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김상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1) 경제민주화 - 재벌개혁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

ngo2002 2012. 8. 20. 09:27

[김상기·김상조의 대논쟁-시대정신](1) 경제민주화 - 재벌개혁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

ㆍ“지금 재벌 우위 시대 더 방치하면 사회가 폭발… 제어해야”

20일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선출과 함께 18대 대통령선거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민주당은 한달 뒤인 9월23일 대선후보를 선출하고, 유력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복합대학원 원장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선거는 예측을 불허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이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결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시대정신은 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의 집약이자 최종 목표다. 경향신문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시대정신을 모색하는 대논쟁의 장을 마련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복지국가 민주주의 싱크네트 운영위원장),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가 이 시대의 최전선에 서있는 보수와 진보의 대표 지식인들을 찾아간다.

헌법 경제민주화 조항의 입안자로 통하는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16일 경향신문 ‘김호기·김상조의 시대정신 대논쟁’에서 “경제 세력이 언론·법률·지식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을 규제하기 위한 민주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인 그는 “국민에게 초지일관 약속한 사항을 성실하게 지키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며 경제민주화의 실천을 강조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오른쪽)와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가 지난 16일 청와대가 멀리 보이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가운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음 정권의 가장 큰 과제는 경제민주화라는 게 김 위원장의 지론이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한국 경제 새 틀 구축에 재벌개혁은 필요조건, 충분조건은 아니다”


▲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
“보수 집단이 안 변해선 경제민주화 정착 불가 그래서 새누리 돕는다”


▲ 김상조 교수
“재벌이 ‘룰’을 바꾸는 재벌공화국에서 스스로 변할지는 의문”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민주화 시대가 25년이 지난 다음 역설적으로 사회·경제민주화가 답보 내지 후퇴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이하 김종인)=1987년 이전까지 한국은 압축성장의 시대였다. 이때 헌법 119조 2항에 경제민주화가 들어갔다. 그런데 현재 그 갈등 요인이 해소되기는커녕 심해져서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1 대 99’ 사회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80%가 넘는다. 경제민주화 논쟁은 인위적으로 누가 끄집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당면한 경제·사회적 요인이 그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도록 한 것이다.

김호기=김 위원장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무엇인가.

김종인=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들 당시 이 조항을 넣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정치민주화로 의회가 중심이 됐는데 의회가 기업 로비에 걸리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겠다 싶었다. 사회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고 경제 문제로 폭발 직전에 이르게 되면 입법으로 상황을 규제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제민주화 조항이 없는 상태에서 입법 규제가 시작되면 기업들이 헌법소원 등으로 대응하려고 달려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경제세력이 언론·법률·지식인 사회를 지배하는데 그 결론이 뻔할 것 아니냐. 그런 일을 방지하자는 것이 첫번째 생각이었다. 시장경제가 발달하면 자연적으로 집중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고 경제세력이 힘을 더 발휘할 텐데 그 사람들을 규제하기 위한 민주적 장치 마련이 시급했다.

김호기=경제민주화 조항은 진보정치를 상징해서 새누리당보다 야권에 어울릴 것 같은데, 김 위원장이 새누리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종인=소위 진보정권이 10년간 계속되면서 결과가 어땠나. 1997년 외환위기가 오고 국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지만 한편으로는 누적된 폐해를 일거에 재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1970년대식 재벌위주 경제정책이 펼쳐졌고 재벌의 위치는 더 공고해졌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양극화 아니냐. 진보가 경제민주화를 더 잘할 것이라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왜 새누리당으로 가 도와주느냐고 물었는데 경제민주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보수 집단이 변하지 않고는, 보수 인사들의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생태적 DNA를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이하 김상조)=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또는 김종인 위원장이 내세우는 재벌개혁의 의미가 무엇인가.

김종인=우리 재벌은 자기 노력에 의해 재벌이 됐다기보다는 압축성장 과정에서 시혜를 받아서 형성됐다. 그리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재벌 우위 시대가 됐다. 이 사람들을 이런 상태로 방치하면 결과적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모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사회적 폭발이 일어났을 때 제어할 능력도 없다. 그러기 이전에 제도적 규범을 짜면 재벌 스스로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변할 수밖에 없다.

