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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300> 디즈니 고전 애니메이션 8편 탄생 뒷이야기

ngo2002 2011. 6. 3. 10:04

Special Knowledge <300> 디즈니 고전 애니메이션 8편 탄생 뒷이야기

[뉴스 클립] 대공황 때 희망 보여준 ‘아기돼지들’, 성인용으로 재구성한 ‘백설공주’…

‘꿈의 공장’ 할리우드. 그중에서도 으뜸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세계관’을 심어주는 디즈니일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해 문화상품과 테마파크로 이어지는 그들의 문화경제적 파워는 막강하지요. 서구중심적 이데올로기로 비판받지만 80여 년 디즈니 제국의 인기가 굳건한 것은, 그들이 구축한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닐까요. 때마침 예술의 전당에서는 ‘꿈과 환상의 스토리텔러-월트디즈니 특별전’(9월 25일까지)이 열리고 있네요. 디즈니 고전 애니메이션 8편의 탄생 뒷얘기들을 살펴볼까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탄생비화들입니다.

양성희 기자


‘아기돼지 삼형제’(1933)

동화의 여러 판본 중 1842년 제임스 오차드 할리웰이 엮은 『영국전래동요집』에 수록된 것을 원작으로 했다. 디즈니 스튜디오는 1929~39년 6~7분짜리 단편 만화영화 시리즈 ‘실리 심포니(Silly Syphonies)’를 만들었는데 총 75편 중 ‘아기돼지 삼형제’가 가장 인기가 높았다. 어리지만 현명한 아기 돼지 형제가 늑대의 꼬임에 맞서는 내용이 대공황으로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 동시에 곤경에 처한 아기 돼지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힘든 소시민·노동자의 상징이었다. 주제곡 ‘누가 크고 나쁜 늑대를 무서워하지?(Who’s afraid of the Big Bad Wolf)’ 역시 큰 인기였다. 여기에서 늑대는 악덕 고용주·자본가의 상징이었다. 대중음악계에 소개된 최초의 만화영화 삽입곡이기도 하다.

‘미키와 콩나무’(1947)

월트 디즈니가 가장 사랑한 동화는 ‘잭과 콩나무’ 아닐까. 22년 ‘잭과 콩나무’에 이어 ‘자이언트 랜드’(1933), ‘미키와 콩나무’(1947) 등 네 차례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자이언트 랜드’부터는 28년 ‘증기선 윌리’로 데뷔한 미키 마우스가 나왔다. 아직까지는 누군가를 구해내는 영웅은 아니었다.

47년 ‘미키와 콩나무’에는 복화술사 에드거 버겐이 나레이터로 참여해 만화영화와 즉흥극의 결합을 시도했다. 여기서 미키 마우스의 목소리 연기는 월트 디즈니가 했다. ‘미키와 콩나무’는 또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 구피라는 디즈니의 고전적 캐릭터가 함께 출연한 첫 영화이기도 하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그림 형제의 원작에는 일곱 살 소녀인 백설공주를 실제 결혼이 가능한 연령대로 높였다. 당대 영화배우들의 이미지를 참조해 백설공주가 탄생했다. [디즈니 제공]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

디즈니가 제작한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자 세계 최초의 셀 애니메이션이다. 그림형제의 ‘백설공주’가 원작이다. 애초에 월트 디즈니는 이 애니메이션을 성인용으로 만들었다. 원작 내용의 일부가 7~8세 유아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원작동화에는 빼어나게 아름다워서 친어머니인 왕비의 질투를 받는 백설공주가 7세 소녀였으나, 결혼이 가능한 연령대로 나이를 높였다. 왕비를 친엄마에서 계모로 바꾸었고 일곱 난쟁이의 비중도 키웠다. 원작에서는 왕비가 백설공주의 결혼식 당일 날 식장에서 잔인하게 죽는데, 해피 엔딩을 강조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에서는 훨씬 일찍 ‘퇴장’했다.

당시 할리우드의 거물들은 이 영화의 참패를 예견했다. 관객들이 한 시간 반 동안이나 앉아서 만화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며, 만화영화는 지나치게 익살스럽고, 밝은 화면이 눈을 피로하게 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월트 디즈니의 어리석음’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디즈니의 아티스트들은 백설공주와 왕비의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당대의 영화배우, 고전적 문헌들을 참조했다. 사람이나 동물뿐 아니라 무시무시한 숲처럼 자연도 캐릭터화했다. 월트 디즈니는 영화의 흥행을 위해 유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유머러스한 장면을 그려낸 아티스트들에게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액수인 5달러를 보너스로 지급했다.

어쨌든 만화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월트 디즈니는 “수많은 사람을 매료시키고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개척해 영화계의 혁명을 가져왔다”는 공로로 38년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그는 1개의 정상 크기 트로피와 7개의 미니어처 트로피를 받았다. 시상자는 당시 10살의 아역 배우 셜리 템플이었다.

‘미녀와 야수’ 중 야수의 컨셉트 드로잉. 야수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첫 단계에서는 각종 야생동물들의 신체 부위를 하나의 캐릭터로 결합시켰다. [디즈니 제공]
‘신데렐라’(1950)

신데렐라는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무수한 지역별 변형이 존재하는 전 세계적인 동화다. 1세기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해 비슷한 모티브가 중국·이집트·유럽 전역에 전해진다. 대부분 잔혹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는데, 가령 그림형제 버전에는 신데렐라의 이복 언니들이 유리 구두에 발을 집어넣으려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르기도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17세기 샤를 페로 버전에 기초했다.

