한 여행 작가 최정규 선생이다. ‘친절한 여행책’이라는 여행서를 펴낸 최 작가는 이 책이 뜨는 바람에 (5만권이 넘게 팔렸다) 너무 유명해져서 방송, 집필 등 과도하게 활동을 했고 결국 건강을 해쳤다.

욕심을 버리고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았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게 된 활동이 국제민주연대에서의 공정여행이다. 국제민주연대는 참여연대에서 분가해 국제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인데, 이 단체를 도울 겸, 여행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도 제시할 겸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주로 내몽골, 귀주, 운남 등의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내가 참가한 여행이 벌써 10차 공정여행이다. 올해 여름만 해도 11, 12차가 남았다. 최 선생이 또다시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찬디샤마을에 가기 전에 근처 황령서마을에 점심 먹으러 먼저 들렀다. 황령서마을도 오래된 마을이기는 하지만 찬디샤마을에 비해 규모가 작고 볼만한 건물과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

몇 백 년 전 모습 그대로 ‘찬디샤마을’

   
▲ 노신도 자주 들러 만두를 먹고 갔다는 십찰해 호수 근처의 150년 된 카오로우지 식당.
찬디샤마을은 명나라 때부터 이루어진 마을이다. 전쟁을 거의 겪지 않아 마을 모습이 몇 백 년 전 모습 그대로다. 버스는 한 번에 꺾지도 못할 만큼 험한 커브길이 계속된다. 그만큼 오지 중의 오지다. 사진가들이 먼저 마을을 발견하고 인터넷에 찍어 올리기 시작하면서 알려졌다. 촌장님이 직접 동네를 다니면서 설명해준다. ‘찬(?)’은 ‘부뚜막 찬’자다. 큰 불이 나무를 태워 흥하게 된다는 뜻이다.

찬디샤마을은 입지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산봉우리 세 개가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그 산봉우리의 모습이 거북이, 호랑이 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문화혁명은 그러나 이 오지를 비켜가지 않았다. ‘모택동 사상으로 우리의 머리를 무장하자’ 등 문화혁명의 흔적이 마을곳곳에 있다.

마을을 구경하고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숙소가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데, 그래도 ‘게르’보다는 조금 나은 것에 위안을 삼는다. 관우사당을 구경하고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산에 올랐다가 ‘일선천’이라는 곳에 갔다.

말 그대로 하늘이 한 줄로 보이는 곳이다. 이런 곳에 어떻게 길을 냈는지 놀랍다. 일선천에서 내려와 옥수수를 사먹거나 현지에서 나는 견과류를 사먹는 등 군것질을 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이런 것이 바로 공정여행에서만 느끼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 중국 문화혁명의 흔적, ‘모택동 사상으로 우리의 머리를 무장하자’.
저녁을 먹고 나서 양꼬치를 안주로 맥주 한잔을 기울였다. 여행이 아니면 이생에서 만나기 어려웠을 인연들과 마치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던 것처럼 밤 깊은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벌써 이번 여행을 마쳐야 하는 날이 밝았다. 약간은 아쉬운 마음에 일찍 일어나 동네를 돌며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아무리 찍어도 내 사진은 늘지 않는다.

   
▲ 하늘이 한 줄로 보이는 일석천.
북경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는데 아주 먹을 만하다. 잠시 자유 시간을 가졌다. 북경 어디인지모를 거리를 걸어 다녔다. 건널목이 이상하게 중간에 끊어져 있다.

자투리 시간에 천안문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말도 못하고 지리도 몰라 자신이 없었다. 충격적인 것은, 말을 묻는데 젊은 공안인 듯한 청년이 못 알아듣는다. 다른 말도 아니고 그 유명한 ‘천안문’이라는 단어를. 중국 발음은 역시 만만치 않다.

연착한 비행기를 탔다. 늦은 공정여행은 먹고 자고 싸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나 불편한 만큼 다른 여행에서는 얻기 어려운 경험들을 한다. 이 공정여행의 패러다임이 널리 퍼지면 좋겠다. 잠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인천공항이다.

*필자의 홈페이지(http://cafe.naver.com/shinhyunshoo)에서 더 많은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글ㆍ사진 / 신현수(시인ㆍ부평고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