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1) 경제민주화 - 재벌개혁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

ngo2002 2012. 9. 5. 17:03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1) 경제민주화 - 재벌개혁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

ㆍ“지금 재벌 우위 시대 더 방치하면 사회가 폭발… 제어해야”

20일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선출과 함께 18대 대통령선거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민주당은 한달 뒤인 9월23일 대선후보를 선출하고, 유력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복합대학원 원장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선거는 예측을 불허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이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결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시대정신은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의 집약이자 최종 목표다. 경향신문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시대정신을 모색하는 대논쟁의 장을 마련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복지국가 민주주의 싱크네트 운영위원장),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가 이 시대의 최전선에 서있는 보수와 진보의 대표 지식인들을 찾아간다.  헌법 경제민주화 조항의 입안자로 통하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16일 경향신문 ‘김호기·김상조의 시대정신 대논쟁’에서 “경제 세력이 언론·법률·지식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을 규제하기 위한 민주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인 그는 “국민에게 초지일관 약속한 사항을 성실하게 지키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며 경제민주화의 실천을 강조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오른쪽)와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가 지난 16일 청와대가 멀리 보이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가운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음 정권의 가장 큰 과제는 경제민주화라는 게 김 위원장의 지론이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한국 경제 새 틀 구축에 재벌개혁은 필요조건, 충분조건은 아니다”


▲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
“보수 집단이 안 변해선 경제민주화 정착 불가 그래서 새누리 돕는다”


▲ 김상조 교수
“재벌이 ‘룰’을 바꾸는 재벌공화국에서 스스로 변할지는 의문”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민주화 시대가 25년이 지난 다음 역설적으로 사회·경제민주화가 답보 내지 후퇴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이하 김종인)=1987년 이전까지 한국은 압축성장의 시대였다. 이때 헌법 119조 2항에 경제민주화가 들어갔다. 그런데 현재 그 갈등 요인이 해소되기는커녕 심해져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1 대 99’ 사회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80%가 넘는다. 경제민주화 논쟁은 인위적으로 누가 끄집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당면한 경제·사회적 요인이 그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도록 한 것이다.

김호기=김 위원장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무엇인가.

김종인=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 당시 이 조항을 넣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정치민주화로 의회가 중심이 됐는데 의회가 기업 로비에 걸리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겠다 싶었다. 사회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경제 문제로 폭발 직전에 이르게 되면 입법으로 상황을 규제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제민주화 조항이 없는 상태에서 입법 규제가 시작되면 기업들이 헌법소원 등으로 대응하려고 달려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경제세력이 언론·법률·지식인 사회를 지배하는데 그 결론이 뻔할 것 아니냐. 그런 일을 방지하자는 것이 첫번째 생각이었다. 시장경제가 발달하면 자연적으로 집중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고 경제세력이 힘을 더 발휘할 텐데 그 사람들을 규제하기 위한 민주적 장치 마련이 시급했다.

김호기=경제민주화 조항은 진보정치를 상징해서 새누리당보다 야권에 어울릴 것 같은데, 김 위원장이 새누리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종인=소위 진보정권이 10년간 계속되면서 결과가 어땠나. 1997년 외환위기가 오고 국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지만 한편으로는 누적된 폐해를 일거에 재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1970년대식 재벌위주 경제정책이 펼쳐졌고 재벌의 위치는 더 공고해졌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양극화 아니냐. 진보가 경제민주화를 더 잘할 것이라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왜 새누리당으로 가 도와주느냐고 물었는데 경제민주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보수 집단이 변하지 않고는, 보수 인사들의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생태적 DNA를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하 김상조)=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또는 김종인 위원장이 내세우는 재벌개혁의 의미가 무엇인가.

김종인=우리 재벌은 자기 노력에 의해 재벌이 됐다기보다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시혜를 받아서 형성됐다. 그리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재벌 우위 시대가 됐다. 이 사람들을 이런 상태로 방치하면 결과적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모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사회적 폭발이 일어났을 때 제어할 능력도 없다. 그러기 이전에 제도적 규범을 짜면 재벌 스스로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변할 수밖에 없다.

김상조=재벌이 룰을 어기고 고치려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재벌이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원칙은 맞지만 재벌이 그 룰 속에서 움직이겠나.

김종인=간접적으로 유도해도 안되면 최종적으로는 직접적인 방안을 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20세기 초반까지 그런 제도적 장치 없이 발전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나와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 50년 지속되면서 조화롭게 됐다. 자본주의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는 다 이런 과정을 겪는데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압축성장을 통해 발전하면서도 한번도 그런 조정기를 거치지 않았다. 현시점에 그런 지도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벌이 저항하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김상조=재벌개혁 의미를 국가가 재벌로 하여금 사회적 룰 속에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은 보수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반면 진보진영은 룰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보다 국가 역할이 더 크다고 본다. 진보 쪽에서는 지도자 역할뿐 아니라 대중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 아닐까 한다.

김종인=지도자 역할과 대중 역할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는 결국 대중의 의식 변화를 느끼고 그 요구에 따라 변화해 대중을 끌고나갈 힘을 얻어야 한다. 대중의 역할은 결국 지도자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이지 대중이 직접 나서서 할 수가 없다.

김상조=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을까.

김종인=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말을 던져 놓으면 입씨름만 되지, 효과적으로 굴러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10월 또는 11월 본격적으로 대선이 굴러갈 때 후보가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때 집권 5년 동안 무엇을 할지,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등 설명하려 한다.

김상조=재벌 개혁 대부분은 법을 지키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서구 관점에서 말하는 법치주의를 만드는 것은 진보의 과제라기보다 보수의 과제다. 그런데 한국 보수세력, 보수정당, 보수대통령은 재벌개혁을 자신의 아젠다로 만들지 못했다.

김종인=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은 성장 콤플렉스에 걸려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서 성장이 될 수도, 안될 수도 있으니 사회 제반 역할을 조정함으로써 지지를 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 기능을 하기 어렵다.

김상조=박정희 전 대통령 딸 박근혜 후보는 성장 논리에서 벗어났나.

김종인=5년 정도 봤는데, 본인이 시대 흐름에 따라 자기 변신을 엄청나게 했다. 누적된 사회 문제를 이 시점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기 어렵지 않으냐는 인식을 철두철미하게 갖고 있다.

김호기=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할 진정성이 있나.

김종인=우리나라에는 시대착오적 보수가 많다. 보수도 집권과 생존을 위해서 대중과 영합을 하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다. 새누리당 일부가 말하는 보수대연합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 집권하고 생존하려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이 주도하는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이 40여명으로 늘었다. 박 후보가 확신을 갖고 끌고 가고 여당의 상당수가 의지를 보인다면, 여당 생리상 최고 통치자가 끌고 가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

김상조=경제민주화 실천모임에서 이미 3개 개혁법안(불법총수 형량 강화, 일감몰아주기 규제, 순환출자 금지 등)을 발의했고, 최근에는 제2금융권까지를 포함하는 금산분리 규제 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선거국면에서 사실상 입법이 불가능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어, 명색으로만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김종인=경제민주화 실천모임 법안은 의원입법안이다. 당론으로 확정하는 과정에서 실현 가능한 것으로 고칠 수밖에 없다. 집행이 불가한 걸 내놓는 것은 거짓말밖에 안된다. 이행 가능한 법을 만들었다 해도 지키지 않아서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온 거다. 현행 공정거래법을 엄격하게 지키면 상당 부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된 것이 문제 아니냐.

김상조=있는 법도 안 지키는 상황에서 재벌 저항의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순환출자규제 등 소유구조와 관련된 조치가 나오자마자 전경련에서 바로 비판 논평이 나왔다. 경제가 어려운데 경제민주화 하면 더 어려워진다는 선전을 할 수도 있다.

김종인=경제 사정이 어려운 것과 경제민주화는 별개 문제다. 경제가 어려운 건 그대로 풀고 고칠 것은 고쳐야지 경제가 어려우니 경제민주화는 나중에 하자면 아무것도 안된다.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 시절 외부 위원으로 참여해서 ‘금년은 성장은 안되니 경제 윤리를 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더니 ‘말조심하라. 어디서 운동권 교수를 불러오지 않았느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세계 경제가 요동하는 과정에서 성장률을 7% 목표로 정했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무모한 짓을 해서는 안된다.

김호기=학계에서는 재벌개혁의 4대 쟁점으로 공정거래법 개혁, 하도급법 개혁, 현행법 제도의 엄격한 집행 및 재벌기업에 대한 사회적 감시 강화, 기업집단법 제정을 꼽는다. 가장 우선시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

김종인=시장경제를 운용하는 이상 일정한 부의 집중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그걸 어떤 형태로든 시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는 최저임금법 외엔 소득 분배에 별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노사가 합의하게 돼 있다. 문제는 지나치게 경제력이 집중돼서 모든 것을 지배해버림으로써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다는 점이다. 한쪽이 꽉 쥐고 힘을 행사하니 다른 사람들이 절망상태에 빠져 버렸다. 경제민주화를 바탕으로 전체 경제 운용 여건이 거기에 맞게 따라가지 않으면 성장 효율도 기대할 수 없다.

김호기=최근 일본 경제 침체 요인 중 하나로 투명하지 않은 지배구조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재벌개혁은 한국경제의 새로운 틀 구축을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어떤 다른 정책들이 재벌정책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보는가.

김종인=재벌을 키울 적에는 다른 주체들의 시장 진입을 엄하게 규제했다. 최근에 이들이 커져서 힘이 생기니 자기들이 다른 분야에 진입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 달라고 한다. 탐욕으로 코묻은 돈까지 빨아들이겠다면서 대기업 총수 자식과 손자들에게까지 빵집, 순대집이 돌아가면 소상인·중간상인 할 것 없이 영세민으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정부 힘으로 규제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 폴 사뮈엘슨은 시장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은 정서적 불구자라고 하더라. 우리나라에는 그런 정서적 불구자가 너무 많다.

김호기=출구가 보이지 않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 저성장시대가 예견되는데, 향후 경제정책 핵심은.

김종인=자본주의 황금기에 복지가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 복지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러나 복지가 시작된 때는 사회가 어려울 때, 사회적인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과거와 같은 고도 성장은 있을 수 없다. 현실에 맞게 해야 한다. 국민들은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데에 불만이 많다. 정의가 확립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김상조=전체 경제민주화 계획이 100이라고 했을 때 박근혜 후보 등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뒤 다음 5년에 몇% 달성해야 한다고 보나.

김종인=60~70%만 하면 성공이라고 본다. 정치민주화도 하루 아침에 하지 못했듯 오랜 시간에 대중의 의식이 바뀌고 국민들이 ‘이렇게 안하면 안된다’는 순간에 도달해서 직선제를 비롯한 개헌이 이뤄진 것이다.

김호기=대선 전망은.

김종인=박근혜 캠프에 있는 사람인데, 박 후보가 당선될 거라고 보고 당선되게 노력해야 한다. 대선 싸움은 치열할 것으로 본다. 격차도 크게 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방향을 조금만 잘못 짚으면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에게 초지일관 약속한 사항을 성실하게 지키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게 가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 김상조 “1년 전엔 내가 과격한 재벌개혁론자였는데,
지금은 중간밖에 안되더라”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캠프의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의 부암동 사무실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김 위원장의 캐리커처다. 한 손에 돋보기를 들고 무언가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不動産(부동산)’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노태우 정권 당시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매각조치를 견인한 청와대 경제수석의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지난 16일 김 위원장과 김호기·김상조 교수의 대담은 90분 동안 밀도 높게 진행됐다.

연구년으로 미국에 다녀온 김상조 교수는 대담을 시작하기 전 “1년 전에 한국을 떠날 때는 제가 과격한 재벌개혁론자였는데, 돌아와보니 중간밖에 안되더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만큼 경제민주화라는 화두가 일반화됐다는 이야기였다.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논쟁이 계속되면서 일반 국민, 소상인까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다 알게 됐다”며 “정의와 복지도 경제민주화를 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데 경제민주화 하면 어떻게 먹고살 거냐, 외국자본에 우리 기업을 넘기자는 것이냐’는 반박이 있다는 말이 나오자 김 위원장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자기 목적을 위해서 하지 국민을 위해서 하느냐. 돈을 번다면 지옥에라도 갈 사람들인데 경제민주화 한다고 그들이 아무것도 안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며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땐 국가의 혜택을 누리면서 번 돈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장경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침 인터뷰가 진행되던 그 시각,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법정구속됐다. 두 교수는 “한국 사회가 한걸음 나아갔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형량은 최소였다고 보여져 재벌봐주기 문제는 여전히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소회가 어떤가”라고 물었다. 김 위원장은 “법원도 사회 분위기를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김종인

인터뷰어 한 사람으로 먼저 독자들에게 이 기획을 마련한 이유를 이야기하는 게 순서일 듯하다. 올 12월 대선에는 여러 의미들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민주화 시대 25년의 결산과 새로운 시대정신의 모색에 있다고 생각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원동력인 민주화는 분명 전환점에 도달해 있다.

