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1부 우리 경제는 지금 어디로 ⑦ 박승 前 한은 총재 인터뷰

ngo2002 2012. 9. 17. 09:16

수출 타령 그만하고 내수 키우는 대변혁 시작해야
1부 우리 경제는 지금 어디로 ⑦ 박승 前 한은 총재 인터뷰
한계생활자 600만명이 가장 큰 뇌관…가계부채 방치땐 국가적 위기 올수도
대기업 더 밀어주되 책임도 늘려야
대담=채수환 기획팀장
기사입력 2012.09.16 17:45:57 | 최종수정 2012.09.16 19:37:23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The Coming Economic Earthquake ◆

박승 전 총재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상황을 `빈곤화 성장(immiserizing growth)`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이 용어는 인도 출신인 J 바그와티 컬럼비아대 교수가 처음 주장한 용어다. 예컨대 농민이 기술력 개발을 통해 쌀 10%를 증산했는데 쌀값은 오히려 20% 떨어져 빈곤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박 전 총재는 "1980년대에는 경제성장률이 평균 7.7%였고, 기업소득과 가계소득 성장률이 각각 7%대로 균형을 이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이 같은 균형이 깨졌고 그 격차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계청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며 "가계자산 소유 구성을 볼 때 상위 10%가 전 자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하위 50%의 자산은 10%에도 못 미친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 빠지지 않았지만 일반 중산층이나 서민의 생활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전 총재는 "시장주의는 사유재 부문에서는 최적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질서지만 교육 의료 주거 환경 등 공공재 부문에서는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할 수 있다"며 "우리가 당면해 있는 빈곤화 성장 문제를 푸는 데는 이 같은 시장 기능의 한계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사유재가 아니라 공공재가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점을 감안해 우리 경제의 성장ㆍ분배 기본 틀을 다시 짤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가 위기인지, 아닌지 논란이 분분한데.

▶내가 한국은행 총재를 맡고 있던 2003~2004년 신용카드대란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다. 당시 위기는 일시적이고 순환적 위기였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위기다. 우리 경제는 이미 노화단계에 접어들었다. 인간 나이로 따지면 환갑쯤 됐다. 노화를 앞당기는 뇌관이 바로 가계부채다. 부채에 짓눌리거나 일정한 소득이 없어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무려 600만명에 달한다.

-글로벌 경제가 회복되면 우리도 회복될 수 있지 않나.

▶대기업, 대외수출 의존도가 크다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문제다. 중소기업, 내수를 키우는 성장모델을 만들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중산ㆍ서민층 붕괴, 사회 양극화 심화라는 빈곤화 과정을 촉발시키고 있다. 우리 내부 구조적 요인으로 수출이 살아나도 과거처럼 경기가 크게 호전되기는 어려운 구조다.

-그렇다면 구조적인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60%를 밑돈다. 이는 200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2005년부터 5년간 상장회사 매출은 25% 증가했는데 고용은 오히려 2% 감소했다. 신자유주의, 물질문명, 경제 패러다임 변화가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다. 20년 전만 해도 은행 업무를 거의 사람이 했지만 이제는 약 90%를 기계가 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생산이나 수출 등 소득을 벌어들이는 일은 시장과 기업에 맡기되 소득을 나누는 일은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 된다. 북유럽의 경우 1차 분배는 우리보다 더 불평등하지만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고른 소득분배와 가장 두꺼운 중산층 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뇌관인 가계부채를 해결하려면.

▶외환위기 때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기업부채와 은행부실을 처리했다. 이제는 기업과 은행이 나서서 가계부채에 짓눌린 한계생활자를 구제해야 한다. 정글식 자본주의 체제에 근본적으로 메스를 대지 않으면 사회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국가 전체가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 정치권은 낭비되는 예산을 줄여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국고에서 추가 재원을 마련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양극화 해소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나.

