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2> 의 김난도 교수는 2022년에는 호랑이처럼 더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 ‘모래알처럼 흩어진 개인’ 나노사회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국 사회의 원자화에 결정타를 날렸다. 직장, 모임, 가족까지 결속력을 현저하게 잃어가는 가운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채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극도로 파편화된 사회에서 공동체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개인은 더 미세한 존재로 분해되며 서로 이름조차 모르게 된다. 나노사회는 쪼개지고 뭉치고 공명하는 양상을 띠며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주요 트렌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화의 원인이 될 것이다.
2. ‘투자와 투잡의 시대’ 머니러시
나노사회에 살아가는 우리가 도달하는 결론은 “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미국에서 금광을 향해 서부로 달려갔던 골드러시가 있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머니러시’ 현상이 있다.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투자와 투잡에 나서며 수입의 파이프라인을 여러 개 꽂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대출을 끼고 투자하는 ‘레버리지’는 기본이다. 머니러시 트렌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물화 현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각자 성장과 자기실현의 수단으로 돈벌이에 나선다는 점에서 개인적 ‘앙터프리너십(새로운 기회를 탐색하거나 새 비즈니스를 시작할 역량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업가 정신)’의 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3. ‘명품보다 희소한 상품이 우선’ 득템력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는 것이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돈은 기본이고 시간, 정성, 인맥, 때로는 운까지 필요하다. 경제적 지불 능력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희소한 상품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득템력’이라고 한다. 상품 과잉의 시대, 돈만으로는 부를 표현할 수 없는 현대판 구별 짓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보가 풍부해지고 사치가 민주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아이템을 얻는 득템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4. ‘시골의 매력’ 러스틱 라이프
바다 뷰 말고 논밭 뷰. 불멍, 풀멍. 촌스러움이 ‘힙’해지고 있다. ‘러스틱 라이프’란 날것의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면서 도시 생활의 여유와 편안함을 잃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지칭한다. 재택근무, 원격 학습이 늘어나면서 꼭 비싸고 복잡한 도시에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이들이 추구하는 삶이다. 하지만 도시와 단절되는 삶은 아니다. 도시에 살면서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라도 시골로 떠나 소박한 촌스러움을 삶에 더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5. ‘즐겁게 건강관리’ 헬시플레저
“좋은 약은 입에도 달다.” 건강관리가 중요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지만, 전 세계를 휩쓴 역병의 시대에 건강과 면역은 모두의 화두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젊은 세대가 더 이상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왕 할 거라면 즐겁게 하는 것이다. 저칼로리로 즐길 수 있는 자극적인 속세의 맛이 나는 다이어트 식품이 인기를 끌고, 효율적으로 피로를 관리하기 위해 수면 패턴을 체크하고, 솔루션을 찾으며 재미로 보는 운세로 멘탈 관리를 한다. 건강관리는 나노사회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며,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전략이다. 트렌드에 따라 치료의학에서 예방의학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얼리케어 신드롬이 일어났다. 심근경색이 발병했을 때 의료 기술로 치료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조절해 아예 성인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6. ‘소비의 중심’ 엑스틴 이즈 백
밀레니얼과 MZ세대는 모두 X세대의 후예들이다.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뜻에서 ‘X세대’라는 명칭을 부여받은 그들. 그 많은 X세대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지금의 MZ세대보다 더 큰 충격으로 세대 담론의 출발을 알렸던 신세대의 원조였다. 기성세대보다 풍요로운 10대를 보낸 이 새로운 40대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지며, 자신의 10대 자녀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한다는 면에서 ‘엑스틴(X-teen)’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들은 사실상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다. Z세대의 부모, 조직에서의 관리자,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로서 X세대는 한국 사회에 전례 없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 것이다.
7. ‘일상이 주는 행복’ 바른생활 루틴이
자기 관리에 철저한 신인류가 나타났다. 스스로 바른생활을 추구하며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바른생활 루틴이’라고 부른다. 근로시간 축소와 재택근무 확산으로 인한 생활과 업무의 자유도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자기 관리에 대한 욕구가 커졌고, 스스로를 통제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루틴이의 자기통제 노력은 자기 계발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힐링을 도모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미세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점점 더 일상의 가치가 중요해지며, 일상을 스스로 설계한다는 가치관이 보편화될 것이다. 바른생활 루틴이 트렌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행복은 일상의 성실함에서 온다”는 당연하고도 실천하기 어려운 명제다.
