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10조 인텔 낸드 쇼핑 ‘적정가 맞아?’[편집자주]흔히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 부른다. 현대 산업에서 핵심 부품으로 첫손에 꼽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정보통신기술(ICT)이 전 산업 분야의 기반에 스며들어 변혁을 불러일으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반도체는 이제 그 엔진으로 자리잡아 나날이 중요성을 더해간다. 우리 반도체 업계도 미래를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서 선두를 굳히고,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세기 ‘한강의 기적’을 넘어 21세기 글로벌시장 패권을 향해 진격한다.
2020년 반도체 시장 판도가 요동친다. /그래픽=김민준 기자 |
최근 반도체 업계에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SK하이닉스가 거금을 들여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인수한 것이다. 낸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낸드 단품과 웨이퍼 비즈니스·중국 다롄 팹(반도체 생산 시설) 등 인텔의 비휘발성 메모리 솔루션 그룹(NSG) 사업을 총액 90억 달러(약 10조3000억원)에 가져온다. 다만 인텔의 옵테인 메모리 사업은 이번 인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체급 올린 SK하이닉스, 낸드도 2위로 ‘껑충’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 33.8% ▲키옥시아 17.3% ▲웨스턴디지털 15% ▲인텔 11.5% ▲SK하이닉스 11.4% 순이다. SK하이닉스와 인텔의 점유율을 합치면 20%를 넘어 단숨에 일본 키옥시아를 앞지른다. 이 분야에서 후발주자였던 SK하이닉스가 규모를 갖추면서 시장 판도를 바꿀 기회를 얻는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를 통해 사업구조의 균형을 확보한다는 점에도 적잖은 의의를 둔다. 업황 변동이 심한 메모리 사업의 특성상 그동안 D램에 편중됐던 사업구조는 회사의 고민거리였다. 현재 ▲D램 73% ▲낸드 24% ▲기타 3.6%로 구성된 매출 비중이 인수 후에는 D램 60%와 낸드 40% 수준으로 바뀌게 된다.
이번 인수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SK하이닉스가 D램에 이어 낸드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에 이어 2위에 오르면서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굳혔다. 한국기업이 D램(72.3%)과 낸드(56.6%) 양 시장에서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K-메모리’ 시대를 열게 될 전망이다.
인텔 메모리 사업 구매가 10조원… 제값 할까?SK하이닉스가 인텔과 성사시킨 ‘빅딜’에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우려를 반영하듯 주가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SK하이닉스가 지불한 대가가 무려 10조원이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은 지난 2016년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80억 달러)를 넘어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사상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냉정히 평가했을 때 비싼 값을 치렀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중국 공장 값은 4조 안팎일 것이고 나머지는 시장 상황과 인텔 기술의 가치를 보고 투자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렸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번 인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은 SK하이닉스의 리스크 증가를 우려한다. SK하이닉스는 1년여 후 1차 인수대금 납입에는 내년 업황 개선에 따라 창출되는 자체 가용현금을 우선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관련업계에서는 상당 부분 차입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간 ‘빅딜’ 여파로 거꾸러진 기업을 여럿 목격해온 투자자로서는 달갑지 않을 대목이다.
인수 과정도 복잡하다. 주요 국가 규제 승인을 받는 대로 SK하이닉스가 인텔에 70억 달러를 지급하면서 낸드 SSD 관련 지적재산권(IP)과 인력 등 SSD사업 및 중국 다롄 팹 자산을 이전한다. 이후 2025년에 나머지 20억 달러를 지급하면서 낸드플래시 웨이퍼 설계·생산 관련 IP와 R&D 인력과 다롄 팹 운영 인력 등 잔여 자산을 인수한다. 5년에 걸친 이 과정에서 핵심 기술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면 인텔에게 주력사업에 집중할 여력만 제공하는 ‘남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수에서 옵테인 메모리 사업이 제외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인텔이 지난 2017년 첫선을 보인 옵테인 메모리는 SSD와 D램의 중간 역할을 하는 기억장치다. 낸드 집중 강화를 꾀하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 더 값을 치르며 가져갈 유인이 부족하겠으나 인텔로서도 전략적으로 육성해온 최신 기술까지 내놓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반도체 분야에서 또 한 번 승부수를 던졌다. /그래픽=김민준 기자 |
명품에는 돈이 들어가기 마련그럼에도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SK하이닉스의 이번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SK하이닉스로서는 필수불가결한 조치라는 평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가시화되는 가운데 현재 사업 수익성을 개선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단순히 낸드 사업의 외양적 확장만이 아니라 SSD를 중심으로 한 인텔 솔루션 경쟁력도 고려한 결정”이라며, “가격에 대한 우려는 중국 다롄 팹에 주목하다 보니 나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인텔이 보유한 솔루션 개발 및 엔지니어링 역량을 감안하면 비싼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2021년 규제 승인 후 1차 대금 지급 완료와 동시에 SSD 사업은 바로 인수된다. 낸드 SSD 부문에서 시너지는 즉시 창출될 것”이라며 “다롄 팹의 낸드 생산은 2025년까지 인텔에서 맡지만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양사 간 합의된 장치가 있으므로 불확실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에 따라 SK하이닉스가 품을 기술에 주목한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 해당하는 컨트롤러 기술과 이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SW)인 펌웨어 기술 확보를 높이 평가한다. 이는 곧 SK하이닉스도 낸드 제품을 단품이 아니라 솔루션으로 구성해 판매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회사는 그동안 제품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경쟁사에 비해 매출 증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이번 인수는 그간 SK하이닉스가 아쉬웠던 부분을 채운다는 점에서 금액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인수 대상인 인텔의 기술은 이 분야 원조이자 최고 수준”이라며 “인텔 또한 주력사업인 CPU 때문에라도 이와 연결되는 메모리 분야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양사 간 전략적 협력이 긴밀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 출시한 DDR5 D램 /사진제공=SK하이닉스 |
D램과 낸드 쌍두마차로 ‘제2 도약’ 꿈꾼다2011년 하이닉스의 사명 앞에 SK가 붙는 게 결정됐을 때 이천 공장 현장에서 만난 엔지니어들조차 SK의 인수 사실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세간의 우려를 무릅쓰고 SK그룹이 반도체 분야에서 결행한 첫 번째 베팅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성공이었다.
10년여가 흘러 첫 번째 베팅의 꼬리를 물고 두 번째 베팅이 이어진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인 시너지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강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규모와 기술을 가져간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평했다. 10조원의 가치를 충분히 하고도 남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는 인수 발표 당일 CEO 메시지를 통해 “향후 인텔의 기술과 생산능력을 접목해 SSD 등 고부가가치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급성장하는 낸드 사업에서 D램 못지 않은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가치 100조 원 달성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고 밝혔다.
팽동현 기자 dh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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