▶연간 20조~30조원은 더 있어야 양극화 구조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여야 정치권은 유권자 표심을 의식하기 때문에 증세 주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 국가 경제의 건전한 성장, 국민화합을 유도하는 것이다. OECD 회원국의 평균 담세율은 28%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아직 20%에 불과하다. 특별복지세를 신설하라고 제안한다. 납세 대상은 이익이 크게 늘어난 대기업과 고소득층이다.

-정치권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 주장과 같은 맥락인가.

▶대기업, 고소득층에 대한 징벌적 규제는 반대한다. 우리는 대기업이 잘돼야 국가경제가 돌아가는 구조다. 대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 약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되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임을 더 높이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공정거래질서 확립과 지배구조 투명화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중소, 중견기업을 육성하고 있지만 단시일 내에 대기업처럼 글로벌 위상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을 선순환적 투자로 유도하려면.

▶국내총생산 대비 투자비율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총투자의 절대금액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수준이다. 현 정부는 법인세 인하 등 부자감세를 통해 투자를 유발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투자자금이 없어서 투자를 못 했던 과거 1960년대식 발상이다. 차라리 민간저축이나 소득을 정부가 세금으로 흡수해서 복지시설이나 공공사업에 투자를 대행하는 것이 더 나은 해법이 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과거에는 건설경기를 살리는 게 경기활성화의 가장 빠르고 명확한 해법이었다. 실제로 정부가 규제를 풀고 지원책을 내놓으면 시장이 곧바로 반응했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 임대주택 증가 등 인구사회학적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과거 패러다임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은 무리하게 부양해도 효과가 제한적이고 인위적으로 시장이 살아나지도 않는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상향했는데.

▶국가부도 위험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국가 재정도 지금까지는 잘 버텼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안하면 10년 이내에 국가ㆍ공공채무가 유럽의 부실국가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 기업이나 가계가 부실해지면 정부 재원으로 일정 부분 구제할 수 있지만 국가가 부실해지면 더 버티기가 어려워진다. 일본은 뒤늦게 증세(소비세 인상)를, 유럽도 정부 지출 삭감을 시도하고 나섰지만 경제위기, 저성장의 물꼬를 돌리기 어려운 구조다. 신용평가회사들이 우리나라 등급을 올렸다고 경제여건이 개선됐다고 봐서는 안 된다.

-글로벌 경제는 어떻게 전망하나.

▶우리는 중국 경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다.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특히 중국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분야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기업의 경우 보완관계가 많아 성장에 기여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농업은 중국과 경쟁관계가 많기 때문에 성장과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중국 경제의 급부상이 가져온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또 다른 과제다.

■ 성장ㆍ분배 기본틀다시 짤 시점 됐다

박승 전 총재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상황을 `빈곤화 성장(immiserizing growth)`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이 용어는 인도 출신인 J 바그와티 컬럼비아대 교수가 처음 주장한 용어다. 예컨대 농민이 기술력 개발을 통해 쌀 10%를 증산했는데 쌀값은 오히려 20% 떨어져 빈곤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박 전 총재는 "1980년대에는 경제성장률이 평균 7.7%였고, 기업소득과 가계소득 성장률이 각각 7%대로 균형을 이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이 같은 균형이 깨졌고 그 격차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계청 자료를 근거로 제 시하며 "가계자산 소유 구성을 볼 때 상위 10%가 전 자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하위 50%의 자산은 10%에도 못 미친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 빠지지 않았지만 일반 중산층이나 서민의 생활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 전 총재는 "시장주의는 사유재 부문에서는 최적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질서지만 교육 의료 주거 환경 등 공공재 부문에서는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할 수 있다"며 "우리가 당면해 있는 빈곤화 성장 문제를 푸는 데는 이 같은 시장 기능의 한계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가 선진화될수록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사유재가 아니라 공공재가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점을 감안해 우리 경제의 성장ㆍ분배 기본 틀을 다시 짤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 He is…

박승 전 한은 총재는△1936년 전북 김제 △서울대 경제학과 △한국은행 입행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통화운영위원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한국경제학회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한우람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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