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디지털시대 이끌 한국형 전력산업 틀 짜야

ngo2002 2010. 1. 5. 11:20

송전망 직류로 교체 에너지효율 높여야
한전의 스마트 그리드 독점은 시대착오
민간사업자 경쟁시켜 전력혁명 유도를

◆ 130년만에 2차 전력혁명 (下) ◆

기존 전력산업 울타리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자동차, 통신, 2차전지, 반도체, 가전 등 디지털산업과 융합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전기를 보관하는 배터리시장이 급팽창했고 절전형 스마트 전자제품이 줄줄이 시판을 예고하고 있다.

실시간 전력 사용량과 전기요금을 알 수 있는 스마트 미터기도 선을 보인다. 집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발전기에서 전력을 자체생산해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길도 열리게 된다.

그러나 2차 전력혁명을 위한 기반시설은 여전히 미흡하다. 전력 장비와 부품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개발이 절실하다.

표준화된 디지털 배전시스템 구축도 요구된다.

에디슨이 1879년 백열전등을 발명해 전기의 상업화를 이뤄낸 뒤 교류(AC)전원이 보편적으로 쓰였다. 공장을 가동하고 전기모터를 이용할 때 전압을 손쉽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0과 1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컴퓨터, TV 등을 위한 직접적이고 안정적인 직류(DC)전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를 들여오면 충전장치는 직류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원대 홍준희 전기정보공학과 교수는 "품질이 좋고 손실이 적은 직류전원을 사용하면 발열량이 줄고 가전제품 효율도 높아진다"며 "미국도 동부와 서부를 잇는 거대한 송전망을 직류로 바꾸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전력혁명과 관련한 또다른 '뜨거운 감자'는 한국전력의 독주 문제다.

지난 6일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그리드' 토론회가 열린 KT연구개발센터.

한국전력은 스마트 가정ㆍ빌딩, 전기차 등 수송, 신재생에너지 등 3가지 분야에 동시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전력이 기존에 전력계통, 전력시장 운용 등을 주관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스마트그리드 5개 전 분야에 뛰어든다는 뜻이다.

토론회에서 한 관계자가 '한국전력이 독점하려고 한다'며 따졌다. 이에 대해 분야별 1개 컨소시엄 참여는 한국전력 등 모든 사업자가 가능하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통신회사 등 민간사업자들은 불편한 표정이 역력했다. '한국전력이 스마트그리드의 심판과 선수를 모두 하려고 한다'는 푸념이 들려왔다.

실제로 한국형 2차 전력혁명을 위한 첫걸음인 '스마트그리드'가 벌써부터 삐걱이고 있다.

한국전력이 지금처럼 전력산업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상황에서 민간사업자들은 참여를 주저하고 있다.

그 사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자원고갈로 인한 화석연료 가격 상승, 인구 증가와 산업고도화 등은 기존 '아날로그' 전력산업의 커다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기는 더 이상 저렴한 에너지가 아니다.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위해 전력 공급자와 소비자 간 소통하는 양방향 지능형 전력망이 부각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성봉 연구위원은 "한국형 2차 전력혁명은 디지털산업과 맞물려 전력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전력산업에 경쟁이 도입돼 소비자들이 통신비처럼 전기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산업구조 개편 역시 절실한 과제다. 독점적인 한국전력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민간사업자가 참여하는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기요금의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소비자 중심의 산업변화가 요구된다.

전력 발전부문에 이어 장기적으로 판매부문의 경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원가절감과 기술개발을 위한 경쟁을 통해 기존 전력산업의 비효율적 부분들을 도려내고 소비자들이 전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 전력시장에 진출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지식경제부는 2차 전력혁명을 위한 스마트그리드를 차세대 수출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

해외기업보다 5~10년 앞서 전력혁명을 실현해 해외시장에 진출한다는 전략이다.

선진국은 전력산업 교체기에 있고 개발도상국은 전력망을 늘려가고 있어 '한국형 스마트그리드'는 성장잠재력이 있다.

이를 위해 지경부는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가 착공되는 제주도 구좌읍을 기존 전력산업 정책이 적용되지 않는 특구로 조성해 최고의 기술이 실현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21세기 석유가 아니라 전기배터리 시장이 도래하고 있다"며 "세계 전력시장을 석권한다면 세계 곡물이나 석유 메이저회사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이진우 차장(팀장) / 강계만 기자 / 안정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09.10.08 17:44:3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