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별세]부친 호암 이병철 휘호, 평생 경영이념으로 삼아
'궁극에 달할 때까지 찾아라', 반도체 사업 스스로 연구 거듭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2020-10-27 11:26 송고 | 2020-10-27 20:46 최종수정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故人)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사진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와 기념 촬영한 이건희 회장 유년모습. (삼성전자 제공)2020.10.25/뉴스1 |
'무한탐구'(無限探求)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휘호인 이 네 글자를 지난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평생 실천하려 노력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학창 시절 말수가 적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회상하는 이건희 회장은 누구보다 깊은 사고를 했던 인물로 여기에는 성장의 배경도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관계자는 "성장기 남자아이들에게는 형제와의 관계 형성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1942년 생인 이건희 회장은 1931년생인 첫째 형 이맹희 전 CJ그룹 회장과 1932년생인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 등과는 모두 10살 이상 차이가 나 교류가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건희 회장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줄곧 혼자였던 것 같다'고 회상하는 까닭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 뒤에는 일본으로 유학, 12살의 나이에 타지 생활을 시작하는데 당시 느꼈을 감정은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인 1989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 잘 나타난다.
이 회장은 인터뷰에서 "나면서부터 떨어져 사는 게 버릇이 되어 성격이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고, 술도 못 먹으니 혼자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혼자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생각을 해도 아주 깊게 하게 됐다. 가장 민감한 때에 민족 차별, 분노, 외로움, 부모에 대한 그리움, 이 모든 걸 다 느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유년 시절 이건희 회장.(삼성전자 제공)© 뉴스1 |
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은 소년 이건희에게는 힘든 시기였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연구한 시기로, 직원 스스로 연구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길 원했던 그의 경영스타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삼성의 '무한탐구'의 구자는 연구할구(究)가 아닌 구할구(求)자를 쓴다. 학자적인 탐구가 아닌 기업의 입장에서 '求' 자를 쓴 것은 곧 궁극에 달할 때까지 방법을 찾고 구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사업 현안은 사장들에게 권한을 위임했지만, 신규 사업 진출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스스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결정했다. 그는 서적, 논문, 영상 등 방대한 양의 자료를 구하고 전문가와 토론하며 지식을 습득한다. 이후 홀로 집무실에 틀어박혀 장고하고 생각이 미처 정리되지 않았다면, 다시 전문가와 토론 등을 통해 지식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1982년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진출할 당시 삼성 경영진과 일본 지인들은 '삼성의 기술력으로는 역부족'이라며 반대했지만, 이건희 회장만은 '반도체 사업 자체가 태동기로 해볼 만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부친 이병철 회장을 설득했는데, 무한탐구 정신이 배경에 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반도체 투자에 나서며 "언제까지 그들(미국, 일본)의 (반도체)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느냐.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 한다. 제 사재를 보태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故人)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사진은 2014년 반도체 30주년을 맞아 기념서명을 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제공)2020.10.25/뉴스1 |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 진출 결정 뒤에는 반도체 기술자들을 만나고 서적을 읽으며 이 분야를 연구한다.
삼성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었다. 일본 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
재계 관계자는 "오늘날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이건희 회장의 과감한 결단력과 사업 성공을 위한 핵심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무한탐구를 경영이념으로 삼아 평생 이어온 노력은 많은 경영인이 본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故人)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사진은 1980년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왼쪽)과 함께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제공)2020.10.25/뉴스1 © News1 김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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