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부모님 뭐하시노"…일터로 번진 수저론

ngo2002 2017. 2. 7. 07:55

"부모님 뭐하시노"…일터로 번진 수저론

대입 이어 취업·승진도 부모 경제력 영향
건전한 경쟁 가로막아…사회 역동성 훼손

  • 이지용,서태욱,연규욱,유준호,황순민,양연호,임형준 기자
  • 입력 : 2017.01.30 17:55:15   수정 : 2017.01.31 18:14:01

◆ 위기의 계층사다리 ① ◆

 기사의 0번째 이미지
#1 2014년 10월 서울 양천고 행정실장 변 모씨(60)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직 재단 이사장 정 모씨(84)를 '이모'라 부르는 재단 이사 김 모씨(55)였다. 이 전화 한 통으로 학교 교사 채용 과정이 대폭 수정됐다. 김씨의 아들을 위해서였다. 채용 과정은 필기시험과 서류심사, 시범수업과 심층면접으로 구성돼 겉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였지만 짜맞춘 듯한 각본대로 착착 진행됐다. 비슷한 시점인 2014년 10월 18일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21)도 이화여대 체육과학과 입학 면접장에 들어섰다. 이 학교 입학처장은 면접에 앞서 심사위원들에게 "수험생 중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있으니 뽑으라"고 강조했다. 정씨의 목에 걸린 금메달이 입학 허들을 낮추라는 윗선의 신호였다.

#2 "저도 한번 잘 살아보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사는 게 대체 왜 이 모양이죠?" 김권호 씨(가명·60)가 다 큰 아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 것은 작년 말이다. 김씨 아들 윤건 씨(가명)는 소위 '파리목숨'이라는 1년짜리 기간제 교사로 서울 시내 한 사립고등학교에 재직 중이었다. 느닷없이 크리스마스를 불과 며칠 앞두고 학교에서 "계약 연장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날 아들은 술에 취해 아버지 앞에 엎드려 펑펑 울었다. 7년 전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후 임용고시를 3~4년간 준비해온 아들에게 "더 이상 지원할 수 없으니 일단 돈을 벌면서 시험을 준비하라"고 설득했던 장면이 '비수'처럼 김씨 가슴에 꽂혔다.

한국 사회 계층이동 사다리가 허공 위 구름다리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본인의 능력·노력과는 별개로 "부모님, 뭐 하시노" 이 짧은 한마디가 유치원·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 후 취업 이력서에까지 평생을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닌다. 부모의 직업과 경제적 지위에 따라 명문대 입학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고소득 직업도 세습된다. '흙수저' 청년들이 수십 대, 수백 대 1의 경쟁을 하는 동안 '금수저'들은 정유라 씨가 말을 타고 장애물 넘듯 가뿐히 취업 문턱을 넘어선다.


고착화돼 가는 금수저·흙수저 논란을 해소하는 방법은 허약해진 경쟁 체제를 복원시키는 것이다. 경쟁 촉진을 통해 불합리한 담합구조(기형적 자본주의)의 틀을 깸으로써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제대로 대접받는 '정상적인 자본주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투자효율성 저하로 고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저성장 기조와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쟁 체계의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경쟁 참여자 수를 최대화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취약해진 사회 곳곳의 경쟁 체계를 재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 이지용 기자(팀장) / 서태욱 기자 / 연규욱 기자 / 유준호 기자 / 황순민 기자 / 양연호 기자 / 임형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