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벼랑에 서다]“90년대엔 하루 손님만 천명이 넘었는데”
ㆍ녹두거리서 25년간 주점·당구장 운영해 온 신혜옥씨
신혜옥씨(59)는 녹두거리에서 25년간 장사를 해온 산증인이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는 주점 ‘태백산맥’을, 그리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는 당구장 ‘빌리어드뱅크’를 운영하고 있다.
‘태백산맥’은 1990년대 녹두거리의 대표 주점이었다. 신씨는 “당시엔 빈자리가 나지 않아 다른 학교 학생들 예약은 받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12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에서부터 50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큰 방을 포함해 총 9개의 방과 대형 홀을 운영했다. 손님이 많을 때는 저녁시간을 1, 2부로 나눠 각각 500명씩 하루 1000명의 손님을 받았다고 했다. 두부튀김찌개와 공깃밥이 주메뉴였다.
신씨는 “당시 학생증만 믿고 준 외상이 얼마인지 계산이 안될 정도”라며 “어려운 학생이 명절에 ‘집에 갈 차비가 없다’고 하소연해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0년 무렵부터 손님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대형 룸 예약이 줄더니 서너 명씩 삼겹살집 같은 곳에서 모이는 새로운 문화가 싹텄다.
선후배끼리 수십명씩 모여 노래를 부르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진풍경이 됐다. 신씨는 “당시 라이브 공연도 준비하고 낮에는 커피를 팔아보는 등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늘어나는 적자 탓에 역부족이었다”고 밝혔다.
신씨는 “일부 학생들이 ‘태백산맥이 문 닫으면 안된다’며 아쉬워했지만 내가 빚을 지면서까지 학생들 바람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10년 전에 당구장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장사는 어떠냐는 물음에 “겨우 먹고살 정도”라고만 대답했다. 신씨에 따르면 지난 세월 녹두거리의 자영업에도 변화가 있었다. 1980~1990년대 초까지는 막걸리나 소주를 파는 싼 주점이 대세였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카페와 호프집이 많이 생겼다. 2000년대 들어서자 PC방과 노래방이 급격히 늘었다. 그는 최근 몇 년 새의 변화에 대해서는 “뭐라고 특징을 짓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화려해졌다”는 말로 대신했다. 프랜차이즈에 대해서는 “태백산맥 프랜차이즈를 만들었으면 돈을 벌었을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취업이 어려워서 그런지 무척 바빠 보인다. 가게 주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알고 지내지도 않는다”며 “이들이 졸업한 뒤 학창시절의 추억 하나라도 떠올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신혜옥씨(59)는 녹두거리에서 25년간 장사를 해온 산증인이다.
1988년부터 2002년까지는 주점 ‘태백산맥’을, 그리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는 당구장 ‘빌리어드뱅크’를 운영하고 있다.
‘태백산맥’은 1990년대 녹두거리의 대표 주점이었다. 신씨는 “당시엔 빈자리가 나지 않아 다른 학교 학생들 예약은 받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12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방에서부터 50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큰 방을 포함해 총 9개의 방과 대형 홀을 운영했다. 손님이 많을 때는 저녁시간을 1, 2부로 나눠 각각 500명씩 하루 1000명의 손님을 받았다고 했다. 두부튀김찌개와 공깃밥이 주메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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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거리에서 25년간 자영업을 해 온 신혜옥씨는 “과거 녹두거리는 주점, 호프집, PC방 등이 성업했으나 요즘은 딱히 특징짓기 어려울 만큼 업종이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신씨는 “당시 학생증만 믿고 준 외상이 얼마인지 계산이 안될 정도”라며 “어려운 학생이 명절에 ‘집에 갈 차비가 없다’고 하소연해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0년 무렵부터 손님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대형 룸 예약이 줄더니 서너 명씩 삼겹살집 같은 곳에서 모이는 새로운 문화가 싹텄다.
선후배끼리 수십명씩 모여 노래를 부르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진풍경이 됐다. 신씨는 “당시 라이브 공연도 준비하고 낮에는 커피를 팔아보는 등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늘어나는 적자 탓에 역부족이었다”고 밝혔다.
