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 1위 나라' 부탄 사람들 직접 만나 보니 '행복하냐' 물으니 '왜 행복하지 않냐' 되물었다중앙일보 김영주 입력 2017.03.21 00:03 수정 2017.03.21 14:58
그런데 솔직히 부탄의 역사보다 현재의 부탄에 더 호감이 갔습니다. ‘은둔의 왕국’ ‘지구 상의 마지막 샹그릴라’ ‘행복지수 1위의 나라’ 아닙니까. 1인당 GNP가 우리의 10분의 1 수준인 2500달러에 불과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나라. 하루 7시간 노동이 철저히 지켜지는 나라. GNP보다 GNH(Gross National Happiness·국민총행복)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바로 부탄입니다.
부탄의 서민, 농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궁금했습니다. 1월에 한국을 방문한 레케이 도르지 부탄 경제 장관은 “부탄도 빈부 격차가 있으며, 특히 도시와 농촌 간 삶의 질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가기 전부터 작정하고 물어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신은 지금 행복하다고 느낍니까?’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다고 느끼게 하나요?’ 라는 질문은 억지스러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이 질문에 ‘당신은 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나요?’ 반문했습니다.
부탄은 교육열이 높습니다. 고3 수험생의 60% 정도가 대학에 진학합니다. 우리처럼 입시를 치르고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지원합니다. 더러 대학에 따라 따로 시험을 치르는 곳도 있고, 2차로 면접을 보는 것도 우리와 유사합니다.
넷은 고향은 다르지만 고등학교 동문으로 팀푸의 도서관에서 대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대학이 결정되진 않았지만 “불안하거나 걱정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듯, 자연스럽게 대학에 진학하게 될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또 모두 “남자친구가 없다”고 했는데, 이유를 물으니 “우리는 남자를 만나기엔 너무 어리다”고 답했습니다. 더러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도 있지만 “부모님 몰래 만난다”고 합니다.
열여덟 청춘들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평소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지, 아니면 질문이 뜬금없었는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아무 말 않다가 넷 중 가장 활달한 페마가 “기회가 된다면 한국 남자를 만나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지상욱같은 잘 생긴 남자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까르르 웃었습니다. 부탄의 젊은이에게도 K-POP을 비롯해 드라마·영화 등 한국 대중문화는 인기입니다. 드라마 한 편을 다운로드 받는 데 드는 비용은 35눌트룸(Nu·약 500원). 소득이 없는 학생들에겐 부담되는 돈이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이 받아 본다고 합니다. 나중에 SNS 친구맺기를 통해 더 알고보니이들은 부탄에서 가장 등록금이 비싸고 명문이라 알려진 푸나카(Punakha)의 한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부탄에 사는 한국인 학생도 이 학교를 다닌다고 합니다. 부탄은 대학까지 모든 교육이 무상으로 제공되지만, 사립학교는 등록금을 내야 합니다. 이들에게 굳이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부탄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행복해 보이는 소녀들이었습니다.
“친아버지는 술에 취해 어머니를 많이 때렸다고 해요. 의붓아버지와는 한 번도 교류한 적이 없고, 현재는 어머니와도 연이 닿지 않습니다.”
드라마 소재로 어울릴 법한 슬픈 개인사를 지닌 님은 그러나 의연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다”며 “부모 없이도 잘 성장했고,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기숙사에서 지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를 낳아준 것만도 감사하다. 두 분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는 학교 근방에서 친구 두 명과 함께 자취를 합니다. 한 달 임대료는 2500Nu(약 4만원). 관리비를 포함해 1인당 1000Nu(1만5000원)씩 내고 있습니다. 부탄은 국공립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 한 달에 1500Nu(2만5000원)을 지원해줍니다. 집값으로 1000Nu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은 500Nu(약 8000원). 그는 이 돈으로 한 달을 생활해야 합니다. 하지만 청년의 눈빛과 말투는 당당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부탄서 만난 젊은이 중 가장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 부탄은 ‘용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툭 불거진 광대뼈와 눈두덩이 잔 근육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용의 기상’을 엿보는 듯 했습니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겔은 수능 영어시험에서 44점을 받았습니다. 55점 이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점수라고 합니다. 대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을 치렀지만 떨어졌고, 다시 두 번째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겔은 “취준생으로서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그는 부모와 오빠, 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남겔은 “돈은 중요하지 않다. 돈이 필요하면 일을 하고 있는 언니가 조금씩 도와준다”며 “부모님과 형제들이 한데 모여 사는 게 더 큰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1주일 후면 스물한 살이 되는 남겔은 아직까지 한 번도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결혼할 남자가 아니면 만나지 말라’고 했다”며 본인도 그럴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남겔을 만난 장소는 부탄 사람들이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기는 탁상 곰파(Taksang Gompa·곰파는 사원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남겔은 이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해 달라’가 아니라 “가족의 행복”을 빌었습니다.
