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일본을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궤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만약 한국이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면 이를 막을 방안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팽팽하다.
권승혁 한국은행 국제경제실 차장은 같은 점만큼 다른 점도 많다고 설명했다.
권 차장은 일본 경기가 침체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일본은 인구 고령화로 인해 생산가능 인구(15~64세)가 1994년부터 감소했다"면서 "우리도 생산가능 인구가 2016년부터 꺾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일본을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은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10년 이상 0%대를 오갔을 정도로 디플레이션이 고착화됐다"면서 "이에 반해 한국은 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한 것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한국은 일본과 성장률ㆍ물가상승률 면에서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상승률(전월 대비)은 1월 0.5%에서 6월 -0.1%로 떨어졌다. 일본도 비슷했다. 일본은 같은 기간 0.2%에서 -0.5%로 하락했다.
1분기 GDP성장률(전년 동기 대비)은 공교롭게도 일본이 2.7%, 한국이 2.8%로 0.1%포인트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다만 일본이 작년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지속한 뒤에 기저효과에 힘입어 반등했다면 한국은 작년 1분기 4.2%에서 하락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시점을 좀 더 넓혀 보면 한국은 일본과 10년가량 시차를 두고 경기 명암이 재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71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은 2ㆍ3차산업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장했다.
이 기간 연평균 GDP성장률만 4.22%에 달했을 정도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무리한 내수 부양정책 등으로 자산 가격 버블 불길이 치솟았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값이 치솟자 자산 가격 상승을 용인하면서 내수를 무리하게 부양했던 탓이다. 이 기간 연평균 일본 정부 지출은 3.21%씩 불어났다. 1991년 부동산 고점을 찍은 일본은 버블 붕괴가 가시화하며 성장률이 1%로 급락했다. 일본은 버블 충격으로 2000년대 들어서도 성장률 1% 미만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다.
경로는 다소 다르지만 한국도 1981년부터 급속한 성장에 따른 자산 거품이 형성됐다.
1981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은 개발 황금기(연평균 성장률 8.13%)를 맞으며 2ㆍ3차산업이 급속히 성장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일본과 다른 점이다. 원화값이 절하된 여파로 수출이 늘면서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자산 가격은 다시 상승했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 부동산 가격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시그널이 나오고 있다.
일본식 디플레이션 공포가 한국에서도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형성되는 이유다.
한국이 일본화돼 가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은 인구 고령화다. 한 나라가 성장을 지속하려면 노동 인력이 풍부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그렇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가능 인구는 2010년 100을 기준으로, 2040년에는 80.2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100에서 75.5로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전 세계적으로 생산가능 인구 감소 추세는 일본이 1위, 한국이 3위다.
통상 생산가능 인구 하락은 `소비 축소→내수시장 후퇴→설비투자 감소→고용 감소→성장률 둔화 물가 하락`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하지만 이 같은 패턴을 두고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라는 주장도 많다.
한범호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기업경쟁력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일본화로 단정하기는 힘들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는 것은 인력 구조조정에 실패해 기업경쟁력이 감소한 데 있다"고 말했다.
현 단계는 일본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기업 펀더멘털 △비교적 양호한 재정여건 △중앙은행의 안정적 금리 유지 등을 근거로 꼽는다.
실제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기업경쟁력은 높아지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하는 `2012년도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GDP 대비 기업 연구개발비 비중, 인구 10만명당 특허출원 건수에서 각각 세계 2위를 차지했다. 국가경쟁력도 22위로 일본(27위)보다 앞선 상태다. 범위를 좁혀 LCD TV 시장 점유율만 놓고 봐도 그렇다.
출하량을 기준으로 1분기 LCD TV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전자는 전년 같은 분기보다 1%포인트 높아진 19%를 차지하고 있다. LG전자도 13% 점유율을 기록했다. 반면 일본 기업인 소니(9%→8%) 도시바(7%→6%) 샤프(6%→5%)는 각각 점유율이 1%포인트씩 하락했다.
