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돌파구 못찾는 일본경제 ②

ngo2002 2012. 7. 30. 09:49

日 나랏빚 年 40조엔 느는데…댐건설 50년 논란 공사비 눈덩이
소비세 올려 복지 펑펑…놀아도 최저임금보다 많은 돈 줘
1000조엔 나랏빚 시한폭탄…정치권은 선심공약 남발만
기사입력 2012.07.26 17:45:23 | 최종수정 2012.07.26 19:24:33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돌파구 못찾는 일본경제 ② ◆

도쿄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가량 떨어진 군마현 아가쓰마군. 깊은 계곡 사이로 공사가 중단된 교각들이 흉물스럽게 서 있다. 일본의 대표적 예산낭비 사례인 얀바댐 현장이다. 1962년 수도권 식수원 확보와 홍수 대비에 필요하다며 초대형 댐 계획이 마련됐지만 50년이 지나도록 댐 본체 건설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사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더니 민주당 정권은 아예 집권공약으로 건설 중단을 공식 선언했다. 그 사이 건설에 필요한 예산은 2100억엔에서 4600억엔(약 6조6700억원)으로 부풀어 올랐고, 이미 3200억엔은 이주보상비로 지급된 상태다.

지난해 말 일본 정부는 돌연 1400억엔(약 2조원)이 더 들어가야 하는 이 공사를 재개하겠다며 올 예산에 반영했다. 댐 건설의 당초 이유였던 수도권 물사정은 어렵지 않았지만 정치권이 관광수입 감소로 원성을 터뜨리는 지역 민심을 의식해 다시 밀어붙이기에 나섰던 것이다.

그 사이 노다 요시히코 정부의 한쪽에서는 매년 40조엔 이상 불어나는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소비세 증세라는 고육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과거 증세를 시도했던 정권마다 모두 조기퇴진 운명을 맞았던 위험한 카드였다.

우여곡절 끝에 현행 5%인 소비세율이 2014년까지 8%, 2015년까지 10%로 인상하는 법안이 지난달 26일 중의원을 통과했다. 다음달 참의원 표결에서 통과되면 소비세 증세는 확정된다.

2015년 이후 소비세 증세로 확보되는 추가 세수는 연 13조5000억엔(약 195조원)으로 추정된다. 올해 정부 세출 90조엔의 15% 정도이다.

도쿄에서 북쪽으로 170㎞ 떨어진 군마현 아가쓰마 계곡의 얀바댐 공사 현장. 민주당 정권 출범 초기 댐 건설 중지를 선언했으나 현지 주민들의 반발로 지난해 말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매경DB>
이것만으로 일본의 재정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올해 예산 90조엔 중 세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은 46조엔에 불과하다. 나머지 44조엔은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빚으로 메워야 한다. 버블 붕괴 이후 매년 이처럼 적자 예산이 지속된 결과 지난해 말 국가부채는 960조엔까지 늘어났다. 이르면 올해 말 일본의 전체 국가부채가 1000조엔(약 1경4500조원)을 넘어선다. 이런 상황인데도 일본 정치권은 소비세를 인상하자마자 돈 쓸 궁리에 바쁘다.

민주당은 얀바댐 외에도 도쿄순환고속도로, 신칸센 추가 건설 등 2030년까지 총 160조엔이 투입되는 대대적인 공공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소비세 인상을 도와준 야당인 자민당과 공명당도 마찬가지다. 자민당은 향후 10년간 200조엔을 투입해 고속도로, 신칸센, 항만 등을 건설하겠다는 `국토강화기본법`을 내밀며 노다 정부에 소비세 인상을 도와준 대가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아사히신문이 사설을 통해 "누구를 위해 소비세를 올렸는가"라며 질타했지만 정권 잡기에 혈안이 된 정치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해외에서는 일본이 유럽에 이어 제2 글로벌 금융위기 진앙지가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유럽 위기에 취약한 아시아 국가 1순위로 일본을 꼽았다.

일본 국가부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229.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GDP 대비 연간 재정적자 규모도 10.1%로 유럽 위기 진원지인 그리스(9.2%) 스페인(8.5%)보다 높다.

재정이 불안하면 경제라도 성장해야 하는데 지난해 일본의 GDP 성장률은 -0.7%였다. 소폭이나마 성장세를 보였던 스페인, 이탈리아보다 못했다.