신씨는 “일부 학생들이 ‘태백산맥이 문 닫으면 안된다’며 아쉬워했지만 내가 빚을 지면서까지 학생들 바람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10년 전에 당구장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장사는 어떠냐는 물음에 “겨우 먹고살 정도”라고만 대답했다. 신씨에 따르면 지난 세월 녹두거리의 자영업에도 변화가 있었다. 1980~1990년대 초까지는 막걸리나 소주를 파는 싼 주점이 대세였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카페와 호프집이 많이 생겼다. 2000년대 들어서자 PC방과 노래방이 급격히 늘었다. 그는 최근 몇 년 새의 변화에 대해서는 “뭐라고 특징을 짓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화려해졌다”는 말로 대신했다. 프랜차이즈에 대해서는 “태백산맥 프랜차이즈를 만들었으면 돈을 벌었을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취업이 어려워서 그런지 무척 바빠 보인다. 가게 주인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알고 지내지도 않는다”며 “이들이 졸업한 뒤 학창시절의 추억 하나라도 떠올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입력 : 2012-07-24 21:41:02ㅣ수정 : 2012-07-25 00:12:02
[자영업자, 벼랑에 서다]녹두거리, 추억의 상점은 간데없고 프랜차이즈로 뒤덮여
ㆍ1996년과 2012년 거리 모습 비교해 보니
녹두거리 풍경은 불과 십수년 만에 180도 바뀌었다. 취재팀이 서울 대학동 녹두거리 상점 지도를 작성해 1990년대 지도와 비교해본 결과 골목을 지키던 개별 상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가게가 집중적으로 들어서 있었다.
녹두거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대생들이 즐겨 찾던 문화·휴식 공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골목 상인들과 서울대 총학생회는 문화공간 유지를 위해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학생과 지역 상인들의 유대가 느슨해졌다. 이때부터 ‘문화공간 가꾸기’ 등의 구호보다 깨끗한 거리와 상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프랜차이즈가 속속 진출했다는 게 이 지역 상인들의 전언이다.
16년 전을 보자. 서울대 교내 계간지 ‘관악’ 1996년 가을호에 실린 녹두거리 상권은 식당, 주점 등 이른바 생계형 자영업자들로 꽉 차 있었다. 대로변엔 ‘백두에서 한라까지’ 같은 제법 규모가 큰 주점부터 이름이 표기되지 않은 동네 음반가게를 비롯해 개량한복점인 ‘두껍아두껍아’ ‘동네분식’ 같은 지역 고유의 상점들까지 포진해 있었다. 프랜차이즈도 드물게 보이지만 당시 인기를 끌던 ‘멕시칸치킨’을 포함해 소형 업체 2~3개가 전부였다. 메인 거리에도 ‘태백산맥’ ‘이화주막’ ‘딸랑 분식’ 등 주점과 식당이 대부분이었다.
▲ T자 거리 250m 안에만 체인점 30여개 줄줄이
자금력 승부 대기업 탓에 대로변 월세는 천정부지
생계형 자영업 자리 잃어
하지만 최근 둘러본 녹두거리에 18년 전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었다. 우선 대로변부터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점령했다. 현 롯데리아를 기점으로 대로와 골목이 이루는 T자형이 녹두거리의 핵심부다. 중심부에 자리잡은 ‘롯데리아’는 7~8년 전부터 ‘녹두리아’라 불리며 이 동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엔 ‘미스터피자’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파리바게뜨’ 등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점포가 포진했다. 다른 쪽엔 ‘카페베네’를 비롯해 편의점인 ‘GS25’ 등이 있고,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피자팩토리’ ‘장군왕족발’ ‘보드람치킨’도 있다.
대로변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장악했다면, 롯데리아 안쪽 골목, 이른바 ‘메인 스트리트’엔 다소 규모가 작은 ‘술 파는’ 프랜차이즈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육쌈냉면’ ‘치킨마루’ ‘누들박스’ ‘훌랄라바베큐’ ‘물고기자리’ ‘오니기리’ ‘오징어마을’ ‘김가네’ ‘둘둘치킨’ ‘종로빈대떡’ ‘서래’ ‘누들박스’ ‘봉추찜닭’ ‘벌집삼겹살’ ‘투다리’ 등이다. 물론 가맹점 수와 운영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단일 가게가 아닌 체인점 형태로 운영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T자를 이루는 2개의 거리 250m 안에만 30여개의 프랜차이즈가 들어선 셈이다.
