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광우병 릴레이 기고](5) 이강택 KBS PD·전국언론노조위원장
ㆍ‘쇠귀에 경 읽기’
6년 전 미국 중서부 일대를 헤집고 다니다 맞닥뜨린 ‘지옥의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적 없는 광막한 평원 으슥한 곳 우리 속에 빽빽이 갇힌 수만, 수십만 마리의 소 떼들. 곡물과 육골분 사료를 먹으며, 다량의 항생제와 인공성장호르몬을 투여받은 소들이 오물더미 위에서 뒹굴던 소 사육 공장. 지금도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목이 잘린 소머리와 유혈이 낭자한 내장들, 그것들을 옥수숫가루와 섞어 찌면서 발생하는 토할 듯한 악취, 그렇게 만든 육골분 사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렌더링 공장 뒤편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던 카길(Cargill)사의 화물기차. KBS스페셜 <얼굴없는 공포 광우병 - 미국 쇠고기 보고서>는 그런 취재과정을 거쳐 방영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그때까지 수입이 금지돼 있었던 미국산 쇠고기에 빗장이 풀리려던 시점의 일이다.
그로부터 6년, 또 다른 광우병 소가 발견된 지금 이 순간까지 미국 소의 사육, 도축, 유통 실태는 거의 개선된 점이 없다. 공장형 밀식, 교차오염과 동종식육을 묵인하는 사료금지기준, 엄청나게 빠른 도축장 컨베이어 벨트…. 달라진 거라곤 한국 농림수산식품부 관료들과 관변 전문가들의 대응이 예전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어처구니없게 공세적이라는 사실뿐이다. 문제의 소가 10년7개월 된 것이니 30개월 미만만 수입되는 한국인의 식탁에는 전혀 문제가 안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무얼 먹고 자라는지, 건강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오차가 매우 커 대략의 나이밖에 짐작하지 못하는 치아 감별법으로 개월수까지 정확히 제시하다니! 그 소가 정말 이력 추적이 가능한 개체(전체 사육마릿수의 10%)였다면, 막연히 “30개월 이상이며 다우너(비틀거리고 넘어지는 소)도 아니”라던 초기의 발표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과연 나중의 발표를 ‘마사지’가 안된 진실이라 믿어야 할까. “젖소 고기는 아예 수입되지 않는다”는 거짓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으니 그냥 웃어넘기자.
“특정위험물질(SRM)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건 또 무슨 궤변인가. 유럽 도축장에 비해 3배나 빠르게 도축되는 미국 소에서 SRM이 완벽히 제거될 수 있다고 믿는 건 너무나 천진한 생각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등뼈가 통째로 붙어 나와 검역이 중단되었던 수많은 사례들은 대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
갖가지 거짓말 중 압권은 “비정형 광우병이라 전염성이 없다”는 날조된 신종 학설이다. 정말 위험하지 않다면 이전에 비정형 광우병 소들이 발견되었을 때는 왜 수입 중단 조치를 취했었던가. 그럼에도 그들은 구체적인 수치까지 대가며, 얼핏 보면 제법 그럴듯한 논리를 얼기설기 짜 맞춰 위장공세를 취한다. “검역 중단을 왜 하느냐”고.
문제는 이상의 세련된 혹세무민 책동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먹혀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 농무부 관리들의 발표를 한국 농식품부 관료들이 그대로 되풀이하고, 관변학자들이 그것을 보충하면 조·중·동과 KBS, MBC, 연합뉴스가 그대로 받아써서 전파하고 있다. 그 결과 국제적인 학계의 상식과 합리적인 추론들이 오히려 ‘괴담’으로 내몰리고 마는 것이다.