일본이 유럽 금융위기 국가에 비해 나은 부분은 경상수지가 매년 흑자를 내고 있다는 정도다. 과거 벌어놓은 돈으로 해외에 투자했던 자산에서 매월 1조엔 이상의 소득수지 흑자가 나는 덕분이다. 가토 준코 도쿄대 교수는 "시한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수동적 자세로는 대처할 수 없다. 공공서비스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일본은 평균 연령 45세의 세계 최고령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복지예산을 늘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일본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오히려 수입이 더 많은 기현상까지 벌어진다.

일례로 도쿄의 경우 구청에서 주는 기초생활보조비가 월 14만8946엔(약 218만600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기준인 14만5470엔(약 213만5000원)보다 많다. 일본 11개 도도부현이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 같은 퍼주기식 복지예산이 올해의 경우 23조엔으로 전체 세출의 26%이다. 소비세 증세분도 빚을 갚는 데 쓰이는 게 아니다. 연 13조5000억엔 중 80%인 10조8000억엔은 이 복지예산으로 투입된다. 나머지는 마찬가지로 악화된 재정에 시달리는 지자체 지원 등에 사용된다. 소비세 증세가 재정건전화 대책이 아닌 추가 악화를 다소나마 늦추는 미봉책에 불과한 셈이다.

[도쿄 = 임상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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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일본경제
젊은 직장인은 800원 식당 `긴줄` 노인들 연금받는날 백화점 `북적`
"돈 쓸 사람은 노인뿐" 어린이용 테마파크에 시니어 프로그램 개설
세계1위 복귀 도요타 보조금 중단 앞두고 국내공장 감산 발표
기사입력 2012.07.27 17:12:46 | 최종수정 2012.07.29 18:33:03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돌파구 못찾는 일본경제 ③ ◆

도쿄 간다역 주변 한 음식점이 800원짜리 식사 이벤트를 실시하자 주변 젊은 직장인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 <사진 = 임상균 특파원>
도쿄 시나가와구의 주택가에 자리잡은 대형 잡화점 이토요카도. 평소 한산한 이 매장은 두 달마다 한 번씩 비상이 걸린다. 일본에서 짝수달 15일은 연금이 지급되는 날이다. 이날 노인들이 주로 찾는 의료ㆍ건강용품은 평소보다 50% 이상 매출이 급증한다. 애완동물 코너의 매출도 30% 이상 늘어나는 등 한마디로 대목이다. 이토요카도는 연금을 받는 노인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65세 이상 고객들에게는 전자화폐로 결제하면 5% 할인해주는 서비스도 도입했다. 일본 백화점들이 일제히 여름 세일에 나선 지난 7월 13일. 일본 중산층 주택가인 세타가야구 후타코타마가와에 위치한 다카시마야백화점 입구는 세일 첫날치고는 한산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3층 부인복 코너로 올라가자 매장마다 60대 이상 여성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올해 들어 매달 매출이 늘고 있다"는 보석 코너의 스즈키 마야코 판매원은 "손자, 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보석류를 구입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고객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의 소규모 오피스 밀집지역인 간다역 주변에선 돈 많은 고령층과는 사뭇 다른 젊은이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평소에도 이곳 식당가는 점심시간 때 직장인들로 붐비지만 지난 5월 이곳을 방문했을 때 유독 50m 이상의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새로 문을 연 카레음식점이 1인분에 55엔(약 800원)짜리 홍보행사를 펼치자 젊은이들이 몰려든 것이다.

차례를 기다리던 한 30대 남자 직장인은 "인터넷에서 음식점 할인행사만 찾아다니는 직장인도 많다"며 30분 정도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은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였다.

고급 백화점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고령층과 한푼이라도 싼 곳을 찾아 발품을 파는 젊은 직장인. 일본 소비시장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모습이다.

일본 고령층은 부자다. 버블시기에 많은 돈을 벌었고, 이후 일본인 특유의 알뜰한 저축으로 부를 축적했다. 1500조엔에 달하는 개인 금융자산의 80%는 50세 이상이 보유하고 있다.

총무성 자료를 보면 일본의 60세 이상 인구는 2011년 404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2%를 차지했다. 반면 이들의 연간 소비지출은 처음으로 100조엔을 돌파하며 전체 개인 소비지출의 44%를 점유했다.