2000년부터 녹두거리 대로변에서 복사·인쇄점 ‘신림문화사’를 운영해온 곽한근씨(49)는 “최근 녹두거리의 상점 종류와 학생들 분위기가 급격히 변했다”며 “2~3년 전부터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프랜차이즈를 좋아하는 젊은층의 기호가 이곳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이 자금력 승부를 벌이면서 대로변 점포의 월세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프랜차이즈에 밀려 개별 상인들이 목 좋은 곳에 진출할 기회도 줄었다. 인근 상가 주인들은 “수년 전부터 급등한 전·월셋값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며 “최근에는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프랜차이즈가 진출하면서 지역 점포세가 기존 상인들에겐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2년 전만 해도 300만원대였던 한 삼겹살집 월세는 커피전문점이 입점하면서 500만원대로 뛴 것으로 알려졌다. 녹두거리 뒤편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 상인(47)은 “생계형 자영업자들에게 이제 녹두거리는 진출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귀족 거리’ ”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녹두거리 풍경은 불과 십수년 만에 180도 바뀌었다. 취재팀이 서울 대학동 녹두거리 상점 지도를 작성해 1990년대 지도와 비교해본 결과 골목을 지키던 개별 상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가게가 집중적으로 들어서 있었다.
녹두거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대생들이 즐겨 찾던 문화·휴식 공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골목 상인들과 서울대 총학생회는 문화공간 유지를 위해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학생과 지역 상인들의 유대가 느슨해졌다. 이때부터 ‘문화공간 가꾸기’ 등의 구호보다 깨끗한 거리와 상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프랜차이즈가 속속 진출했다는 게 이 지역 상인들의 전언이다.
16년 전을 보자. 서울대 교내 계간지 ‘관악’ 1996년 가을호에 실린 녹두거리 상권은 식당, 주점 등 이른바 생계형 자영업자들로 꽉 차 있었다. 대로변엔 ‘백두에서 한라까지’ 같은 제법 규모가 큰 주점부터 이름이 표기되지 않은 동네 음반가게를 비롯해 개량한복점인 ‘두껍아두껍아’ ‘동네분식’ 같은 지역 고유의 상점들까지 포진해 있었다. 프랜차이즈도 드물게 보이지만 당시 인기를 끌던 ‘멕시칸치킨’을 포함해 소형 업체 2~3개가 전부였다. 메인 거리에도 ‘태백산맥’ ‘이화주막’ ‘딸랑 분식’ 등 주점과 식당이 대부분이었다.
▲ T자 거리 250m 안에만 체인점 30여개 줄줄이
자금력 승부 대기업 탓에 대로변 월세는 천정부지
생계형 자영업 자리 잃어
하지만 최근 둘러본 녹두거리에 18년 전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었다. 우선 대로변부터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점령했다. 현 롯데리아를 기점으로 대로와 골목이 이루는 T자형이 녹두거리의 핵심부다. 중심부에 자리잡은 ‘롯데리아’는 7~8년 전부터 ‘녹두리아’라 불리며 이 동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엔 ‘미스터피자’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파리바게뜨’ 등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점포가 포진했다. 다른 쪽엔 ‘카페베네’를 비롯해 편의점인 ‘GS25’ 등이 있고,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피자팩토리’ ‘장군왕족발’ ‘보드람치킨’도 있다.
대로변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장악했다면, 롯데리아 안쪽 골목, 이른바 ‘메인 스트리트’엔 다소 규모가 작은 ‘술 파는’ 프랜차이즈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육쌈냉면’ ‘치킨마루’ ‘누들박스’ ‘훌랄라바베큐’ ‘물고기자리’ ‘오니기리’ ‘오징어마을’ ‘김가네’ ‘둘둘치킨’ ‘종로빈대떡’ ‘서래’ ‘누들박스’ ‘봉추찜닭’ ‘벌집삼겹살’ ‘투다리’ 등이다. 물론 가맹점 수와 운영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단일 가게가 아닌 체인점 형태로 운영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T자를 이루는 2개의 거리 250m 안에만 30여개의 프랜차이즈가 들어선 셈이다.
