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달의 초승달 뜬 뒤 한 달, 무슬림들은 낮에 물도 안 마시죠
| 인도 카슈미르 지역의 한 무슬림이 라마단 기간 중인 지난달 25일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 [스리나가르 AP=연합뉴스] | |
관련핫이슈 | |
이상언 기자
아홉 번째 달은 마호메트가 신의 계시 받은 때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의 이름이다. 이슬람력도 1년은 12개월이지만 354일 또는 355일이다. 라마단은 ‘라미다’ 또는 ‘아라미드’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원적으로는 ‘뜨거운 것’ 또는 ‘뜨거운 것을 이끌어내는 것’과 관련돼 있다. 이슬람교에서는 마음과 정신이 뜨거워지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아홉 번째 달이 중요한 이유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이달에 신의 계시(코란에 담긴 것)를 받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이달의 27일째 되는 날의 밤에 계시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날은 ‘거룩한 밤’이라고 불린다.
유래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이슬람교와 종교적 기원에 유사성이 있는 유대교와 연관돼 있다는 주장이다. 구약성경에 9월 한 달 동안 금식을 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동 지역의 달을 숭배하는 토착신앙과 관련이 돼 있다는 설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근원적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는 측면이 있는 주장이다.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정확하게 언제부터, 그리고 왜 이슬람력 9월에 금식과 금욕적 생활을 하는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종교지도자들이 “초승달 안 떴다” 판정하면 연기
현대적 시각으로 볼 때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라마단 시작 시점의 결정 과정이다. 지난달 20일 저녁 주요 이슬람 국가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천체망원경을 놓고 하늘을 관측했다. 초승달이 떴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날 초승달이 뜨지 않았다고 판정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다음 날 저녁에 초승달이 떴음을 확인하고 라마단의 시작을 선포했다.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이슬람력은 태음력이기 때문에 달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는다. 보름달에서 달이 기울어 그믐달이 되고 얼마 동안 아예 보이지 않게 됐다가 다시 초승달로 떠오르는 시점이 새 달의 시작이다. 그믐달은 달의 왼쪽이 밝은 형태고 초승달은 오른쪽이 밝은 형태다. 초승달이 떴는지를 판정해 라마단의 시작을 선언하는 것은 종교 지도자의 권한에 속한다. 과학자가 천문학적 계산에 의해 정확히 계측을 하거나 첨단 장비를 사용해 정확히 관측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이 “오늘 초승달이 뜨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래서 나라 또는 지역에 따라 라마단의 시작일이 하루 정도 차이가 날 때가 있다.
라마단의 시작일은 우리의 기준에서 볼 때는 해마다 달라진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은 태양력이기 때문에 지구의 태양 공전 주기인 365일(좀 더 정확히는 365.25일)이 1년이지만 이슬람력의 1년은 이보다 11일 또는 12일이 적다. 따라서 라마단의 시작도 우리의 달력으로는 해마다 그만큼씩 당겨진다. 그래서 라마단이 어떤 때는 겨울이고, 또 어떤 때는 여름이다. 여름에 라마단을 맞이할 때 금식이 더욱 힘들다고 한다. 금식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금식하고 기도하고 … 해 지면 이웃과 음식 나눠
라마단 동안 이슬람 교도들은 해뜨기 한 시간 전쯤 일어난다. 여성들은 식사 준비로 더 일찍 일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금식을 하기 때문에 대개 평소보다 식사량이 많다. 해가 뜨면 가족이 함께 기도를 한다. 낮 동안에는 세 차례 이상 기도 한다. 해가 지면 비교적 소화가 잘되는 가벼운 음식을 가볍게 먹은 뒤 저녁 식사를 한다. 이때는 대가족이 모이거나 이웃과 함께하는 경우도 많다. 밤에는 사원에 가서 코란을 공동으로 암송하며 기도를 한다. 철야 기도를 하는 사람도 많다.
