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지식

Special Knowledge <294> K-리그 서포터스

ngo2002 2011. 5. 28. 10:54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94> K-리그 서포터스

그랑블루, 3만명 넘는 회원 자랑 … 수호신, 홈경기땐 5000여 명 응원 나서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고, 90분 내내 일어서서 응원한다. 선수보다 더 열심히 뛴다. ‘열두 번째 선수’ 서포터스 이야기다. 서포터스라고 하면 2002년 시청 광장과 광화문을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를 떠올린다. 그런 붉은 악마를 앞장서서 조직한 주인공이 K-리그 서포터스다. 지금도 그라운드에서는 그들의 함성소리가 경기장을 들썩인다. 16개 구단 서포터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서포터스 활동을 보면 이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알 수 있다. K-리그 서포터스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해왔는지도 되짚어보자.

오명철 기자

최고의 라이벌, 수호신 vs 그랑블루

서울 서포터스 ‘수호신’(왼쪽)과 수원 서포터스 ‘그랑블루’는 매경기 그라운드를 붉고 푸르게 물들인다. [중앙포토]


서울과 수원만큼 라이벌 의식이 치열한 구단도 없다. K-리그 사상 최다 관중을 동원한 경기도 바로 서울과 수원의 경기다.

서울의 서포터스인 ‘수호신’은 2004년 안양 LG가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FC 서울을 응원하는 모임으로 시작됐다. 안양의 서포터스였던 ‘안양 레드’는 현재 안양시민구단을 추진하는 몇몇 멤버가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부분 수호신으로 넘어오게 됐다. 수호신이 서울 서포터스 연합체라고 한다면 그 밑에는 지역별·성향별·연령별로 작은 모임이 14개 있다. 수호신은 온라인 등록회원이 2만 명에 달하고, 홈경기가 열리면 많게는 5000명까지 경기장을 찾는다고 한다.

이름을 수호신으로 하게 된 이유는 이들의 응원문구와 관련이 있다. 수호신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응원문구가 바로 ‘그대들이 가는 길, 우리가 지켜주리라’다. ‘지켜준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수호(守護)’라는 단어를 썼고 구단 엠블럼에 있는 ‘전쟁의 신’ 치우천왕을 합쳐 수호신이 됐다고 한다.

성남 서포터스 ‘천마불사’(왼쪽)와 전북 서포터스 ‘매드 그린 보이스’가 깃발과 대형 통천을 이용한 응원을 펼치고 있다.


응원은 여느 구단 응원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응원을 주도하는 사람이 메가폰을 들고 지시를 내리면 서포터스들은 응원가를 부르고 응원문구를 외친다. 북소리는 이들의 심장 박동을 더욱 빠르게 하고 깃발은 일체감을 심어준다. 부채 모양으로 생긴 응원도구로 박수소리가 나는 효과가 있는 클래퍼도 요긴한 응원도구다.

킥오프 전에는 두루마리 화장지로 만든 ‘휴지폭탄’을 던지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유명해진 부부젤라도 동원된다. ‘부부젤라 타임’이라고 해서 상대팀에 야유를 보낼 때가 되면 일제히 부부젤라를 불어 상대팀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수호신의 최근 가장 큰 관심사는 일반 관중과 함께 호흡하는 응원이다. 대표격인 유재영(23) 수호신 의장은 “서포터스가 폐쇄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반석에 응원단장을 배치하고 쉬운 응원가를 만들어 함께하는 응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원의 서포터스인 ‘그랑블루’는 수호신보다 9년 빠른 1995년 12월에 생겼다. 당시 K-리그를 즐기던 하이텔 축구 동호회 회원들의 주도로 ‘하이텔 사이버윙스 팬클럽’이 만들어진 게 시초다. 97년 팬클럽이 ‘서포터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지금의 그랑블루가 됐다. 명실상부한 K-리그 최고의 서포터스이며 가장 많은 인원을 보유한 전국구 서포터스로 알려져 있다. 온라인 등록회원만 3만 명이 넘어서는 거대 조직이다.