문제는 이 전환점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있다. 민주화 시대의 계속인가 또는 종언인가, 계속이라면 제2단계 민주화로 볼 수 있는가, 종언이라면 새로운 시대는 어떻게 명명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들은 나를 포함한 사회과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내 생각은 이렇다. 계속이라면 경제민주화가 새로운 시대정신이고, 종언이라면 복지국가가 새로운 시대정신일 것이다. 여하튼 내 잠정적인 결론은 우리 사회가 현재 이중과제에 직면해 있으며, 그 이중과제는 다름 아닌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첫 번째 인터뷰이로 김종인 박근혜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만났다. 지난해 이상돈 교수와 진행한 ‘대화’를 포함해 그동안 김 위원장을 몇 번 뵈었다. 김 위원장은 박정희 정권의 의료보험과 ‘87년 헌법’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의 산파 역할을 맡았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김 위원장은 중도보수를 대표하는 뛰어난 ‘지식인 정치가’다. 이번 대담에도 김 위원장은 분명한 어조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활약이 우리 사회 보수가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자하문터널 너머에 있는 김 위원장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다음 광화문광장에 와서 사진을 찍었다. 광화문광장은 내게 많은 상념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촛불집회, 반값등록금집회,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 이명박 정권에서 일어난 일들이 두서없이 스쳐 지나갔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2012년을 기다리자고 했는데, 바로 그 2012년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12월 대선으로 가는 뜨거운 여름날 오후,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모습에는 활기가 넘쳐 있었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운영위원장>

■ 김상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김종인

경향신문 이대근 편집국장으로부터 이번 기획에 인터뷰어로 참여할 것을 제안 받았을 때,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어느 모로 보나, 나는 이번 기획의 ‘인터뷰어’라기보다는 ‘인터뷰이’에 더 어울릴 사람이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의 망설임 후에 흔쾌히 수락했다. 이번 기획에서 인터뷰이로 예정된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 열 분을 만나보는 것이 지난 1년간의 안식년 공백을 가장 빨리 메우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가 김종인 박사다. 김 박사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고, 특히 경제민주화 내지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김 박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던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작년에 김 박사가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되었던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미국에서 그 소식을 접한 나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 박사는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론자’ 또는 ‘질서 자유주의자’다. 이러한 입장이 독일에서는 보수이지만, 한국에서는 진보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 박사가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이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되고 박근혜 후보의 선대위원장이 되는 것이,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변절과는 전혀 다른, 김 박사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모순이 없는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재벌개혁 운동이 진보·보수 모두로부터 비판받으면서 동시에 진보·보수 모두 과제가 되는 아이러니의 근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음 인터뷰이로 예정된 유종일 교수에 비한다면, 김종인 박사에게 보낸 나의 질문지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이었다. 출총제, 순환출자, 금산분리 등 정책 수단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김 박사가 별 관심이 없고(!) 따라서 잘 모르실 거라고(?) 예단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인터뷰 과정에서도 살짝 떠 보았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김 박사는 최근 논란이 되는 구체적인 정책수단들이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어느 수준으로 입법되고 어떻게 집행될지 이미 판단하고 계신 듯 했다.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기본 방향과 그 정치적 프로세스에 대한 큰 틀을 갖고 있다는 것이 김 박사의 최대 강점일 것이다. 지금 범야권에서는 이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정리 |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입력 : 2012-08-19 21:41:23수정 : 2012-08-20 10:47:07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2) 경제민주화 - 재벌개혁 유종일 KDI 교수

ㆍ“기업들은 잘나가는데 국민은 고달프다, 이게 잘못 아닌가”

민주통합당 재벌개혁 정책의 ‘원저자’로 불리는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54)는 “민주화시대 이후 새 시대정신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고 단언한다.

지난 19일 경향신문 ‘김호기·김상조의 시대정신 대논쟁’에서 유 교수는 이같이 밝힌 뒤 “산업화 이후 25년 동안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경제적으로는 시장화를 성취했고, 이제는 경제민주화라는 ‘제3 단계’를 구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재벌개혁은 재벌 기업들을 어렵게 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총수가 작은 지분으로 전제적인 지배를 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여야에 대해서도 평가했다. 새누리당에는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서도 당내 재벌개혁 반대 잡음이 여전해 진정성을 느끼기 힘들다”고 했다. 민주당에는 “4·11 총선 때도 공약으로 내놨지만 국민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김호기 연세대 교수(왼쪽부터)가 19일 서울 청계천의 전태일 열사 동상 앞에서 경제민주화 의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공정거래법·사회 감시 등 개혁은 일종의 패키지… 정책조정·우선순위 필요”


▲ 유종일 교수
“재벌개혁의 의미 기업 어렵게 하는 것 아닌 총수 막강권한 막는 것”


▲ 김상조 교수
“김승연 회장 판결 이후 한화 주가 안 떨어져… 총수가 발전 중심 아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시대정신은 한 사회가 지향할 가치의 집약이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시대정신은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민주화 이후 유 교수가 생각하는 시대정신은 뭔가.

유종일 교수(이하 유종일)=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다.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보완하고 함께 가는 관계다. 정치적 민주화는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한국 경제는 성장할 만큼 한 것 같고, 기업들은 다 잘나간다는데 국민들의 삶은 고달프다. 이게 잘못된 것 아닌가.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경제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 시스템을 고치고 복지 시스템으로 이를 밑받침하는 것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산업화 이후 25년 동안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하고, 경제적으로는 시장화를 했다. 이제는 ‘제3 단계’를 실행할 때다.

김호기=지난 25년간 절차적 민주화는 이뤄졌지만 사회·경제 민주화는 미완이다.

유종일=흔히 개발독재 시대에는 취직 걱정도 없었고, 양극화도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발독재는 그 자체로 정의롭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는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이라 폐기되는 게 마땅했다. 시장이 공정하게 작동하고, 경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필요한 규칙도 만들어줘야 하고, 낙오한 사람에게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주는 복지 시스템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고, 모든 것이 시장에만 맡겨져 왔다. 그러다 보니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에 괴리가 생긴 것이다. ‘민주주의는 피곤한 것이다’라는 인식에서 ‘7·4·7 공약’(7% 성장, 1인당 국민총생산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으로 대변되는 장밋빛 고도 성장을 다시 원했지만, 그것이 허구임이 드러나자 국민들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다지게 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하 김상조)=유 교수에게 ‘고해성사’ 시간을 드리고 싶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경제 가정교사로서, 올해 초 민주당 경제민주화 특위 위원장으로서 현재 상황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재벌을 개혁하겠다’던 노 대통령의 정책은 왜 실패한 것인가.

유종일=‘고해성사’는 한 줄로 하겠다. ‘책임 인정한다.’ 일정한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교정하겠다. 나에게 아픈 과거다. 시대적 한계, 정치세력의 한계, 재벌의 막강한 힘 등 이런 것들 때문에 재벌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그때는 갖춰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를 통한 통합을 강조했고, 권위주의를 타파하려 했다. 젊은 사람들과 감성적인 코드는 맞았지만 그 세력 자체가 정책 정당이 되지 못했다. 우리 정당은 어떤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기보다는 더 많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편의주의적으로 모인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한계가 있었다. 열린우리당이 그랬다.

김상조=민주당이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새누리당에 주도권을 뺏기고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종일=4·11 총선 때에도 민주당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정책의 의미를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반MB(이명박)’에만 집중했다. 국민이 원하는 건 지금 내 삶을 바꾸는 것인데, 거기에 더 호소력 있게 다가가는 게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새누리당과 전선을 분명히 했어야 하는데 실패한 것 아닌가 싶다.

김호기=보수정당은 세력 재편과 의제 선점으로 위기를 돌파해 왔다.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김종인 박사(전 박 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로 상징된다. 박근혜 후보와 김 박사의 재벌개혁론은 어떻게 평가하나.

유종일=김 박사가 재벌개혁을 일정 부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진정성도 있다. 하지만 박 후보와 새누리당에서 나오는 잡음이 많다. 야당의 의제를 먼저 치고 나가서 이슈를 선점한 건 기민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김 박사를 박 후보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모셔가놓고 며칠 있다 삼성과 전국경제인연합회 핵심인사였던 재벌 출신 현명관씨를 선대위의 핵심으로 영입했다. 그렇게 잡음이 많으면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선의로 봐주고 싶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선 믿기 어렵다.

김호기=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실현 가능하다고는 생각하나.

유종일=재벌개혁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안되는 일인 데다 반발도 있고 해서 쉽지 않다. 재벌의 막강한 힘에 맞서려면 그만큼 힘이 있어야 한다. 정책정당의 면모가 약하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선 노동조합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박 후보와 김 박사가 생각한 것은 ‘권력을 갖고 재벌을 좀 손 봐주고, 법을 좀 바꾸는 식’이면 되는 줄 아는 것 같다. 의심을 푸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여야가 경제민주화 특위를 꾸려서 중요한 법안들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된다.

김상조=지난해 출자총액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재벌세 도입 등 강한 정책을 산발적으로 내놓는다고 재벌개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유 교수에게 우려를 전달한 것이 기억난다. 초강력 정책들만 도입하면 재벌개혁이 이뤄진다고 보나.

유종일=재벌 독식경제의 폐해가 굉장히 심각하다. 경기가 괜찮다고 할 때도 최근 수년간 통계를 보면 기업 소득은 20~30%씩 매년 증가하고, 가계 소득은 2~3%씩 증가한다. 물가는 오른다. 그러다보니 가계 부채만 늘어나는 상황이 됐다. 국민은 ‘재벌 잘되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길이 아니다’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새로운 규제 철학과 원칙을 다시 디자인하기보다는 급박하게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엔 재벌개혁이라는 것이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로 인식됐고, 그래서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도입했다. 성과는 있었지만 경제력 집중은 막지 못했다. 총수의 봉건적 지배구조도 상당 부분 온존하고 있다. 이런 폐해를 먼저 빨리 줄여나가야 한다.

김호기=재벌개혁은 일종의 패키지로 구성돼 있는 것 같다. 공정거래법 등의 법 개정, 기업집단법 등의 법 제정, 엄격한 법 집행, 시민사회의 감시 강화가 그것이다. 재벌개혁의 전략적 로드맵은 어떻게 해야 하나.

유종일=어려운 질문이다. 국회에도 ‘대선까지 기다리지 말고 하라’고 했다. ‘출세하고 나면 좋은 일 할게’ 하는 사람은 출세하면 안 하더라. 정말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법안 발의하고 국회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골목상권을 비롯해 서민경제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비상상황이다. 국민은 재벌개혁에 대해 ‘당장 먹고살기 힘든데 그걸 꼭 지금 해야 하느냐’라고 말할 수 있다. 공감대를 강화해나간다는 점에서도 이런 것이 우선됐으면 좋겠다.

김상조=다양한 정책들을 일거에 도입하는 식으로 가면 전경련 등 기득권의 반발은 물론이거니와 상당수 유권자조차도 ‘경제가 어려운데 웬 개혁이냐’ 할 수도 있는데….

유종일=많은 국민도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이해는 하고 있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것이다. 그래서 민생경제 보호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한꺼번에 하려면 비용이 클 수밖에 없으니까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다만 유예기간을 두든지, 숨을 돌려가면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재벌개혁을 한다는 게 재벌 계열사들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다.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전제적인 지배를 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기업이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김상조=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판결 이후 한화 계열사 주가를 보니 거의 안 떨어졌더라. 국민도 ‘신과 같은 총수가 그룹과 계열사 발전에 필수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요소’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김호기=재벌개혁과 연관해 유력한 두 담론이 장하준 교수 등의 ‘사회적 대타협론’과 김상조 교수 등의 ‘재벌개혁 우선론’이다. 중요한 건 타협에 참여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공정성이다. (재벌이)공정하지 못한 주체라면, 먼저 개혁을 이룬 다음에 타협하는 게 순서이지 않을까.

