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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7) ‘천수만 철새 지킴이’ 김신환 동물병원장

ngo2002 2011. 9. 7. 16:07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길·人·생](17) ‘천수만 철새 지킴이’ 김신환 동물병원장

ㆍ“동물 살리는 수의사가 구제역 그 죽음의 굿판에 끌려다니려니 죽갔시유”

큰말똥가리 ‘천’이 우리 집에 온 지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총상을 입은 오른쪽 날개도 많이 아물어 2~3m 정도 날 수 있다. 서산 천수만에서 데려왔다고 해서 이름을 ‘천’이라 붙여주었는데, 여전히 야성적이다. 나 어릴 적 참매를 길들이듯이 적당히 굶겨가며 닭고기 등의 먹이로 훈련을 시켰다면 아마 지금쯤 내 어깨 위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처음 데려올 때는 ‘어차피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할 바엔 길을 들여 함께 놀고 싶은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비록 다치기는 했지만 독거(獨居)의 삶을 살아온 맹금류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길들여지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길들여진다는 것의 행복과 그만큼의 절망은 동전의 앞뒤처럼 공존하는 것이다. 큰말똥가리 ‘천’은 여전히 내 앞에서 먹이를 먹지 않는다. 슬그머니 피해주면 그때서야 먹기 시작한다. 스스로 먹이 활동을 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여 한결 여유로워졌지만 그래도 야성은 살아있는 것이다.

꼭 1년 만에 다시 충남 서산에 갔다. 바로 이 큰말똥가리를 분양해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다큐 <물은 생명이다>의 이성수 PD 주선으로 만나게 됐다. 2009년 말께 이 PD가 전화를 해 “혹시 말똥가리 키워볼 생각 없으세요? 어릴 때 참매를 키웠다면서요. 여기 천수만에서 총상을 입은 뒤 수술은 잘 됐지만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시켜야하는 데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안락사라니요? 그건 안 되지요! 제가 지금 바로 갈게요” 확답하고 말았다. 그때 서산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김신환 동물병원장(59)이었다. 수의사 김신환 원장은 ‘천수만 지킴이’ ‘서산 운동권의 대부’ ‘야생동물들의 보모’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 원장은 대뜸 큰말똥가리 ‘천’의 안부부터 물었다. “예, 잘 지냅니다. 한번은 열어놓은 지붕으로 날아올라 탈출을 시도했는데, 저도 먹이활동을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멀리 가지 않더라구요” 대답하자 마치 자신의 일처럼 반가워했다. 요즘의 근황과 구제역 사태에 대해 물었다. 일단 한숨부터 내쉬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천벌 받을 거예유. 300만마리를 넘어섰으니 ‘살처분’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칩니다. 사후약방문으로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꼴 좀 보세요. 온 나라가 지옥, 말세가 따로 없시유. 이러고도 어찌 우리가 무사하길 바라겠습니까? 다행히 서산은 아직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저도 구제역 1차 예방접종을 위해 차출돼 보름 정도 죽어라 뛰었지요. 그런데 참, 죽갔시유. 수의사는 동물들을 살리는 직업인데 요즘은 살리기는커녕 모두 죽이고 또 죽이고만 있잖아유? 구제역도 그렇고, 반려동물이라는 개와 고양이마저 귀를 자르고 불임시술을 하는 등 사실은 죽이기요 학대지요. 난 못 하겠더라구유. 돈을 아무리 줘도 거세나 이런 건 이제 못 해요, 절대 안 합니다.”

지금 김 원장에게는 ‘금족령’이 내려져 있다. 농가 방문도 할 수 없어 전화로만 상담을 하고 천수만의 겨울 철새들을 보살피는 일만 하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때문이다. 얼마 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일대에서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 2마리가 숨져 있는 것을 한 민간인이 발견해 신고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이들 사체에서 고병원성 인플루엔자 항원(H5N1)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충남도는 이 수리부엉이를 처음 건네받았던 김신환 원장과 공주대 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들을 역학조사하고, 조류 인플루엔자 잠복기간 21일이 지날 때까지 외부 활동을 자제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익산에 이어 서산에서도 AI로 수리부엉이가 죽은 게 발견되자 발칵 뒤집혔죠. 15년 넘게 야생동물 구조 등의 일을 하다 보니 제가 수리부엉이를 만질 수밖에요. 그러니 ‘금족령’을 내리는 것은 그렇다 쳐요. 그런데 AI는 오히려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는데, 나의 건강에 대해선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더군요, 허허. 예방접종이다 뭐다 동원된 수의사들도 지금은 오히려 구제역을 전파시키는 보균자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원규 시인 촬영

그리하여 김 원장은 축산농가 방문 대신에 날마다 천수만에 나가 밀렵꾼 감시와 조류의 서식환경 조사와 천수만을 찾아온 고니·흰기러기 등 ‘진객(珍客)’들을 촬영하고 있다. 현재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자 조류보호협회 충남서산지회 고문이기도 한 그는 95년 우연히 부상당한 새를 치료해주면서 ‘천수만 철새지킴이’가 됐다.