2008년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는 한국 저널리즘 역사에 기록될 수작이었다. 널리 알려졌듯이 당시 <PD수첩> 보도를 계기로 촛불항쟁이 타올랐고 그 촛불이 사그라지자마자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이 본격화되었다. 김재철, 김인규, 배석규, 박정찬 등 낙하산들에 의해 진실을 보도하고 싶어 하는 기자, PD들의 입이 막히고 국민들의 눈과 귀가 가려졌다. 4대강 사업과 미디어 악법, 한·미 FTA와 강정 해군기지, 쌍용자동차와 재능교육 정리해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MB 측근비리의 진실이 모두 성공적으로 묻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통제되고 있는 것은 광우병 위험이 아니라 광우병 관련 정보다. 그것은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작동이 마비된 빈사상태의 언론 현실의 상징이다. KBS, MBC,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 노동조합이 사상 초유의 대규모 초장기 항쟁을 벌이고,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강택 | KBS PD·전국언론노조위원장>
6년 전 미국 중서부 일대를 헤집고 다니다 맞닥뜨린 ‘지옥의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인적 없는 광막한 평원 으슥한 곳 우리 속에 빽빽이 갇힌 수만, 수십만 마리의 소 떼들. 곡물과 육골분 사료를 먹으며, 다량의 항생제와 인공성장호르몬을 투여받은 소들이 오물더미 위에서 뒹굴던 소 사육 공장. 지금도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목이 잘린 소머리와 유혈이 낭자한 내장들, 그것들을 옥수숫가루와 섞어 찌면서 발생하는 토할 듯한 악취, 그렇게 만든 육골분 사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렌더링 공장 뒤편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던 카길(Cargill)사의 화물기차. KBS스페셜 <얼굴없는 공포 광우병 - 미국 쇠고기 보고서>는 그런 취재과정을 거쳐 방영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그때까지 수입이 금지돼 있었던 미국산 쇠고기에 빗장이 풀리려던 시점의 일이다.
“특정위험물질(SRM)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건 또 무슨 궤변인가. 유럽 도축장에 비해 3배나 빠르게 도축되는 미국 소에서 SRM이 완벽히 제거될 수 있다고 믿는 건 너무나 천진한 생각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등뼈가 통째로 붙어 나와 검역이 중단되었던 수많은 사례들은 대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
갖가지 거짓말 중 압권은 “비정형 광우병이라 전염성이 없다”는 날조된 신종 학설이다. 정말 위험하지 않다면 이전에 비정형 광우병 소들이 발견되었을 때는 왜 수입 중단 조치를 취했었던가. 그럼에도 그들은 구체적인 수치까지 대가며, 얼핏 보면 제법 그럴듯한 논리를 얼기설기 짜 맞춰 위장공세를 취한다. “검역 중단을 왜 하느냐”고.
문제는 이상의 세련된 혹세무민 책동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먹혀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 농무부 관리들의 발표를 한국 농식품부 관료들이 그대로 되풀이하고, 관변학자들이 그것을 보충하면 조·중·동과 KBS, MBC, 연합뉴스가 그대로 받아써서 전파하고 있다. 그 결과 국제적인 학계의 상식과 합리적인 추론들이 오히려 ‘괴담’으로 내몰리고 마는 것이다.
2008년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는 한국 저널리즘 역사에 기록될 수작이었다. 널리 알려졌듯이 당시 <PD수첩> 보도를 계기로 촛불항쟁이 타올랐고 그 촛불이 사그라지자마자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이 본격화되었다. 김재철, 김인규, 배석규, 박정찬 등 낙하산들에 의해 진실을 보도하고 싶어 하는 기자, PD들의 입이 막히고 국민들의 눈과 귀가 가려졌다. 4대강 사업과 미디어 악법, 한·미 FTA와 강정 해군기지, 쌍용자동차와 재능교육 정리해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MB 측근비리의 진실이 모두 성공적으로 묻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통제되고 있는 것은 광우병 위험이 아니라 광우병 관련 정보다. 그것은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작동이 마비된 빈사상태의 언론 현실의 상징이다. KBS, MBC,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 노동조합이 사상 초유의 대규모 초장기 항쟁을 벌이고,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강택 | KBS PD·전국언론노조위원장>
입력 : 2012-05-06 22:15:02ㅣ수정 : 2012-05-06 23: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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