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7) 사회 정의 -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

ngo2002 2012. 9. 21. 09:31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7) 사회 정의 -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

ㆍ“지금 한국은 불평등·격차감으로 위험사회 치닫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멘토’로 알려진 최상용 고려대학교 명예교수(70)는 경향신문 ‘김호기·김상조의 시대정신 대논쟁 - 정의’에서 “우리 사회는 이데올로기와 사회·경제 등 두 영역에서 이중의 양극화로 병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의론’과 ‘중용 정치사상’을 주창해온 그는 “사회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중용이 필요하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최 교수는 정의 실현에 맞는 미래의 지도자상 역시 중용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치의 실패는 지도자의 정치 판단의 실패”라며 “이번 대선은 정의라는 시대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대선 주자들인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원장의 성숙한 정치판단 능력을 기대한다”고 했다. 대담은 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됐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9일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정의’ 화두의 부각은 한국 민주화의 그늘… 적극적 정의로 나아가야”


▲ 최상용 교수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정의의 핵심적인 주제… 헌법 틀에서 논의 필요”


▲ 김상조 교수
“자본권력이 정의 위협… 대선 공약 선명성 경쟁에 중용의 선 넘어선 느낌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정신을 넘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정의 등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제시되고 있다. 정의가 시대정신이 될 수 있는가. 정의란 무엇인가.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이하 최상용)=정의(正義)의 정의(定義)는 정의론자의 수만큼 많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시대정신은 역사적 흐름, 대세, 거대 담론이라고도 표현되는데, 우리가 지향하는 중심 가치이자 공공의 감정, 즉 공감의 반영이다. 공감은 단순한 개인 감정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 타자에 대한 배려다. 그것이 다양한 정의감의 원천이다. 그런 면에서 정의는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추상적인 목표 가치이지만, 실제 우리가 말하는 실천 과제로써 정의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에 대한 철저한 해답이다. 그 해답이 철저할수록 호소력이 있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하 김상조)=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는 일반 국민에게 의미가 명확하다. 그런데 정의는 추상적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 같다. 정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인가. 아니면 별개의 의미를 담은 개념인가.

최상용=현실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는 대한민국 헌법 틀 속에서 논의할 수밖에 없다. 헌법은 정의의 보고(寶庫)다. 복지는 대한민국 헌법 34조 2항에 나오고, 경제민주화도 119조 2항에 나온다. 따라서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정의의 핵심적인 주제이자 항목이다.

김호기=최근 정의가 크게 부각된 데에는 정의롭지 못한 한국정치에 대한 실망과 불만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민주화가 시작된 지 25년이 지났는데도 새삼 정의를 그리워하는 것은 민주화 시대가 낳은 그늘이자 아이러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가, 부정의한 사회인가.

최상용=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시민적 자각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자유의 유린에 저항한 것이다. 반독재·반전체주의 운동에 나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나친 불평등 구조와 격차감으로 인해 분명히 정의롭지 못한 위험사회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한다.

김호기=최 교수님의 책 <중용의 정치사상>을 보면 정치란 정의의 실현이며, 정의는 곧 중용이라고 했다. 정치인의 덕목도 ‘중용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왜 중용이 정의인가. 중용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최상용=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중용에 관심을 가졌다. 동서양 정치 철학을 통틀어 인류사에서 가장 생명력이 긴 정의(正義)의 정의(定義)가 바로 중용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중국의 유교 정치철학에서 공통된 명제가 ‘정치는 정의의 실현이며, 정의는 중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중용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최초로 정의론을 얘기한 플라톤에서 20세기 최고 정의론자인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정의 실현을 중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효대사와 다산 정약용이 그랬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재론적 상대성에 바탕을 둔다. 결국 인간은 불완전하고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끝없는 여정, 영원한 혁명, 가장 덜 불완전한 정체로 불린다. 지구상의 200개가 넘는 나라 중에 76%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의 정치원리가 이토록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미증유의 일이다. 내가 중용을 중심가치로 하는 민주주의, 즉 미노크라시(Meanocracy·중용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만든 이유가 여기 있다.