특히 2차대전 후인 1947~1949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나 버블기를 주도했던 `단카이세대`의 맏형이 올해부터 65세에 들어섰다. 정년퇴직 후 연금을 받으며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해가는 `고령층 부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어린이들이 직업체험을 할 수 있는 테마파크인 도쿄키자니아는 최근 시니어 전용 요금 프로그램을 별도로 만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실질적인 주 고객은 할머니, 할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반면 고정된 수입을 받으며 왕성한 소비를 해야 할 청ㆍ장년층은 정작 쓸 돈이 없다. 지난해 일본의 현금 급여총액은 2010년에 비해 0.3% 감소했다. 2008년 1.1%, 2009년 3.4% 연속 감소한 후 2010년 0.5% 소폭 오르더니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일본 국세청 조사에서는 일본 직장인의 평균수입은 1997년 467만엔에서 2009년 406만엔으로 13%나 준 것으로 나왔다.

지난 13일 도쿄 후타코타마가와에 위치한 다케시마야 백화점 여름세일 첫날, 주 고객은 60대 이상 고령층이었다. <사진 = 임상균 특파원>
장기침체로 기업실적이 감소하고 물가마저 하락하니 임금이 오를 리가 없다. 여기에는 일본 고용구조의 변화도 큰 몫을 한다.

미즈호종합연구소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0년까지 9년간 의료ㆍ복지 분야는 고용이 38% 증가했고, 부동산 분야 고용도 9% 증가했다. 그러나 제조업 고용은 같은 기간 13% 줄어 대조적이다.

또 이 기간 중 1인당 임금은 의료ㆍ복지 분야에서 13%나 감소했고 부동산업에서도 4% 줄었다. 제조업 분야 임금은 이 기간 중 2% 증가했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업종에서는 임금이 떨어지는 특이한 현상이다.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일자리 증가분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정규직처럼 매년 호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정년도 보장되지 않는 이들에게 왕성한 소비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무리다. 도요타가 올 상반기 462만대를 생산해 세계 1위에 복귀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6일, 나고야의 도요타 협력업체들은 올해 10월부터 국내 생산을 15% 감산한다는 생산계획을 통보받았다. 현재 하루 1만5000대인 생산량을 1만2700대로 줄인다는 내용이다.

올 상반기 국내 생산을 76.7%나 늘리며 일본 경기회복의 견인차로 기대를 모았던 도요타가 돌연 감산에 나선 이유는 `에코카 보조금`이 곧 중단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경기진작을 위해 지난 연말 약 3000억엔 예산으로 이 제도를 시작했다. 하이브리드카, 경차 등 일정 기준 이상 연비를 충족하는 친환경 자동차를 살 때 대당 10만엔을 보조해 준다.

워낙 인기가 높았던 만큼 예산이 거의 바닥나 8월 안에 보조금 지급이 중단될 것으로 예상되자 도요타가 하반기 자동차 생산량 축소에 나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에코카 보조금이 실시됐던 2010년에 경험했던 일이다. 당시 보조금 제도가 9월에 끝나자 4분기 자동차 판매는 24% 급감했다. 3분기에 3.1% 증가했던 실질 국내총생산(GDP)도 4분기에는 감소세로 돌아설 정도였다.

올 1분기 일본의 실질 GDP는 연율 기준으로 4.1% 증가하며 `깜짝 호황`을 보였다. 그러나 자생력에 의한 경기회복이 아닌 에코카 보조금에 따른 신차 판매 급증과 대지진 복구사업비가 풀리면서 공공투자가 활발해진 결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올해 6조엔 규모의 부흥예산을 시장에 풀어놓는다. 총 15조엔 중 지난해 9조엔이 풀렸고 나머지는 올해 집중시킨다는 계획이다.

이 중 피해지역 복구 건설비만 4조엔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건설비 공급에 따른 GDP 증대 효과를 1%포인트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IMF의 올해 일본 GDP성장률 전망치는 2%. 일본 경제회복의 절반은 지진피해 복구 사업 덕분이라는 얘기다.

보조금, 정부 예산 투입 등 외부자극에 겨우 반응을 하고 스스로 일어서기 힘든 `식물경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학 국제종합과학부 교수는 "일본은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자금 공급을 통한 탈(脫)디플레이션 정책을 구사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시리즈 끝>

[도쿄 = 임상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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