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못 볼 사주’였지만
어릴 적부터 사주, 타로, 운세 등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 색깔 사주로 아주 유명하신 분이 계신다고 해도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각기 다른 사람인데 ‘태어난 년, 월, 일, 시’로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는 것도 크게 믿지 않았다. 태어난 시간으로 인생이 결정되면 나랑 같은 시간에 태어난 사람과 내 인생이 같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귀신은 무서워한다.
이토록 사주에 관심이 없던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요가원과 회사의 사람들로부터 조치원 소재의 아주 유명한 철학관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사주를 보러 갈 예정이라고 말한 후에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빠도 3년 전에 이미 이곳에서 우리 가족의 사주팔자를 다 보고 오셨다고 한다. 몇 년 전에 내 첫 관운이 스물여덟에 있다고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다. 현재 다니는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된 것이 2018년 1월 1일이라 그런가, 사주팔자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사주 탐험을 위해 같이 갈 멤버를 모았다. 여자 친구와 그녀의 친구와 나. 주말 아침(토요일) 일찍부터 서둘렀다. 영업 시작 시간인 9시에 가면 늦을까 봐 한 시간 전인 8시를 도착 시간으로 계획했다. 그녀의 친구의 어머니께서 챙겨주신 김밥과 딸기를 먹으며 조치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나눈 대화는 “사주가 좋았으면 좋겠다. 좋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의 부지런함이 약간 부족했는지, 철학관 문을 열었을 때 신발장에는 이미 신발이 가득했다. 그렇다. 9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철학관에 오전 8시 15분에 도착했다는 것은 열정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일찍 도착했다는 우리의 뿌듯함이 무색하게도 우리 앞에 서른 팀 가까이 있었다. 대기번호 1번 팀에게 가서 몇 시에 도착하셨는지 물어보니, “6시에 도착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1등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전 학교 수강신청을 제외한 그 어떤 티켓팅에도 참전이 전무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잠시나마, 애플의 신제품을 누구보다 빠르게 사기 위한 사람들의 노숙 행진 그리고 각자의 최애 콘서트 예매를 위한 고수들의 티켓팅에 멋모르고 참여했다가 대참패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사전조사로 인해 토요일은 오전만 영업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미 사주를 보는 것은 포기한 상황이었다. 사주를 봐주시는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서 오늘은 스무 팀만 보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마지막 팀이 아마 오후 5시쯤이 될 것 같다는 추가 안내를 해주셨다. 우리는 애초에 순위에조차 들지 못했다. 여자 친구와 그녀의 친구는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말과 함께 한 달 뒤를 기약했고, 나는 흥이 식어 버렸다.
토요일을 아주 부지런하게 시작을 한 덕에 생긴 주말 오전을 활용하기 위해 세종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그날 우리의 사주는 ‘사주를 못 볼 사주’였지만, ‘아주 많은 술을 마실 사주’였는지 세종시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여자 친구와 친구는 한 달 뒤에 사주 티켓팅에 성공했고, 둘 다 아주 좋은 사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는 ‘하고 싶은 거 다해’ 수준의 거의 긍정 끝판왕의 사주였고, 여자 친구는 ‘구설수만 조심하면 나머지는 다 좋다.’라는 한 가지 주의를 제외한 아주 긍정적인 사주라고 했다. 내가 함께하지 못했음에도 궁합이 궁금한 여자 친구가 나의 사주도 함께 물어봐주었고, 선생님은 내 사주 또한 아주 좋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좋지 않은 사주라면 믿지 않으려 다짐했지만, 좋은 사주니까 아주 철석같이 믿어봐야겠다.
사실 사주의 결과보다도, 내가 놀랐던 것은 철학관의 엄청난 인기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입증이 되었다는 결과였으며, 사주나 운세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나도 결국 어느새 철학관의 문을 두드렸다. 찾아온 이유는 각기 다르겠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다들 긍정적인 사주풀이를 받고 고민거리가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막막한 미래가 걱정되는 시점에 다시 한번 티켓팅에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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