유종일=타협은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돼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힘 있는 쪽이 왜 타협을 하겠는가. 타협을 안 하면 나에게도 큰 손해다 할 정도로 힘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 최소한 공감대가 있어야 타협도 이뤄지는데, (기업들은) 경제민주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나. 그런 상태에서는 타협이 쉽지 않다. 2단계 타협을 위해서라도 1단계에서 개혁을 해야 한다. 노사관계도 힘의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에 타협이 잘 안되는 것이다. 장 교수가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표현을 쓴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당장 재벌을 해체하자는 게 아니라 과도한 부분을 억제하자는 것이다. 재산 해외도피 액수 순위가 한국이 세계 3위라는 말을 들었다. 엄청난 돈이 해외 재산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이런 것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김호기=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최근 펴낸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을 읽어 봤나. 그 생각의 요체는 재벌 확장과 시장 왜곡을 바로잡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봤나.

유종일=안 원장 역시 민주당의 정책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재벌개혁이 왜 필요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정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고민한 분은 아니어서 불공정 행태들이 발생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접근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직 선거캠프를 차린 것도 아니고 공약을 내놓은 것도 아니라 그냥 생각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괜찮은 것 같다. 대선 나오는 것으로 결심을 한다면 김상조 교수를 포함해 진짜 정책 전문가들한테 조언도 듣고 공부도 하고 해서 체계적으로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김상조=안 원장은 ‘안랩을 만들 때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했고, 주주의 이익만 추구하는 주주 자본주의가 아니라 종업원 등 공동체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멋진 말씀이지만 대통령으로서 마주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종일=정책을 고민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럴 것이다. 정책은 ‘내가 기업을 해봤으니 경제를 알아’ 하면 안된다. 안 원장은 똑똑하니까, 자기 경험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우를 범하진 않을 것 같다.

김상조=범야권이 승리한다면, 유 교수가 생각하는 경제 개혁치를 100이라 한다면 다음 정권 5년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까.

유종일=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는가. 시작을 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라는 사상 초유의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살리지 못했고, 이제 또 기회가 온 것이다. 다음 5년간 100% 중 60~70%를 해야 한다.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 더 연구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원하는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게 혜택이 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여든 야든 간에 경제민주화 동맹이 필요하다. 비전과 정책을 연합해 서로 힘을 보태야 한다. 무엇보다 어떻게 경제를 활성화시키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지 고민해야 한다.

■ 유종일 “국민소득 2만5000달러라는데
왜 살기가 힘든지, 이번 선거서 답과 비전 줘야”


19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와 김호기·김상조 교수는 대담을 위해 만나자마자 상념에 젖었다. “그깟 돈이 뭐라고. 사람이 돈 때문에 비참해져야 하냐.” 유 교수가 먼저 말했다. 김호기·김상조 교수도 “아직도 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서울 종로5가 청계천 변 ‘전태일다리’에 서서 전태일 열사의 동상을 바라보면서다.

유 교수는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이 자신을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77학번인 유 교수는 청계천 주변에서 보낸 우울한 대학 시절을 더듬었다. 당시엔 유신 독재 막바지였다. 전 열사 동생 전태삼씨와 ‘청계피복’ 노조 관계자들과 함께 제일교회를 다니다가 단식농성했던 일, 경찰에 쫓겨다니며 도망다닌 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전 열사의) 동상을 보니까 대학 시절 그의 글을 접하고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며 “결국 전 열사 같은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게 경제민주화”라고 말했다.

같은 시대에 대학 생활을 한 두 교수도 화답했다. 대담 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79학번 김호기 교수는 “전 열사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 간절한 소망이 민주화 시대를 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4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소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81학번인 김상조 교수도 “최근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위기”라고 했다.

세 교수는 ‘인간다운 삶’이 곧 경제민주화의 목표이지만 이를 위해 재벌개혁 못지않게 노동 문제 해결과 보편적 복지 정책들이 함께 가야 한다는 점에서 의견을 함께했다.

대담은 자연스럽게 대선 얘기로 흘러갔다. 김호기 교수가 “이번 대선도 경제가 화두가 되는 것 같다”고 하자, 유 교수는 “국민이 가장 원하는 것은 우리가 국민소득 2만5000달러라고는 하는데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 것인지에 답을 주고 현실을 바꾸는 비전을 주는 선거 아니겠냐”고 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유종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이채로운 경제학자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미국에 유학한 아카데미 경제학 교수들이 대체로 보수적 성향을 보이지만 유 교수는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다. 그렇다고 유 교수를 마르크스주의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정치경제학자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그는 홍종학 교수(현 민주당 의원), 김상조 교수와 함께 케인스주의에 가까운데, 시장의 공공성 제고와 국가 개입의 타당성을 일관되게 강조해 왔다.

둘째 유 교수는 학문 연구와 정책 프로그램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실천적 경제학자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에서 가장 정치한 학문 중 하나이며, 따라서 엄격한 학문적 훈련을 요구한다. 유 교수의 장점은 이런 학문적 훈련을 충실히 받았을 뿐 아니라 이에 기반한 정책 생산에도 작지 않게 기여해왔다는 데 있다. 민주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그가 생산하거나 기여한 정책 아이디어는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정책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김종인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경선 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에 이어 유 교수를‘대논쟁 시대정신’의 두 번째 인터뷰이로 초청해 토론했다. 재벌개혁 문제를 중심으로 경제민주화에 유 교수는 솔직하면서도 명료한 답변을 내놓았다.

재벌개혁의 필요성 및 로드맵, 재벌개혁과 사회적 타협의 관계 등에 대한 유 교수의 분석과 처방은 진보적 경제정책의 설득력있는 대안의 하나일 것이다. 학문과 정책의 경계에 서서 유 교수가 앞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해주길 바란다.

좌담에 앞서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동상을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유 교수는 유신의 막바지였던 1970년대 후반 우울한 대학 시절을 회고했다. 유 교수나 김상조 교수도 마찬가지겠지만, 전태일 동상 앞에 서면 마음 한쪽이 시려온다. 전태일이 분신한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과연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나아진 걸까. 경제민주화란 뭔가. 서민과 중산층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경제민주화일 것이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운영위원장>

■ 김상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유종일

솔직히 말해서, 내가 질문자가 되어 유종일 교수와 인터뷰한다는 게 너무 어색하다. 개인적으로는 존경하는 선배일 뿐만 아니라, 경제민주화 및 재벌개혁 측면에서는 학문적·실천적 동지이기 때문이다.

이 어색함을 벗어나기 위해 첫 질문부터 유 교수로서는 가장 아플 수밖에 없는 부분을 건드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서, 통합민주당의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으로서,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 고해성사부터 하시라”고. 몰라서 던진 질문이 아니다. 4·11 총선의 통합민주당 공천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이야기다.

유 교수가 고통받는 걸 지켜볼 때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68혁명 이후 세대가 정치지도자로 부상한 지 오래다.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에 정당 대표가 되고 행정수반이 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후반 또는 80년대 초반 학번이 이에 해당하고, 유 교수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왜, 우리의 이 세대는 과거 공통 경험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만들고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는 주역이 되지 못하고 사분오열하고 지리멸렬하는가.

유 교수만이 아니다.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이정희 등 진보통합당 전 공동대표 4인이 걷고 있는 가시밭길도 마찬가지다. 왜, 우리의 이 세대는 국민과 소통하고 유권자들을 설득하기는커녕, 적전분열하고 공도동망하는가.

인터뷰 과정에서 유 교수는 “개혁정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메신저도 중요하다”고 했다. 낡은 메신저가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맞다. 단, 그 메신저는 저 혼자 잘난 개인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공유하는 그룹의 멤버여야 한다. 서로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7080 세대들이 차이점보다는 공통의 자산에 더 주목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를 개척하는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태일 동상 앞에서 이 풀리지 않은 고민은 더욱 깊어 간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정리 |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정리 |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입력 : 2012-08-23 21:28:08수정 : 2012-08-24 09:48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3) 복지논쟁 -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

ㆍ“높은 복지뿐 아니라 높은 세금도 함께 논의하는 장 만들어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복지정책을 총괄 담당하고 있는 안종범 의원은 “실효성과 지속가능성, 재원조달 가능성이라는 3박자 복지를 구성해보자는 것이 박 후보 복지 구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의 사각지대 해소와 전달체계 개혁, 선제적이고 예방적 복지 시스템을 강조한 뒤 “국민행복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복지 수준과 세금 등에 관한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의 안종범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진행된 대담 동안 복지와 세금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세제·재정 전문가인 안 의원은 박 후보의 복지 확대와 재원 확보 공약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고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방법론만 들으면 이제 새누리당은 진정한 보수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정치 지도자라면 복지와 세금 문제에서 자신의 비전을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박 후보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보편과 선별을 유연하게 결합시키고 있는데, 문제는 진정성”이라면서 “(세금에 관한) 국민 대타협 기구를 제안한 것은 대선을 4개월 앞두고 증세 문제 거론을 피하려는 정치적 의도 아닌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안종범 의원(가운데)이 23일 연세대 김호기(오른쪽), 한성대 김상조(왼쪽) 교수와 복지 정책을 놓고 이야기를 하며 국회 본관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세금 대타협 기구 제안 부자 증세 회피로 비쳐… 진정성 있느냐가 문제”


▲ 안종범 의원
“MB 복지, 구체성 결여… 박근혜 ‘맞춤형 복지’는 실효성·재원조달 등 초점”


▲ 김상조 교수
“전경련 등 기득권층 반발 추상적 이데올로기 기반… 역선전에 잘 대응해야”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보수세력이 선진화 담론을 포기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세운 것은 뜻밖이다. 안종범 의원이 생각하는 복지국가란 무엇인가. 새누리당이 이런 변신을 하게 된 이유는 뭔가.

안종범 의원(이하 안종범)=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진보의 것만도 아니고 보수의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이분법에서 탈피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헌법에 담은 것도 보수정권 때였다. 꼭 어느 정권이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식으로 재단하면 오히려 경제민주화라는 중요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이념과 상관없이 경제민주화 본질을 국민 전체가 짚어봤으면 한다. 대부분 보수정권 때 중요한 복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개발됐다. 독일 비스마르크가 그랬고, 영국 처칠도 그랬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대통령 출범과 동시에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이 대거 도출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붕괴하면서, 당연히 나오게 될 담론이라고 생각했다. 큰 위기에 봉착해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꼭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인식했고 먼저 내세웠다. 정치적 이유보다 당시 경제·사회적 상황이 국민들에게 워낙 힘들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는 새누리당이 추구해야 한다는 나름대로 당위성이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하 김상조)=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수레의 두 바퀴다. 구체적인 정책에 들어가면 우선순위 측면에서 상호 충돌하는 부분도 있다.

안종범=두 개념이 상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에 갈 수 있다. 이견을 어떻게 조정할지는 현장에서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토론해보자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부자감세라는 말 하나를 갖고 많은 토론을 한다 치자. 부자감세에 찬성하면 보수고, 반대하면 진보로 여겨진다. 부자감세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구체적인 내용에는 큰 관심이 없다. ‘부자 개념 안에 무엇을 포함시키고, 어떤 방식으로 세금 매기는 것을 감세로 볼 것이냐’가 문제다. 이해가 상충된다는 논란과 다를 가능성이 있다.

김상조=이념을 벗어나서 현장에서 프로그램으로 논의하자는 데 120% 동의한다. 그럼에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기득권층의 반발은 아주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다. 이런 역선전에도 잘 대응해야 한다.

안종범=동의한다.

김호기=박근혜 대선 후보의 복지정책은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로 대표된다. 서유럽 중도좌파인 영국 노동당의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 정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의 ‘비전2030’과도 잇닿아 있다. 사회복지정책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비교한다면 어떤가.

안종범=노 정부가 내놓은 비전2030은 저도 그때 상당히 많이 비판했다. 분명히 사회투자적인 측면이 있었으나 실현가능성 측면에서 재정대책이 굉장히 취약했다. 아무리 좋은 복지 패러다임을 만든다 해도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안되면 무의미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능동적 복지로 이름을 바꿨지만 큰 복지국가 모형이 없는 상태에서 구체성이 결여됐다.