이미진 KB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전 세계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떨어지는 일본화를 경험하고 있어 꼭 우리에게만 한정된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장기 침체에 빠지기 전에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리더십을 통해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덕 기자 / 김정환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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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 장기 불황의 원인은 한두 가지로 정리할 수 없다.
자산가격 급락, 정부의 잘못된 대응, 기업의 투자 의욕 저하, 고령화와 인구 감소, 이로 인한 생산성 저하, 여기에 포퓰리즘에 빠진 정치권의 퍼주기, 지속적인 엔고 등 다양한 현상이 원인으로 제기된다. 스기타 료키 일본경제연구센터 회장은 "아무리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더라도 20년 이상 디플레이션에서 탈피를 못했다는 것은 결국 정부와 정치권의 잘못된 대응 때문"이라고 못박았다.
일본의 장기 불황은 1990년대와 2000년대로 구분해서 평가한다. `앞 10년`과 `뒤 10년`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출발은 버블 붕괴였다. 1980년대 3배 이상 급등했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1991년을 정점으로 급락하기 시작했다. 1992년 1년간 지가하락률이 도쿄는 15.1%, 오사카는 23.8%, 교토는 27.5%를 기록했다.
부동산에 대규모로 투자했던 기업의 도산이 잇따랐다. 도산 급증은 은행의 불량 채권으로 이전됐고 금융회사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때 일본 정부의 대응은 대대적인 재정자금 방출이었다. 그러나 투입 자금의 대부분은 경기 회복을 위한 공공투자 중심으로 집중됐다. 버블 붕괴의 원인인 금융회사와 산업 구조조정은 외면했다.
구조적 문제 해결보다는 당장 유권자의 눈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곳에만 정부의 돈이 흘러간 것이다.
이이다 야스유키 고마자와대 교수는 "부실채권 해결을 위해 조기에 자본 투입이 되지 않았다"며 "당시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출 여지가 있었음에도 실기한 것도 아쉬웠다"고 설명했다. 그 사이 1994년 말 2개 신용조합을 시작으로 2011년 말까지 총 142개 금융회사가 도산을 맞았다.
금융시스템 붕괴는 기업의 투자 부진으로 이어진다.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로 악영향을 미치며 장기적인 성장력 저하를 가져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바야시 게이치로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은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늘릴 여력이 없었다"며 "신규 투자 기회를 발견한 기업들은 자금조달 실패로 투자를 포기하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그나마 벌어들인 돈은 부채 상환과 자산 축적에만 들어갔고 투자를 통해 중소기업과 개인으로 흘러가는 길목은 막혀버렸다.
당시 일본은 `고령화와 생산인구 축소`라는 치명적인 변화를 동시에 맞았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1995년 14.6%에서 2010년 23%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생산가능 인구 비율은 69.5%에서 63.8%로 낮아졌다.
고령화는 생산성 저하라는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선진국 최악의 재정적자를 초래한 결정적 원인이다. 고령화는 바꿔 말해 노인 유권자층이 두껍게 형성됐다는 의미다. 일본 정치인들은 이들을 위한 대대적인 복지정책을 내놓으며 표를 얻는 데 주력했다. 정상적이라면 실물경제에서 자연스러운 부(富)의 선순환이 이뤄졌어야 했지만 일본은 이를 재정이 책임진 것이다.
요시카와 히로시 도쿄대 교수는 "2000년대 들어 일본 정부의 재정지출은 공공투자에서 사회보장으로 급격히 전환됐다"며 "이는 곧바로 재정적자라는 디플레이션의 또 다른 핵심 원인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올해의 경우 예산에서 국채 이자비융과 지방교부세 교부금을 제외한 일반 세출 54조엔 중 27조엔이 사회보장 관련 비용으로 투입된다. 그러는 사이 1990년대 국내총생산(GDP) 대비 60%에 불과했던 일본 정부의 채무 규모는 지난해 말 2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 됐다.
스기타 회장은 "일본의 소선거구제는 정치인이 지역주민을 위한 인기영합형 정치만 하게 만든다"며 "인기를 잃더라도 국가의 장래를 위한 정치가 이뤄지려면 선거구제 개편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 = 임상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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