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의 기자 입력 2017.01.18 06:06 수정 2017.01.18 07:59 댓글 19개
#한때 잘나가던 사업체 사장 A씨(67·남)는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 파산을 신청했다. 12년 전 회사가 부도 나면서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빚은 4억원에서 18억원으로 불어 심각한 독촉에 시달렸기 때문. 슬하의 자녀 셋은 이미 오래전에 연락이 끊겼고 아내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법원에서 파산을 선고하지 않으면 A씨는 삶의 끝자락에 서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미 유언장도 써놨다.
1960~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주역이던 노인들이 빈곤의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다. 소득보다 채무가 많은 노인들은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포기하고 빚 탕감을 위해 법원을 찾는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1~2월 파산선고를 내린 1727명을 조사한 결과 24.8%가 60대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2006년 노인 파산신청자는 11.5%였다. 불과 10년 새 2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가난한 노인, 삶의 끝은 고독한 주검
#기초수급자 B씨(72·여)는 자신이 살던 다가구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 옆에는 자해한 흉기들이 발견됐고 주변 사람들은 평소 B씨가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아 병원비를 충당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고 전했다.
#C씨(64·남)도 생활고를 못 이겨 삶을 포기했다. 그의 주검은 밀린 월세를 받으러 온 여관주인에 의해 발견됐다. 아내와 이혼한 뒤 30년을 홀로 산 C씨는 아픈 몸 때문에 경제력을 상실해 형제들에게도 버림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빈곤에 시달리는 노년의 삶은 고통의 시간이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늘어났지만 노인들은 빈곤하고 궁핍한 삶에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정을 내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자살을 생각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건강문제, 고독감을 꼽았다. 경제·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부정적인 인식은 스트레스로 쌓여 건강을 해치고 악화된 건강상태가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한국 노인의 자살률은 2014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55.5명으로 전체 자살률보다 2배 이상 많다. OECD 평균 자살률 12명의 5배에 달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쓰레기 집, 가진 것 없어 매 맞는 노인
#4 C씨(86·여)는 50대 초반의 이혼한 아들과 살고 있다. 아들은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C씨에게 돈을 달라고 협박한다. 술에 취한 날은 폭행도 서슴지 않는다. 이웃들은 노인보호전문기관에 C씨의 아들을 신고했고 직원이 여러번 집을 찾았다. 그러나 C씨는 “우리 아들이 원래 착한데 이혼하더니 이렇게 됐다”며 “내 아들 잡아가지 마라”고 울음을 터트리며 직원의 손을 뿌리쳤다.
#5 ‘쓰레기 노인’으로 불리는 D씨(74·남)는 쓰레기 속에서 컵라면과 냉동식품 등으로 끼니를 때우며 생활한다. 오랫동안 뇌출혈을 앓았고 몸에는 욕창까지 생겼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던지며 사회복지사의 손길을 거절해 주변인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노후빈곤의 공포는 정신적·육체적 학대로 이어진다. 돈이 없어 힘이 없는 노인은 가족에게 학대받지만 자책과 공포심에 입을 다물기 일쑤다. 노인이 노인을 폭행하는 ‘노-노(老-老)학대’도 가족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1~2015년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5만579건에 달한다. 전체 피해노인은 1만7735명이며 이 중 여성이 1만2463명(70.3%)이다. 학대행위자 총 1만9833명(본인학대 포함) 중 아들이 8009명으로 전체의 40.4%를 차지한다. 배우자(13.9%), 딸(12.3%)도 노인을 폭행하는 가해자다. 사위와 며느리, 손자·손녀와 친척을 포함한 ‘가족·혈족에 의한 학대’를 모두 합치면 가족의 노인 학대는 1만7181건으로 전체의 86.6%에 달한다.
◆빚의 그림자, 내 자식도 빚의 굴레
#6 주택가를 돌면서 폐지를 줍는 F씨(73·남)는 자루에 폐지 45kg을 채웠다. 두달 동안 모은 폐지를 전달했지만 고물상에서 받은 돈은 3만원. F씨가 대부업체에 물어야 할 이자 85만원에 한참 못 미친다. 회사원이 된 손자는 F씨의 대출이자와 생활비를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갈 때 받은 학자금도 많이 남아 추가대출을 알아보는 중이다.
노인빈곤은 온 가족을 빚의 올가미로 밀어 넣는 화근이 된다. 생활비가 부족한 저소득 노인은 가족의 과도한 채무를 양산하고 젊은층이 빚의 그늘에 들어가는 문제를 낳는다. 대부업체들은 부모의 빚을 받기 위해 젊은이에게 보증인을 세우는 ‘연대보증’까지 요구한다.
상환능력이 부족한 젊은층이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쉽게 빚 보증에 동의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신용정보원에 따르면 성인 중 대출 연체가 가장 잦은 나이는 25세다. 사회초년생이라 할 수 있는 청년층(19~35세)은 빚이 급증하는 시기로 1인당 대출잔액이 19세 450만원에서 35세 6780만원으로 15배 가까이 치솟는다. 19세에는 10명 중 1명(10%)이 대출을 받지만 35세에는 2명 중 1명(55%)이 대출을 보유할 정도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청년은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합성어인 ‘청년실신시대’에 살고 있다. 부모의 빚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가난한 청춘들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빚지기 전에는 뭐 했어요?” “빚 얻으러 다녔어요.” 영화 <무뢰한>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빚의 수레바퀴인 우리 삶을 이야기한다. 2014년 개봉한 이 영화는 극단적인 상황을 전제로 했지만 빚 바이러스가 청년의 삶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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