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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와 '민주'로 뜨는 대만.. "4년 후엔 1인당 소득 한국 추월

ngo2002 2021. 11. 2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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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달 선임기자 입력 2021. 11. 25. 03:04 수정 2021. 11. 25. 07:

[송의달 선임기자의 Special Report]

전 세계 수교국이 15개 뿐인 대만이 세계의 중심으로 뜨고 있다. 이달 15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인구 2360만명의 대만 문제였다. 회담이 끝난 다음날부터 바이든 대통령은 흔들림없는 대만 지지 의사를 잇따라 밝혔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2021년 10월10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쌍십절(건국기념일) 경축 행사장에서 엄지를 치켜올리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올 6월 영국에서 열린 G7정상회의는 사상 처음 ‘대만해협 문제’를 공동성명에 명기했다.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캐나다 등이 항공모함을 포함한 함정을 대만 근해에 파견한 것도 전례없는 일이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지난달 10일 국경절 연설에서 “대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고 공언했다.

다음달 9~10일 열리는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도 대만은 공식 초청받았다. 젊은이들이 ‘잊혀진 나라’ ‘늙어가는 호랑이’라고 자조하던 대만은 어떻게 반전을 이룬걸까.

◇자유·인권·反中 선봉장

가장 큰 동력은 미국·중국간의 전략적 경쟁이다. 당선자 신분이던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7년 만에 처음 정상간 전화통화를 했다. ‘대만 중시(重視)’ 행보의 신호탄으로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 견제가 목적이었다. 2018년 3월과 작년 3월, 양국 공직자들의 자유로운 상대국 방문을 골자로 한 ‘대만여행법’과 대만의 경제무역 활동 및 국제기구 가입을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대만 동맹 국제보호 강화법’이 각각 발효됐다.

2020년 3월 26일(미국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식 서명해 발효된 '대만 동맹 국제보호 강화법(The Taiwan Allies International Protection and Enhancement Initiative Act)'. 영문 약칭으로 '타이페이법(TAIPEI Act)'으로 불린다./인터넷 캡처

지난해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 통과와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공격적인 ‘늑대 외교’ 등으로 유럽연합(EU)도 친(親)대만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달 21일 EU의회가 대만과의 관계 강화 결의안을 찬성 580, 반대 26로 통과시키고, 이달 3일 EU출범 후 처음 상원의원 7명 등 20명의 대표단을 대만에 파견한 게 이를 보여준다.

차이잉원(가운데 오른쪽) 대만 총통이 2021년 11월 4일 수도 타이베이를 방문한 라파엘 글뤼크스만(가운데 왼쪽) 유럽연합(EU) 의회 상원의원을 포함한 대표단과 면담하고 있다. EU 의회 대표단의 대만 공식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대만 총통실 제공

올해 대만에 온 미국 연방의회 의원들, 온두라스 대통령, 체코의회 사절단, 토니 애벗 전 호주 총리, 알랭 리샤르 전 프랑스 국방장관 등은 일제히 ‘대만의 우군(友軍)’을 자처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국제 질서와 규범을 파괴하는 중국에 맞서는 민주주의 모범국이자 자유 진영의 선봉인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이잉원 총통은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지’ 최신호에서 “대만은 중국공산당의 권위주의와 싸우는 ‘선(善)을 위한 힘(a force for good)’”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방패’의 힘

또 다른 요인은 대만 경제의 힘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를 보면 대만은 지난해 중국을 제치고 실질 경제성장률 세계 1위에 올랐다. ‘코로나 19′ 팬데믹을 선제적으로 차단해 방역에 성공한데다, 대만 정부 수립후 사상 최대 수출을 기록한 덕분이다.

특히 세계 1위인 TSMC를 필두로 최상위 10위에 4개사가 포진한 대만의 파운드리(비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이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대만의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6%에 달한다. 대만 기업들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 전 세계의 스마트폰·노트북·자동차·항공기·게임기 생산이 마비된다.

대만에 있는 TSMC의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내부 모습/조선일보DB
/그래픽=양진경

이 때문에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을 위해서라도 중국의 침공으로부터 대만을 지켜야 한다는 ‘반도체 방패(Silicon Shield)론’이 확산하고 있다. EU집행위의 사빈 웨이안드 무역총국장은 지난달 TSMC에 “유럽에도 현지 공장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는 “미국, EU 등이 대만을 끔찍하게 대우하는 데는 파운드리 분야의 독보적인 실력과 위상이 한몫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와 ‘반도체’라는 쌍두마차로 대만은 가라앉아서는 안되는 ‘불침 항모’가 된 것이다.