김상조=2010년 마이클 샌델이 펴낸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몰고 왔다. 중앙대 이상돈 교수는 샌델의 정의론이 한국사회에서는 너무 사치스러운 얘기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법치주의 또는 절차적 정당성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최상용=부정의에 대한 분노, 정의에 대한 갈구는 한국 정치 상황의 반영이다. 샌델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미국 사회의 부정의에 대한 대답이기는 하나, 정의감의 보편성이란 점에서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본다. 오늘의 주제인 정의론과 관련한 평가를 한다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무엇이 옳은 것(right thing to do)이냐’다. 정의의 실현을 법치에서 찾는 관점은 오랜 전통이다. 신의 의지는 너무 멀고 인간의 이성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법은 정의인 동시에 중용이다. 플라톤은 정의가 중용이고 그 중용을 제도화한 것이 법이라고 했다.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법은 중용’이라 했다.

김호기=국민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여론조사를 하면, 가장 많은 응답 가운데 하나가 민주주의다. 소극적 정의가 절차적 민주주의라면, 적극적 정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이다.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소극적 정의에서 적극적 정의로 나아가야 한다. 교수님 의견은 어떤가.

최상용=그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성장과 복지가 양자택일 문제가 아닌 것과 같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성숙도에 따라 나아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김상조=책 <이상호 기자 X파일>을 보면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소는 정치권력이 아니라 삼성으로 대표되는 자본권력이라고 했다. 샌델 책에서는 시장논리가 도덕 영역에까지 침범한 것이 사회 규범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고도 했다. 자본권력이나 시장논리가 정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상용=원래 자유 지상주의는 시장 원리주의, 즉 자본권력과 황금 만능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예측된 일이 아닌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진보와 보수의 상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의 연속성이 유지 내지는 강화됨으로써 양극화 사회로 치닫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려는 정치 철학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위기의 진단과 적절한 처방에 대한 철학적·경험적 연구가 너무 부족한 것 같다.

김호기=현재 한국 정치가 직면한 딜레마는 뭐라고 보나.

최상용=우리 사회는 이중의 양극화로 병들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조직적 양극화인 냉전이 세계적으로 붕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진부한 이데올로기 양극화가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 사회·경제적 양극화까지 겹쳐 불안과 불평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현재 정의 실현의 최우선 과제는 이 특유의 이중 양극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두 가지 중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중심축이 흔들리고 있다. 지나친 자유, 모래알 개인주의로 인한 위험사회 요인과 기본적 자유 침해가 뒤섞여 있고, 지나친 평등 요구로 인한 정체사회의 징후와 방향성을 상실한 각종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있다. 갈등과 딜레마는 우리 사회의 특징이 됐다. 문제는 이런 특유의 갈등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하면서 그런 과정에서 바람직한 목표는 뭔지, 그 목표와 상황 사이에서 최적점을 판단해야 한다. 말하자면 해결책은 바로 중용이다.

김호기=리더십 연구로도 유명하시다. 박근혜·안철수·문재인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다. 세 사람의 리더십을 비교하면….

최상용=리더십은 정치학 연구의 중요 분야다. 특히 지도자 자질은 정치철학의 오랜 테마다. 수많은 정치 철학자가 정치가의 자질론을 전개해 왔지만, 그 자질을 나는 한마디로 정치적 판단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치 판단은 상황 판단과 인간 판단으로 나눠진다. 상황 판단은 나라 안팎의 상황에 대한 입체적인(configurative) 판단을 해야 하고, 인간 판단은 인간을 꿰뚫어보는 안목, 즉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냉엄한 용인술로 나타난다. 정치 실패는 지도자의 정치 판단 실패다.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는 박근혜·안철수·문재인은 제각각 훌륭한 장점을 가진 분들이다. 이 분들의 성숙한 정치 판단 능력을 기대하고 싶다.

김상조=올해는 선거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공약을 보면 대선 국면에서의 선명성 경쟁 때문인지 중용의 선을 넘어선 부분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최상용=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양극화 해소다. 양극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복지가 필요하다. 여야가 같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우니 국민이 헷갈릴 것이다. 문제는 어떤 지도자가 어떻게 할 것인가다.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가졌던 교양, 지식, 철학이 재임 기간을 지배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지도자의 삶에 경제정의나 복지와 관련된 콘텐츠가 얼마나 녹아 있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복지는 정책의 우선 순위를 정해 가용자원을 배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편과 선별을 이분법적으로 봐선 안된다.

김상조=안철수 원장의 멘토로 불리시는데, 그의 책을 보면 민주당보다도 더 왼쪽에 가 있는 것 같다. 안 원장의 생각은 중용에 부합하는가.