김상조=한국 사회 복지국가 담론은 무상급식을 계기로 촉발됐다. 이른바 ‘보편주의 대 선별주의’ 논쟁이 벌어졌다. 박 후보의 ‘생애 맞춤형 복지’에서는 보편주의 대 선별주의 문제를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안종범=무상급식 논쟁 자체가 복지국가 형성에 상당히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선별이냐, 보편이냐 논쟁을 이어가서는 안된다. 복지 수요는 생애주기별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출생, 보육, 교육, 취업, 노후 등 여러 가지 복지 수요에서 어떤 것은 보편으로, 어떤 것은 선별으로 가야 할지 수요가 다양하다. 보육에서 새누리당은 이미 보편으로 가야 마땅하다고 인정했으나, 실업이라면 보편이 될 수 없다. 문제는 보편이냐, 선별이냐가 아니라 새로운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만들고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이 적합하게 시행되는지 보자는 것이다. 이때 사각지대 해소가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하나는 거의 대부분 복지가 사후적 복지인데,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선제적이고 예방적 복지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실효성과 지속가능성, 재원조달 가능성이라는 3박자 복지를 구성해보자는 게 골자다.

김상조=어떤 사람은 보편으로 받는데 왜 나한테는 선별로 오느냐는 복지 수요자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매년 선거가 반복되는 우리나라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통제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안종범=진보 쪽에서는 모든 복지를 보편으로 하자고 하는데, 바로 (김상조 교수가) 염려하는 점 때문에라도 생애주기별로 구분짓고 접근하자는 것이다. ‘선별이냐, 보편이냐’ 나름대로 원칙을 갖고 가자는 것이다.

김호기=진보가 보편만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복지의 기조를 잔여적 선별에서 보편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반대하던 새누리당이 고교 무상교육을 공약으로 제시해 당혹스러웠다. 정말 추진할 생각이 있는 건가.

안종범=거듭난 새누리당과 박 후보는 지킬 약속만 하고,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저는 100% 믿고 있다. 진정성이 있다. 무상급식은 기본적으로 지방자치단체별로 판단하는 것이고, 고교 무상교육은 중앙정부가 기본 방향을 정하고 갈 수 있다. 지금 고교 무상교육이라는 것은 새누리당으로 새로 태어나면서 정강·정책, 국민과의 약속에 포함시켰다.

김호기=새누리당의 경우 국민 설득도 중요하지만 당내 설득도 중요하다. 새누리당에는 성장 우선론자 그룹이 여전하고, 안 의원 같은 성장·복지 균형 그룹이 있다. 한 정당 안에서 당내 긴장이 너무 큰 것 아닌가.

안종범=새누리당 내 성장론자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성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 지금 상황은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퍼지지 않아서 문제이다. 지금 성장해서 얻을 것을 생각해보면 과거에 비해서 거의 반도 안될 것이다. 복지 쪽에 더 필요성이 있다.

김상조=박근혜 후보가 세금 문제와 관련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야기했다. 정치 지도자라면 자신의 비전을 걸고 국민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복지와 세금 문제를 어떤 속도, 어느 수준으로 할지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안종범=리더십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처럼 지도자가 만들어서 주고 ‘이게 나쁘면 나를 선택하지 말아다오’보다 결정하는 과정도 중요하고 국민도 함께 참여해서 합의를 통해 만든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새로운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복지와 조세 부담을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이라고 합의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김상조=역시 어려운 문제를 빠져나가려는 논리라는 느낌이 든다. 민주통합당은 높은 복지, 높은 국민 부담을 말했다. 그러면 새누리당은 낮은 복지, 낮은 세금으로 천천히 하자는 비전을 제시해서 그것으로 선거 과정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게 맞지 않는가.

안종범=그동안 정부는 높은 복지만 이야기했다. 높은 세금을 이야기한 적 있나. 캠페인 과정에서 무책임한 포퓰리즘에만 따랐다. 박 후보가 저부담, 저복지를 선호한다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복지 수준과 세금(결정)은 국민이 지켜보는 과정을 거치겠다는 것이다.

김호기=일자리, 교육, 주거, 노후, 건강 등 5대 불안 해소를 위해 박 후보가 제시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의 로드맵을 어떻게 잡고 있는가.

안종범=가장 시급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박 후보가 발의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이 이뤄져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보장위원회를 가동하다 보면 복지 전달체계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일자리도 ‘몇만개 창출’ 이런 목표보다 청년 일자리 측면에서는 스펙을 초월한 취업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노후에는 암, 중풍, 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을 100%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겠다. 적어도 4대 중증질환을 100%로 하고, 이후 (포함시키는) 질환의 폭을 점점 넓혀가자는 것이다.

김상조=‘과거 보수진영은 진짜 보수였나’ 하는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안 의원의 점진적인 방법론을 들으면 이제 새누리당은 진정한 보수가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김호기=관건은 역시 재정이다. 증세 등 조세개혁 없이 과연 복지 강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부자증세, 투기과세, 탈세근절 등을 통해 복지재정을 과감히 확보해야 한다.

안종범=모든 것을 다 세금을 걷어서 하지는 못한다. 재원조달의 가장 좋은 방법은 100을 걷는다면 60%는 세출을 줄이고 40%는 세입을 늘리는 것이다. 세입 증대에 대해서는 우선 대주주의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 강화,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 금액을 낮추는 방안, 파생금융상품 거래과세 0.001% 등을 지난 총선 때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기에 탈세근절 등으로 세입을 더 늘릴 수 있다. 그래도 부족하면 추가적인 세입을 발굴해야 한다. 그 부분을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합의해보겠다는 것이다.

김호기=대선을 4개월 앞둔 시점인데 국민 대타협 기구를 만들어서 국민 의견을 들어보자는 것은 부자증세 문제를 회피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 아닌가.

안종범=우리는 세금 문제를 놓고 토론한 적이 없었다. 토론 자체가 국론 분열로 이어져서는 안되기 때문에 국민이 참여해 논의해보자는 것이다. 논의의 장을 연다는 차원에서 봐달라.

김상조=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위험 요소는 재정위기로 시작된 유럽 위기다. 재정위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안종범=철저하게 분석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남유럽 전체가 복지를 하다가 이렇게 됐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중요한 것은 복지와 재정은 항상 함께 보면서 계속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지와 재정을 같이 보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복지는 5년이 아니라 50년 정도 계획을 세우고 가야 한다. 바로 박 후보가 추진하는 국민행복추진위가 이 같은 합의 과정을 도입하자는 이유다.

김호기=복지국가를 시대정신으로 삼아 경쟁하기 위해선 대선이 어떻게 치러져야 한다고 보나.

안종범=후보들이 공약의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감을 갖고 내놨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참여하고 지켜보고 그걸 갖고 철저하게 평가하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대선 후유증이 작고, 대선 이후에도 안정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 박근혜 캠프의 복지·재정 정책 담당…
안종범 “세금문제, 조금만 믿고 기다려달라”


시대정신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새누리당 안종범 의원 휴대전화는 쉬지 않고 울렸다.

대담이 있던 지난 23일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대학 등록금 토론회에 참석해 반값 등록금 실현을 약속하고 재원 마련 방안도 짜여 있다고 말한 바로 그날이었다.

안 의원과 김호기·김상조 교수는 서로 잘 아는 사이다.

안 의원과 김호기 교수는 2010년 사회통합위원회에서 1년 가까이 위원으로 함께 활동했고, 김상조 교수와는 경제학계에서 자주 만나는 선후배 사이다.

이날 대담이 거의 세미나처럼 진행된 것은 평소 세 사람이 서로의 생각을 잘 아는 까닭이기도 했다.

두 교수가 안 의원에게 왜 정계로 갔느냐고 물었다.

안 의원은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논문을 써도 뭔가 아쉬움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이어 그는 “나름대로 정도를 걷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자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안 의원은 대담 내내 ‘신뢰’ ‘약속’ ‘실현가능성’을 강조했다. 박 후보의 말과 화법 그대로였다.

복지와 세금 문제에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언급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박 후보가 “국민행복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내부에서 복지 수준과 세금부담에 대해 합의하는 대로 하겠다”며 사회적 대타협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 안 의원은 “국민이 참여하는 논의의 장을 연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두 교수는 달랐다. 껄끄러운 증세 문제를 회피하려는 게 아니냐고 날선 비판을 던졌다.

김상조 교수는 “국민이 원하면 하겠다는 태도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원칙론 반복)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김호기 교수는 “국민 대타협이라는 점이 사회학자로서는 반갑지만, 대선 국면에서 (곤란한 질문을)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 의원은 세금 문제에서 구체적인 입장이 없다고 지적당하자, “조금만 믿어주고 참여해주시면 좋겠다. 한번 같이 참여해보지 않겠느냐”며 김호기·김상조 교수에게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참여를 권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 김상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안종범

내가 평소 농담처럼 (사실은 진지하게) 말하는 표현이 있다. “경제학자 역할은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빠지는 걸 막는 데 있다”고. 경제학은 합리성(Rationality)을 기초로 편익과 비용을 엄밀하게 계량하는 방법론 체계이기 때문에―진보·보수의 이념적 성향을 떠나―경제학자는 이 틀을 벗어나기 어렵고, 따라서 좋은 세상의 비전을 제시하는 상상력이 부족하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안종범 의원을 인터뷰하면서, 재정경제학자로서 장점과 한계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안 의원은 복지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재정적 제약조건을 강조했고, 선거 국면에서 포퓰리즘을 경계하면서 사각지대 해소와 전달 체계 효율화를 강조했다. 같은 경제학자로서 이런 안 의원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경제개혁연대가 참여연대의 한 사업부서로 있었을 때, 경제·경영학자 중심인 경제개혁센터와 사회복지학자 중심인 사회복지위원회 간에 접근 방법의 차이를 확인한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의원이 “복지수혜 수준과 비용부담 수준 간 균형을 위한 사회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박근혜 후보 선언을 열렬히 옹호했을 때, 새누리당이 사이비 보수에서 진정한 보수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원래 보수는 그래야 한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복지국가 담론이 우리 사회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은 ‘좋은 세상이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쁜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좀 더 적극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거 아닌가? 그렇다면, 상상력 결핍증이라는 직업병을 앓는 경제학자가 복지정책을 주도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이런 허전함이 메워지지 않는다면, 세금 문제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대타협론은 어려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논리라는 느낌이 든다.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의 논의 과정과 그 결론을 지켜보겠다.

■ 김호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안종범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복지국가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데에는 2010년 6월 지방선거 당시 벌어졌던 무상급식 논쟁의 영향이 크다. 이 논쟁은 무상급식 문제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중대한 문제제기가 담긴 한국 사회의 ‘미래 논쟁’이었다.

시대정신으로서의 복지국가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어느 사회이건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다음에 (사회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둘째, 우리 사회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사회 양극화를 지켜볼 때 복지국가 구축은 보수와 진보 이념적 차이를 넘어서는 중대한 규범적 지향이다.

복지국가 논쟁에서 먼저 초청한 이는 새누리당 안종범 위원이다. 안 의원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 입안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학 전공 교수 출신인 안 의원과는 2010년 우리 사회 주요 쟁점을 다룬 보수 대 진보 토론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미리 보낸 질문에 꼼꼼히 답변을 적어올 정도로 성실한 지식인이다.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를 성취하기 위해 요구되는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 전통적 복지의 강화와 적극적 복지의 모색이라는 이중적 과제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둘째, 재정정책과 복지정책의 지속가능한 균형이 요구된다. 여기에는 물론 우리가 이야기를 나눴듯이 복지 재정의 확충을 위한 조세정책 개혁이 전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대담을 나누기 전에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복지국가 구축에서 국회 입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시대정신의 구현은 세력과 이념을 초월하는 역사적 과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보수든 진보든, 생산적 토론과 합의를 통해 새로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앞장서주기를 바란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운영위원장>


<정리 |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입력 : 2012-08-26 21:26:15수정 : 2012-08-29 22:04:53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4) 복지국가논쟁 -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

ㆍ“부유층은 사회적 혜택 받았으니 부자부터 단계적 증세해야”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고리로 ‘일자리’를 꼽았다. 정권을 잡으면 가장 먼저 추진하고 싶은 정책도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 사회정책수석을 지낸 김 의원은 19대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김 의원은 “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 구도는 실상은 ‘친복지 대 반복지’ ”라며 “반값 등록금을 하려면 비리사학 문제부터 풀어야 하는데, 1년 넘게 장외투쟁을 하며 사학법 개정을 반대한 박근혜 후보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일자리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대기업 중심에서 중견·중소기업 중심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전통적 복지 강화와 일자리 창출 중심의 적극적 복지 모색이라는 이중 과제를 풀 한국적 복지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 사람의 대담은 지난 2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사옥에서 2시간 반 동안 한차례 휴식도 없이 진행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 장옥춘 할머니, 김호기 연세대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26일 서울 천연동 판잣집에 사는 장 할머니 집 앞마당에서 복지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외국의 사회정책 사례는 교과서 아닌 참고서일 뿐… 한국적 모델 만들어야”


▲ 김용익 의원
“박근혜의 맞춤형 복지 내용없이 얇고 단편적… 말로만 하는 복지다”


▲ 김상조 교수
“대기업 노동자 한국 8%, 스웨덴은 전체의 55%…‘낙수효과’는 해법 아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 = 김 의원은 사회복지운동을 주도해왔고 노무현 정부에서 사회정책수석을 지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시대정신이 복지국가로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 왜 그렇다고 보나.