8. ‘메타버스의 일상화’ 실재감테크
22살의 가상 인간 ‘로지’는 과거 잠시 나왔다가 사라진 사이버 가수 ‘아담’과 무엇이 다른가? 로지의 창조자가 그녀가 ‘가상 인간’임을 밝히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녀가 실제 인물인 줄 알았다. 온라인 줌 회의에 지친 사람들은 이제 개더타운에 모여서 일하고 회의한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가상의 공간. 실재감테크는 이렇듯 가상공간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각 자극을 제공하며, 인간의 존재감과 인지능력을 강화시켜 생활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그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실재감테크는 단지 기술적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수용자들이 얼마나 몰입하고 그 기술이 제공하는 혜택 속에 실제처럼 존재한다고 인지하느냐의 문제다. 현대사회의 인류는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나를 찾으며 존재감 결핍을 해소하고 정체성 회복의 욕망을 해결할 것이다. 결국 실재감테크의 핵심은 어떻게 우리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가치를 창출하는가에 달려 있다.
9. ‘나다움을 위한 쇼핑’ 라이크커머스
어제 먹은 블랙라벨 스테이크, 친구 페이스북을 보다가 맛있어 보여서 구매했다. 립스틱을 사려고 하는데 뭐가 좋을까? 송혜교나 이영애가 광고한 것도 좋겠지만, 내가 팔로하는 뷰티 크리에이터 민스코가 소개한 오버스머지 제품을 구매한다. 이제 쇼핑몰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냥 SNS를 하다가 태그를 따라 들어가서 구매하는 상시 쇼핑 시대가 열렸다. 크리에이터들은 남의 제품을 파는 데서 더 나아가 자기가 만들어서 자기가 홍보하고, 자기가 판다. ‘좋아요’에서 시작하는 D2C 커머스의 시대 라이크커머스가 시작된 것이다. 소비자들의 상품 선택의 핵심이 ‘나음’에서 ‘다름’으로, 그리고 ‘다움’으로 이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좀 더 낫거나 경쟁 제품과 다른 상품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상품을 만났을 때 ‘좋아요’를 누르고 지갑을 연다. 차세대 유통의 미래는 ‘무엇이 나다운가’라는 질문에 달려 있다.
10. ‘강력한 서사의 파워’ 내러티브 자본
내러티브는 힘이 세다. 강력한 서사, 즉 내러티브를 갖추는 순간, 당장은 매출이 보잘것없는 회사의 주식도 천정부지로 값이 오를 수 있다. 테슬라가 그랬다. 그러니까 테슬라의 주가는 머스크의 꿈이 수치로 반영된 것이고, 그 꿈은 강력한 내러티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브랜딩이나 정치의 영역에서도 자기만의 서사를 내놓을 때 단번에 대중으로부터 강력한 주목을 받는다. 2022년에 치러질 두 번의 선거는 치열한 내러티브 전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을 새로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나만의 내러티브는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를 구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김난도 교수 미니 인터뷰 “나노사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필요”
김난도 교수 미니 인터뷰 “나노사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필요”
나노사회에서 흩어지는 개인을 어떻게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 개개인이 흩어지는 원인은 알고리즘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튜브는 알고리즘에 의해 개인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더 이상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앉아 TV를 함께 보지 않고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모니터를 통해 영상을 본다. 이처럼 알고리즘에 의존할수록 개개인은 더 고립될 것이다. 알고리즘 대신 우연한 발견을 통해 얻는 기쁨을 느껴야 한다. 또 기술 만능 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 우리가 ‘내비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다. 아는 길도 내비게이션을 켜고 내비게이션과 앞차, 신호만 보고 간다. 우리에게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와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익명의 타인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X세대의 영향력이 커지면 MZ세대를 향한 관심이 줄어들까? 세대 담론이 중요한 시대다. 예전엔 나이만 다를 뿐 각 세대가 살아온 경험은 비슷했다. 그런데 요즘엔 세대마다 살아온 경험이 달라지고 있어 세대를 향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다. 대다수 X세대의 자녀들이 MZ세대다. 부모의 가치관과 소비 성향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X세대와 MZ세대가 동시에 주목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이크커머스 시대, 소비자들은 어떤 것에 주목할까? 과거엔 한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더 나은 점에 주목했다면 이젠 남들과 무엇이 다른가가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이 제품이 나한테 잘 맞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구매한다. 포인트는 이 부분에 있다. 어떤 상품이 나다운 것이란 공감을 얻을 때 구매로 이어진다.
에디터 : 김지은 | 사진 : 미래의창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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