최상용=<안철수의 생각>에 제시된 보편과 선별의 전략적 조합은 어중간한 절충이 아니라 최적의 선택이다. 누가 복지를 하더라도 유사한 정책으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 원장은 활기찬 경제발전, 공정한 복지국가, 과정으로서 평화통일의 토대를 이룰 수 있는 최적임자다.

김상조=김대중 정부 시절 주일대사를 지냈는데, 저물어가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나 굴기하는 중화주의 속에서 한국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국제정치 장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자국 이익을 넘어선 외교 원칙이란 것은 가능한 것인가. 다음 정부의 외교 정책 방향은 어떠해야 하나.

최상용=국제정치에서 정의는 한마디로 평화다.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는 대한민국의 국가 이익, 국민의 이익과 일치해야 한다. 동서양 외교사를 보면 소국은 외교 전략이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미 중견국가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고, 한류현상에서 보듯 문화의 힘도 분출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세계 5위 실력도 보였다. 2013년은 통일외교 전략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G2(미국·중국)처럼 세계전략을 써야 할 국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북유럽 국가처럼 조용한 복지국가로 안주할 수도 없는 지정학적 요인이 있다. 우리는 영국·독일·프랑스·일본과 같은 선진 민주국가의 발전단계를 주목하면서 이제 한반도 통일과정으로 진입해야 한다. 통일과정은 남북한 평화공존, 그 제도화로서의 평화체제, 나아가 사실상의 통일로 이어지는 정치과정이다.

김호기=이번 대선은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결산하고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여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번 대선의 역사적 의의는 어디에 있나.

최상용=2013년부터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플러스 유산’을 바탕으로 해서 21세기 미래한국의 자원인 지식·문화·소프트웨어 등 넓은 의미의 정보화 시대의 심화과정으로 들어갈 것이다. 2012년 12월19일은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시대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지도자의 품격은 국격의 상징이며 국민의 문화적 수준을 웅변한다.

■ 최상용 “정치는 타이밍과 워딩의 결합”…
법륜과 함께 ‘안철수 1세대 멘토’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학자로 알려져 있다. 안 원장과 함께 지난해부터 대학을 돌며 ‘청춘콘서트’를 열었고, 법륜 스님과 함께 안 원장의 ‘1세대 자문그룹’으로 꼽히기도 한다. 최근에도 안 원장에게 조언을 하는 원로 자문역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담 전부터 김호기, 김상조 교수가 최 교수를 통해 안 원장을 읽으려 각별히 애쓴 이유다. 최 교수의 한마디 한마디를 세상이 주목하는 터라 인터뷰는 팽팽한 긴장 속에 진행됐다.

안 원장의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김상조 교수였다. 그는 “여야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 국가 공약들을 내놓고 있다”며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중간 정도에 안 원장이 있다고 봤는데,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을 보니 민주당보다도 더 왼쪽에 가 있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원장의 멘토이신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최 교수는 바로 손사래를 쳤다. “그런 얘기는…”. 멘토라는 단어에도 고개를 저었다. 안 원장과의 관계에 대해 대놓고 말하기 싫다는 뜻이다.

그러나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번엔 최 교수가 말문을 열었다. “정치는 ‘타이밍’과 ‘워딩’의 결합이다. 동전의 양면이다. 두 부분이 같이 가야 한다.” 그는 이어 “타이밍과 워딩의 결합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안철수다”라고 말했다. 비밀 행보 속에서도 가끔씩 던지는 말 한마디가 안 원장을 주목하게 하고, 그의 생각과 가치를 말해준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최 교수는 “안 원장은 무서울 정도의 인내력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호기 교수도 리더십을 논하면서 안 원장의 리더십 얘기를 꺼냈다. 리더십 연구로 유명한 최 교수는 정치가의 종류를 구분해서 설명했다. 그는 “노련한 정치가가 있는가 하면, 자기 체험을 통해 외마디를 하는 정치가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 판단과 인간 판단을 입체적으로 할 수 있는 안목”을 최고의 리더십 조건으로 꼽았다.