김용익 의원(이하 김용익) = 국민의 삶이 너무 어렵고 불안해졌다. 중산층이 붕괴하고 빈곤 문제가 매우 심각해졌다. 높은 자살률과 생계형 범죄, 묻지마 폭력 등이 그런 사회적 문제를 상징한다. 사회 양극화와 고령화가 심화되는 중에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한국경제가 무방비 상태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 경제위기가 오면 빈곤층뿐 아니라 중산층 전체가 통째로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복지국가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은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몇년간 복지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서 많은 국민이 복지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김호기 =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김용익 =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활약 등으로 거의 모든 언론이 다 복지국가를 말하는 상황이 됐다. 정당들도 민주당부터 ‘보편적 복지’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이 민주당의 정강정책에 들어가게 됐다. 새누리당까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말하게 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하 김상조) =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는 동시에 추진해야 할 과제이면서도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조화시키는 민주당의 전략적 원칙과 방안은 무엇인가.

김용익 = 어느 하나만 집중적으로 푸는 것은 해결방식이 아니다. 차에 타이어를 끼울 때 나사를 하나씩 순차적으로 조이는 게 아니라 네 개의 나사를 반쯤씩 다 조여놓고 또 조이듯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도 균형있게 병행추진해야 한다. 고용과 임금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시장소득이 결정되고 고용 위에 복지제도가 만들어진다. 고용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사이의 핵심적인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 일자리 문제를 경제와 복지 개혁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좋은 일자리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인적자본을 축적해 그것을 경제로 순환시키는 방식으로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김상조 =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연결하는 것이 일자리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복지국가를 말할 때 스웨덴을 모델로 삼지만, 한국과 가장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은 고용구조다. 스웨덴은 500인 이상 대기업 취업자가 전체의 55%, 한국은 취업자 중 8%밖에 안된다. 대기업을 통한 낙수효과는 이제 문제 해결방법이 아니다.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핵심이다.

김용익 = 동의한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극단적으로 비교가 된다. 덴마크는 중소기업 위주의 고용구조이지만 생산성이 높다. 본받을 점이 많다.

김호기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서 <진보의 미래>를 보면 복지정책을 적극 추진하지 않은 것을 “그냥 밑줄 긋고 해오라고 경제 관료들에게 지시하면 될 것을 설득하고 토론하느라 시간 다 허비했다”며 아쉬워했다. 노무현 정부의 복지정책을 자체 평가한다면.

김용익 = 노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마을로 간 지 얼마 안돼 전직 참모들과 있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가슴이 저릿했다. 변명 같긴 하지만 노무현 정부 복지 성과가 그렇게 낮은 것은 아니다. 2004년 굉장히 큰 폭으로 복지 예산이 늘고 경제 예산이 줄었다. 사회 예산이 경제 예산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보육과 육아교육 예산은 참여정부 5년 동안 900% 늘었다. 노인요양보험이나 기초노령연금도 새로 도입했고, 악화되던 양극화도 참여정부 마지막 2년 정도에서는 속도가 둔화했다.

김호기 =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과 유사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 정책은 어떻게 보는가.

김용익 = 박근혜 후보가 복지 문제에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 공약 내용을 분석해보면 내용이 없다. 얇고 단편적이다. ‘레토릭 복지(말로만 하는 복지)’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하는데, 약속을 다 지켜도 워낙 내용이 없어서 복지부문에서 별로 나아지는 것은 없을 것으로 본다.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지 모르나 자본과 노동관계를 새누리당이나 박 후보가 바꿔놓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사학법 개정을 1년 동안 목숨걸고 반대해 무산시킨 사람이 교육이나 보건·보육의 공공성 확대를 할 수 있을까. 인프라 개혁 없이 복지 프로그램을 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격이다. 따라할 수는 있어도 정신을 가져가긴 힘들다.

김상조 = 새누리당 복지는 여전히 (위에서 아래로 지시해 이뤄지는) 톱다운 방식이다. 물론 정책이라는 것이 리더가 밑줄 긋고 지시해야 되는 측면도 있다. 반면 복지정책은 수많은 이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투명하고도 공정한 이해관계의 조정 과정이 필수적일 것이다.

김용익 = 정부가 이해 당사자들을 맨 처음 단계에서부터 참여시켜 정책을 함께 입안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처음부터 좋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 방안 자체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유발한다. 부안 핵 폐기장과 제주 강정마을 등의 문제가 그런 경우다. 중앙정부는 재정을 충분히 지원해주고 구체적 프로그램은 지방정부가 지역특성에 맞게 구상하도록 지방분권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해 크게 문제가 된 사례가 0~2세 보육이다. 재원 조달계획은 전혀 마련해놓지 않은 채 지방정부에 실시하라고 하면 할 수 없게 된다.

김호기 = 민주당의 복지정책은 ‘보편적 복지’로 알려져 있다. 사회정책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선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생산적으로 결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용익 = 기본적으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대립적 구도는 잘못 설정된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복지 프로그램을 다 모았을 때 국민 개개인의 복지욕구를 보편적으로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이 일어나는 것의 실체는 친복지 대 반복지 논쟁의 대리전이다. 지금은 복지를 하지 말자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면서 선별적 복지를 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게 반복지이자 신자유주의적 복지다. 그럴듯한 말로 복지를 ‘잔여적 복지시책’에 국한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복지정책은 기본적으로 복지와 경제가 선순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폐렴에 걸려서 항생제를 하루 1g을 써야 하는데 새누리당 방식은 하루에 250㎎씩 쓰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성만 생기지 병이 낫지 않는다.

김상조 = 정치권은 복지 혜택은 최대한 과장하면서 그 비용은 최대한 애매모호하게 처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 ‘제가’ ‘임기 내’ ‘확실히’ ‘분명히’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실제로 고지서에 찍히는 등록금 액수를 반으로 깎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당 복지정책에는 이런 문제가 없나.

김용익 = 박 후보가 반값 등록금을 하겠다면 사학법 개정부터 먼저 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 시행의 가장 큰 고민은 재원이 아니다. 비리사학에까지 모두 지원금을 줘야 하느냐다. 비리 사학을 지원하지 않으면 그 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문제다. 박 후보가 그 문제를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재원 확보에 대해서는 저도 걱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34조원 조달이 가능하다고 봤는데 이 예산으로 대선 공약의 수용이 가능한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

김호기 = 박정희 정부는 의료보험을, 김대중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마련했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의료개혁을 이뤘고, 일본 민주당 정부는 아동수당을 도입했다. 이번에 진보개혁 세력이 집권하면 어떤 정책을 제일 먼저 추진해야 하는가.

김용익 =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게 1순위다. 사회문제를 동시에 푸는 만병통치약까지는 아니어도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혁신도 차기 정부에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고등교육 재정에 수조원을 투입해서라도 혁신하려는 대학은 전폭 지원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대학은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 지방대학을 육성하고 지방으로 이전한 정부기관과 공기업 등에 지역 출신 채용을 의무화하거나 유인책을 써서 지방 학교 출신들이 그 지방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고용보험을 꼭 개혁하고 싶다. 실업수당과 구조를 너그럽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 방식은 해고를 자유롭게 해서 고용 유연화로 노동력을 강제로 이동시키고 있다. 자발적 이동을 촉진해서 인적자원이 적재적소에 배치되도록 해야 한다.

김상조 =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 사례를 보면 복지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노동 및 기업 정책과 체계적으로 상호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민주당 구상은 어느 나라 모델에 가까운가.

김용익 = 정책을 만들 때 한 나라만을 모델로 삼는 건 좋은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양극화, 고령화, 세계화 문제를 놓고 고민하면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다보면 북유럽 모델과 유사해지는 것은 있다.

김호기 = 외국 사례는 교과서가 아니라 참고서가 돼야 한다. 우리 사회정책은 전통적 복지 강화와 일자리 창출 중심의 적극적 복지 모색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영·미식 자유시장 경제가 아니라 대륙식 조정시장 경제와 결합된 사회정책의 한국적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김용익 = 현재 유럽과 한국은 발전단계가 다르다. 반세기 전인 50~60년 전 북유럽 여러 나라가 처해 있던 역사적 상황과 해결방식이 훨씬 더 참고가 된다. 스웨덴은 1930년대에 저출산을 걱정했다. 보편적 복지를 시작한 계기가 저출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의 의견이 일치한다.

김호기 = 복지국가 강화를 위해선 재정 증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이 있다.

김용익 = 증세는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 먼저 부자증세를 할 수밖에 없다. 한국 부유층은 독자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정부 지원과 부동산 수입으로 형성됐다. 사회적인 수혜를 받은 것이다. 한국이야말로 부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부자증세를 말해야 한다. 부자증세가 원활히 이뤄지면 국민과 괴리된 부유층이 국가 공동체 속으로 들어오는 효과도 있다.

김상조 = 최근 새누리당 안종범 의원을 인터뷰했는데 재정 경제학자 출신답게 복지정책에 대한 재정 측면의 제약을 강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반면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재정적 제약을 덜 고려한다는 인상을 준다.

김용익 = 민주당도 재정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그 때문에 잠이 안 올 지경이다. 민주당 복지정책은 새누리당과 강도에서 크게 차이나기 때문에 재정 관련 공격은 민주당을 향하게 돼있다. 한국이 민주당이 제시하는 복지재정을 조달할 능력이 없는 나라인가. 그렇지 않다. 중산층이 어렵고 저소득층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부가 부유층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국부 총량은 복지개혁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다.

■ 판자촌 할머니 “창피하게 뭘 달라 해”…
‘시혜와 권리 사이’ 복지의 큰 간극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사는 거지. 창피스럽게 뭘 해달라고 해?”

26일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근처 판자촌에서 만난 장옥춘 할머니(91)는 인터뷰 도중 이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20년 전 인근 옥천동이 재개발되며 쫓겨나다시피 한 장 할머니는 “지금 사는 판자촌이 재개발되면 또 어디론가 가서 살면 된다”고 했다.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철거된 집 앞 공터에 할머니는 호박이며 상추, 고추 등을 심었다. 임시로 막아놓은 지붕과 문은 미풍에도 덜컹거렸다. 태풍 피해가 우려되지만 “이런 곳에 사니 풀도 많이 보고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

시대정신 대논쟁 네 번째 대담에 앞서 김호기·김상조 교수와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 세 사람은 주제에 맞춰 천연동 노인종합복지관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복지관 외관은 훌륭했지만 일요일이어선지 문이 닫혀 있었다. 몇몇 노인은 호출 버튼을 누르고 한참 기다린 뒤 들어갈 수 있었다. 장 할머니는 이 복지관 고개 뒤쪽 판자촌에 살고 있다. 의대 시절 주말마다 판자촌 봉사활동을 다녔다는 김 의원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할머니를 만나 손을 잡았다. 두 김 교수는 “어려운 점이 있으면 오늘 다 말씀하시라”고 했다. 장 할머니의 답은 “괜찮다”뿐이었다. “춥고 비오면 안 돌아다니면 돼. 없이 사는 게 뭐 자랑이라고 불평을 해”라는 것이다.

멀리 사는 자녀들이 있다는 장 할머니 말에 김 의원이 “기초생활수급도 못 받으시겠네요”라고 물었다. 장 할머니는 “자식들이 다 보태줘. 나도 따로 사는 게 편해”라고 했다. 안방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었다. 김 의원은 “힘들어도 자식이나 나라를 원망하지 않는 시민의 전형적인 반응”이라고 했다.

