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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알아보기

ngo2002 2013. 7. 25. 11:12

[신정근의 동양철학 톺아보기]논어 ➊ 學…내가 몸담고 있는 모든 곳이 학교
기사입력 2013.07.01 09:23:06 | 최종수정 2013.07.04 14:31:44

이번 호부터 논어와 손자에 관한 신정근 교수의 글을 각각 10회씩 연재합니다. 신정근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여행객들과 중국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고 각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시립도서관에서 인문학 특강을 여는 등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동양학 강의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싸우는 인문학’ ‘동양고전이 뭐길래’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등이 있습니다.

중국의 고전 하면 우리는 ‘논어’를 먼저 떠올린다. 정작 “논어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논어는 비슷한 시대의 노자, 맹자, 장자, 손자 등과 어떤 다른 점을 지니고 있을까?”라고 물으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 2500년간 지속돼온 권위나 내용의 어려움으로 인해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좀 더 생각해보면 “공자의 사상을 담고 있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대화로 이뤄져 있다” “봉건 윤리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논어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낸다고 하기에 뭔가 부족하다.

논어는 제자와 후대 사람들에 의해 편집된 책이다. 편집을 하려면 공자의 말을 어떤 기준에 따라서 분류해야 한다. 이 분류는 순서를 정하는 작업이므로, 무엇을 처음에 두고 나중에 둘지 신중하게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논어의 제일 첫 글자와 구절은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편집자는 첫 구절을 공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말로 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고 때에 맞춰 몸에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하듯 논어는 ‘학(學)’ 자로 시작된다. 이것은 사실 논어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좀 일반적인 흐름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세계 문화를 거칠게 나눈다면 유일신 문화와 자연신 문화로 양분할 수 있다. 만약 논어가 유일신 문화에서 쓰였다면 첫 글자는 배운다는 ‘학’ 자가 아니라 믿는다는 ‘신(信)’ 자로 시작됐을 것이다. 유일신 문화에서는 세계의 창조와 질서가 신에서 시작해서 신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신이 자신의 뜻에 따라 세계를 창조했으므로 신은 세계의 흐름에 끼어들어 심판을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도 다양한 신들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후손으로부터 제사를 받게 된다. 조상신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먹고살아 가려면 곡식과 도구를 필요로 한다. 곡식과 도구는 사람에게 풍요를 가져다주는 기능신이 된다. 강과 바다, 산과 숲처럼 자연은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내놓기도 하고 아픈 영혼을 치유해주기도 한다. 이들도 영험한 성질을 가진 자연신으로 숭배됐다.

조선시대의 이성계와 정도전은 ‘좌묘우사(左廟右社)’ 원칙에 따라 한양에 도성을 지었다. 종묘를 도성의 왼쪽에, 사직단을 그 오른쪽에 배치하는 것이다. 종묘는 조선을 세운 건국 영웅이자 조상의 영령을 안치한 곳이다. 사직단은 토지와 곡식의 신을 모시는 곳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처럼 농업 사회에서 토지와 곡식은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이처럼 조상과 토지, 곡식의 숭배는 백성의 생명과 왕조의 번영을 지탱하는 정신적, 물질적 지주였다. 따라서 때에 맞춰 제사를 지내서 이들 신이 후손에게 복을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자연신은 유일신처럼 세계를 창조하거나, 심판할 수 있는 권능도 없다. 이들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액운을 피하게 하고 행운을 누릴 수 있도록 뒤를 봐주는 보호자 역할을 할 뿐이다. 문화의 특성이 이런 방향으로 설정되다 보니 동아시아 사람들은 절대신에게 기도해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공자보다 훨씬 뒤에 불교의 정토종과 미륵신앙, 기독교의 하나님이 전래되면서 유일신을 빌려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가 생겨나기도 했다.

논어의 ‘학’ 자는 동아시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만나서 그것을 풀어가는 바람직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춘추시대에 활동하면서 과거의 문화 전통을 예리하게 읽어내고 배움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할 수 있다.

배움과 정련은 자신을 책임지는 삶의 길

공자는 왜 그토록 ‘배움’을 중시했을까? 공자는 사람들의 차이에 대해 생각을 거듭한 끝에 다음처럼 결론을 내렸다. “사람의 능력과 경향성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환경이 서로의 차이를 만든다.” 오늘날 말로 한다면 사람은 선천적인 측면이 아니라 후천적인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다는 얘기다.

사람이 태어나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가족, 신분, 정치, 경제 등의 환경 요인이 있다. 이런 요인은 개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만 처음부터 선택할 수는 없다. ‘내’가 노비나 농부의 자식이 아니라 왕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공자의 시대에 배움은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하거나 출세의 사다리를 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사람은 배움을 통해 원래 나에게 아예 없던 능력을 있게 할 수 있고 조금밖에 없던 능력을 크게 키울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은 배움으로 자신을 얼마나 변화시켰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공자가 배움의 가치를 이렇게 역설하지만 현대인은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학생이라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수 있다. 생업에 바쁜 사람은 책 읽을 시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다. 또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고 쉬운 것이 많은데 어렵고 귀찮은 공부를 하려고 할까!

우리는 배움이나 공부 하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책을 떠올리고 공식과 단어를 억지로 외우고 시간에 쫓겨서 과제를 내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물론 공자도 배움을 책과 관련지어서 생각했다. 하지만 논어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내의 현명함을 높이 치며 얼굴의 아름다움에만 빠지지 않는다. 부모를 모실 때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한다. 친구와 사귈 때는 말에 믿음을 준다. 그런 사람이 비록 고전의 소양을 아직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이를 배운 사람으로 높이 쳐주리라.”

공자의 제자 자하의 말이다. 이 말에서 배움이란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과 같지 않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제 노릇을 다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배움은 학교와 학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사회, 직장과 회의, 상담, 성공, 실패 등 삶의 모든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훗날 명나라 왕양명은 논어의 이런 배움을 ‘사상마련(事上磨鍊)’으로 풀이했다. 배움은 가부좌를 하고서 법당 안에서 깨우치는 것이 아니고 교실에서 푸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마주하는 모든 일에서 자신을 갈고닦는 일이라는 것. 학교가 특정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모든 곳이 학교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배움을 특정한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노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달리 공자는 배움을, 사람이 개개인의 개성을 꽃피우고 자신을 책임지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정련(精鍊)의 과정으로 봤다. 정련의 값어치를 인정한다면 누가 공자의 배움을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말하는 배움을 얻는 만큼 우리는 자신과 주위 사람 나아가 세계의 일부에 제대로 된 책임을 지는 통 큰 사람으로 변모할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 / 일러스트 : 김민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13호(13.06.26~07.02 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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