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핫이슈 | |
이종찬 기자
기업 이미지 높여주기도 하는 리콜, 법률 용어로는 ‘시정조치’죠
매일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제품 결함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제품의 결함으로 인한 구매자의 피해를 예방하고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식품·의약품은 물론 전기용품·장난감·화장품에 이르기까지 리콜 대상이 확대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한국, 정부 명령 따른 강제 리콜이 대부분
소비자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제품에 대한 각종 안전기준을 마련해 안전관리를 하는 방법이다. 안전기준에 어긋나는 제품을 생산했을 때 생산자는 정부로부터 행정적 제재를 받게 된다. 두 번째는 제품의 결함에 의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았을 때 제조물책임(Product Liability, PL)법에 따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제품 결함의 책임이 제조자에게 있다고 보고 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리콜(Recall)은 원래 영어로 부적격한 대표를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해임할 수 있도록 한 주민소환제를 뜻한다. 주민소환제는 무능하거나 비리를 저지른 시민의 대표를 임기가 끝나기 전에 투표 등을 통해 해임하는 제도다. 제품에 대한 리콜은 이러한 뜻을 확장해 결함 있는 제품을 시장에서 다시 불러들여 고쳐주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리콜은 법률적 용어가 아니다. 리콜 제도를 규정하는 법률 어디에도 사실 ‘리콜’이라는 단어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리콜의 근거가 되는 법률 중 하나인 소비자기본법에는 ‘결함 물품에 대한 수거·파기·수리·교환·환급 등의 시정조치’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리콜을 의미한다. 미국의 소비자제품안전법과 환경정책법 등에도 리콜은 시정조치(corrective action)라는 용어로 표현돼 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는 미국·일본·유럽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해하기 쉬운 ‘리콜’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리콜은 자발적 리콜과 강제적 리콜로 나뉜다. 자발적 리콜은 제조사가 결함을 인지해 스스로 리콜을 실시하는 것이고, 강제적 리콜은 정부가 결함을 먼저 인지해 리콜을 명령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리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제조사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나 5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리콜 제도가 활성화됐다. 당시는 제조물책임법이 본격 도입된 시기이기도 하다. 제때 리콜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하게 되면 제조물책임법에 따라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리콜 제도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2년 리콜 제도가 도입됐지만 제조물책임법이 제정된 2000년 이후에야 활성화됐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자발적 리콜이 일상화돼 있다. 한 해 수십 만개의 소비재가 리콜되는 미국에서는 제조사가 대부분 자발적으로 리콜을 실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실시된 544건의 리콜 중 강제 리콜이 455건으로 아직 강제 리콜의 비중이 높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이종인 연구원은 “미국은 집단소송제도가 매우 발달해 있어 제조사가 자발적 리콜을 실시하는 쪽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제품 결함 숨기거나 리콜 거부 땐 손해 더 클 수도
| 일러스트 강일구 | |
그럼에도 기업이 리콜을 실시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리콜에 적극적으로 임했을 때의 비용보다 리콜을 회피했을 때의 비용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품 결함을 은폐하거나 리콜을 회피할 경우 오히려 더 치명적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2000년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는 냉동차의 제동장치 이상 등 제품의 결함을 알고도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 63만 대에 달하는 자동차를 일본에서 리콜했다. 이후 미쓰비시는 도산 위기까지 가는 등 내리막을 걸었다.
같은 해 미국에서는 시장점유율 2위 파이어스톤사가 650만 개에 달하는 타이어를 리콜했다. 파이어스톤사의 타이어를 장착한 포드 차량에서 펑크 사고가 780여 건이나 발생해 177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리콜 직전 파이어스톤사가 소비자가 제기한 불만을 무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회사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파이어스톤사는 결국 3억5000만 달러(한화 3990억여원)의 리콜 비용을 부담한 뒤 파산했다.
반대로 리콜이 전화위복이 된 경우도 있다. 1982년 미국의 제약업체 존슨 앤드 존슨사는 3100만여 병의 타이레놀을 리콜했다. 존슨 앤드 존슨사 본사가 있는 미국 시카고에서 7명의 소비자가 청산가리가 든 타이레놀을 복용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존슨 앤드 존슨사는 미국에서 유통되던 타이레놀 전량을 즉각 리콜하고 모든 사건 경위를 언론에 공개했다. 독극물을 투입할 수 없도록 제품 포장도 바꿨다. 1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어 타이레놀에 독극물을 투입한 범인까지 잡았다. 존슨 앤드 존슨사는 2억5000만 달러(약 2850억여원)의 리콜 비용을 썼지만, 리콜 과정에서 보여준 위기관리능력과 투명경영으로 1년도 지나지 않아 리콜 이전 시장점유율(35%)을 회복할 수 있었다. 타이레놀은 지금도 미국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이다.
국내에선 2004년 LG전자가 6만여 대의 전기압력밥솥을 리콜한 사건이 유명하다. 당시 자사 전기압력밥솥이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LG전자는 신문·TV에 광고를 내고 5만원의 신고보상금까지 내걸어 해당 모델을 99% 회수했다. LG전자는 리콜 비용으로 20억원을 쓰고 전기압력밥솥 사업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렀지만 안전 우선주의의 기업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용인에서 자사 지펠냉장고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제품 21만 대에 대한 리콜을 결정했다. 사고 발생 20일 만에 리콜을 결정해 비교적 신속한 조치로 평가된다. LG전자는 최근 자사 드럼세탁기에서 어린이가 질식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105만 대에 달하는 제품을 리콜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가전제품 시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다. LG전자 관계자는 “제품이 안전기준에 어긋나지 않아 법적 책임은 없지만 소비자의 신뢰를 확고히 하기 위해 리콜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소비자 만족도 높여 홍보비 지출보다 효율적”
리콜을 홍보·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지난해 제일기획 김낙회 사장은 광고가 방영된 후라도 자체 평가에 의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광고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실시해 무상으로 해결책을 찾아주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가수 이소라씨가 지난해 5월 콘서트 직후 “내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관객 전원에게 입장료를 환불해 준 것도 리콜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내년쯤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리콜정보시스템을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은 소비자안전위원회(CPSC)와 고속도로안전관리국(NHTSA), 식품의약국(FDA) 등 6개 단체를 통합한 리콜정보사이트(www.recalls.gov)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 클립에 나온 내용은 조인스닷컴(www.joins.com)과 위키(wiki) 기반의 온라인 백과사전 ‘오픈토리’(www.opentory.com)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세요? e-메일 기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