가난한 사람조차 복지를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나라에서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는 나라에 복지국가 건설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대담자들의 고민이 맞닿은 지점이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김용익

김용익 의원에 대해 후기를 쓰려고 하니 다소 멋쩍기도 하고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의원님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내게는 더 편안한 김용익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였다. 그 때 선생님은 노무현 후보의 사회정책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예방의학을 전공한 의사였지만, 선생님은 보건정책을 포함한 사회정책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2003년 봄 참여정부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선생님은 사회분과 분과장이었고, 나는 팀장이었다. 당시 적지 않은 시간을 선생님과 함께 보냈는데, 선생님이 보여준 학문적, 실천적 성실함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참여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사회정책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과를 낼 수 있던 것은 선생님이 사회정책수석을 맡아 기울였던 노력에 크게 힘입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처럼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생각해 본 것은 시대정신으로서 복지국가가 갖는 역사적 의미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넘어서 이제 복지국가 시대로 가야 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문제는 이런 시대사적 과제를 누가, 어떻게 담당하느냐의 규범적 방향성이다. 그 방향의 핵심이 국가와 시민사회가 공동 주체가 되어 생산적 거버넌스를 통해 복지국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데 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지난 일요일 대담에 앞서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금화아파트가 있는 달동네에서 사진을 찍었다. 가까이 북아현동 풍경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고, 멀리는 여의도 빌딩들이 눈에 들어왔다. 양손에 모두 지팡이를 짚은,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복지국가가 왜 시대정신이 돼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이야기를 마치고 수박이라도 한 덩이 사 드시라고 선생님은 할머니 손에 5만 원짜리를 쥐어 주셨다. 신문사로 오는 차에 올라탄 후에 나는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운영위원장>

■ 김상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김용익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 날이었다. 약속 장소인 서울 서대문구 노인종합복지관 앞에 도착했을 때, 이런 훌륭한 복지시설이 우리나라에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10여 년 전 유럽에 처음 갔을 때 마냥 부러워했던 기억과 대비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그 복지관의 문이 잠겨 있었다. 하드웨어는 발전했으나, 소프트웨어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한국 복지 현실의 양면성을 확인했다.

베테랑 사진기자 조언에 따라 사진 촬영 장소를 옮겼다. 복지관 뒤쪽의 언덕에 올라서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오두막의 달동네와 그 아래 초현대식 빌딩 숲이 한 눈에 들어 왔다. 복지국가가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이유를, 양극화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원근 대비 구도였다.

김용익 의원과의 대담은 유쾌했다. “동의한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특히 어떤 복지국가 모델을 벤치마킹하는가라는 질문에 “현재의 북유럽 국가보다는 50~60년 전의 북유럽 국가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이 더 많다”고 그가 답했을 때 나는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물론 세부내용 하나하나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가 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수석 자리에 있었을 때는 아쉬움도 많았고, 지금 민주통합당 소속의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는 안타까움도 많았다. 그 역시 나의 재벌개혁 운동에 대해 코멘트하고 싶은 게 많을 것이다. 그래서, 전공 분야나 활동 영역이 다르더라도, 처참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그 현실 속에 뛰어든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 서로 공감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시대정신이란, 그 개개인의 고민이 우리 모두의 열망이 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녹치 않다. 달동네 허리 꼬부러진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는 그 순간에도 나의 신경은 자꾸 종아리를 깨무는 모기를 향했다. 아무리 공감해도 내가 그 할머니가 될 수는 없다. 공감을 제도로 물질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개혁이 어렵고, 그럼에도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정리 |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입력 : 2012-08-29 22:12:58수정 : 2012-08-29 23:06:53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5) 양극화 해소 -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ㆍ“내가 만든 줄·푸·세 포기 안 했다… 세금 줄이는 것은 포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인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양극화 원인으로 성장과 고용의 불일치, 자산소득의 불평등, 부패를 들었다.

김 교수는 양극화 해소의 대안으로 박 후보가 제시한 경제민주화에 대해 “국민 입장에서는 성장만으로 안된다는 것이다. 성장과 분배를 조화롭게 보자는 취지에서 경제민주화 개념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박 후보의 공약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운다)를 입안한 그는 “복지문제가 대두된 만큼 세금 줄이는 것은 포기하고, 규제 완화는 기회균등을 위해 유지하며, 법질서는 세우겠다”고 밝혔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양극화의 한 해법으로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균형발전이 요구된다”며 중견기업 육성을 제안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양극화 해소는 정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집행 과정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소프트웨어, 의사 결정자의 자세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대담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의 국가미래연구원에서 진행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오른쪽부터)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의 재래시장인 공덕시장에서 사회 양극화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 김호기 교수
“박근혜 후보의 ‘줄·푸·세’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형… 양극화 문제의 주범”


▲ 김광두 원장
“결국 신뢰에 관한 문제… ‘정부 3.0’ 투명성 확보, 시민·노조에 정책 공개”


▲ 김상조 교수
“정부의 시혜적 조치 지속가능 못한 실패 모델… 수평 협력체제로 가야”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대선의 시대정신이 경제민주화, 복지, 사회통합으로 모아지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하 김광두)=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보면 공정과 양극화 해소, 이 둘을 고민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본다.

김호기=박 후보가 한나라당 때의 선진화 담론을 포기하고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로 옮겨간 것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광두=선진화나 경제민주화나 지향하는 바는 비슷하다. 한국의 경제, 문화, 사회를 선진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수준으로 가자는 것이다. 다만 선진화가 갖는 이미지는 성장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성장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장과 분배를 조화롭게 보자는 경제민주화 개념을 잡은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하 김상조)=개발도상국 중 한국은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예외적인 나라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김광두=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대로 생각하면 된다. 잘사는 사람은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는 더 못살고 대기업은 잘되는데 중소기업은 이게 뭐냐는 것이다. 양극화는 전 세계적인 고민이다. 기술진보와 세계화의 영향이 그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이 유독 심한 이유는 수출주도형 성장으로 성장과 고용이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산소득의 불균등도 심하고 부패도 문제다.

김호기=1990년대 중반 <세계화의 덫>이란 책에서 ‘20 대 80’이라는 사회 테제가 제시됐는데 지난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는 ‘1 대 99%’ 사회를 내걸었다. 영미형 ‘자유시장 경제’ 국가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대륙형 ‘조정시장 경제’를 추진한 나라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양극화를 가져온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아닌가.

김광두=무역 자유화나 직접 투자 자유화는 양극화와 관련이 없다. 양극화는 금융시장 자유화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여러 나라가 국제 투기자금인 ‘핫머니’ 규제를 들고 나왔다. 다자간 모임에서 협의해야 하는데 금융강국들이 이 모임을 주도한다. 국내 시장에 해외 자금이 들어오고 나갈 때 ‘토빈세’(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를 가지고 통화위기 등 폐해를 완화해볼 수 있는데 많은 나라가 동시에 실시하지 않으면 자본 유출 위험이 있다.

김호기=신자유주의 전형이 2007년 박근혜 후보의 ‘줄·푸·세’다. 경제민주화로 패러다임 변화를 제시했는데 줄·푸·세는 완전히 포기했나.

김광두=줄·푸·세는 내가 만든 것인데, 포기 안 했다(웃음). 세금의 경우 노무현 정부의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 성장률보다 낮았기 때문에 법인세를 감면해 기업 투자를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규제는 유연성에 관한 것으로, 국가 간 경쟁에서 구조조정이 빨리 일어나야 이길 수 있다. 지금은 어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가 관심사항으로 떠올랐다. 박 후보는 2009년 스탠퍼드 대학 강연에서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 말하는 경제민주화하고 내용이 거의 같다. 우리는 세금을 줄이는 것은 포기했다. 복지가 중요하게 대두됐기 때문에 세금을 줄일 수 없고, 조금 늘려야 할 것이다. 규제를 푸는 것은 새로 기회를 갖는 경제주체들이 생기기 때문에 기회균등을 위해 좋다. 법질서를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신자유주의랑 무슨 상관이 있나.

김상조=원칙은 변함 없는데 상황에 따라 대응을 유연하게 해나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 성장률이 세계 평균보다 낮아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는 판단이 정확했느냐는 의문이 든다.

김광두=노무현정부의 경제 성장률이 나쁘지 않았지만 세계 평균 성장률보다 낮았다. 그렇다면 다른 측면,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한 분배라도 좋아졌어야 했다. 그런데 분배도 나빠졌다.

김상조=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문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들이 발전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지 않고서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김광두=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을 구분해 봐야 한다. 중소기업은 하도급 관계가 주로 문제가 된다. 지금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영세기업이고 그 중에서도 소매업과 음식업이다. 과밀업종이다. 대기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성장 전략을 추구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성장 구조 자체가 중소기업이 설 자리가 약한 구조다. 윈윈 전략으로 가야 한다. 대기업을 혼내 중소기업을 잘되게 하거나 소매업과 음식점을 살리기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하지 말라는 식의 방법보다 중소기업과 영세업자를 지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금융과 세제 쪽에서 지원해야 하는데 기업은행이 설립 취지에 맞게 중소기업은행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전담하는 금융 인프라 부문도 구축해야 한다.

김호기=산업체제 생태계의 관점에서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균형발전이 요구된다. 중견기업 육성도 중요하다.

김광두=시장을 무시하고 특정 기업집단을 키워주는 것은 안된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견제나 외국기업의 덤핑으로 죽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역할이 중요하다. 자영업자도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올려줘야 한다. 정부는 금융, 세제, 도시계획상의 지원을 해야 하고, 재벌이 개입하면 막아줘야 한다.

김상조=시혜적 조치는 지속 가능성이 없음을 지난 30년간 중소기업 정책의 실패가 보여줬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대책의 핵심은 이들이 공동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수평적인 협력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인프라 구축이 아닌가.

김광두=그 전제조건이 신뢰다. 자기들끼리 믿어야 한다. 정부가 그들이 서로 협조할 수 있도록 신뢰관계를 이끌어내는 데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부터 믿게 해야 한다.

김호기=경제적 양극화에선 산업, 소득, 노동시장이 핵심 이슈다. 한국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각하다. 박 후보 해법은 무엇인가.

김광두=새누리당 총선 공약이 있다. 상시적 업무는 정규직화하고, 사내 도급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급업체가 바뀌더라도 고용을 승계하는 것 등이다. 같이 고민할 것은 기존 노조의 양보 정신이다. 기존 노조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조금 양보해야 한다. 초과수당이 줄어드는 것은 수용해줘야 하는데 현재 풍토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더라도 기존 임금 수준을 유지해달라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방향은 좋지만 동일노동을 무엇으로 정의하냐는 문제가 있다. 차별 시정도 차별 개념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최저임금 상향은 생존권 문제로, 취지에 동의한다.

김상조=노·사·정 3자관계로 노동시장 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한 박 후보 전략이 있나.

김광두=그것을 공통적으로 꿰뚫어가면서 해결할 수 있는 게 교육훈련이다. 기업이 교육훈련 인력풀을 현재보다 5%만 늘리면 좋겠다. 일자리가 생기고 정년도 62세로 늘려줄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지만 노동 생산성을 현저하게 올려주기 때문에 기업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다.

김호기=청년실업도 문제다. 고용 없는 성장에다 높은 대학 진학률, 구인·구직자 간의 다른 눈높이에 따른 인력수급 불인치인 ‘잡 미스매치’가 중요한 요인이다.

김광두=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박 후보가 첫 공약으로 내세운 행정 개혁인 ‘정부 3.0’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쪽 투자가 필요한데 정부가 이를 유도해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김호기=교육·주거·소비 영역의 사회·문화적 양극화도 심각하다.

김광두=교육 양극화는 공교육 수준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공교육 시설을 현대화해야 한다. 경제가 하반기부터 나빠질 텐데 경기 극복 방안으로도 공교육 시설 현대화가 의미가 있다. 학생들이 사교육 교사를 공교육 교사보다 더 좋다고 평가하는 상황을 바꾸려면 교사에 대한 대우나 교권 확립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문화시설은 지역균형 발전 차원의 투자 접근이 있어야 한다.

김상조=양극화 해소는 정책 내용도 중요하지만 집행 과정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소프트웨어, 의사 결정자의 자세도 중요하다.

김광두=결국 신뢰 문제다. 갈등이 생겨도 당사자 간 신뢰나 중재자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정부가 신뢰를 못 얻었다. 그래서 박 후보가 내세운 게 ‘정부 3.0’이다. 행정 정보를 컴퓨터로 민간이 볼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보를 투명하게 해 신뢰 문화가 형성돼야 갈등이 해결된다.