김상조=재벌이 룰을 어기고 고치려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재벌이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원칙은 맞지만 재벌이 그 룰 속에서 움직이겠나.

김종인=간접적으로 유도해도 안되면 최종적으로는 직접적인 방안을 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20세기 초반까지 그런 제도적 장치 없이 발전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나와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 50년 지속되면서 조화롭게 됐다. 자본주의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는 다 이런 과정을 겪는데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압축성장을 통해 발전하면서도 한번도 그런 조정기를 거치지 않았다. 현시점에 그런 지도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벌이 저항하겠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김상조=재벌개혁 의미를 국가가 재벌로 하여금 사회적 룰 속에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은 보수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반면 진보진영은 룰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보다 국가 역할이 더 크다고 본다. 진보 쪽에서는 지도자 역할뿐 아니라 대중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 아닐까 한다.

김종인=지도자 역할과 대중 역할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는 결국 대중의 의식 변화를 느끼고 그 요구에 따라 변화해 대중을 끌고나갈 힘을 얻어야 한다. 대중의 역할은 결국 지도자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이지 대중이 직접 나서서 할 수가 없다.

김상조=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을까.

김종인=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말을 던져 놓으면 입씨름만 되지, 효과적으로 굴러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10월 또는 11월 본격적으로 대선이 굴러갈 때 후보가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때 집권 5년 동안 무엇을 할지,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등 설명하려 한다.

김상조=재벌 개혁 대부분은 법을 지키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서구 관점에서 말하는 법치주의를 만드는 것은 진보의 과제라기보다 보수의 과제다. 그런데 한국 보수세력, 보수정당, 보수대통령은 재벌개혁을 자신의 아젠다로 만들지 못했다.

김종인=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은 성장 콤플렉스에 걸려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서 성장이 될 수도, 안될 수도 있으니 사회 제반 역할을 조정함으로써 지지를 받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 기능을 하기 어렵다.

김상조=박정희 전 대통령 딸 박근혜 후보는 성장 논리에서 벗어났나.

김종인=5년 정도 봤는데, 본인이 시대 흐름에 따라 자기 변신을 엄청나게 했다. 누적된 사회 문제를 이 시점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기 어렵지 않으냐는 인식을 철두철미하게 갖고 있다.

김호기=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할 진정성이 있나.

김종인=우리나라에는 시대착오적 보수가 많다. 보수도 집권과 생존을 위해서 대중과 영합을 하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다. 새누리당 일부가 말하는 보수대연합으로는 집권할 수 없다. 집권하고 생존하려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이 주도하는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이 40여명으로 늘었다. 박 후보가 확신을 갖고 끌고 가고 여당의 상당수가 의지를 보인다면, 여당 생리상 최고 통치자가 끌고 가면 따라갈 수밖에 없다.

김상조=경제민주화 실천모임에서 이미 3개 개혁법안(불법총수 형량 강화, 일감몰아주기 규제, 순환출자 금지 등)을 발의했고, 최근에는 제2금융권까지를 포함하는 금산분리 규제 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선거국면에서 사실상 입법이 불가능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어, 명색으로만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김종인=경제민주화 실천모임 법안은 의원입법안이다. 당론으로 확정하는 과정에서 실현 가능한 것으로 고칠 수밖에 없다. 집행이 불가한 걸 내놓는 것은 거짓말밖에 안된다. 이행 가능한 법을 만들었다 해도 지키지 않아서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온 거다. 현행 공정거래법을 엄격하게 지키면 상당 부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된 것이 문제 아니냐.

김상조=있는 법도 안 지키는 상황에서 재벌 저항의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순환출자규제 등 소유구조와 관련된 조치가 나오자마자 전경련에서 바로 비판 논평이 나왔다. 경제가 어려운데 경제민주화 하면 더 어려워진다는 선전을 할 수도 있다.

김종인=경제 사정이 어려운 것과 경제민주화는 별개 문제다. 경제가 어려운 건 그대로 풀고 고칠 것은 고쳐야지 경제가 어려우니 경제민주화는 나중에 하자면 아무것도 안된다.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 시절 외부 위원으로 참여해서 ‘금년은 성장은 안되니 경제 윤리를 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더니 ‘말조심하라. 어디서 운동권 교수를 불러오지 않았느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세계 경제가 요동하는 과정에서 성장률을 7% 목표로 정했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무모한 짓을 해서는 안된다.

