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1부 우리 경제는 지금 어디로 ① 이헌재 前부총리 인터뷰

ngo2002 2012. 9. 14. 12:54

토목에 쓸돈 중산층에 부어라…그게 위기 방파제
글 싣는 순서 : 1부 우리 경제는 지금 어디로 ① 이헌재 前부총리 인터뷰
가장 약한 고리 1000조 가계부채 지금이 손댈 적기
대혼란의 시기 기득권층, 신세대에 자리 내줄 시간됐다
기사입력 2012.09.06 17:26:11 | 최종수정 2012.09.07 07:11:46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The Corning Economic Earthquake ◆

`경제위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69). 그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위기의 냄새를 맡는다. 그러나 그 위기는 과거 이헌재가 맞닥뜨려 해결했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경제위기나 정치위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어가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좌절과 불안이 낳은 시스템의 위기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성공 신화를 이끌어왔던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는 위기다. 대선을 앞두고 들불처럼 번지는 안철수 현상은 이런 위기에서 잉태됐다. 위기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상황에서 이 전 부총리를 만나 우리 경제의 현주소와 해법에 대한 고견을 들었다.

-한국 경제에 위기 징후가 있나.

▶코앞에 다가왔다고 느낀다. 한국을 초고속 성장으로 이끌었던 사회시스템이 수명을 다했다. 낡은 것이 작동을 멈췄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때 중대한 위기가 온다. 과거 시스템과 미래 가치가 충돌하는 대혼란이 온다. 지금 한국 사회가 그렇다.

-경제적으로 볼 때 어디서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나.

▶소위 트리클다운(Trickle down) 효과가 실종됐다. 부(富)가, 돈이 낙수처럼 흐르지 않는다. 과거 대기업을 육성하면 중소기업과 일반 국민도 성장의 수혜를 봤다. 그런데 여러 복합적인 사회현상이 맞물려 들어가면서, 즉 IT 혁명, 글로벌 소싱 등으로 트리클다운 논리가 깨졌다. 성장해도 고용이 없다. 그건 중산층 붕괴다. 중산층 붕괴는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안전판의 실종을 의미한다.

-중산층 붕괴를 막는 건 중기적 과제일 것 같은데 위기라면 뭔가 급박한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가장 약한 고리는 어디인가.

▶그게 가계부채다. 중산층 붕괴가 가져오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가계부채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중산층 붕괴는 가속화한다. 작년 말로 1000조원이 넘었다.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미 한계 수준에 도달했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나.

▶문제가 생긴 원인부터 파악해야 한다. 가계부채는 주택정책에서 파생됐다. 소유 개념에 기초한 1가구 1주택의 틀을 바꿔나가야 한다. 고령층의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85%를 넘는다. 막대한 고정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를 잘못 손대면 버블이 터지고 경제 전체에 위기가 온다. 담보를 잡은 은행권은 안전할지 몰라도 중산ㆍ서민층은 살던 집이 날아가고 재산이 거덜 날 수 있다.

-가계부채와 부동산정책이 맞물려 있다는 의미인데.

▶지금은 딜레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도 안 되고, 내려가도 안 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됐다. 오르면 서민이 죽고, 내려가면 하우스푸어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의욕만 있지 토론과 디테일이 없다. 우리는 주택 부문 금융 데이터베이스(DB)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영국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주택 민영화를 추진했다가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금리를 2년 사이 2배나 인상했고 그 결과 주택 소유자 중 3분의 1이 원리금을 갚지 못해 살던 집을 은행에 내놨다. 그리고 집을 분양받았던 사람들은 10년이 지나 다시 임대주택에 살게 됐는데 임대료는 훨씬 올라갔다.

-아이디어가 있는가.

▶아이디어는 많다. 그러나 말하는 순간 효력이 없어진다. 중요한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천 의지다.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는 토론이 필요하고 정부가 그 작업을 해야 한다. 아이디어는 뒤따라 온다.

장관이 언론과 만나 문제의 심각성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정책은 그렇게 해야 힘을 받고 성공할 수 있다. 벙커에서 머리를 맞댄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출구는 있게 마련이고, 아무리 늦어도 그때 시작하면 늦지 않는다.

-`위기관리`가 화두인데.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위기는 진행형이다. 유럽, 신흥시장까지 가세하면서 오히려 위기의 진폭이 더 크게 느껴지고 있다.

-위기관리라고 하면 구체적이지 못한데 어떻게 하면 되나.

▶교과서적으로 4가지 전략이 있다. 하나는 디레버리징이다. 부채를 줄이는 일이다. 고통이 따른다. 둘째는 디폴트 선언. 이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대안이다. 셋째는 인플레이션 정책. 돈을 풀어 물가를 올리는 정책. 그러나 정작 해야 할 일은 이 세 가지가 아니라 성장이다. 생산력을 증가해 부채를 털고 위기를 넘는 방법. 이 길을 찾아야 한다. 쉽지 않지만 한국은 잠재력이 있다.

-성장은 시간이 걸리는 일 아닌가.

▶그래서 중산층을 말한 것이다. 중산층을 키워야 성장의 동력이 나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기를 흡수할 수 있는 강력한 완충지대 역시 중산층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붕괴하고 있는데.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토목공사를 할 재정이 있으면 그 돈을 재형저축이나 보육 사업 등 중산층 대책에 쓰라고 권고하고 싶다. 지금까지 농어민이나 영세서민을 보호하는 정책은 있었지만 중산층 정책은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중산층이 사라지면 사회 불만 세력이 늘어나고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선동가들이 늘어나게 된다.

-곧 책을 출간한다고 들었다. 거기에 안철수 현상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는데. 항간에는 안철수 씨와 가깝다는 얘기도 많이 들리던데.

▶모른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고….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안철수 씨가 대선에 출마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 대통령이 된다면 국가를 잘 이끌 것인지 아닌지, 이런 문제가 아니다. 그건 정치공학적 분석이고 정작 중요한 건 그가 몰고온 사회현상이다. 나는 그걸 말하고 싶었다. 안철수 현상은 이제 보통명사가 됐다.

-그렇다면 이 전 부총리가 보는 안철수 현상은 무엇인가.

▶구시대와 새로운 흐름의 충돌이다. 젊은 세대가 가진 변화에 대한 열망이 폭발한 것이다. 중심 세대의 교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인터넷 대중화의 원년인 1999년 시작된 새로운 시대의 물결이 이제는 거대한 사회 흐름이 된 것과 비슷하다. 과거 체제는 물러가고 변화의 새로운 시대로 도약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기로에 서 있다.

-중심 세대를 교체해야 한다는 얘기로도 들리는데.

▶1960년대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시작할 때 중심 세대는 40대였다. 일각에서는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며 정책은 1960년대식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 누구도 세대교체 얘긴 안 한다. 노쇠해진 자신들이 스스로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우리의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노인과 기득권이라는 `유리 천장`에 막혀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혼돈의 시기란 다른 말로 하면 기득권 세력이 자리를 내줘야 할 시간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기하면 떠오르는, 이헌재 전 부총리는

`경제위기의 해결사, 현대사 최고의 카리스마 금융관료.`

그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외환위기 해결사`로 발탁한 인물이 바로 정치적인 연고가 전혀 없던 이헌재였다. 직함은 비상경제대책위 실무기획단장.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4개월 만에 5개 은행, 20개 금융사, 55개 부실기업을 퇴출시켰다.

2004년 부총리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경제는 이헌재가 맡는다"는 한마디로 시장 불안을 잠재웠다.

[대담=손현덕 부국장 겸 산업부장 / 정리 = 채수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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