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의 그래픽저널] 지금 경제상황, 모자일까 보아뱀일까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입력 2019.09.17. 07:11
그는 어려서 코끼리를 삼킨, 그러나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을 그린 적이 있다. 그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줬을 때 어른들은 왜 모자를 그렸냐고 했다. 답답해서 보아뱀의 뱃속이 보이는 그림을 보여줬더니 어른들은 이번에는 핀잔을 줬다. 이후 그는 화가의 꿈을 포기했다.
◆경제위기… 알고도 모른 척일까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 서문이다.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눈에 띄어 인용해봤다.
필자는 최근 2~3개월 여러 콘텐츠 작업을 하면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경제나 금융시장이 온통 수수께끼에 쌓인 상황으로 보여서다. 우리는 아주 비정상적인 경제현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모두가 알려고 하지 않고 당연한 현상으로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린왕자 스토리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보지 않고 그냥 모자로 믿고 보는 것과 같지 않은가.
코끼리가 등장하는 또 다른 얘기로 ‘방 안의 코끼리’라는 것도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지만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나 필자의 얘기에서는 코끼리보다 보아뱀이 진짜 문제다. 코끼리를 삼켰음에도 사람들이 모자처럼 보는 보아뱀 말이다. 보아뱀은 언젠가 배고픔을 다시 느낄 때가 되면 다시 코끼리를 삼키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현 경제상황=보아뱀’ 3가지 증거는
필자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있다고 주장하는 증거는 무엇일까. 세가지로 압축해 ‘뉴노멀’이 돼버린 ‘비정상현상’을 증거로 들어본다.
첫째는 올 8월 말에 발생한 미국 국채의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이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에 발생한 것이다.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이라는 것은 전문가들에게 익숙한 것이라 언론이나 일반인에게 공포감이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것의 강력한 주술적 효과가 금융시장에 분명히 미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가장 큰 경제인 미국의 국채 10년 만기와 2년 만기 국채가 과거 5회 역전됐는데 이후 24개월을 전후해서 금융위기, 닷컴버블 등 큰 경기 후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대부분 세계경제에 큰 주름을 남겼다. 물론 장단기금리 역전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가 부족하고 최근처럼 초저금리 상황에서 금리 역전이 의미가 있겠냐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도 많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거래에 참여하는 투자자, 트레이더, 펀드매니저들은 이런 신호에 아주 민감하다. 약간의 추가되는 부정적인 신호에도 금융시장은 크게 동요할 수 있다.
둘째는 전인미답의 마이너스 금리 세계다. 전인미답이라는 뜻이 사람 발자국이 없다는 뜻인데 일본과 유럽 등 선진 국가들이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할 때는 금융위기 수습 과정으로 일시적 해프닝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봤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는 금융시장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그 현상을 인간의 문명적 경험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하는 블랙홀처럼 마이너스금리는 주요 선진국 경제에서는 점점 일반화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8월27일 기준 전세계 마이너스금리 채권 규모는 17조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 미국 국내총생산(GDP) 20조5000억달러의 82% 규모고 유로 경제의 GDP 13조7000억달러를 초과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장(?)했다. 불과 1년 전에는 7조7000억달러였으니 확장 속도가 더 주목된다.
문제는 이러한 극한 통화정책에도 경제의 부가가치를 생산할 실물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큰 경제인 미국의 좌충우돌식 통상정책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과거 전기발명, 석유혁명과 같은 글로벌경제 성장의 엔진을 살릴 변화가 없다는 것이 지적된다. 이렇게 생산성은 낮은데 돈이 풀리면 그 결과는 ‘버블’이 될 우려가 크다.
보아뱀의 마지막 증거는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의 붕괴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간의 역관계를 실질적으로 조사해 증명한 것이 필립스곡선으로 경제를 부양하면 실업률이 떨어지고 물가상승률이 높아진다는 관계를 보여준다.
금융에서 장단기금리 역전이 맹신인 것처럼 어떤 면에서 이것은 실물경제에서의 맹신일 수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이 필립스곡선의 관계를 믿고 각국 경제전문가들은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활용해 여러가지 처방과 시술을 해왔는데 이런 관계가 깨진 것이다.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써도 저성장과 저물가 또는 고성장과 저물가가 일상화 돼가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당황하고 있고 아직 원인과 처방의 새로운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즉 실물 경제도 전인미답의 국면에 있는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 위험 인식해야
결국 전세계 경제는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들어서고 있다. 이를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할 경제학자나 금융전문가는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보다 더 큰 불확실성이 있을까. 전문가는 답이 없고 일반인은 모르니까 그냥 보아뱀을 모자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감는다고 위험이 없어지진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가 남긴 가장 큰 트라우마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났다는 인식의 변화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금융위기 당시 아주 큰 상처를 받지 않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특히 일반인은 이러한 위험에 둔감할 수도 있다.
이번 독일 국채 등 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원금 손실 사태도 이러한 위험 둔감증이 가져온 페널티일 수 있다. 글로벌 플레이어나 금융회사들은 세계 경제에 나타난 보아뱀에 대해 이미 인식했을 확률이 크다. 그래서 위험의 전가를 위해 문제의 DLS 상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금융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이런 위험을 고지할 동기는 없다. 정보의 비대칭이 해소되면 비즈니스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소비자들이 생존을 위해서 ‘위험’을 인식해야하지 않을까. 추석이 지나면 올해 마지막 분기로 접어든다. 수많은 보아뱀들이 돌아다닐 것이다.
필자는 당분간은 모자로 착각하고 보아뱀의 꼬리를 잡는 짓은 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금융상품 종류를 막론하고 조심하란 얘기다. 참고로 워런 버핏도 투자를 자제하고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현금 비중을 늘렸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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