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1.09.02 07:01 수정 2021.09.01 18:22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희귀・난치성 치료에 탁월
안동・춘천시 등 특구지정 활발
마약 등 부정적 인식 개선 관건
충북 음성 소재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는 국산 의료용 대마를 개발하는데 한창이다. ⓒ배군득 기자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우리가 생각하는 대마는 마약 등 환각성분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한 식물이야. 대마를 산업적으로 육성한다는 것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 그런데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마를 활용한 사업이 눈에 띄게 늘었어. 의료시장에서 대마 성분이 난치성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대마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거야. 우리나라도 의료용 대마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어. 국내 기술로 개발된 의료용 대마가 세계 시장에서 어떤 활약을 할지 너무 기대돼.”
마약으로 분류돼 관심에서 멀어진 대마가 의료시장에서 극빈대우를 받고 있다. 대마 성분이 희귀・난치병 치료에 탁월하다는 효과가 검증되면서 미래 산업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의료용 대마는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를 위해 대마를 마약, 향정신성의약품과 명확히 구분하는 법률 개정을 일찌감치 끝마쳤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마에 대한 규제가 여전하다. 여론도 좋지 않아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와 기관들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도 의료용 대마는 확실한 농가 수익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더구나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의료용 대마는 수입에 의존하는 관련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점쳐진다.
◆선진국은 왜 대마를 선택했나
선진국이 대마에 대한 규제를 발빠르게 완화하는데는 충분한 시장 가능성이 있다는 방증이다. 선진국의 이같은 행보는 아직까지 대마 규제에 보수적인 국가보다 먼저 시장 선점을 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가는 캐나다와 미국이다. 기호용・의료용 대마 사용 합법화로 시장규모가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오는2025년 세계합법적 대마 시장규모는 668억달러, 이 중 의료용은 59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의료용 대마 시장 전망 ⓒ농촌진흥청
현재 기호용은 38개국에서, 의료용은 54개국에서 허용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여전히 대마 사용이 제한적이다.
세계 대마 제품 생산기업 유형은 의료, 건강관리, 제약, 생명공학 등이 주류를 이룬다.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는 흐름이다. 2012~2018년 출시 제품 수 국가별 점유율은 미국 26%, 독일 11%, 캐나다 9%, 영국 8%, 프랑스 5% 순이다.
대마 제품 생산기업과 시판제품의 경우 2024년 아시아 시장규모는 85억달러, 그 중 의료용이 5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2018년 Farm Bill 개정에 따라2017~2018년 동안 3배 증가해 23개 주 3만1636ha에서 재배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 Panda Biotech사에서는 고품질 대마 섬유 및 프리미움 셀룰로스 생산을 위해 세계 최대규모 Panda High Plains Hemp Gin 가공시설을 신축해 연간 13만t을 가공할 계획이다.
캐나다재배면적은 2016년 3만351ha에서 2017년 5만6655ha로 86%p 증가했다. 2018년에는 기호용 대마를 모든 주의 성인에게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 의료용 대마는 2001년부터 허용했다.
중국의 약진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세계 대마초 수요의 50%에 달하는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농장 설립을 허가했다. 중국 제약업체 콘바그룹은 윈난성에는 1만ha 규모 대마 농장을 설립했다.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대마의 화려한 변신
대마에는 100종류 이상의 의료성분(canabinoid, CBD) 화합물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강력한 도취성분(Δ9-tetrahydrocannabinol, THC)과 CBD가 의약품용으로 활용된다.
의료용은 도취성분(THC) 복합 또는 의료성분(CBD) 단독으로 항암치료 부작용인 메스꺼움(nausea), 거식증(anorexia), 뇌전증(seizures), 근육경련(muscle spasm), 편두통(migraine), 알츠하이머, 우울증 등 질환에 사용되고 있다.
의료용 대마는 일반적으로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성분이 거의 없다. 국내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배군득 기자
피부치료용은 CBD 오일을 민간성 피부, 가려움, 여드름, 건조증 등 치료용으로 사용하며, CDB 흡착 마스크팩이나 세럼(serum)도 시장이 형성되는 추세다.
지난 2018년 미국 4개 주에서 소매로 판매된 대마식품별 점유율은 사탕 44%, 초콜릿 15%, CDB 혼합 11%, 음료 5 순이었다. 이 역시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는 분야다.
캐나다에서는 2012~2018년에 시판된 대마 제품 중 스낵류가 2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다음이 아침용 시리얼 16%, 음료 16%, 건간관리용품 12%, 피부관리용품 9%로 분석됐다.
최근에는 중독성이 강한 모르핀 등 오피오이드(opioid) 오남용 해결 대체물질로 대마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대마를 건축용, 연료용, 바이오플라스틱용, 바이오에너지용 등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대마 활용이 대중화 수준까지 왔다. 소위 미운오리에서 황금알을 낳는 백조로 변신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같은 의료용 대마 시장이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의료용 대마 원료를 국산화율 40%까지 끌어올리면 연간 1만회 사용량의 대마 CBD 성분의약품(에피디올렉스내복액)의 대체생산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공급량 기준 매년 약 7억5000만원의 대마 성분 의약품 수입 감소 효과로 이어진다.