직장의 근무 시간이 단축되는 경우도 많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선행을 베푼다. 이 기간 동안에는 대부분의 이슬람 교도들의 말수가 부쩍 줄어든다. 집중적으로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체력 소모나 갈증을 피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30일 중 후반부의 10일 동안은 더욱 열심히 기도한다.
해 지면 식사 가능한데, 비행기는 해 쫓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
기자가 겪은 라마단 에피소드
2001년 12월 초 기자는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인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 러시아의 모스크바로 가는 여객기에 타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취재를 마치고 귀국을 위해 이웃 나라 타지키스탄을 거쳐 러시아로 가는 길이었다.
탑승은 저녁 무렵에 했다. 비행기는 허름하기 짝이 없었지만 무사히 이륙했다. 한 시간쯤 비행했을 때 승무원이 기내식을 나눠줬다. 플라스틱 통에 엉성한 샌드위치와 삶은 달걀 등이 들어 있었다.
무심코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기내식의 뚜껑도 열지 않고 있었다. 일단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분위기 파악에 들어갔다. 10여 분을 기다렸는데도 달라진 게 없었다. 참다 못해 옆 좌석의 승객에게 “왜 먹지 않느냐”고 영어로 물었다. 못 알아듣는 것 같아 손짓과 몸짓을 동원해 다시 물었다. 모르는 말로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얼핏 들리는 단어가 하나 섞여 있었다. “라마단.” 라마단 기간 중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음을 일깨워줬다.
흥미로운 광경은 그 이후 펼쳐졌다. 혼자만 먹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예의도 아닌 것 같아 기내식 뚜껑을 닫아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승객들(대부분 타지키스탄인)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창쪽에 앉은 승객들은 창문 덮개를 연신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본 끝에 문제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타지키스탄 시간으로는 이미 일몰이 지났는데도 비행기가 서쪽으로 날아가는 통에 해가 지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지평선과 태양의 간격은 줄어들지 않았다. 하루 종일 굶은 승객들이 고향 시간으로는 밤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진 것이었다.
마침내 승객들은 기내 회의를 열었다. 승객들이 잇따라 일어나 발언했다.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의견 통일이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 30분 뒤쯤 회의는 박수와 함께 끝났다. 그리고 승객들은 일제히 기내식을 먹기 시작했다.
승무원에게 물어보니 “해가 지지 않았지만 특별한 상황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리고 식사를 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라마단 기간 중이라도 전쟁 중인 군인, 임산부, 그리고 장거리 여행객은 금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승객들이 지나친 고민을 했다”는 설명과 함께.
방문객 에티켓
노출 삼가세요, 화내지 마세요
라마단 시작 일주일 전인 지난달 15일 두바이에서 만난 현지인 나시르 무스타파(36)는 불쾌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스타파는 두바이의 최대 부동산개발회사의 하나인 나킬에서 일한다. 나킬이 건설한 인공섬 팜 주마이라에서 홍보 일을 맡고 있다. 일 때문에 외국인을 자주 만나야 하는 그에게 라마단은 남들보다 두 배나 힘들다.
짧은 치마와 소매 없는 셔츠를 입은 여성, 반바지를 입은 남성,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는 사람들, 야릇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남녀들, 화를 내는 사람들. 이들은 단식을 하는 이슬람 교도들을 자극한다. “많은 외국인이 먹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무스타파는 ‘라마단=단식’ 이라는 공식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라마단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 것 외에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많다.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85%이고, 많은 타 종교인이 방문하는 가장 개방적인 국가 아랍에미리트(UAE)에서조차 매년 외국인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인다. 호텔 방의 TV 초기화면에서도, 팸플릿을 통해서도 외국인이 지켜야 할 에티켓을 설명한다. 두바이 지도자가 운영하는 셰이크 무함마드 재단에서도 라마단 기간 중 ‘외국인을 위한 예절’ 강좌가 진행된다.
라마단은 인내와 자비의 달이다. 외국인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이슬람 교도가 바로 화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을 헐뜯거나 욕을 하거나 하는 행동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무스타파는 그러나 “참을수록 반감이 쌓여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두바이=서정민 중앙일보 중동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