“새만금 물막이공사와 먹이 부족 등으로 천수만의 철새가 갈수록 줄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천수만은 원래 물고기들의 산란장이었죠. 말하자면 바다의 자궁 같은 곳이었는데 그것을 도려냈지요. ‘자궁’을 드러내고 매립해 인공적으로 쌀 나오는 ‘위’를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다 천수만 B지구에 골프장까지 들어설 계획이에요.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고귀한 생명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천연기념물 조류가 머무는 지역을 특별보전구역으로 지정해 잘 관리한다면 철새들의 지상낙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부화한 아기 새는 천수만이 고향이지요. 좋은 서식환경을 조성해 더 많은 새가 알을 낳고, 고향을 찾는 새들이 불어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김 원장과 함께 천수만을 둘러보며 백조라 불리는 큰고니 300여마리를 만나기도 했고, 올해 단 한 마리가 찾아온 흰기러기를 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연방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축산농가나 동물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였다. 직접 농가를 방문할 수 없으니 전화로 상담하고, 동물병원을 대신 지키고 있는 간호사 출신의 아내 이혜숙씨(59)에게 처방전을 알려줬다. 한때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고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도 딴 그는 야생동물들을 촬영해 자료를 축적하고 여러 차례 사진전을 여는가 하면 전국의 환경관련 홈페이지나 교육기관 등에 사진자료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특히 http://www.birddb.com에 들어가 보면 시몬피터라는 닉네임으로 올리는 그의 생생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김 원장은 때로 참으로 무모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은 5000만원으로 4만7000평의 농지를 임대해 멸종위기종인 뜸부기나 장다리 물떼새의 산란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지금도 인터넷 모금 등과 사재를 털어 해마다 볍씨 등 야생동물 먹이 나눠주기를 하는데, 올해도 흑두루미 서식처 등에 20t의 볍씨를 뿌려줬다. “먹이 주기가 아니라 먹이 나누기입니다. 옛날 선조들이 까치밥으로 감을 몇 개씩 남기듯이 그냥 선심 쓰듯 주는 게 아니라 당연히 나눠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지요. 자연에서 곡식을 얻었으니 예전처럼 자연에게 어느 정도의 낙곡을 돌려줘야 합니다.”

그는 날치기 통과한 올 예산안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4대강을 죽이려고 혈세를 낭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생물다양성 계약으로 시작된 철새도래지들의 아주 작은 예산마저 확 깎였지요. 새들을 위한 볏짚 존치, 미수확 존치, 무논 조성 등의 예산이 반토막 나고 말았습니다. 강물에선 물고기가 죽고, 철새가 죽고, 가축마저 죽어가지요. 이 정부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도, 그 능력도 없어 보입니다.”

김 원장은 최근의 구제역 사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로 사료를 지적했다. 소나 돼지들의 사료 문제와 밀집식 사육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항력이라는 것이다. “소에게 사료만 주니 비타민·광물질·미네랄 등이 모자라죠. 그래서 면역력이 떨어집니다. 조금만 날씨가 변해도 감기나 설사를 하고요. 어미소 자체가 면역력이 없으니 송아지도 그럴 수밖에요. 항생제와 면역촉진제를 먹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풀을 먹여야 합니다. 노는 땅에 호밀과 보리 등을 심어 이런 것들을 먹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무엇보다 육류 소비량을 줄이는 게 최우선이구요.”

김 원장은 순천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해 말 순천만 갈대밭으로 날아간 흑두루미들의 안부를 물었다. 달뜬 목소리로 아내 이혜숙씨에게 말했다. “여보, 그 흑두루미들 순천만에서 잘 살고 있대. 조만간 걔들이나 보러 갈까?”

<이원규 시인>


입력 : 2011-02-08 21:19:48수정 : 2011-02-09 10: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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