김호기=학계에서는 재벌개혁의 4대 쟁점으로 공정거래법 개혁, 하도급법 개혁, 현행법 제도의 엄격한 집행 및 재벌기업에 대한 사회적 감시 강화, 기업집단법 제정을 꼽는다. 가장 우선시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

김종인=시장경제를 운용하는 이상 일정한 부의 집중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그걸 어떤 형태로든 시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는 최저임금법 외엔 소득 분배에 별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노사가 합의하게 돼 있다. 문제는 지나치게 경제력이 집중돼서 모든 것을 지배해버림으로써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다는 점이다. 한쪽이 꽉 쥐고 힘을 행사하니 다른 사람들이 절망상태에 빠져 버렸다. 경제민주화를 바탕으로 전체 경제 운용 여건이 거기에 맞게 따라가지 않으면 성장 효율도 기대할 수 없다.

김호기=최근 일본 경제 침체 요인 중 하나로 투명하지 않은 지배구조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재벌개혁은 한국경제의 새로운 틀 구축을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어떤 다른 정책들이 재벌정책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보는가.

김종인=재벌을 키울 적에는 다른 주체들의 시장 진입을 엄하게 규제했다. 최근에 이들이 커져서 힘이 생기니 자기들이 다른 분야에 진입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 달라고 한다. 탐욕으로 코묻은 돈까지 빨아들이겠다면서 대기업 총수 자식과 손자들에게까지 빵집, 순대집이 돌아가면 소상인·중간상인 할 것 없이 영세민으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정부 힘으로 규제할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 폴 사뮈엘슨은 시장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은 정서적 불구자라고 하더라. 우리나라에는 그런 정서적 불구자가 너무 많다.

김호기=출구가 보이지 않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 저성장시대가 예견되는데, 향후 경제정책 핵심은.

김종인=자본주의 황금기에 복지가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 복지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러나 복지가 시작된 때는 사회가 어려울 때, 사회적인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과거와 같은 고도 성장은 있을 수 없다. 현실에 맞게 해야 한다. 국민들은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데에 불만이 많다. 정의가 확립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김상조=전체 경제민주화 계획이 100이라고 했을 때 박근혜 후보 등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뒤 다음 5년에 몇% 달성해야 한다고 보나.

김종인=60~70%만 하면 성공이라고 본다. 정치민주화도 하루 아침에 하지 못했듯 오랜 시간에 대중의 의식이 바뀌고 국민들이 ‘이렇게 안하면 안된다’는 순간에 도달해서 직선제를 비롯한 개헌이 이뤄진 것이다.

김호기=대선 전망은.

김종인=박근혜 캠프에 있는 사람인데, 박 후보가 당선될 거라고 보고 당선되게 노력해야 한다. 대선 싸움은 치열할 것으로 본다. 격차도 크게 나지 않을 거라고 본다. 방향을 조금만 잘못 짚으면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에게 초지일관 약속한 사항을 성실하게 지키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게 가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 김상조 “1년 전엔 내가 과격한 재벌개혁론자였는데,
지금은 중간밖에 안되더라”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 캠프의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의 부암동 사무실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김 위원장의 캐리커처다. 한 손에 돋보기를 들고 무언가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不動産(부동산)’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노태우 정권 당시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매각조치를 견인한 청와대 경제수석의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지난 16일 김 위원장과 김호기·김상조 교수의 대담은 90분 동안 밀도 높게 진행됐다.

연구년으로 미국에 다녀온 김상조 교수는 대담을 시작하기 전 “1년 전에 한국을 떠날 때는 제가 과격한 재벌개혁론자였는데, 돌아와보니 중간밖에 안되더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만큼 경제민주화라는 화두가 일반화됐다는 이야기였다.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논쟁이 계속되면서 일반 국민, 소상인까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다 알게 됐다”며 “정의와 복지도 경제민주화를 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데 경제민주화 하면 어떻게 먹고살 거냐, 외국자본에 우리 기업을 넘기자는 것이냐’는 반박이 있다는 말이 나오자 김 위원장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그는 “기업하는 사람들이 자기 목적을 위해서 하지 국민을 위해서 하느냐. 돈을 번다면 지옥에라도 갈 사람들인데 경제민주화 한다고 그들이 아무것도 안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며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땐 국가의 혜택을 누리면서 번 돈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장경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침 인터뷰가 진행되던 그 시각,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법정구속됐다. 두 교수는 “한국 사회가 한걸음 나아갔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형량은 최소였다고 보여져 재벌봐주기 문제는 여전히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소회가 어떤가”라고 물었다. 김 위원장은 “법원도 사회 분위기를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 김호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김종인

