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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독살실록]①게장과 생감을 같이 먹으면 정말 사람이 죽을까?

ngo2002 2017. 8. 7. 13:11

[조선독살실록]①게장과 생감을 같이 먹으면 정말 사람이 죽을까?

이현우 입력 2017.08.07. 11:39

경종 독살설에 평생 시달린 영조, 정말 음식만으로 독살이 가능할까?
(사진=아시아경제DB)

보통 음식궁합에서 상극 중에 상극이라 하면 '게장과 생감'을 예로 든다. 같이 먹으면 사람이 죽을 정도로 큰 병에 걸리므로 절대로 같이 먹어선 안 될 음식으로 손꼽힌다. 이런 민간전승은 18세기 실제로 게장과 생감을 먹고 5일만에 죽은 조선 제 20대 임금 경종(景宗)의 일화 때문에 생겨났다.

경종실록 중 경종4년(1724년) 8월20일, 이미 8월 초부터 몸이 좋지 않아 수라를 거르던 경종은 게장과 이어 나온 생감을 맛있게 먹는다. 그러나 그날 밤부터 가슴과 배가 조이듯이 아파 의관이 들어와 진찰하고 약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차도가 없이 계속 병세가 악화되다가 매우 위중한 상황에 처했다. 결국 문무대신들이 모두 입궐하고 세제(世弟) 연잉군(훗날 영조)도 왕을 간호하게 됐다.

(사진=아시아경제DB)


며칠 후인 8월24일에는 경종이 의식을 잃자 어의 이공윤(李公胤)이 '계지마황탕(桂枝麻黃湯)'을 써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이공윤의 주장을 내치고 연잉군은 인삼(人蔘)과 부자(附子)로 차를 올려야한다고 주장, 결국 인삼과 부자로 차를 올린다. 이후 잠시 임금의 상태가 호전됐지만 얼마 후 결국 경종은 승하했다.

이런 연후로 게장과 생감은 이후 독살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민가에서는 이때 게장과 생감을 임금께 올린 이가 연잉군이며 의도적으로 상극인 음식을 바쳐 경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영조는 즉위하기도 전에 선왕을 독살했다는 루머에 시달리며 즉위했고, 이 독살설은 두고두고 그의 왕권을 위협했다.

독살설이 얼마나 오랫동안 영조를 괴롭했는지 경종이 죽고 30년 이상이 지난 영조 31년, 신치운이라는 유생은 영조가 친히 나와 감독하던 과거시험장에서 영조를 찬탈자라 욕하며 "신은 상께서 즉위하신 이후부터 게장을 먹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신의 역심"이라고 영조 면전에 대고 소리쳤다고 기록돼있다. 이후 민가에서는 절대로 게장과 감을 같이 먹지 않게 됐다.

경종의 능인 의릉(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런데 실제로 게장과 생감을 같이 먹으면 사람이 죽을 정도로 병에 걸릴까? 본초강목(本草綱目) 등 한의서에는 게와 감이 상극하는 음식으로 같이 먹으면 설사가 심해지고 몸이 원체 약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생기를 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의 경우 죽을 정도의 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설사병에 시달릴 수 있는 정도다.

게장은 원래 소화도 잘 안될 뿐만 아니라 상하기 쉬운 음식이라 여름철에는 식중독 위험도 있으므로 냉장시설이 미비했던 옛날에는 의학지식이 없어도 피하는 음식 중 하나다. 그러나 한여름인 음력 8월20일에, 그것도 왕의 수라로 게장이 나왔던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긴 하다.

하지만 이미 8월2일부터 고질병이 심화돼 수라를 거의 들지 못하던 경종 입장에서는 이미 임금의 입맛을 돌리고자 올릴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경종은 즉위 전부터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과 극도의 스트레스를 동반한 간질병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왕이 된 이후에도 병약한 인물이었다.

영조도 즉위 이후부터 줄곧 자신은 왕의 수라에 간여한 적이 없다고 누차 밝혔다. 결국 이미 지병으로 몸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아 끼니를 오랫동안 거른 상황에서 입맛을 돌리고자 먹은 부담스러운 음식들이 격심한 복통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경종 독살설에 시달린 영조 어진(사진=위키피디아)


또한 당시 어의로 약을 제조한 인물인 이공윤이란 인물의 처방도 문제가 많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 생몰년도가 모두 미상인 인물로 숙종 말년에 귀양살이를 하다가 의술이 신기하다는 소문 덕에 불시 채용된 인물이었다. 이후 경종 때 왕의 병환으로 임시 설치했던 의약청(議藥廳)에 어의로 들어왔으나 불성실한 근무태도로 탄핵받아 삭탈관직 당할 뻔했다.

그런데 그가 쓴 약들은 대부분 독성이 강하고 처방도 극단적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가 연잉군과 의견충돌을 일으킨 '계지마황탕(桂枝麻黃湯)'이란 약은 독성이 매우 강해서 이미 기운을 크게 잃은 중환자에게 사용하기 어려운 약이었다고 한다. 또한 연잉군의 고집으로 잠시 호전세를 보이던 경종의 안색은 다시 이공윤의 주장에 따라 인삼과 부자를 쓰지 않자 더욱 악화, 결국 경종은 죽음에 이르게 됐다. 결국 그는 영조가 등극하자 다시 유배됐고 이후 생몰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봤을 때, 영조가 경종을 당시 굳이 죽일 이유도 없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이미 후계자로 영조는 확고했고, 오히려 경종은 수차례 영조를 정치적 위기에서 구해주며 보호자로 자처한 터였기 때문에 굳이 그런 방패막과 같은 경종을 영조가 스스로 독살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하지만 이런저런 설들이 오랫동안 유지되며 영조는 즉위 내내 이 독살설에 시달렸고 오늘날에는 민간전승으로 게와 감의 이야기가 강하게 남아 상극 음식으로 남게 됐다. 여튼 좋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니 게 음식을 먹고 나서 감을 디저트로 먹는 것은 극히 피해야할 일임은 변함없다.

아시아경제 티잼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