김상조=줄·푸·세에서 법치주의를 너무 기계적으로 해석한 듯하다. 법치를 적용할 때 기득권 세력에게는 더 엄중하게 해야 하고, 약자들이 마지막 수단을 통해 호소하는 데에는 사회가 아량을 보일 필요도 있다.

김광두=사회적 현상을 개별 주체별로 고려하면 법치가 안된다. 법은 획일적 기준이다. 집행자들이 부자한테 유리하게 법을 적용하고, 약자한테 불리하게 적용하면 그게 부패다.

김호기=박 후보가 후보 수락 연설에서 제시한 핵심 키워드는 국민통합이다. 정부에 의해 추진될 경우 위로부터 시도라는 점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광두=‘정부 3.0’은 정부가 우선 투명해지고 모든 정보를 국민과 공유한다는 정신이다. 다 보여주면 믿을 것 아닌가. 그것을 바탕으로 시민들과 협치하겠다는 것이다.

김호기=역사는 진자운동이라고 한다.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는 노무현 정부의 사회투자 정책과 유사하고, 박 후보의 ‘정부 3.0’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거버넌스(협치)’를 떠올리게 한다. 박 후보 정책에서 노무현 정부의 향기가 느껴진다.

김광두=뭐 하려고 노 전 대통령을 베끼나(웃음). 결과론적 해석이다. 박 후보 문제의식의 변화가 먼저이지, 노무현 정부를 따라한 것은 아니다.

김상조=과거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의 전통적 의제가 성장과 분배로 나눠졌는데 요즘은 상호 침투하고 있다. 긍정적 변화라고 볼 수 있는데 유권자들에게 선택 기준이 모호해지는 측면도 있다. 한국사회 미래는 어떤 모델로 가야 하나.

김광두=영미형, 지중해형, 유럽 대륙형, 북구형 등 네 개 모델로 나눌 수 있다. 지중해형은 실패했고, 영미형과 북구형이 성장과 복지 측면에서 유럽 대륙형보다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에겐 북구형이 맞는 것 같다. 북구형은 시장경제의 기본 정신을 살린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 한국 삼성보다 더 세지만 사회에서 그 가문을 인정한다. 기업과 종업원이 세금을 엄청 많이 낸다. 세금도 사전적 기업행위보다 사후적 결과에 대해 걷는다. 복지면에서 북구형 보편적 복지는 한국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다. 한국사회에서는 달라고 하면 다 주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북구는 교육, 의료, 여성 세 부문에서 무상교육을 해주고 의료로 건강을 좋게 하고 여성을 경제활동에 많이 참여시켜서 사회의 생산성을 올리자는 것이다.

■ 박근혜 ‘싱크탱크’의 김광두 원장에
재벌개혁 문제 물으니 “삼성 하나죠”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대담에 앞서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을 찾았다. 세 사람은 마천루 사이에 조그맣게 남아있는 공덕시장 곳곳을 둘러보며 양극화의 심각성에 공감했다. 물론 그 해결책을 놓고 보수적인 김 원장과 진보적인 두 교수의 나침반은 달랐다.

김광두 원장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이끌고 있다. 2007년 박 후보의 공약인 ‘줄·푸·세’의 입안자인 그는 학계에서 시장주의를 강조하는 정통 ‘서강학파’로 통한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주도하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역시 서강학파다.

김호기 교수가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서강학파의 기여와 한계를 묻자, 김 원장은 “경제발전 방식은 정부가 주도했지만, 시장경제의 수단인 가격, 금리, 환율을 활용했다”고 ‘서강학파답게’ 답변했다.

김 원장의 양극화에 대한 입장 역시 시장주의 틀을 고수했다.

그는 “파이는 키워가되 조금 더 나누는 것을 더 고르게 나누자. 파이가 적어지면 그것은 하향평준화”라고 밝혔다. 전통적인 보수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견해다.

김 원장은 ‘줄·푸·세’와 관련해서도 세금을 줄이는 부분은 증세 필요성을 언급하며 포기를 선언했지만, 규제 완화와 법 질서 강화는 옹호했다. 김 원장은 2012년 박 후보의 노선을 2007년의 ‘일탈’이 아닌 일관성을 갖춘 ‘진화’로 보고 있었다. 박 후보의 경제 조언그룹 중 김종인 전 수석이 좌파라면, 김 원장은 이한구 원내대표·최경환 의원 등의 우파에 가깝다.

이런 김 원장이 한국사회의 미래 모델로 북유럽형을 제시한 것은 다소 의외다. 다만 그는 이 모델에서도 대기업 인정, 사전적 과세 등의 시장적 요소를 강조했다.

양극화 해법을 놓고 김 원장과 두 교수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지만 한 문제에서는 통했다. 김상조 교수가 “재벌개혁 문제는 그 대상이 30대 기업으로 집약되는데, 양극화는 복잡하고 이해관계자도 많다”고 하자, 김 원장은 “(재벌문제는) 삼성 하나죠”라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도 “솔직히 말하면 삼성”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강병한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김광두

대담에 앞서 김광두 원장, 김상조 교수와 함께 서울 공덕시장을 찾았다. 젊은 세대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재래시장은 여러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시장을 처음 구경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 도시로 이사 나와 장을 보러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갔을 때였다. 대학에 들어와 자본주의 시장이 근대 민주주의와 함께 모더니티의 놀라운 발명품임을 배우기도 했다. 시장경제의 빛과 그늘을 깨닫게 해 준 사회 과학자는 <거대한 변환>을 쓴 칼 폴라니(Karl Polanyi)다.

시장을 둘러본 다음 마포대교 북단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국가미래연구원에서 대담을 나눴다. 김광두 원장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TV 토론에서 더러 뵈었던 분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서강대 경제학과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신 터라 서강학파 이야기가 나오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줄푸세’에서 경제민주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평소 김 원장을 합리적 시장주의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대담에서도 김 원장은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김 원장의 견해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한 ‘신자유주의 좌파’(제3의 길)에 가깝다.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제3의 길이 중도좌파의 대표적인 흐름이라는 것을 상기할 때,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를 포함한 박근혜 후보의 주요 정책이 ‘제3의 길’과 유사한 점은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 이념구도가 좌클릭하면서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대담을 마치고 잠시 마포를 걸었다. 여기는 40대의 내가 살던 곳이다. 그 때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가 절정에서 위기로 나아간 시기다. 이번 대선은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결산하는 선거인 동시에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로 가는 도정에서 치러지는 첫 번째 선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됐다. 과연 우리 국민들은 어떤 체제를 선택하게 될까?

<김호기 | 연세대 교수·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운영위원장>

■ 김상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김광두

김광두 교수는,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정운찬 교수와의 개인적 인연을 매개로 내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부터 사석에서도 뵐 기회가 더러 있었다. 정운찬과 김광두, 요즘 이 두 분 행보를 볼 때마다 해답 없는 의문이 머리를 맴돈다. 지식인의 정치 참여문제다. “현실 참여는 지식인의 의무”라는 조순 선생님 지론에는 전혀 이견이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나도 나름대로는 현실 참여의 길을 걸어 왔다.

그러나 제도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이건 단순히 지식인의 의무 차원에서 판단할 일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용기와 함께 조직, 자금, 인맥 등 현실적 요건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참여한 지식인 중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상기하면, 요즘 이 두 분의 정치 행보는 서커스를 보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대담 과정에서도 아슬아슬함은 이어졌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줄푸세’ 공약(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우자) 입안자로 알려져 있는 김광두 교수가 요즘의 변화된 상황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줄푸세 중에서 세금 줄이는 것만 포기했지 나머지 두 가지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미래 청사진으로 북구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했을 때에는, 뭔가 실타래가 꼬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김광두 교수의 말처럼 ‘기본 원칙은 유지하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보수의 최대 강점임을 감안하면, 김광두 교수 또는 박근혜 후보가 놀라운 유연성을 보이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그러나 5년 전의 기억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30여 년 전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한국 보수 세력의 변치 않는 기본 원칙은 무엇인가? 그건 게 과연 있기나 한 건가?’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정리 | 강병한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입력 : 2012-09-04 21:49:43수정 : 2012-09-04 21:49:43

 

[김호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6) 경제민주화 이정우 경북대 교수

ㆍ“재벌개혁 문제는 중소기업·노동자 등 약자 참여가 핵심”

이정우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극화 심화의 원인으로 정보 격차, 외환 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1998년 이후 저성장을 들었다. 특히 정부 관료들이 경기 살리기에 집착해 부동산 투기 조장 등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이 교수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경선 후보의 싱크탱크인 ‘담쟁이 포럼’ 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시장 만능주의가 대형사고를 쳐서 ‘자본주의 4.0’을 모색하는 마당에 정부마저 ‘시장에 맡기자,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하자’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참여’라고 단언한 이 교수는 “노·사·민·정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양극화 해법은 하도급 중소기업,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문제 등 재벌 성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 문제”라고 진단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장 안에서의 분배와 시장 밖의 재분배 등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담은 3일 서울 서교동 노무현재단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호기 연세대, 이정우 경북대, 김상조 한성대 교수(왼쪽부터)가 3일 서울 상수동 홍익대학교에서 학생들과 청년실업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김상조 교수
“재벌 성장만으로는 양극화 해소 못해… 괜찮은 일자리 만들어야”


▲ 이정우 교수
“박정희 신화의 알 못 깨는 박근혜의 줄푸세·복지, 혼란스럽고 모순 가득 차”


▲ 김호기 교수
“시장 안에서의 분배와 시장 밖 재분배의 이중전략 필요”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 경제민주화가 된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이정우 경북대 교수(이하 이정우)=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이후 반세기를 성장 지상주의에 집착했는데,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이는 경제살리기를 표방한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성장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많다고 국민을 각성시켰다. 그래서 새 방향으로 모색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아닌가.

김호기=경제민주화를 간략히 정의하면.

이정우=한마디로 참여다. 중소기업과 재벌 문제에서 지금까지 발언권이 없었던 중소기업이 발언권을 갖는 것이다. 노사관계에서도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분배를 개선하고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하 김상조)=경제민주화는 출발선에서 기회균등, 과정에서 참여와 통제, 결과에서 공평 분배로 나뉜다. 대중 참여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고 이해해도 되나.

이정우=세 가지 다 필요하다. 새누리당은 출발선에서 기회균등은 중요하지만 결과까지 공평하면 사람을 게으르게 하고, 그래서 사회주의가 망했다는 식으로 비약하는데, 그렇지 않다. 결과에서 격차를 어느 정도 교정해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김상조=양극화 심화가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양극화 원인은 무엇이며, 노무현 정부의 공과는 무엇인가.

이정우=미국 경제학계는 양극화의 세 가지 원인으로 정보기술(IT) 사회의 도래에 따른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 세계화, 제도와 정책을 들고 있다. 한국이 결정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된 게 1998년인데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에다가 외환위기로 인한 정리해고, 구조조정 등이 가져온 결과가 크다. 1998년 이후 저성장 기조, 불경기가 일자리 문제를 가져오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나름대로 양극화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 전에 20%였던 중앙정부 복지예산을 28%로 올렸다. 연평균 실질 최저임금 인상률도 7.7%로, 가장 많이 올렸다. 그러나 피부에 와닿지 않아서 어려워졌다는 인상을 받게 된 것이다.
김호기=참여정부가 양극화에 대처한 건 맞지만 부동산가격 폭등에 따른 자산소득 격차가 커져서 양극화를 체감케 했다.
이정우=그때 세계적으로 시장 만능주의의 마지막 피크였다. 김대중 정부 때 경기부양을 위해 풀 수 있는 건 다 풀었다. 벤처와 카드, 그 다음이 부동산이었다. 경제관료들이 경기 살리기에 집착해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을 많이 넘었다. 투기를 조장해 부동산을 살린 게 패착이었다. 그 불을 끄는 데 참여정부가 3, 4년을 소비했다. 그 과정에서 ‘버블세븐’ 지역의 집값이 막 오르니까 서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거다.