최 교수는 “박근혜·안철수·문재인은 각각 훌륭한 장점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며 “이들 모두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고 마무리했다. 안 원장과의 관계에 대해선 끝까지 에둘러 갔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 김상조 교수 후기 - 내가 본 최상용

최상용 교수와는 첫 대면이다. 경향신문에서 ‘시대정신 - 정의’편 인터뷰이로 최 교수와 이상돈 교수를 선정했으니 다른 점이 많을 테지만, 나의 눈에는 두 분의 닮은 점이 더 먼저 들어왔다. 실례를 무릅쓰고 요약하면, ‘깐깐하다’는 것이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참으로 엄격하다. 우리 모두가 편하기 위해서는 정의가 필요하지만, 각 개인에게는 불편한 점도 있는 것이 정의이리라. 그래서 정의를 실현하는 데는 격렬한 저항이 따르는 지도 모르겠다.

최상용 교수와의 대담은 나에게 지적 충격이었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경제학자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인터뷰를 위해 이런저런 자료를 미리 뒤져 봤지만, 육성으로 직접 들으니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듯한 자극이 왔다. 각각의 맥락에서 가장 적합한 단 하나의 단어를 골라 힘주어서 말하는 최상용 교수의 화법은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을 실천하려는 학자의 의지와 일생에 걸친 학문의 깊이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핵심 개념은 중용(中庸)이다. 최상용 교수는 ‘정치는 정의의 실천’이며 ‘정의는 곧 중용’이라는 말로 철학 사상과 현실 정치의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그 의미를 다 따라갈 수도 없었지만, 물질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극단화된 한국 사회에서 중용의 원리를 강조하는 최상용 교수의 논지를 반박할 여지도 없었다. 나 역시 하나의 거대담론(‘one-size-fits-all model’)으로 모든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하려는 경향을 경계하던 터라 더욱 그랬다.

그런데 오늘 최상용 교수는 나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안철수 원장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자, 깜짝 놀랄 극찬이 이어졌다. ‘안철수의 멘토’라 불릴 만하다. 나는 안 원장을 모른다. 10여 년 전 어느 행사 자리에서 인사를 나눈 기억밖에 없다.

물론 안 원장이 엄청난 덕목을 갖춘 사람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그토록 중용을 강조하던 최상용 교수가 중용의 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우려될 정도로 극찬할 완벽한 정치 지도자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제 안철수 원장은 검증의 무대에 올랐다. 있는 그대로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검증의 과정이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 김호기 교수 후기 - 내가 본 최상용

최상용 교수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익히 들어왔던 대로, 최 교수는 플라톤부터 롤즈에 이르기까지, 정도전에서 이번 대선 후보들에 이르기까지 정치철학과 리더십에 대한 르네상스적 지식인의 풍모를 보여줬다. 정치학과 사회학에서 이론 및 철학을 다루는 분야는 주로 대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분야인데, 우리 사회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지식인답게 최 교수는 사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정의에 대한 독창적인 담론을 풀어 놓았다.

대화에서 내게 특히 인상적인 것은 중용에 대한 최 교수의 견해였다. 최 교수는 ‘정치란 정의의 실현이며, 정의는 곧 중용’이라고 주장하고, 정치 지도자의 덕목이자 시민들의 생활원리 및 가치관으로서의 ‘중용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최 교수의 노작 <중용의 정치사상>에서 제시된 이러한 주장은 어느 사회든 내재된 갈등 구도를 돌아볼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 우리 사회 이념 구도를 생각할 때 그 호소력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시대정신의 하나로 부각돼 온 것은 최근 현실과 무관치 않다. 사회 양극화의 강화와 상대적 박탈감의 증대는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다는 생각을 확산시켜 왔기 때문이다. 민주화 시대가 한 순환을 마감하는 현 시점에서 바로 그 민주주의 본래의 가치 중 하나인 평등이 새삼 강조되는 것은, 한편으로 역설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역사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해결하는 데 최 교수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중용 민주주의’는 정치의 고전적인 이상과 현실을 고려할 때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처방일 것이다.

대화를 마치고 최 교수, 김상조 교수와 함께 덕수궁 대한문 옆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찾았다. 세 사람 모두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쌍용자동차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시험대다. 공동체 구성원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우리 정치가 감당해 할 역할은 무겁고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다. 몇 해 전 건너편 시청 광장에서 있었던 촛불집회를 떠올리며 나는 대한문 앞을 쉬 떠날 수 없었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운영위원장>


<정리 |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입력 : 2012-09-17 21:33:57수정 : 2012-09-17 23:0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