2000년부터 녹두거리 대로변에서 복사·인쇄점 ‘신림문화사’를 운영해온 곽한근씨(49)는 “최근 녹두거리의 상점 종류와 학생들 분위기가 급격히 변했다”며 “2~3년 전부터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프랜차이즈를 좋아하는 젊은층의 기호가 이곳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이 자금력 승부를 벌이면서 대로변 점포의 월세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프랜차이즈에 밀려 개별 상인들이 목 좋은 곳에 진출할 기회도 줄었다. 인근 상가 주인들은 “수년 전부터 급등한 전·월셋값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며 “최근에는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프랜차이즈가 진출하면서 지역 점포세가 기존 상인들에겐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2년 전만 해도 300만원대였던 한 삼겹살집 월세는 커피전문점이 입점하면서 500만원대로 뛴 것으로 알려졌다. 녹두거리 뒤편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 상인(47)은 “생계형 자영업자들에게 이제 녹두거리는 진출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귀족 거리’ ”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입력 : 2012-07-24 21:41:09ㅣ수정 : 2012-07-25 00:11:52
[자영업자, 벼랑에 서다]프랜차이즈 시장 규모 78조원… 10년 새 2배 급성장
ㆍ대부분 외식업 관련 사업
프랜차이즈 직영점과 가맹점이 ‘점령’한 곳은 비단 서울대 앞 녹두거리만은 아니다. 도심 번화가와 대학가는 물론 동네 골목까지 프랜차이즈 매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최초의 프랜차이즈 사업은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문을 연 ‘림스치킨’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프랜차이즈의 효시는 1979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 들어선 ‘롯데리아’로 보는 견해가 많다. 롯데리아는 당시 고객이 직접 음식을 받아가는 ‘셀프 서비스’를 도입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1980~1990년대에 ‘버거킹’과 ‘피자헛’ 등 해외 유명 패스트푸드 브랜드와 국내외 빵집, 커피전문점이 생겨나며 프랜차이즈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프랜차이즈 산업이 급성장했다. 지식경제부의 ‘2011년 유통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2002년 42조원이던 프랜차이즈 시장 규모는 2011년 78조원으로 10년 만에 2배가량 커졌다. 가맹본부에 가맹비를 내고 만든 점포 수도 같은 기간 12만개에서 31만개로 3배가량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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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은 외식업 관련 사업이 대부분이다. 전체 프랜차이즈에서 먹거리 관련 가맹본부 비중은 2002년 42.5%에서 2011년 67.1%로 증가했다.
가맹본부뿐만 아니라 가맹점포도 같은 기간 5만개에서 20만개로 4배나 늘었다. 프랜차이즈 업체 종사자는 지난해 기준 132만명이다.
가맹점주들은 본부와 첫 계약 시 평균 2.3년을 약속 사업기간으로 잡고 평균 2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은 가맹점을 처음 차릴 때는 5000만~1억원가량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5000만원 이상이 55.5%로 절반을 넘었고 1억원을 넘게 쓴 점주도 27.7%에 달했다. 또 27%는 사업을 하는 동안 일정 금액을 본부에 지급하고 있었다.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프랜차이즈 직영점과 가맹점이 ‘점령’한 곳은 비단 서울대 앞 녹두거리만은 아니다. 도심 번화가와 대학가는 물론 동네 골목까지 프랜차이즈 매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최초의 프랜차이즈 사업은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문을 연 ‘림스치킨’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프랜차이즈의 효시는 1979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 들어선 ‘롯데리아’로 보는 견해가 많다. 롯데리아는 당시 고객이 직접 음식을 받아가는 ‘셀프 서비스’를 도입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1980~1990년대에 ‘버거킹’과 ‘피자헛’ 등 해외 유명 패스트푸드 브랜드와 국내외 빵집, 커피전문점이 생겨나며 프랜차이즈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프랜차이즈 산업이 급성장했다. 지식경제부의 ‘2011년 유통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2002년 42조원이던 프랜차이즈 시장 규모는 2011년 78조원으로 10년 만에 2배가량 커졌다. 가맹본부에 가맹비를 내고 만든 점포 수도 같은 기간 12만개에서 31만개로 3배가량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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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은 외식업 관련 사업이 대부분이다. 전체 프랜차이즈에서 먹거리 관련 가맹본부 비중은 2002년 42.5%에서 2011년 67.1%로 증가했다.