김상조=재벌과 관료들의 강고한 공세를 벗어날 수 있는 준비나 능력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이정우=노무현 정부 실책이 재벌과 관료 문제다. 재벌개혁은 의지는 있었는데 방법·전략이 틀렸다. 관료 문제는 개혁하려는 의지 자체가 약했다. 정부 혁신은 열심히 했는데 일하는 방법의 개선에 치중했고, 관료제 부패나 유착, 낙하산 인사 문제 등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

김호기=신자유주의 절정 국면에 진보 성향의 노무현 정부가 국정을 운영했고, 신자유주의 위기 국면에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국정을 담당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체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이정우=시장 만능주의는 2008년이 절정기인데 이명박 정부가 줄·푸·세 정책을 쓴 건 시대착오적이다. 시장 만능주의가 대형사고를 쳐서 ‘자본주의 4.0’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경제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이 줄·푸·세다. 교훈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줄·푸·세를 채택하는 정부가 어디 있나. 시장 만능주의는 반드시 바뀐다고 본다.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 관계자 자본주의 쪽이 좀 더 강화될 것 같다. 경제민주화, 노동자 참여가 강화되는 쪽으로 점차 수정되지 않겠나.

김호기=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 공약에 진정성이 얼마나 있다고 보는가.

이정우=지난해 경향신문의 김호기·이상돈 ‘대화’ 인터뷰에서 박 후보는 줄·푸·세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대공황을 두 번 맞아놓고도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나. 박 후보는 줄·푸·세 정책의 원조이고, 이 대통령은 차용자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건 심각한 모순이다. 세금을 줄여서 무슨 복지국가를 하며 규제를 줄여서 무슨 경제민주화를 하나.

김상조=양극화 해소는 하도급 중소기업,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 문제 해결로 집약된다. 중소기업 부문이 침체돼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로 밀려나는 현상의 원인과 대책은 무엇인가.

이정우=한국 자본주의는 심한 ‘정글 자본주의’가 돼 버렸다. 대·중소기업 관계가 이렇게 일방적·착취적이고, 자영업자가 이렇게 많은 나라가 없다. 성장 지상주의로 간 결과 복지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사회 서비스가 약하다. 사회 서비스 분야에 투자가 안되니까 15% 정도 일자리가 부족하다. 그 15%의 과잉 인력이 살 길이 없어 몰려간 데가 자영업이다. 비정규직 문제만 해도 한국처럼 비정규직에 불공평하고 착취적인 나라가 없다. 이 모든 게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고 이득을 챙기는 데서 온 결과다. 이걸 타파하지 않으면 소득과 소비의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는다.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만이 한국 자본주의를 구출할 수 있다.

김호기=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 안에서의 분배와 시장 밖에서 재분배 등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진보개혁 세력은 이런 과제에 포괄적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가.

이정우=한국이 국민소득 대비 조세 비중이나 실제 분배효과가 지나치게 낮다. 복지국가가 요원해 재분배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소득 재분배는 최후 수단이다. 1차적으로 시장에서 분배를 공평하게 해야 한다. 그 다음 중요한 게 자산을 재분배해 소득을 공평하게 하는 거다. 토지개혁이나 종업원 지주제, 교육기회 부여 등이다. 한국은 노동시장, 부동산 가격 폭등, 비정규직, 금융시장 약탈적 대출 문제 등 “악마의 맷돌이 돌아간다”(시장 근본주의는 인간, 자연, 구매력까지 매매와 투기의 대상으로 시장에 밀어넣고 갈아버린다는 뜻)는 칼 폴라니 얘기가 통렬하게 적용된다. 이런 야수의 모습을 더 부각시킨 게 이명박 정부의 시장 만능주의다. 그것을 순치시키고 우리에 가두는 게 국가의 역할인데, 맹수를 풀어서 더 약육강식으로 갔다.
김호기=재벌개혁, 노동시장 개혁, 금융개혁, 부동산 개혁, 사회정책을 포함한 복지개혁 등 포괄적 프로그램을 이제야 갖게 되지 않나 싶다.
이정우=다음 정부는 줄·푸·세 정부가 아니라 호민관 정부가 돼야 한다.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고 약탈하는 나라에서 정부마저 시장에 맡기자, 줄·푸·세 하자라는 것은 직무유기다.
김상조=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제고하기 위해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 등 산업 민주주의의 성숙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는 이해관계 충돌이 존재한다. 한국의 노동시장, 노사관계, 노동정책은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이정우=경제민주화를 완성하는 것이 사회 대타협, 사회적 대화다. 수십 년 된 고질 환부를 도려내고 뼈를 가르는 아픔이 없이는 통합이 안된다. 개점휴업 상태인 노사정위는 폐기하고 노·사·민·정 모델로 가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큰 틀로 완성해야 한다.
김상조=노·사·민·정의 사회적 대타협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것과 비슷하고, 환부를 도려내는 개혁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에선 제 생각과 비슷한데 같이 갈 수 있나.
이정우=양립 가능하고 상호 보완적이다. 장 교수는 1인1표로 가야 한다는 건데 1인1표나, 1원1표 둘 다 가능하다. 장 교수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스웨덴은 1인1표 경제민주화가 많이 발달돼 있지만, 1주(1주식)1표가 근간이다. 그런데 한국은 둘 다 안되고 있다. 1주1표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재벌 황제 경영에 의해 유린당해왔다. 두 개가 동시에 가야 한다. 1주1표도 제대로 하는 재벌개혁을 해야 하고, 경제민주화를 향해 1인1표도 해야 한다.
김호기=정부가 자본을 적절히 규제하고 시민사회가 노동에 힘을 보태주면 균형이 이뤄질 거라고 했는데 과연 가능할까. 서구처럼 노동이 자본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나.
이정우=한국은 정말 비관적이다. 호민관적인 철학을 가진 정부가 별로 없었다. 노동은 탄압을 받은 끝에 약해질 대로 약해졌고, 그 안에 파벌주의, 모험주의도 많다. 자본도 대화를 거부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떨어진 경영자가 많다. 제일 중요한 건 정부다.
김호기=청년실업이 매우 심각하다. 정부는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청년실업 대책을 마련하고 국가·기업·시민사회 간 대타협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이정우=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사 간 힘의 불균형 때문이다. 세대적인 불행도 겹쳤다. 지금 청년들이 베이비부머 자식 세대들이다. 벨기에 ‘로제타 플랜’(청년 실업자들의 추가고용 의무화 및 위반 시 벌금 부과) 같은 대책은 강제적이고 형편없는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했다는 비판도 있다. 청년 고용을 장려하는 세제상 또는 임금 보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대선 공약처럼 세대 간 협약도 필요하다. 청년을 장기고용하는 기업에 세제 감면 혜택을 주는 것이다. 청년 인턴제는 일시적이고 숫자 채우기 놀음으로 끝난다.
김상조=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남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박 대통령의 개발 독재체제가 오늘날 양극화에 어떤 관련이 있다고 보나. 박 대통령 딸이 유력 대선 후보로 등장했는데.
이정우=한국 현재의 틀을 만든 인물이 이승만과 박정희다. 이승만은 나라의 주춧돌을 친일파로 세웠다. 그 친일파 중 한 명인 박정희가 쿠데타를 해서 현재 약탈적 정글 자본주의의 틀을 만들었다. 재벌 체제를 만들고 노사문제를 지금처럼 불신과 대립 관계로 만들었다. 박정희는 공도 꽤 있지만 과가 너무 많다. 3 대 7 정도다. 20세기 민족의 최대 과제가 전반기는 민족해방이고 후반기는 독재로부터의 민주화인데 박정희는 항상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 딸이 대통령을 하려는데 인간적으로는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지도자가 되려면 역사 인식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인식 없이 그냥 봉하마을에 가고 이희호 여사를 만나고 전태일재단에 가고 하는 것은 국민 대봉합이지, 대통합이 아니다.
김호기=차기 정부에서는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전환 아래 저성장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정책 경쟁이 이뤄져야 하나.
이정우=성장 지상주의 주술, 박정희 신화, 시장 만능주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근혜는 여전히 박정희 신화의 알을 깨지 못하고 있다. 줄·푸·세를 갖고 있으면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니까 혼란스럽고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진짜, 가짜를 구분해야 한다.

■ 문재인의 ‘싱크탱크’ 연구위원장…
이정우 교수 “지도자의 철학” 강조


이정우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3일 대담을 마치고 서울 상수동 홍익대학교 캠퍼스를 찾았다.  학생들과 교정 벤치에 앉아 등록금과 취업준비 등 이야기를 나눴다. 불안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청년들의 고민을 찬찬히 들으면서 공감을 표시했다. 이날 대담도 심화되는 양극화와 신자유주의의 위기 국면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 교수는 양극화가 심화된 근본에는 “정글 자본주의”가 있다고 보고, 이를 규제할 ‘호민관’으로서 정부 역할을 강조했다.  정글 자본주의라는 ‘야수’를 우리에 잡아넣기는커녕 풀어놓는 이명박 정부를 무능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지도자 철학이 빈곤하면 나라를 이렇게까지 오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까지 말했다. 세 사람은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완성하는 것이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했고, 김호기 교수는 “경쟁을 약화시키지 않는 사회협약”을 말했다.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맡았다. 대담에서 시종 참여정부 공과가 거론된 이유다. 이 교수는 “독일 사민당 정부조차 시장주의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 전 세계적 시대상황과 벤처·카드·부동산 등 3대 거품 붕괴기라는 국내적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옹호했다. 참여정부가 재벌과 관료 함정에 빠졌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 때문에 두 번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경선 후보 캠프에 참여한 이 교수는 “지도자의 철학”을 강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는 “현재의 약탈적 자본주의 틀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를 향해 “중차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세운다)’ 정책이나 5·16, 유신 등 (시대를 거스르는 정책과) 역사인식을 보이는 사람이 유력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됐고, 여전히 잘못된 생각을 신봉하고 있는 것은 국가 위기 상황”이라고 역설했다.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이정우

이정우 교수를 처음 뵌 것은 2002년 대선 과정에서였다. 당시 이 교수는 노무현 캠프 정책팀에 더러 참석하시곤 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연설 기초위원회에선 함께 일했는데, 경제학자가 역사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것이 무척 이채로웠다. 참여정부 정책실장을 맡으신 다음에는 나 역시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정기적으로 만나 여러 정책 현안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 교수를 뵈면 전통사회 선비 모습이 떠오른다. 선비란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 선비다. 선비는 무엇보다 대의라는 가치를 지향하고 탈물질주의적 생활을 추구한다. 개인적으로는 인문학적 소양과 사회과학적 통찰을 겸비한 분이 다름 아닌 이 교수라고 생각한다. 이 교수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참여정부가 남긴 숙제로서 재벌개혁과 관료개혁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였다. 참여정부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권력기관의 민주화 등에서 성과를 이뤘지만, 양극화 해소, 갈등 조정 등에선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구축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선 재벌개혁과 관료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정책 생산 및 결정에 참여했던 이 교수의 경험이 앞으로 소중하게 쓰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한다. 대담을 마치고 홍익대 캠퍼스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벤치에 앉아 학교생활과 취업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의 모습에서 청년실업의 그늘을 직접적으로 느끼긴 어려웠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을 엿볼 수 있었다. 강의가 있어 김상조 교수와 교문 쪽으로 걸어 나오는데 긴 여름의 마지막 날씨는 뜨겁고 화창했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운영위원장>

■ 김상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이정우

이정우 교수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경제학자 중 한 분이다. 학문의 깊이는 물론이고, 그에 못지 않게 넓은 인품을 지닌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깜짝 놀랐다. 특히 한국의 현대사를 망친 사람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하는 대목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강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정우 교수가 이렇게 격정적으로 토로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1년간 한국을 떠나 있다가 대선 구도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시점에 귀국한 내가 아직 시차적응이 안 된 탓이 크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12월 대선이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임을 시사하는 증거로 해석되었다. 그래서 이정우 교수도 그렇게 뜨거워진 것일 게다.

노무현 정부 공과에 대해 논하는 과정에서, 재벌과 관료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 패착 아니었느냐고 내가 토를 달았다. 부연컨대, 나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사람 중 하나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진정성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재벌의 사보타지와 관료의 정보왜곡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 및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고맙게도, 이정우 교수가 곧바로 시인했다. 그리고 재벌과 관료의 함정에 빠져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두 번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래서 문재인 후보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누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다. 쉽지 않겠지만….

이른바 ‘장하준 대 김상조’의 논쟁과 관련한 질문에서, 그 둘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고 심지어는 보완 관계라고 결론을 내려준 것에도 고맙게 생각한다. 나의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모든 것을 해결하는 하나의 거대 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충돌하는 다양한 의견들을 조정하고, 그를 통해 국민적 에너지를 모우는 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일 것이다. 12월 대선이 진정한 정치의 장이 되기를 또한 기대한다. 이 역시 쉽지는 않겠지만….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정리 |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입력 : 2012-09-09 22:11:13수정 : 2012-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