더불어 의료용 대마 국산화 이후 세계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세계 의료용 대마 시장 0.5% 점유시 연간 수출액 3000억원 이상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우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는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 중심의 대마사용 합법화로 대마산업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2019년 대마 의약품 국내사용 허가, 지난해 경북 규제자유특구 지정 등 국내 환경변화로 의료용 대마 생산 및 의약품 개발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 연구사는 이어 “의료용 대마는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이다. 선제적 연구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의료성분이 높고 도취성분을 최소화한 한국형 품종 개발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안동시와 춘천시의 ‘미래를 보는 눈’
안동시와 춘천시는 일찌감치 의료용 대마가 지역의 주력산업으로 성장할 것을 직감하고 발빠르게 산업클러스터를 구성했다. 지난 2년간 시장조사와 지속적인 연구의 결실을 얻으며 척박한 예산과 지원 속에도 성장 가능성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경북 안동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에서 열린 '경북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 현장 간담회' 모습 ⓒ뉴시스
경상북도와 안동시는 지난 5월 헴프(HEMP, THC 0.3% 미만 대마식물 및 그 추출물) 산업화 실증에 들어갔다. 안동시는 실증을 위해 4월 ‘경북 산업용 헴프 규제자유특구’ 구역으로 지정된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내 입주보육동을 준공하고 안동포타운 내 스마트팜 조성 기반공사를 마무리하는 등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해 7월 특구로 지정된 안동시는 의료용대마특구팀을 신설하고 경북과 실증착수에 필요한 부대조건 이행방안 마련, 안전점검위원회 구성 및 참여, 책임보험 가입 및 이용자 고지 등 각종 제반사항을 추진해왔다.
연구원 내 준공된 입주보육동은 초임계 유체 추출시스템 및 검사 시스템을 구축해 헴프의 유용한 물질인 CBD추출·정제 및 시제품 개발기능과 THC검사 기능을 갖춘 '헴프실증지원센터'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안동포타운 내 스마트팜은 국내 최초로 의료목적 표준 헴프 재배 실증과 향후 스마트팜 보급을 위한 생산성 검증 기지로 활용된다.
권영세 안동시장 역시 대마 산업에 적극적이다. 지난 7월에는 100만평 규모 대마산업 국가산업단지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권 시장은 민선 7기 취임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백신과 의료용 대마 관련 전용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중앙에 건의했다”며 “국가산단 규모는 50만~100만평 정도면 적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부처)의 반응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가산단에는 미래 먹거리인 의료용 대마 산업 기업과 바이오·백신 관련 기업들만 입주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도 대마특구에 입주하겠다는 기업들이 몇 곳 있다”고 설명했다.
춘천시도 의료용 대마를 시 역점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대마를 의약품으로 원료화하는 등 헴프 산업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춘천시는 바이오와 지역 농업이 결합한 그린 바이오 분야와 연계해 지난해 3월부터 올해까지 15억원을 들여 대마 산업화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현재 춘천시는 4건의 특허 출원과 국가 연구과제 1건이 선정됐다. 춘천시는 대마 의약품 원료화로 농가 계약 재배와 전매를 통한 안정적인 농가 소득과 한국형 헴프 및 재배기술 개발, 의약품과 화장품 등 제품화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재수 춘천시장은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제로 한국형 헴프 플랫폼 및 산업화 사업이 선정돼 2025년까지 130억원을 지원받게 됐다”며 “햄프는 대마 중 마약 성분이 거의 없고 몸에 이로운 성분을 가진 품종이다. 올해 27.5% 성장이 예상되는 미개척 분야”라고 강조했다.
◆지자체만으로는 한계…국가가 법적・재정적 뒷받침 해줘야
의료용 대마는 향후 의료 시장에서 잠재력이 입증됐다. 특히 의료용 대마가 쓰이는 질병이 국내에서도 적지 않다.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비용과 시간적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실제로 소아 뇌전증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A씨는 지난 2017년 아이를 위해 해외에서 직구로 구입한 대마오일이 세관에 적발돼 주치의 소견서까지 제출한 뒤에야 가까스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현재는 법이 개정돼 해외에서 수입한 대마 성분 의약품을 처방받아 구매 할 수 있지만 한 달에 200만원이 넘는 약값을 감당하기가 버겁다.
박 연구사는 “대마 성분 의약품 원료가 국산화되면 A씨와 같은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며 “지금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환자와 가족들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용 대마는 국가적으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장 개척과 가능성이 있는 만큼 향후 한국형 의료용 대마 개발이 탄력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배군득 기자
그러나 국내 현실은 녹록치 않다. 대마 생산기반 구축을 위해서는 민간부분 연구개발(R&D)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직접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가 높아지는 이유다.
특히 의료용 대마는 현재 국내시장이 협소하다. 마약류관리법 제약도 걸림돌이다. 민간기업이 직법 R&D에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여기에 대학, 지자체 농업기술원 등은 연구인력을 일부 갖췄음에도 연구용 토지, 시설 등이 열악하다. 사업 주관기관을 맡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 농진청은 고가 수입 대마 의약품을 대체할 수 있는 저가 CBD오일 제품 개발 촉진을 위한 원료 생산기반 구축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2월 농진청 ‘대마 R&D 추진 타당성 분석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종자용, 바이오에너지용 등 비의료용 대마는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생산비 절감형 기술, 농기계 개발에 투자하는 방안이 건의됐다. 또 유용성분 탐색・선발, 제품화 등과 같은 생산기반 구축 외 R&D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보고서는 “의료용 대마 원료 연중 생산체계 확립연구를 위해 필요한 온실 등 시설투자는 원예원 시설비를 할애해 신축할 것”이라며 “대마 원료 연중생산 연구에는 폐쇄식 식물공장 및 수경재배 온실 신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9월 9일 [新농사직썰➇]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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