가맹본부뿐만 아니라 가맹점포도 같은 기간 5만개에서 20만개로 4배나 늘었다. 프랜차이즈 업체 종사자는 지난해 기준 132만명이다.
가맹점주들은 본부와 첫 계약 시 평균 2.3년을 약속 사업기간으로 잡고 평균 2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은 가맹점을 처음 차릴 때는 5000만~1억원가량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5000만원 이상이 55.5%로 절반을 넘었고 1억원을 넘게 쓴 점주도 27.7%에 달했다. 또 27%는 사업을 하는 동안 일정 금액을 본부에 지급하고 있었다.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입력 : 2012-07-24 21:52:59ㅣ수정 : 2012-07-24 21:52:59
[자영업자, 벼랑에 서다]‘가맹점’에 끼지 못한 토박이 자영업자들 속절없이 밀려나
ㆍ(4) 서울대 녹두거리의 변신
골목상권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각종 패스트푸드뿐 아니라 빵, 커피 같은 서양음식은 물론 삼겹살집 같은 한식까지 전 업종에 걸쳐 프랜차이즈가 거리상권을 점령하고 있다. 프랜차이즈가 전성시대를 맞으면서 자영업자들의 지형도도 변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자리를 따내지 못하면 점차 경쟁력을 잃고 골목상권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다.
경향신문 취재팀은 특정 거리를 집중 분석해 프랜차이즈 확산과 소비자의 소비패턴 변화를 직접 확인했다. 다양한 지역을 검토한 결과 서울 대학동 녹두거리를 취재 대상으로 선정했다.
녹두거리는 서울대생들이 주로 찾는 서울 관악구의 한 지역이다. 좁게는 옛 신림9동(대학동)의 주점 골목, 넓게는 대학동 전체와 맞은편 옛 신림2동(서림동)까지를 녹두거리라 부른다. 취재팀이 이 지역을 분석대상으로 꼽은 이유는 녹두거리가 서울대 학생회의 ‘문화거리 가꾸기’ 활동 등으로 1990년대까지 ‘프랜차이즈 금지 구역’과도 다름없었던 역사를 지녔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국내 시장에 집중적으로 들어서던 1990년대에도 전통 주점 위주로 상권을 형성한 ‘화석’과도 같은 지역이었다.
▲ 자취하는 지방학생 줄면서
상권도 인근 전철역에 밀려
거리 전통에 큰 의미 안 둬
하지만 취재팀이 최근 4차례 방문한 녹두거리는 이미 프랜차이즈로 뒤덮여 있었다. 지난 6월 처음 찾은 서울 대학동의 커피숍 카페베네 매장엔 학생 손님들이 북적댔다. 오후 6시. 80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매장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문을 하려는 학생들은 줄을 섰다. 시쳇말로 ‘30초당 1만원’으로 통칭되는 대박 프랜차이즈였다.
시험기간이어서인지 서울대 재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 상당수가 노트북이나 책을 테이블 위에 펴놓고 과제물 작성 및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카페베네 옆 오래된 한 서점에는 커다란 독서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지만 앉아 있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카페베네에서 만난 한 서울대 학생(여)은 “노트북 전원을 꽂을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를 즐겨 찾는 편”이라면서 “쾌적한 환경에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제법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오후 5시, 다시 찾은 녹두거리 ‘메인 스트리트’에서 오랜 기간 영업을 해온 ‘행운분식’에 갔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반면 방학인데도 부근의 일부 프랜차이즈 음식점에는 학생 손님들이 여러 팀 보였다.
