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수화기 든 브라질 황제 “오 마이 갓! 이게 말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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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159년 이어온 경제·과학·문화 올림픽
1893년 여름 미국 시카고에서 엑스포가 열렸다. 당시 13세였던 헬렌 켈러는 설리번 선생님과 현장을 찾았다. 앞이 보이지 않던 그녀는 선박 모형, 남아프리카 금강석, 전화기, 축음기 등을 손으로 더듬어 가며 하나하나 살폈다. 10년 뒤 그녀는 자서전에서 “엑스포에서 보낸 3주 동안 내 지식의 폭이 크게 넓어졌다”며 “동화와 완구 속에서 지내던 생활에서 벗어나 현실세계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었다”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빅 이벤트로 불리는 엑스포는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됐다. 제1회 엑스포인 ‘만국 공업 박람회(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는 1851년 5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런던 중심부 하이드 공원에서 열렸다. 박람회 중심부에는 길이 564m, 높이 33m의 수정궁이 세워졌다. 벽돌을 쓰지 않고 4500t의 철골 구조물과 30만 장의 유리를 씌워 지은 최첨단 건물이었다. 박람회에는 25개국 1만3000여 전시물이 출품됐다. 총 관람객은 604만 명에 달했다. “창세기 이래 전 세계 모든 민족을 하나의 목적 아래 동원한 최초의 사건”이라고 영국 더 타임스는 대서특필했다. 이때 출품된 증기기관차와 방적기는 인류의 생활을 바꾸어 놓았다. 이후 엑스포는 인류의 새로운 발명품이 첫선을 보이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1855년 파리 엑스포에는 콘크리트, 철강, 알루미늄 제품 등 2만1000여 개의 출품작이 참가자 516만 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87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엑스포에는 그레이엄 벨이 막 발명한 전화기를 들고 전시회장을 찾았다. 처음에는 아무도 이 작은 물건을 주목하지 않았다. 폐막 하루 전 브라질 황제 페드로 2세가 벨의 전시관을 찾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황제는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갔다. “황제 폐하, 참관을 환영합니다.” 수화기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는 놀라 소리쳤다. “오 마이 갓! 이것이 말을 하네” 단숨에 벨의 전화기는 필라델피아 엑스포의 최고 인기 전시품으로 떠올랐다.
전등·축음기·비행기·텔레비전 줄줄이 첫 선
1889년 파리 엑스포에 에디슨은 백열등과 축음기를 출품했다. 그는 파리 엑스포를 기념해 세워진 당시 세계 최고의 건축물인 높이 324m의 에펠탑을 백열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헬렌 켈러를 놀라게 했던 1893년 시카고 엑스포에는 초대형 회전 관람차가 등장했다. 미국 건축가 조지 페리스가 설계해 ‘페리스 휠’이라고 불린 회전 관람차는 직경 80m로 동시에 2160명을 태우고 20분 동안 엑스포 전시장을 굽어볼 수 있었다. 한 시간에 최대 4000명이 탈 수 있었던 회전 관람차는 2700만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우리가 지금도 즐겨 씹는 과일맛 나는 추잉껌도 시카고 엑스포에서 첫선을 보였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엑스포에는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비행기가 첫선을 보였다. 1939년 뉴욕 엑스포는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취임 150년을 기념해 열렸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개막식 치사가 전시회장 밖의 텔레스크린을 통해 중계됐다. 텔레비전이 첫선을 보인 것이다. 또한 나일론, 플라스틱, 녹음기, 자기테이프가 뉴욕 엑스포에서 첫선을 보였다. 자동차 제작사 제너럴 모터스는 주와 주를 서로 연결하는 고속도로 시스템을 최초로 제안하기도 했다.
1988년 브리즈번 엑스포부터는 국가 브랜딩의 장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엑스포는 1958년 벨기에 브뤼셀 엑스포까지 잠시 중단됐다.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엑스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1851년부터 1938년까지는 산업화 시기다. 무역 촉진과 기술 발명품의 전시가 주요 주제였다. 1939년 ‘미래 세계의 건설’을 주제로 열린 뉴욕 엑스포부터 1987년까지는 전 지구적인 문화 교류의 장으로 엑스포가 활용됐다.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에서 열린 엑스포부터는 국가 브랜딩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 동시에 인류의 환경 파괴에 대한 반성이 엑스포를 통해 이뤄졌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테마가 주로 채택됐다. 2000년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인류, 자연, 그리고 기술’을 주제로 한 엑스포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은 1893년 시카고 엑스포에 처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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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엑스포에 처음 참가한 것은 1893년 시카고 엑스포부터다. 8칸의 기와집을 짓고 관복, 도자기, 모시, 부채, 활과 화살, 가마 등을 전시했다. 열 명의 악사를 파견해 전통음악을 소개했다. 1900년 파리 엑스포에도 참가했으나 이후 한·일병합과 6·25 전쟁 등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이후 1962년 미국 시애틀 엑스포에 326㎡ 규모의 한국관을 지어 참여한 이래 2010년 상하이 엑스포까지 총 18회 참가했다.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는 세계 108개국과 33개 국제기구, 국내 200여 개 기업이 참가해 ‘새로운 도약에의 길’을 주제로 대전 엑스포가 93일간 한밭 벌에서 열렸다. 대전 엑스포에는 총 1조6000여억원이 투자됐고 1400만 명이 관람했다. 하루 평균 15만6000여 명이 엑스포장을 찾았고, 외국인 관람객은 70만 명으로 전체 관람객의 4.8%를 차지했다. 이번 상하이 엑스포에 한국은 한국관, 기업연합관, 서울시관이 역대 최대 규모로 참여한다. 중국 내수시장 개척과 2012년 여수 엑스포 홍보의 장으로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다.
상하이 엑스포 제대로 즐기려면
|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빅 이벤트로 불리는 엑스포가 ‘영원한 신천지’ 상하이에서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184일 동안 펼쳐진다. 사진은 상하이 엑스포의 ‘베이징 주간’을 맞이해 열린 기념 퍼레이드. 멀리 ‘오리엔탈 크라운’으로 불리는 중국관이 보인다. [중앙포토] | |
상하이 엑스포의 예상 관람객은 7000만 명이다. 하루 평균 38만여 명이 입장한다는 이야기다. 개막 초부터 벌써 인기 전시관은 3시간 이상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다. ’엑스포는 줄서포’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150개 전시관을 모두 둘러보려면 1주일로도 부족하다. 현장에 가더라도 하루 한두 곳 이상 관람하기 힘들다. 상하이 기온은 벌써 30℃를 넘어섰다. 2일 하루 동안 26명이 더위를 먹고 쓰러졌을 정도다. 엑스포 현장은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에 이를 정도로 넓다. 하루 수㎞를 걸어야 한다. 편한 운동화와 양산은 필수다. 안전 엑스포를 위해 철저한 검문검색이 이뤄진다. 화장품 등 액체류 반입은 철저히 통제된다. 대신 빈 물통을 챙기면 유용하다. 여권 및 신분증은 꼭 챙기자. 자외선 차단제와 더위를 먹었을 때 복용할 청량제를 준비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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