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규제 OUT] (9) 뜨거운 감자 ‘원격의료’…“무조건 NO” 앞에선 기술 있어도 ‘무용지물’
ngo2002
2019. 5. 14. 09:27
[규제 OUT] (9) 뜨거운 감자 ‘원격의료’…“무조건 NO” 앞에선 기술 있어도 ‘무용지물’ |
기사입력 2019.04.08 11:16:40 | 최종수정 2019.04.08 14:07:16 |
| | |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와 이해집단 반대에 막혀 적용이 원천봉쇄돼 있다. <매경DB> | | |
“원격의료에 대한 우려는 비현실적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다. 국민 편익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올해 건강보험이 적자로 전환됐는데 ‘문재인케어’와 고령화로 건보료 지출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국고를 무한정 지원할 수 없어 의료 자원을 적절히 배분해서 쓰자는 것이 바로 스마트진료다.” (송승재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장)
“대면진료를 원칙으로 해도 의료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환자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없고 환자 정보 유출까지 쉬워지는 원격의료를 왜 자꾸 하려고 하나. 원격의료는 행정편의적인 것일 뿐 도서 주민들도 대면진료를 받고 싶어 한다. 의사의 절대 수를 늘려 공공의료 인력을 늘리는 게 올바른 길이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
원격의료를 둘러싼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3월 11일 스마트진료를 도입하겠다는 보건복지부 발표가 기폭제가 됐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의료법을 개정해 도서 벽지, 군부대, 원양 선박, 교정시설 등 의약 취약지에서 의사·환자 간 스마트진료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원격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의식해 스마트진료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원격의료가 당장이라도 시작될 것처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내 원격의료 시장은 아직 걸음마도 안 뗀 수준이다. 도입 발표는 했지만 의료계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보니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시행한 원격의료 시범사업도 이렇다 할 결과가 전무한 상황.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스마트진료로 명칭을 변경하고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해관계자의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어 실제 도입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의료법 17조 ‘직접 진찰’ 규정이 발목
▷원래 의도와 다르게 원격진료 막는 근거로 이용
국내에서 원격의료는 이미 10년 넘게 논란의 대상이다. 원격의료는 의사가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 화상전화 등을 이용해 진단하고 처방하는 방식. 현재 국내에서는 일체의 원격의료를 인정하지 않는다. 의료법에서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법 제17조에 따르면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고 제한을 두고 있어 의사는 환자를 직접 만나 진찰해야만 진단서나 처방전을 작성할 수 있다.
문제는 시골 오지나 먼 외딴섬에 거주하는 환자, 몸을 움직이기 힘들 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환자의 경우다. 시골에는 의사가 없다. 시내 병원에 가기 위해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경우가 아직 많다.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은 의사를 만나기 위해 몇 시간을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야 하며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집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도전이자 위험한 일이다.
사실 원격의료가 불법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7년 의료법 개정 전만 해도 ‘의사는 환자를 진찰하고 나서 진단서, 처방전을 발급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의료법 개정과 함께 ‘직접’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직접’이라는 말도 원래 원격의료를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보호자나 타인이 환자에 대해 설명하는 말만 듣고 진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것이 인터넷 화상통화 기술 등이 발전하고 원격의료 문제가 대두되면서 원래의 규제 의도와는 다르게 원격의료를 막는 근거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의료법 제34조에는 ‘의료인은 (생략)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원격의료를 할 수 있다’고 해 원격의료를 인정하는 내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의사에게 지원하는 방식의 원격의료를 말한다. 송승재 회장은 “기술적으로는 이미 원격의료가 충분히 가능해졌지만 ‘직접 진찰’이라는 법규정에 얽매여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美·中·日 앞다퉈 도입 경쟁 치열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활용 가능성 확대
원격진단 기기들의 정확도가 높지 않다면 원격진료 논란은 사그라들 수 있다. 시중에 떠도는 민간요법처럼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인공지능은 하루가 다르게 성능이 향상되고 있고 5G의 도입으로 원격진료의 활용도는 더욱 확대되는 상황이다.
국내 원격의료가 규제에 발이 묶여 있는 사이 다른 나라는 원격의료 도입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일본은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가 28%를 넘자 2015년부터 원격의료와 관련된 규제를 풀기 시작했다. 영상진료는 물론이고 처방약까지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재택 원격의료 시스템을 2020년까지 완비하겠다는 방침이다. 2017년 일본의 재택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원격의료로 의료비 지출이 30% 이상 감소했다.
헬스케어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 중인 미국의 변화 속도는 더욱 눈부시다. 웹 기반 건강정보회사 웰니스에 매년 199달러만 내면 혈액검사를 하고 스마트폰 앱으로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스마트 의료기 회사 오므론헬스케어의 블루투스 연결 혈압측정기는 혈압을 추적하고 심방세동이나 불규칙한 심장박동까지 추적 기록한다.
지난 2016년부터 원격의료 서비스를 시작한 중국은 이미 스마트폰으로 진료받은 사람이 1억명을 넘어설 정도로 원격의료 확대에 적극적이다. 최근에는 5G 기술을 이용해 3000㎞ 떨어져 있는 환자의 뇌수술에 성공하는 등 원격의료 분야에서 달라진 위상을 자랑한다.
▶혁신 기술 국내에서는 적용 불가
▷규제 피해 한국 떠나는 엑소더스 심화
세계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ICT가 의료산업에 융합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한국은 각종 이익집단 이해관계 때문에 규제 개혁에 소극적이다. 뒤처져가는 국가경쟁력도 문제지만, 혁신적인 의료기기를 개발해도 국내에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더욱 뼈아프다. 아산나눔재단·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헬스케어 스타트업 중 63곳은 한국에서 온전한 사업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격의료(37곳), 의료 데이터(10곳), 유전자 검사(3곳) 등 관련 규제 때문이다.
의료기기 스타트업 스카이랩스가 개발한 ‘카트’는 손가락에 착용하면 심장박동수 같은 생체신호를 측정해 스마트폰으로 보내준다. 부정맥 같은 심장 이상 증상을 조기에 발견해주는 경보기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일반인이 카트를 구매해 사용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집에서 카트를 사용하는 환자의 데이터를 관찰하는 것은 ‘원격 모니터링’, 이상 징후를 감지해 환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원격의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둘 다 국내에서 불법이다. 와이브레인이 개발한 가정용 우울증 치료기기는 환자가 머리에 밴드를 두르면 전류가 전두엽을 자극해 우울증 치료를 돕는다. 해외에서는 이 제품을 집에서 사용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수십㎞ 밖에 있는 의사에게 보내 원격진료와 처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원격처방이 불법인 한국에서는 의사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처음부터 국내 판매를 포기하고 해외 시장 진출에 초점을 맞추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보급 직전의 단계까지 제품을 만들었다가도 첩첩이 쌓인 규제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기업도 적잖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과학대 교수는 “국민 건강과 편의성, 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고려하면 원격의료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대세”라며 “더 늦어지면 글로벌 의료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도입이 어렵다면 예외적인 상황부터라도 허용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하나씩 마련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3호 (2019.04.10~2019.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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