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민주화와 한국의 미래 ⑦ ◆
경제민주화 논쟁의 또 다른 함정은 경제 이슈를 다수결로 해결하려는 시도다. 다수의 이름으로 포퓰리즘적 정책이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특히 경제민주화가 자칫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미국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는 전 세계 140여 개국을 대상으로 `경제적 자유(economic freedom)` 수준을 평가한다. 지난해엔 2009년을 기준으로 순위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네덜란드, 알바니아와 함께 공동 30위에 그쳤다.
불가리아와 오만이 바로 윗 단계인 28위다. 우리나라는 케이토연구소의 평가 잣대 가운데 △규제(93위) △정부의 크기(50위) △법 제도ㆍ재산권(36위) 등에서 여전히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물론 2000년 평균 순위가 54위였던 것에 비하면 경제적 자유가 향상되곤 있지만 여전히 개선할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나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각각 24위와 22위다. 아직 20위 밖에 머물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이 아닌 정부와 정치의 비효율성이다. 수백 개의 세부 지표 가운데 경제민주화가 안 돼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반면 정부 규제나 입법 과정의 비효율성이 문제라는 지적은 발에 차일 지경이다.
WEF가 지난해 142개국에 대해 경쟁력 평가를 한 결과 우리나라는 재산권 보호에서 53위(지식재산권은 46위)에 그쳤다.
이 밖에 투자자 보호(60위), 사법부 독립성(69위), 창업 시 행정절차 수(78위), 법체계 효율성(97위), 정치인에 대한 신뢰(111위), 정부 규제 부담(117위), 정책 결정 투명성(128위) 등에서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았다. 모두 기업과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한국의 정치권력이 과연 시장을 균형 있게 제어하는 `절대 선(善)`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현진권 소장은 이에 대해 "시장 실패보다 정치 실패가 사실 더 큰 문제"라며 "정치권과 여론에 반시장적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경제적 자유를 위축시킬 염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이 주장하는 재벌 지배구조 개선책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과 순환출자 금지가 핵심이다. 출총제는 헌법 119조 2항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삽입되던 1987년 탄생했다. 1997년 폐지됐다가 2년 뒤 부활했으나 10년 만인 2009년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도다.
정권의 특성, 경제 상황과 맞물려 부활과 폐지를 오간 대표적 재벌 규제 수단이다. 특히 노무현 정권에서 출총제 기준이 크게 완화됐던 것과는 반대 방향이다.
중소기업 강화책 역시 경쟁력 강화보다는 일방적 보호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기업 경쟁력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 취약점을 보완하는 `핀포인트(pinpoint) 전략`을 주문한다. 대기업 규제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하우스푸어(가계부채) 대책, 노인 등 빈곤층 일자리 제공, 영세 상공인에 대한 지원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취약 분야의 경쟁력을 높일 대책을 놓고 대결하라는 얘기다.
[기획취재팀 = 이진우 차장(팀장) / 채수환 기자 / 황인혁 차장 / 신헌철 기자 / 이재철 기자 / 경제부 = 이상덕 기자 / 이상훈 기자 / 정치부 = 이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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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와 한국의 미래 ⑦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 주장이 지나치면 외국 기업만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논란과 관련해 역으로 외국 기업들에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점과 한국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것으로 대내외에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했다. 박 장관은 지난 9일 여수엑스포를 참관한 뒤 기자들과 만나 "재벌기업들이 규제를 받으면 중견ㆍ중소기업이 나와 대체해주면 되는데 외국 기업이 들어와 혜택을 받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을 하고 난 뒤부터 외국계 마트가 이익을 보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며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라고 꼬집었다. 박 장관은 "재벌기업이 (외국으로) 나가 버리면 카타르시스를 느낄지는 몰라도 남는 게 없다"며 "우리 경제 전체를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내부적으로 `대기업 때리기`에 집중하다 정작 글로벌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경쟁력을 갖춘 1, 2위 기업이 상대국 기업과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며 "상대 기업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총력전으로 나오는데 우리는 다른 이야기하다 경쟁에서 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이진우 차장(팀장) / 채수환 기자 / 황인혁 차장 / 신헌철 기자 / 이재철 기자 / 경제부 = 이상덕 기자 / 이상훈 기자 / 정치부 = 이기창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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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와 한국의 미래 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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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제민주화 논쟁은 한국에서 대기업과 부자들이 과도한 경제적 자유를 향유하고, 이로 인해 사회 전체의 이익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듯 보인다.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중산층ㆍ서민의 표심 잡기에 유리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 때문에 여야 구분 없이 선명성 경쟁에 뛰어든 양상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모호한 대목이 수없이 많다. 이번 논쟁이 생산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경제민주화의 대전제부터 수정해야 한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제민주화를 놓고 해석과 평가가 엇갈리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한국이 선진국가, 복지국가로 도약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가 탄탄하게 성장하고 질 좋은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어야 소득 불균형도 해소하고 서민 복지도 가능한 선순환적 국가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중진국 대열에서 경제가 고꾸라지면 경제 민주화 주장은 덧없는 주장에 그칠 수 밖에 없다.