인터뷰어 한 사람으로 먼저 독자들에게 이 기획을 마련한 이유를 이야기하는 게 순서일 듯하다. 올 12월 대선에는 여러 의미들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민주화 시대 25년의 결산과 새로운 시대정신의 모색에 있다고 생각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원동력인 민주화는 분명 전환점에 도달해 있다.

문제는 이 전환점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있다. 민주화 시대의 계속인가 또는 종언인가, 계속이라면 제2단계 민주화로 볼 수 있는가, 종언이라면 새로운 시대는 어떻게 명명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들은 나를 포함한 사회과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내 생각은 이렇다. 계속이라면 경제민주화가 새로운 시대정신이고, 종언이라면 복지국가가 새로운 시대정신일 것이다. 여하튼 내 잠정적인 결론은 우리 사회가 현재 이중과제에 직면해 있으며, 그 이중과제는 다름 아닌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것이다.

첫 번째 인터뷰이로 김종인 박근혜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만났다. 지난해 이상돈 교수와 진행한 ‘대화’를 포함해 그동안 김 위원장을 몇 번 뵈었다. 김 위원장은 박정희 정권의 의료보험과 ‘87년 헌법’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의 산파 역할을 맡았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김 위원장은 중도보수를 대표하는 뛰어난 ‘지식인 정치가’다. 이번 대담에도 김 위원장은 분명한 어조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활약이 우리 사회 보수가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자하문터널 너머에 있는 김 위원장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다음 광화문광장에 와서 사진을 찍었다. 광화문광장은 내게 많은 상념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촛불집회, 반값등록금집회,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 이명박 정권에서 일어난 일들이 두서없이 스쳐 지나갔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2012년을 기다리자고 했는데, 바로 그 2012년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12월 대선으로 가는 뜨거운 여름날 오후,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모습에는 활기가 넘쳐 있었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복지국가민주주의싱크네트 운영위원장>

■ 김상조 교수 대화 후기 - 내가 본 김종인

경향신문 이대근 편집국장으로부터 이번 기획에 인터뷰어로 참여할 것을 제안 받았을 때,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어느 모로 보나, 나는 이번 기획의 ‘인터뷰어’라기보다는 ‘인터뷰이’에 더 어울릴 사람이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의 망설임 후에 흔쾌히 수락했다. 이번 기획에서 인터뷰이로 예정된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 열 분을 만나보는 것이 지난 1년간의 안식년 공백을 가장 빨리 메우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가 김종인 박사다. 김 박사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고, 특히 경제민주화 내지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김 박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던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작년에 김 박사가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되었던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미국에서 그 소식을 접한 나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 박사는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론자’ 또는 ‘질서 자유주의자’다. 이러한 입장이 독일에서는 보수이지만, 한국에서는 진보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 박사가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이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되고 박근혜 후보의 선대위원장이 되는 것이,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변절과는 전혀 다른, 김 박사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모순이 없는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재벌개혁 운동이 진보·보수 모두로부터 비판받으면서 동시에 진보·보수 모두 과제가 되는 아이러니의 근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음 인터뷰이로 예정된 유종일 교수에 비한다면, 김종인 박사에게 보낸 나의 질문지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이었다. 출총제, 순환출자, 금산분리 등 정책 수단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김 박사가 별 관심이 없고(!) 따라서 잘 모르실 거라고(?) 예단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인터뷰 과정에서도 살짝 떠 보았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김 박사는 최근 논란이 되는 구체적인 정책수단들이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어느 수준으로 입법되고 어떻게 집행될지 이미 판단하고 계신 듯 했다.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기본 방향과 그 정치적 프로세스에 대한 큰 틀을 갖고 있다는 것이 김 박사의 최대 강점일 것이다. 지금 범야권에서는 이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정리 |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입력 : 2012-08-19 21:41:23수정 : 2012-08-20 00:2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