수출 화물 선적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대만 타이베이 인근 지룽(基隆) 항구 모습/AFP연합뉴스
대만의 최근 수출 증가율/조선일보DB

올 상반기에도 대만의 경제성장률과 수출증가율은 8%, 31%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최근 5년간 대만의 평균 경제성장률(4.46%)은 한국(1.85%)의 두 배 정도이다. 이 추세라면 4년 후인 2025년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美·日·대만 ‘3각 동맹’

여기에다 대만을 정점으로 미국과 일본을 잇는 ‘3각 동맹’이 무르익고 있다. 구마모토현에 TSMC공장을 유치한 일본 정부는 투자비의 절반인 4조원을 지원하기로 지난달 결정했다. 외국 기업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 지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쓰쿠바시에는 TSMC와 일본 정부 공동투자로 연구개발(R&D)센터가 건설 중이다.

일본 정계 인사들이 2021년에 한 대만 관련 발언
일본의 대만해협 방어태세 개념도/그래픽=양인성

홍대순 글로벌정책전략연구원장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TSMC가 120억달러를 들여 첨단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확정해 반도체 설계는 미국, 제조는 대만, 부품·소재·장비는 일본이 분담하는 ‘반도체 3각 동맹’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과 최근 2년간 380여개의 군사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한 미국에 이어 일본도 대만과의 군사 협력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일본 자민당과 대만 민진당은 올 8월 ‘2+2 안보회담’을 열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군을 파병해야 한다고 응답한 미국인들은 올해 52%에 달해 조사를 시작한 1982년 이후 가장 높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21년 1월23일 대만해협 일대에 배치돼 활동하고 있는 미국 루즈벨트호 항공모함 전단/미국 해군 제공

이런 상태에서 문재인 정부는 대만은커녕 일본과의 대립을 장기화하며 한미 동맹 ‘외줄’만 잡고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그나마 한미동맹은 3년 넘게 제대로 연합군사훈련도 못한 상태”라며 “한국으로 오는 중동산 원유가 100% 통과하는 우리 안보의 생명선인 대만해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만과 다각적인 연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中, 단 10분도 대만 지배한 적 없어...한국·대만·일본 뭉쳐야”

◇뤼슈렌 대만 전 부총통

“지금 중국은 잠에서 깨어나 사납게 공격하려는 사자(獅子)와 같다. 전 세계가 사자의 공격을 막기위해 단결하고 있다.”

2000년부터 8년간 대만의 첫 여성 부총통을 지낸 뤼슈렌(呂秀蓮) 박사는 이달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큰 나라인 중국을 무시하거나 대만을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금기(禁忌)가 사라지면서 중국의 겁박을 이겨내고 민주주의와 첨단기술을 이룬 대만의 매력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 법학박사인 그는 대만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5년 넘게 투옥됐었다.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뤼슈렌 제공

그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미국이 한 번도 대만에 대한 중공의 영토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미국이 말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政策)’과 중공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原則)’은 서로 다르다”고 했다.

“1971년 유엔결의안 2758호는 ‘중국의 유일한 합법적 대표는 중공’이라고 했을 뿐이며, ‘대만이 중국 땅’이라는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는 억지이다. 1949년 출범한 중공은 대만을 단 10분도 지배하거나 점령한 적이 없다. 한국인들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뤼 박사는 또 “중국은 지난해 홍콩보안법 강행통과로 ‘2047년까지 홍콩에 1국가2체제’라는 국제 약속을 일방적으로 깼다”며 “중국이 대만에 내건 ‘1국가2체제’는 속임수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 대만의 자유와 민주·인권 소멸은 시간문제가 된다”고 했다.

2020년 7월 홍콩섬 도심 코즈웨이베이에서 시민들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 국기와 미국 성조기,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할 것(天滅中共)'이라고 쓴 팻말도 보인다. 이날 반중 시위에 참가한 수천명은 "홍콩인이여 복수하라" "홍콩 독립만이 살길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조선일보 DB

한국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중국에 대한 높은 경제 의존도 때문에 한국 정부가 ‘민주주의 가치 동맹’ 참여에 소극적인 걸 이해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첨단기술 선진국인 대만과 일본이 바로 옆에 있음을 잊지 말라. 공통점이 많은 한국과 대만, 일본이 긴밀하게 협력·교류하는 ‘황금(黃金)의 3각 동맹’을 구축해 함께 번영과 혁신을 지속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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