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민주화와 한국의 미래 ③ ◆
"전경련이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런 쓸데없는 논란을 일으킬 거라면 차라리 전경련을 해체하는 게 낫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3일 매일경제와 전화 인터뷰에서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의 최근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 전 수석은 "전경련이 하는 행동이 뻔한데, 어느 나라 경제단체가 헌법의 조항을 고치라고 주장하는가"라고 반문한 뒤 "아무리 돈의 힘이 세더라도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전경련은 정치집단이 아닌 만큼 자신들이 관여할 사안이 아닌 주제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이는 최근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에서 주최한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이 토론회에서는 경제민주화가 `민주화`라는 말의 오용이며 그 귀결점이 전체주의라는 주장이 쏟아졌다.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한국경제연구원 부회장을 겸하고 있다.
김 전 수석은 1987년 헌법 개정 때 국회 헌법특위 경제조항 분과위원장을 맡아 정부가 재벌을 견제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으로 내다보고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을 넣었다.
그는 당시 전경련의 조직적인 반발로 어려움을 겪었던 일화도 소개했다. 김 전 수석은 "당시 전경련 회장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에게 `헌법개정 홍보대책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기고 20억원의 예산도 배정해 이 조항이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조항이 들어간 것은 이처럼 뿌리깊은 역사가 있는 데도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한 지금의 정치인들은 잘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한 `경제민주화=재벌해체 또는 재벌개혁`이라는 주장도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해체와 전혀 다르며 재벌개혁도 말처럼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 전 수석은 "지금은 경제세력이 너무 커져서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며 "외부에서 재벌개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재벌들의 힘이 커졌는데 무슨 힘으로 재벌개혁(해체)을 하겠다는 것인가"고 반문했다.
[김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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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와 한국의 미래 ③ ◆
87년 경제민주화 개념이 헌법 조항에 명시된 이후 역대 정권은 이름만 다를 뿐 다양한 형태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대기업을 압박하면 유권자 표심을 얻을 수 있다는 정치 논리가 득세하면서 경제민주화 조치들이 정권 지지율을 지탱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5월 8일 토지 공개념을 도입해 49개 그룹이 갖고 있는 비업무용 부동산 5700만여 평과 금융사의 과다보유 부동산을 강제매각하도록 하고 생산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업무용 부동산의 신규 매입을 1년간 금지했다. 또 금융사들에 대해서도 부동산 신규 취득을 금지했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하며 5ㆍ8 조치를 이끌어낸 주역이 바로 김종인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이다. 이에 앞서 노태우 정부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87년 처음 도입했고 대규모 기업집단 32개를 처음 지정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8월 도입한 금융실명제도 `경제정의 실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전격 도입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중이던 97년 12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무기한 연기하고 자금 출처를 묻지 않는 무기명 장기채권의 발행을 허용하는 대체 입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입 취지가 크게 퇴색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수습과정에서 `빅딜`로 알려진 대기업 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상호지급보증 해소, 순환출자 억제 등을 골자로 한 재벌 개혁 `5+3원칙`을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는 초기 `지역균형발전`과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대기업과 고소득층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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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민주화와 한국의 미래 ③ ◆
최근 대기업 국회 담당팀엔 일제히 `비상`이 걸렸다. 박근혜 캠프의 경제브레인과 선을 대기 위해서다. 현 시점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데다 경제민주화 이슈도 따지고 보면 박근혜 캠프에서 선점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 전 대표 생각을 알아야 대책도 세울 것 아니겠냐"며 "뚜렷한 가이드라인도 없고 캠프 인사와 접촉 기회도 마땅치 않아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 관계자는 "연말 대선까지 굴러갈 이슈인 만큼 현재로선 정치권 내의 논의 상황만 체크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이 4ㆍ11 총선 때 전면에 내세운 공약이자 당론이었고, 12월 대선에서도 핵심 공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구상하는 경제민주화가 어떤 모습일지 정치권은 물론이고 재계, 정부에서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박 전 위원장이 경제민주화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현재 새누리당 내에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세 가지 버전으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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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총선 공약을 통해 소개된 것으로,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에 충실한 광의의 개념이다. 새누리당은 총선 때 경제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자본소득 과세 강화 등 공평 과세 △일감 몰아주기 근절, 부당 단가 인하 근절 등 시장경제질서 정립 △대형 유통업체 중소도시 진입 규제 등 소상공인 육성을 제시했다.
세 가지 공약은 각각 헌법 제119조 2항에 규정된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균형 있는 성장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재벌과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자체를 문제 삼는 주장이다. 경제민주화를 △시장 민주화 △경제력 집중 방지로 양분하지만 후자를 강조한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이혜훈 의원 등이 대표적인 주창자인데, 순환출자 제한 등을 통한 대기업 소유구조 개편, 지주회사 규정 강화 등이 이에 속하는 정책이다.
마지막 버전은 경제력 약자 보호를 위한 시장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두 번째 버전과 동일하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경제력 남용이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때리기나 해체로 가서는 안 되며 문제점을 찾고 방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소비자, 중소기업, 소액주주 등 경제적 약자를 각각 기업, 대기업, 대주주로부터 보호하는 정책들이다.
박 전 위원장의 경제민주화가 세 가지 버전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과거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원론적인 수준의 방향을 제시한 경우가 몇 차례 있어 어렴풋이 추정할 수는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재벌 개혁과 관련해 "시행이 안 된 게 많다. 편 가르기는 안 되지만 약자를 지원하고 그들의 경쟁력을 강화해 주기 위해 정부와 의회가 나서야 한다"며 "강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도 박 전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생각을 밝혔다.
당시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원인으로 `원칙이 무너진 자본주의`를 꼽고 "민간과 정부가 자본주의 핵심 가치인 `자기책임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 역할과 기능이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면서 "관치주의는 안 되지만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은 정부가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장경제 원리나 대기업의 경영활동을 존중하지만, 독점이나 공정거래법 위반 등에 대해서는 정부가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경제적 약자 보호에도 방점을 두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의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한 친박계 핵심 인사는 "재벌이나 대기업의 경영활동을 침해하거나 부담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집권할 경우 동계올림픽 등을 명목으로 법을 위반한 재벌 총수를 사면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엄격하고 원칙에 입각한 법 집행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은 4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경제적 강자의 힘을 좀 빼고 경제적 약자를 좀 더 도와서 조화를 이루려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요체"라며 "박 전 위원장은 재벌을 타파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재벌의 경쟁력을 억제하지 않으면서 재벌의 문제점을 확실히 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진우 차장(팀장) / 채수환 차장 / 황인혁 차장 / 경제부 = 신헌철 기자 / 이재철 기자 / 이상덕 기자 / 정치부 = 이상훈 기자 / 이기창 기자 / 산업부 = 윤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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