젊은 소비자들은 골목별로 자리잡은 동네 상점보다 쾌적하고 맛이 일정한 프랜차이즈 상점을 선호한다. 서울대 06학번인 김륜용씨(26)는 “프랜차이즈는 음식이 깔끔하고 관리가 잘돼 청결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10학번 최모씨(22·여)는 “프랜차이즈는 깨끗해서 좋다”며 “서점만 봐도 교보문고 같은 곳은 크고 깨끗하고 정리가 잘돼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유행에 민감한 대학생들에게 정돈되고 규격화된 프랜차이즈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신입생인 송모씨(19·여)는 “가격이 비싼 게 흠이지만 친구들끼리 다 같이 가는 분위기여서 함께 가는 편”이라고 했다.
1990년부터 서점 ‘그날이 오면’을 운영해온 김동운 대표는 요즘 젊은층의 생활패턴을 ‘혼자 놀기’와 ‘도시화’ 등으로 요약했다. 김 대표는 “학내 동아리나 학생회 같은 학생 자치활동이 약화되면서 동료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 자체가 사라졌다”며 “요즘 젊은층은 시간이 나면 혼자 커피를 마시거나 조용히 게임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대에) 지방 출신 학생들이 줄어든 반면 서울 강남지역 출신들이 늘어나면서 자취촌인 녹두거리 대신 서울대입구역 등 강남과 가까운 전철역 인근이 더 번성하고 있다”며 “깨끗하고 교통이 편리한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이 지역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젊은층이 ‘구닥다리’ 같은 옛 문화에 대한 애착 대신 잘 정돈된 도시적 편리함에 기대면서 상권도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 재학생들도 더 이상 녹두거리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유승환씨(27·경제학과 석사과정)는 “녹두거리는 술값이 싸 주로 개강과 종강을 즈음해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는 곳일 뿐”이라고 했다.
대신 서울대 학생들은 사교 모임을 위해 서울대입구역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다.
서울대입구역은 지상 15층, 지하 7층짜리 복합 쇼핑몰인 에그 옐로우 등 깨끗한 고층건물이 속속 올라갔다. 던킨도너츠 등 프랜차이즈와 패밀리레스토랑이 마련돼 있다. 서울대 정문 방향인 3번 출구로 나오면 파리바게뜨와 스타벅스, 불고기브라더스 등이 들어서 있다.
대학 시절 서울대입구역에서 자취를 했던 김태우씨(37·경영 95)는 “1990년대 서울대입구역은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이 있는 곳 정도의 의미를 지녔을 뿐”이라며 “당시 모든 만남은 녹두거리에서 이뤄졌는데, 요즘 젊은층의 소비 패턴과 대학 주변 상권이 크게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골목상권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각종 패스트푸드뿐 아니라 빵, 커피 같은 서양음식은 물론 삼겹살집 같은 한식까지 전 업종에 걸쳐 프랜차이즈가 거리상권을 점령하고 있다. 프랜차이즈가 전성시대를 맞으면서 자영업자들의 지형도도 변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자리를 따내지 못하면 점차 경쟁력을 잃고 골목상권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다.
경향신문 취재팀은 특정 거리를 집중 분석해 프랜차이즈 확산과 소비자의 소비패턴 변화를 직접 확인했다. 다양한 지역을 검토한 결과 서울 대학동 녹두거리를 취재 대상으로 선정했다.
녹두거리는 서울대생들이 주로 찾는 서울 관악구의 한 지역이다. 좁게는 옛 신림9동(대학동)의 주점 골목, 넓게는 대학동 전체와 맞은편 옛 신림2동(서림동)까지를 녹두거리라 부른다. 취재팀이 이 지역을 분석대상으로 꼽은 이유는 녹두거리가 서울대 학생회의 ‘문화거리 가꾸기’ 활동 등으로 1990년대까지 ‘프랜차이즈 금지 구역’과도 다름없었던 역사를 지녔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국내 시장에 집중적으로 들어서던 1990년대에도 전통 주점 위주로 상권을 형성한 ‘화석’과도 같은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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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주점, 호프집 등이 주업종이었던 서울대 앞 녹두거리는 최근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롯데리아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점들로 뒤덮였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자취하는 지방학생 줄면서
상권도 인근 전철역에 밀려
거리 전통에 큰 의미 안 둬
하지만 취재팀이 최근 4차례 방문한 녹두거리는 이미 프랜차이즈로 뒤덮여 있었다. 지난 6월 처음 찾은 서울 대학동의 커피숍 카페베네 매장엔 학생 손님들이 북적댔다. 오후 6시. 80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는 매장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주문을 하려는 학생들은 줄을 섰다. 시쳇말로 ‘30초당 1만원’으로 통칭되는 대박 프랜차이즈였다.