결국 기업은 물론 국민 개개인이 경제할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더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요체라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매일경제가 약 10년 전 제시했던 국가 어젠더가 정ㆍ관ㆍ재계에서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매일경제는 2003년 2월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면 `TEE`를 높여야 한다는 어젠더를 제시했다. TEE는 신뢰(Trust), 경제적 자유(Economic Freedom),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영어 첫 글자를 딴 용어로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경험적 실증을 통해 매일경제가 개발한 기준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선진국이다`라는 과감하면서도 명쾌한 슬로건 아래 제시된 TEE 지수는 당시 막 출범한 참여정부의 진보적인 정책 어젠더와 대비되면서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TEE 어젠더가 제시된 지 10년 가까이 지나도록 정부와 정치권의 규제 조치와 국민의 반재벌 정서, 일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나 골목상권 침해 등 무분별한 지배력 강화 조치 등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선진국형 경제체질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해리티지재단이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IEF)는 우리나라가 2005년 52위, 2006년 45위 등으로 부진을 보이다 2009년 30위, 지난해 31위로 다소 회복세를 보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국가 경쟁력 지표 중 하나로 측정하는 기업효율성 지수도 2008년 38위에서 2010년 27위, 2012년 25위 등으로 소폭 개선될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세계 10위권 안에 진입한 경제 규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경제적 자유도와 기업 효율성 측면에서 여전히 중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자유지수는 정부 개입과 기업의 자유, 세제와 노동시장 등을 토대로 산출되는데 우리나라와 아시아 허브를 놓고 경쟁 중인 홍콩, 싱가포르 등은 10위 이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어 대조를 이뤘다.
용어의 적정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헌법 119조 2항에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이 담겨 있는 것은 맞지만 모두가 수긍할 만한 개념 정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창양 KAIST 교수는 "개념이 명확해야 토론이 가능하며 사회적 합의도 이룰 수 있다"며 "정치는 1인 1표에 기반한 민주화가 가능하지만 경제활동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거래의 특정 단계에선 민주화란 개념이 일부 적용될 수도 있겠지만 가치사슬 전체로 보면 민주화가 경제 시스템을 망가뜨릴 수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공정화(公正化)로 표현을 바꾸고 논쟁을 축소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동시에 경쟁 제한이나 독과점 폐해 등 불공정 요소를 시정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자는 얘기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은 "경제민주화는 정치권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 싸움에 불과하다"며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등 시장경제의 폐해를 조정하는 쪽으로 논쟁이 이뤄져야지 시장경제 자체를 흔드는 쪽으로 논쟁이 진행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만일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추가 규제가 도입된다면 한국은 규제 왕국의 오명을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4년간 규제 정책에 대해 회원사 38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평가가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규제 수는 2010년 7055개에서 지난해 6951개로 줄어들었지만 규제 개혁 체감도는 더 떨어진 셈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경제민주화란 용어로 재벌 때리기 정책을 포장해선 안 된다"며 "경제권력 집중을 완화하되 노조 등 이익집단의 경제권력화, 정부의 지나친 경제지배력 등도 함께 다뤄야 생산적 논의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창양 교수는 "파이를 늘리는 포지티브섬 게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 이진우 차장(팀장) / 채수환 기자 / 황인혁 차장 / 신헌철 기자 / 이재철 기자 / 경제부 = 이상덕 기자 / 이상훈 기자 / 정치부 = 이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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