5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기획에서 제작까지 10년 이상이 걸렸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해외에 영화를 배급할 수 없게 된 디즈니가 거의 파산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데렐라’의 흥행은 디즈니의 재기를 도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특장인 음악의 효과가 충분히 발휘된 작품. 최근 광고음악으로도 사용되는 ‘비비디바비디부’가 이 영화 삽입곡인 것은 잘 알려졌다. 멀티플레인(multiplane) 카메라 덕분에 패닝·줌인 등이 가능해져 역동적인 화면을 선보였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1959)

흔히 샤를 페로의 ‘숲속의 잠자는 미녀’를 원작으로 생각하지만 그림형제의 ‘들장미’가 내용적으로는 더 가깝다. 이 애니메이션은 무엇보다 예술적인 비주얼로 애니메이션 영화사에 획을 그은 작품이다. 예술감독의 시각적 스타일이 최초로 영화의 스토리나 캐릭터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술감독 아이빈드 얼은 중세 유럽의 태피스트리와 회화, 건축뿐 아니라 아라비아, 페르시아, 일본 미술까지 참조했다. 어린이 책 삽화가로 유명한 케이 닐슨도 가세했다. 전체적인 스타일은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아이크 풍. 제작 당시에는 배경 그림의 섬세한 디테일이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으나 오히려 화려한 비주얼과 스타일이 성공요인이 됐다.

세밀한 디자인과 배경의 규모로 제작기간만 6년이 걸렸다. 밑그림만 이전 영화의 2배에 달했다. 새롭게 개발된 테크니라마70 촬영기법은 당시의 시네마스코프보다 훨씬 큰 와이드 스크린 형식을 선보였다. 2.55:1이라는 화면비율을 통해 광활한 배경, 왕실의 위엄을 풍부하게 표현해냈다.

‘인어공주’(1989)

불멸의 영혼에 대한 갈망이라는 안데르센 원작의 무게 대신 성장과 첫사랑의 의미가 강조된 청소년 뮤지컬로 완성된 영화다. 아카데미 주제가·작곡상을 수상했다.

월트 디즈니의 조카인 로이 디즈니는 처음 원작의 마녀를 문어로 하자고 제안했다. 공동감독 존 머스커가 ‘심해의 디즈니 미스터리’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문어의 움직임을 관찰하기도 했다. 뚱뚱하면서도 우아한 요부 우술라의 이미지가 그렇게 탄생했다.

인어공주(에리얼)의 지느러미를 위해서는 돌고래를 연구하기도 했다. 물 속에서 인어공주의 긴 머리카락이 움직이는 장면은 미국의 첫 여성 우주비행사 샐리 라이드가 우주정거장에서 무중력 상태로 둥둥 떠다니는 장면을 TV생중계로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

‘인어공주’는 수작업 셀로 만들어진 마지막 디즈니 영화이기도 하다. 이후에 디즈니 주인공들은 모두 컴퓨터로 만들어졌다. 디즈니사는 이미 30년대에 안데르센 동화를 시리즈 영화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운 바 있어 밑그림 작업만 50년쯤 걸린 셈이다. 디즈니사는 원작을 밝은 분위기의 뮤지컬로 바꾼 데 이어 결말도 해피 엔딩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 론 클레멘츠 작가는 덴마크 시사회에서 덴마크 여왕에게 해피엔딩 결말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여왕은 “어차피 안데르센은 자신의 동화에 어떤 결말을 써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제대로 된 결말이 쓰였다”며 가볍게 응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녀와 야수’(1991)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만화영화다. 아카데미 주제가 ·작곡상에 이어 새로 도입한 CAPS(컴퓨터 애니메이션 프로덕션 시스템)로 아카데미 과학기술상도 수상했다. 이 시스템을 통해 드로잉을 셀로 전환시키고 색칠을 하는 일련의 수작업을 모두 컴퓨터로 하게 됐다.

내용적으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첫 번째의, 자립적이고 독립심 강한 여성상의 등장이라는 의미가 크다. 여주인공 벨이다. 상대역 야수는 이미지를 만들 때 온갖 야생동물을 하나의 캐릭터로 결합시켰다. 최초의 이미지 구상단계에서는 개코원숭이의 얼굴에 고릴라의 이마, 버팔로의 수염과 주둥이, 늑대의 다리와 꼬리, 곰의 몸 등을 결합시켰다. 야수가 왕자로 변신하는 장면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했다. 미녀와 야수가 춤추는 장면은 디즈니 스튜디오와 픽사 스튜디오의 공동작업.

‘라푼젤’. 23m나 되는 라푼젤의 긴 머리를 타고 탑으로 올라가는 장면. [디즈니 제공]
‘라푼젤’(2010)

디즈니가 제작한 최초의 3D 애니메이션이다. 픽사·드림웍스 등 신흥명가들의 강세, 서구 중심·가부장 중심의 디즈니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회적 비판 등 디즈니의 위치가 흔들릴 무렵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3D지만 게임 캐릭터 같은 인공적 느낌보다는 손으로 그려낸 캐리커처 느낌을 살리는 서정적인 3D를 선보였다. 23m에 달하는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라푼젤’에 등장하는 왕국은 애초에는 다민족 국가로 설정돼 있었다. 최초의 설정이 그대로 유지됐더라면 ‘라푼젤’에서 한복 입은 캐릭터를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라푼젤’의 주요 캐릭터를 만든 한국인 수석 애니메이터 김상진씨 때문이다. 현재 디즈니 스튜디오에는 600~700명의 직원이 있고 그중 한국인은 12~13명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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