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년생 강재연씨가 차고지에서 배차를 기다리며 버스 운전석에 앉아 있다. 40년 베테랑 기사인 그는 청년들에 대한 미안함을 여러 차례 표했다. 김상선 기자
신년기획-55년생 어쩌다 할배②
복지 부담 줄이기 나선 '뉴실버'
"정부 정책 노인 복지에만 치중
청년들이 60대 싫어하는 이유"
"젊은 사람 위해 직장 관둘 생각도"
지하철 통근해도 '지공거사' 거부
강씨는 55년생 베이비부머다. 그는 61세에 촉탁직으로 전환했다. 매년 임금을 5%씩 줄였다. 강씨는 "월급이 줄었지만 아직도 일하는 게 감사하다. 70세까지 일하고 싶지만 젊은이들 일자리 뺏는 게 아닌지,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한다. 강씨는 전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했다. 여느 55년생처럼 참 억척스럽게 살았다. 5년가량 공장에서 스웨터 편직 일을 했다. 군 제대 후 중장비를 20년 몰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건설 경기가 급랭하면서 실패를 맛봤다. 이후 버스를 몰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년 됐다.
강씨의 청년 걱정은 끝이 없다.
"자식이 직장 못 구하고 방황하면 부모도 자식도 힘들지 않겠나. 굉장히 미안하다. 우리가 물러나야 하지 않을지 그런 생각이 든다. 또 아무래도 경력 많은 기사들이 우대받기도 해서 젊은 기사들에게 미안하다. 자녀세대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기를 수 있게 도움 주는 게 나라가 할 일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점이 아쉽다."
또 다른 55년생 조모씨는 시니어 IT(정보기술) 전문기업인 에버영에서 일한다. 지난달 20일 이 회사의 경기도 성남센터. 조씨가 여러 개의 모니터에 둘러싸여 마우스 작업에 한창이다. 포털사이트의 거리 영상 속의 자동차·행인을 찾아내 모자이크 처리한다. 이 일을 한 지 4년 반 됐다. 그는 한 달에 100만원을 번다. 이 돈을 쪼개 적십자자·구세군 등에 틈틈이 기부한다. 조씨는 "일하는 게 좋긴 하지만 이 자리가 젊은 사람 몫일 수도 있다. 젊은이들이 알바 쪼개기를 하면서 고생하지 않느냐. (그들의 몫을) 잠식한 게 아닌가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젊은 사람을 위해 그만둘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경자년(庚子年)을 맞아 올해 65세가 되는 55년생 31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한결같이 청년을 걱정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했다. 서울 성동구 주모씨는 "우리 죄가 크다. 우리가 다 미리 따먹은 거죠. 게다가 이렇게 집값까지 올려놓고…."라고 말한다. 이정구씨는 "우리는 경제가 발전하던 시절이라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혜택을 받았다. 젊은이들이 독립할 수 있도록 베이비부머들이 베풀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영숙씨는 "청년과 노인 일자리가 갈등을 유발하는 것 같다.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일자리는 일자리가 아니라 활동에 가깝다. 이걸로 일자리가 늘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러면 청년이 60대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경북 안동 황순화씨는 "나라 정책이 노인 복지에만 치중돼 있어 청년 정책이 부족하고 일자리도 없다"면서 "청년들이 딱하다. 못 먹거나 빈곤을 겪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카레집을 운영하는 55년생 박성백씨가 지하철로 출근하는 모습. 그는 청년을 위해 노인이 돼도 지하철 무임승차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강정현 기자
박씨는 경북 봉화에서 쌀이 없어 옥수수와 감자를 먹고 자랐다. 농사일이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서울에서 일을 찾아보자 싶어 16살에 완행열차를 탔다. 시청역 인근 한 찻집에서 먹고 자며 일을 시작했다. 어떨 때는 중국집을 했고 일식집·순댓국집도 했다. 한 달 수입은 400만원. 집 한 채 장만했다. 2005년 이만하면 성공했다 싶어 기부를 시작했다. 매월 80만원 기부하다 지난해 가게 사정이 여의치 않아 40만원으로 줄였다. 박 사장은 "걱정거리라고는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엔 없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가게 일을 거들어줘서 한 달에 100만원 정도 남는다"며 "두 사람이 쓰고 죽을 때 남는 돈이 있다면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에버영 직원 조씨도 '지공거사'라 불리길 거부하는 뉴실버이다.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려 들면 그는 손사레 친다. "'아직 그렇게 나이 안 들었다'고 말한다. 고맙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하철 공짜 연령을 높여야 하지 않겠냐"며 "지하철 공짜로 타는 비용을 사회로 돌려주는 몇몇 저명인사의 운동에 동참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 구로구 이모씨는 36년 공무원으로 살았다. 퇴직한 이후 시인과 수필가로 활동 중이다. 문인협회장도 맡아 60~70대를 상대로 글쓰기 강의도 한다. 시 낭송 행사에 나가면 20만원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 그는 "무임승차 지하철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벌써 (내가) 늙었나, 이런 마음이 들어서 일반 요금을 내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 "전철에서 보면 나이 들었는데 자리에 앉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양보해도 안 앉는 사람들이 있다"며 "나 역시 양보를 받아도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고 털어놨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최경호ㆍ김윤호ㆍ박진호ㆍ김태호ㆍ윤상언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