그랑블루는 짙푸른 바다를 가리키는 불어로 수원의 팀 색상인 파랑과 연관돼 있다. 수원 선수들과 팬들이 경기장을 파랗게 물들이는 이미지가 푸른 바다와 비슷하다고 해 99년 채택된 이름이다. 뤽 베송의 영화 ‘그랑블루’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2001년 수원월드컵경기장인 ‘빅버드’가 완공되면서 응원의 장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옮겨와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 그랑블루 역시 수호신과 마찬가지로 ‘수원을 응원하는 그 모두가 그랑블루’라는 모토 아래 모든 관중과 함께하는 퍼포먼스를 시도하고 있다. 올해는 치어리더를 다시 부활시켜 일반 관중의 응원을 유도하고 있다. 빅버드를 한 번이라도 찾아본 팬이라면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에 맞춰 장엄한 음악과 함께 선수를 소개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랑블루는 서로의 친목을 다지고 사회봉사 및 수원시민과의 유대 강화를 위해 ‘청백전 캠프’와 ‘나눔의 행사’라는 시간을 마련했다. 가끔 수원 선수들이 직접 행사에 찾아와 서포터스와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갖는다.

김일두(31) 그랑블루 의장은 “항상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K-리그 응원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온라인 홈페이지 가입을 제외하면 별도의 가입비·연회비 등이 존재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서포터스가 될 수 있다.

PC통신 하이텔서 시작 … 프랑스월드컵 이후 본격 활동

윗옷을 벗어던진 포항 서포터스 ‘네오 마린스’의 모습.


K-리그 서포터스는 90년대 중반 PC통신 하이텔을 통해 시작됐다. 당시 연고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만큼 하이텔을 통해 모인 몇몇 사람이 함께 동대문운동장에서 단체관람을 하게 된 게 시초다. 첫 시작은 미미했지만 이런 활동을 계기로 점차 규모가 확대돼 나갔다.

95년에는 유공과 포항이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었다. 유공은 구단이 서포터스에 호의적이었고 부천을 연고로 삼으며 수도권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당시 사령탑을 맡았던 니폼니시 감독의 축구 스타일에 매력을 느낀 팬들도 상당수였다. 허정무 감독을 필두로 황선홍·홍명보·라데를 보유한 포항 역시 젊은 팬들의 호응을 받기에 충분했다. 두 구단을 중심으로 서포터스 모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가지를 치기 시작한 것은 96년부터다. 96년 프로축구에 뛰어든 수원 삼성이 서포터스 활동에 열의를 보였다. 구단의 행정력과 더불어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팬층을 확장했다. 수원 서포터스가 활발히 활동하면서 여러 구단의 서포터스가 덩달아 생기게 됐다. 당시 프로축구연맹에서 연고지 정착에 힘을 쏟으면서 서포터스도 지역 중심으로 발전하는 토대가 마련됐다. 당시 8개 구단이 하이텔을 중심으로 서포터스를 탄생시켰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로는 프로축구가 큰 인기를 얻어 10개 전 구단에 서포터스가 형성됐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서포터스 회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정점에 올랐다. 이후로는 서포터스 회원 수가 현상 유지 혹은 소폭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월드컵 효과를 통해 반짝하던 인기가 점차 시들해지고 우수 선수들이 해외로 빠져나간 게 컸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서포터스는 2009년 K-리그 서포터스 연합(KSU)을 통해 하나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연고지 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서울(안양→서울), 제주(부천→제주)와 개별적 사정으로 빠진 포항을 제외한 13개 구단 서포터스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만나 K-리그 현안과 서포터스의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대전 서포터스 ‘퍼플크루’ 부회장을 겸하고 있는 김선규(41) KSU 부대표는 “지금은 한참 인원이 많았던 2000년대 중반에 비하면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서울과 수원 정도가 어느 정도 인원을 유지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김 부대표는 구단과 연맹이 좀 더 서포터스에 관심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는 “구단과 연맹이 이벤트성 행사를 할 때도 서포터스의 의견을 경청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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