스물셋 가장 “한국 음식 배워 레스토랑 내는 게 꿈” 탁상 곰파에 이어 외국인 관광객이 필수로 들르는 관광지 중 하나가 푸나카의 치미 라캉(Chime Lhakang) 사원입니다. 이 마을엔 부탄 사람들이 붓다 다음으로 존경하는 드룩파 쿤리(Drukpa Kunley·1455~1529) 스님에 관한 전설이 내려 옵니다. 드룩파 쿤리는 라마(스님을 통칭하는 말)로서 계율을 벗어던지고 기행을 일삼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중 하나가 거대한 남근을 버젓이 내놓고 다니는 곳마다 아녀자들을 농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 히말라야 인근 불교 사원에 만연해 있는 라마의 권위주의를 꾸짖기 위해서였습니다. 드룩파 쿤리는 악마를 제압해 치미 라캉 사원에 가둔 성자이기도 합니다. 기행을 일삼았던 ‘미친 성자(Divine Madman)’이지만, 부탄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스님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부부가 열심히 돈을 모으는 이유도 한국으로 오기 위해서입니다. 부탄 사람이 한국으로 직업 연수를 떠나려면 큰 돈이 필요합니다. 비자 등 서류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배우고 돌아와 이곳에서 나의 레스토랑을 내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아내 샹게는 “아들을 하나 더 낳는 것이 소원”이라며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고 합니다. 사원에 가서 ‘아들을 낳게 해 달라’ 빌면 생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에 다시 절에 찾아가 스님에게 아이의 이름을 받으면 된답니다. 지금 딸의 이름인 ‘킬레초키’도 치미 라캉의 주지 스님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가이드는 “얼마 전 아이를 낳지 못 하는 일본인 부부가 치미 라캉에 다녀간 후 아이가 생겼다고 들었다”며 전설에 소문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비록 우연의 일치라고는 하지만, 흥미진진한 마을입니다.
부탄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나라입니다. 거의 모든 여성이 직업을 갖기를 원하며 적극적으로 일을 찾습니다. 모계사회였던 티베트의 영향을 받은 측면이 큽니다. 지금도 부모가 사망하면 아들이 아닌 딸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예시는 각각 여섯 살, 두 살 짜리 딸이 있습니다. 그는 5개월 전까지 산악 지역 공립학교 병설 유치원 선생님이었습니다. 큰 딸이 올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아이의 교육을 위해 큰 도시로 나왔습니다. ‘맹모삼천지교’는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며 받는 월급은 5000Nu(약 8만원). 선생님 월급보다 적습니다. 사회적 지위도 선생님에서 호텔 하우스키퍼(Housekeeper)로 낮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시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일단 팀푸가 산악 지역보다 따뜻하고,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탄은 부부가 맞벌이를 하게 되면 우리처럼 조부모가 육아를 돕습니다. 그는 오전에 출근해 3시간 근무 후 퇴근하고, 저녁에 다시 나와 4시간을 일합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집이 있어 쉬는 시간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부탄은 하루 7시간 노동을 법으로 정하고 있으며, 거의 법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합니다.
킨장이 나를 태우고 호텔을 나선 지 1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시계탑 근방에서 그의 큰딸을 만났습니다. 킨장은 이제 서른여덟 살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이 있습니다. 그는 “올해 대학에 가야 하는데 점수가 50점을 간신히 넘는다"며 “학교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크게 근심하는 눈빛은 아니었습니다. “돈이 있는 집은 국공립대학에 못 가면 인도로 유학을 보낸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어 그렇게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큰 걱정은 안한다. 대학에 못 가면 직장을 구하면 된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집안 일을 하면 된다. 동생들을 돌보거나….”
그는 5년 전 은행에서 3만Nu(약 500만원)을 대출받아 택시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고 합니다. 그는 “부탄의 택시 번호판 중 P가 들어간 차는 프라이비트(Private)을 뜻한다며 이 차는 이제 내 차”라고 했습니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 호텔로 돌아와 원래의 택시비보다 200Nu을 얹어 500Nu을 주었습니다. 그는 “땡큐 선생님(Thank you Sir)"을 연발하며 차를 돌렸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 시간 이후 1명의 손님을 더 태우거나 아니면 그대로 퇴근했을 겁니다. 손님을 더 찾지 못했다면 그는 800Nu(1만2000원)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갔을 겁니다.부탄의 과일값은 아주 비쌉니다. 치킨 값도 비쌉니다. 가족을 위해 과일 한 봉지도 치킨 한 마리도 선뜻 사지 못할 금액입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들이 오늘 심은 감자를 모두 수확해서 판다 해도 외국인 여행자의 하루 경비도 되지 않을 겁니다. 부탄을 하루 여행하려면 외국인 여행자는 1일 200~250달러의 체제비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에 비해 가진 것 많은 나는 이들을 위해 해줄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인심은 없는 사람에게서 난다’더니 딱 그 꼴이었습니다. 부탄 시골마을에서 느낀 행복의 모습이었습니다.
위에 열거한 이들 말고도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모두 ‘나는 행복하다’ ‘지금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평범한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부탄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하다’고 느끼고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행복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그들을 만난 1주일은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행복은 늘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은 일깨워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글과 사진=팀푸(부탄)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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