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상승 주범은 과도한 대출? 집값 안정, 전세 낀 '주택 쇼핑'부터 잡아야
집값 상승 주범은 과도한 대출? 집값 안정, 전세 낀 '주택 쇼핑'부터 잡아야

한국감정원이 집계하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 97.3에서 꾸준히 올라 지난해 10월 109.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지수는 2017년 11월 가격을 100으로 놓고 가격 변동 추이를 보여준다. 올해 6월 107까지 떨어졌다가 정부가 7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예고한 이후 다시 올라 10월 지수는 108.1로 역대 최고치에 근접하는 중이다.
아울러 서울 주요 아파트 단지에서 최고가를 경신한 곳이 속속 등장하며 실수요자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졌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정부에 유리한 통계만 앞세워 시장 평가와는 상반된 발언을 한 것이다.
분양가상한제라는 강력 처방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값이 더욱 오르자, 전문가들은 규제정책만으로 해법을 찾기는 힘들다는 목소리를 낸다. 부동산 정책으로 풀 것이 아니라 금리 등 금융에서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다만 경제 불황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부동산 안정화를 목적으로 금리를 낮추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 정부의 고민이다. 이런 이유로 금융정책 중 부채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에 눈길이 쏠린다.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대한민국 가계부채 보고서’라는 저서를 통해 “부동산값을 떨어뜨리려면 국가부채 계산을 다시 하고, 대출을 규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에 반기를 든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기준 공식 가계부채는 1534조원이다. 가계가 은행이나 보험·대부업체 등 금융사에서 빌린 돈(가계대출)과 결제 전 신용카드 사용액(판매신용) 등 갚아야 할 부채를 합했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58%다. 정부는 이에 대해 “절대 규모가 크지만 상당수 유럽 선진국이 한국보다 높아 소득 대비 부채 위험이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서영수 애널리스트 생각은 다르다. 전세부채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핵심 골자다. 전세부채는 전세보증금과 준(반)전세보증금(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 치 초과)을 더한 직접 부채를 의미한다. 금융회사와 금융기관을 통한 부채가 아닌 집주인(임대인)과 세입자 간의 개인 거래에 따른 부채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을 임대인에게 맡기는 셈이라 금융자산으로 분류한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세입자에게 돈을 빌린 것이니 금융부채가 돼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A씨가 5억원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8억원짜리 아파트를 구매했다. 그는 5억원의 ‘공식적인’ 부채를 안게 된다. B씨는 전세보증금 5억원이 들어 있는 8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이 경우 B씨는 세입자에게 5억원을 갚아야 할 입장이지만 ‘공식적인’ 금융권 부채는 전혀 없다. 이 경우 A씨와 B씨 투자금은 3억원으로 똑같으면서도 A씨 신용도는 영향받고 B씨는 신용도에 전혀 영향이 없다.
서영수 애널리스트는 “전세보증금을 부채로 잡지 않으면 신용도가 떨어지지 않아 신용대출 등 추가 차입 여지가 생긴다”며 “IMF(국제통화기금)가 최근 한국 정부에 전세보증금을 부채로 간주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도 이런 위험을 예방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전세부채와 관련한 공식 통계는 없다. 전세부채 추산치는 제각각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추산한 전세보증금(보증부 월세 포함) 규모는 687조원이다. 김세직 서울대 교수 등 학계 연구에 따르면 2017년 전세부채는 75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와 올해 집값 급등으로 전셋값까지 덩달아 오른 것을 감안하면 전세부채 규모는 더 커졌을 듯 보인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늘어난 전세자금대출만 38조6000억원이다. 이 숫자만 더해도 전세부채 규모는 ‘750조원+α’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뿐 아니다. 기업대출로 분류되는 개인사업자 대출을 가계빚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자영업자는 사업자등록을 한 뒤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거나 개인 자격으로 가계대출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개인사업자 대출도 넓은 의미의 가계대출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300조원을 훌쩍 넘는다.
공식적인 가계부채인 가계신용(1534조원)에 전세부채 추정치(750조원+α)와 개인사업자 대출(315조원)을 합산하면 2600조원으로 불어난다. 서영수 애널리스트는 2018년 12월 말 기준 가계부채 규모를 약 2322조원으로 추산했다. GDP의 129%로 OECD 선진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다. 증가율은 더 큰 문제다. 전세보증금을 빼고 개인사업자 대출을 포함한 부채는 4년 평균 8.4% 증가했다. 호주(5.8%), 미국(3.7%), EU(1.5%) 등 OECD 국가 연평균 가계부채 증가율의 두 배가 넘는다는 것이 서영수 애널리스트 주장이다.

▶전세보증금 부채로 계산…신용도 엄격히 반영해야
서 애널리스트는 과도한 부채를 줄이는 것이 집값 안정의 제1조건이라 강조한다. “저금리 시대 주택 구입자가 빚을 크게 지고 자산을 매입해 가격을 띄웠으니, 부채를 줄여 자산을 안정화시키자”는 주장이다. 특히 ‘전세를 끼고 여러 주택을 구매하는’ 사례를 막자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인 부채관리 방안도 제시했다.
첫째, 전세보증금이 부채로 잡히도록 명확한 규정을 만든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제도를 의무화하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산정 때 전세보증금을 고려해 신용등급과 한도를 결정한다.
둘째, 신용평가사 신용등급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는 상환 ‘이력’을 따졌지만 상환 ‘능력’을 중심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나치게 대출이 많은 이에게는 등급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셋째, 대출을 용도별로 차등 규제한다. 대출 목적이 학자금인지 소비인지 투자인지 등 ‘이름표’를 더욱 꼼꼼하게 달자는 주장이다. 이후 투자 목적 대출은 금리와 한도에서 페널티를 주자는 것이다. “돈을 빌린 사람이 대출 자금의 용처를 명확하게 은행에 밝히고, 은행은 대출 자금 사용을 확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넷째, 금융회사가 직접 부채관리에 나설 수 있도록 이끈다. 지나치게 돈을 많이 빌렸거나, DSR이 높은 대출자에 대해서는 원리금 분할상환을 강력하게 요구해 스스로 부채를 줄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 신용대출 사유를 소비(의료비, 학비, 생활자금)로 한정해 투자를 제한하거나, 개인사업자 대출을 철저히 관리하고, 전세자금대출 시장을 민간보증과 공적보증으로 이원화해야 한다는 의견 등을 내놨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5호 (2019.11.27~2019.12.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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