시험기간이어서인지 서울대 재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 상당수가 노트북이나 책을 테이블 위에 펴놓고 과제물 작성 및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카페베네 옆 오래된 한 서점에는 커다란 독서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지만 앉아 있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카페베네에서 만난 한 서울대 학생(여)은 “노트북 전원을 꽂을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를 즐겨 찾는 편”이라면서 “쾌적한 환경에서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제법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오후 5시, 다시 찾은 녹두거리 ‘메인 스트리트’에서 오랜 기간 영업을 해온 ‘행운분식’에 갔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반면 방학인데도 부근의 일부 프랜차이즈 음식점에는 학생 손님들이 여러 팀 보였다.
젊은 소비자들은 골목별로 자리잡은 동네 상점보다 쾌적하고 맛이 일정한 프랜차이즈 상점을 선호한다. 서울대 06학번인 김륜용씨(26)는 “프랜차이즈는 음식이 깔끔하고 관리가 잘돼 청결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10학번 최모씨(22·여)는 “프랜차이즈는 깨끗해서 좋다”며 “서점만 봐도 교보문고 같은 곳은 크고 깨끗하고 정리가 잘돼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유행에 민감한 대학생들에게 정돈되고 규격화된 프랜차이즈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신입생인 송모씨(19·여)는 “가격이 비싼 게 흠이지만 친구들끼리 다 같이 가는 분위기여서 함께 가는 편”이라고 했다.
1990년부터 서점 ‘그날이 오면’을 운영해온 김동운 대표는 요즘 젊은층의 생활패턴을 ‘혼자 놀기’와 ‘도시화’ 등으로 요약했다. 김 대표는 “학내 동아리나 학생회 같은 학생 자치활동이 약화되면서 동료들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 자체가 사라졌다”며 “요즘 젊은층은 시간이 나면 혼자 커피를 마시거나 조용히 게임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대에) 지방 출신 학생들이 줄어든 반면 서울 강남지역 출신들이 늘어나면서 자취촌인 녹두거리 대신 서울대입구역 등 강남과 가까운 전철역 인근이 더 번성하고 있다”며 “깨끗하고 교통이 편리한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이 지역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젊은층이 ‘구닥다리’ 같은 옛 문화에 대한 애착 대신 잘 정돈된 도시적 편리함에 기대면서 상권도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 재학생들도 더 이상 녹두거리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유승환씨(27·경제학과 석사과정)는 “녹두거리는 술값이 싸 주로 개강과 종강을 즈음해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는 곳일 뿐”이라고 했다.
대신 서울대 학생들은 사교 모임을 위해 서울대입구역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다.
서울대입구역은 지상 15층, 지하 7층짜리 복합 쇼핑몰인 에그 옐로우 등 깨끗한 고층건물이 속속 올라갔다. 던킨도너츠 등 프랜차이즈와 패밀리레스토랑이 마련돼 있다. 서울대 정문 방향인 3번 출구로 나오면 파리바게뜨와 스타벅스, 불고기브라더스 등이 들어서 있다.
대학 시절 서울대입구역에서 자취를 했던 김태우씨(37·경영 95)는 “1990년대 서울대입구역은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이 있는 곳 정도의 의미를 지녔을 뿐”이라며 “당시 모든 만남은 녹두거리에서 이뤄졌는데, 요즘 젊은층의 소비 패턴과 대학 주변 상권이 크게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입력 : 2012-07-24 21:53:05ㅣ수정 : 2012-07-24 23: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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