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빈곤 길을 찾다-르포] 그들은 왜 폐지를 줍나
- 김노향 기자 입력 : 2017.01.19 06:08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후빈곤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8.8%로 OECD 국가 평균(12.1%)의 4배를 넘는다. <머니S>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2017년 연중기획시리즈 ‘노후빈곤, 길을 찾다’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노후빈곤의 실태와 문제점을 점검하고 앞으로 우리 세대가 준비해야 할 정책대안과 제도의 방향성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1 “요즘은 눈뜨면 몸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어. 낼모레면 여든이니 그럴 만도 하지. 그래도 이렇게 팔다리가 멀쩡하니까 일도 할 수 있는 거야. 작년엔 아흔 넘은 형님이 두분 계셨는데 요즘 안 보이는 걸 보면 아마 건강이 많이 악화됐나봐.”
올해로 10년째다. 김모 할아버지(78)가 아들내외 집을 나와 서울 후암동 쪽방에 자리 잡은 세월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하루 수십번씩 오르내리면서 폐지를 모은 지도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오전 6시 몸을 일으켜 해가 뉘엿뉘엿 지는 오후 6시까지 12시간을 움직이다 보면 온몸의 감각이 무뎌진다. 요즘같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에는 두툼한 옷을 4~5겹 껴입어도 시린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그나마 고된 육체노동으로 땀을 흘리다 보면 추위를 조금 잊을 수 있다.
김씨가 온종일 모은 폐지의 무게는 80㎏. 낮 12시에 한번, 고물상이 문을 닫는 오후 6시에 한번 40㎏씩 내다 판다. 그렇게 번 돈이 하루 8000원이다. 몸집보다 큰 손수레를 끌다 보니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으로 다니는 건 무리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한복판으로 다닐 수밖에 없다. “몇년 됐지. 이 동네에서 폐지 줍던 노인네가 차에 치여 대수술을 받았대.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는데 나도 전해 듣기만 했어. 그런 말 들으면 무섭지. 도로로 다니면 안된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마음대로 되나. 손수레가 무거워서 안되지.” 김씨에게 자식들에 대해 묻자 주름살 깊이 패인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며느리가 자신의 속옷을 빨고 개는 것이 못견디게 민망해 자식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분가했다면서도 자식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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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한별 기자 |
#2 최모 할머니(70)는 경기도 산본의 딸네 집에 얹혀산 지 10년이 넘었다. 남편은 몇년 전부터 지방 공사현장에서 일한다. 최씨는 동네 음식점, 마트, 빌라 등의 쓰레기통을 뒤져 하루 10㎏의 폐지를 모은다. 그래봐야 고물상에 갖다 주면 1000원 남짓 받는다. 파스값도 안 나오는 푼돈이지만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온종일 집에 있으면 뭐해.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으면 몸이 더 아프다니까. 병원비가 더 들어.”
어떤 날은 게으름을 피웠다가 다른 할머니에게 폐지를 빼앗기기도 했다. 10분 지각했는데 쓰레기통과 분리수거함이 텅 비어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더구나 상점 직원이나 빌라 주민의 눈에 띄는 날에는 잔소리를 듣기 일쑤다. “폐지도 엄연한 재산인데 그냥 가져가면 도둑질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야. 가끔 친절한 젊은이들이 노인네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서 싫은 소리 안하고 눈감아주는데 그럴 때 고맙고 미안하지.”
최씨는 다른 노인들에 비하면 자신의 사정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직 자식들과 함께 살고 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를 매일 볼 수 있어서다. “손주녀석이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됐어.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몰라. 이렇게 폐지 판 돈을 모아서 장난감도 사주고 학용품도 사주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같이 살 수 있을지 걱정이야.” 모아둔 재산이 없느냐고 묻자 최씨는 “딸네 아파트 사주는 데 썼지”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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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손수레를 세워놓고 길가에 앉아 쉬는 할머니들. /사진=김노향 기자 |
◆하루 12시간 노동에 시급 666원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떨어진 지난 10일 낮. 서울 후암동에서 10년째 고물상을 운영하는 김노식(가명) 사장은 “요즘 같은 한겨울에는 어르신들의 건강이 제일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찻길로 다니지 말라고 아무리 잔소리해도 소용없으니 이제 포기했어요. 어르신들 고집이 워낙 세서…. 겨울철에는 감기를 달고 사는데 저러다 큰일 치르지 싶을 때가 많아요.”
하루 동안 이 고물상을 찾는 노인 수는 20명 안팎. 기자와 김 사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30분 동안 5명의 할머니가 고물상을 다녀갔다.
“할머니 3000원이요! (한숨 돌린 후) 방금 그 할머니는 오늘 아침만 세번째 온 거예요. 한번에 많이씩 옮기기 힘드니까 나눠서…. 그래도 혼자서 37㎏를 들고 오셨어. 노하우가 생기면 가능해요. 얼마 전만 해도 할아버지랑 두분이 늘 함께 다니더니 요즘은 혼자 와요. 할아버지가 몸져누웠다고 하더라고.”
키 140㎝ 중반에 깡마른 몸, 자신의 몸무게만한 손수레를 어떻게 끌고 왔나 신기할 정도다. 키 167㎝에 몸무게 57㎏인 기자가 10㎏짜리 손수레를 밀어봤다. 몇걸음만 움직였는데도 근력이 부족해 온몸이 아팠다. 폐지 수거를 전문으로 하는 할아버지들은 한번에 40㎏도 운반하지만 할머니들은 보통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해 10㎏도 움직이기 힘들어한다.
폐지 수거로 하루 동안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아무리 많아도 8000원을 넘기 힘들다. 하루 12시간 일했다고 가정할 때 시급은 666원, 최저임금의 10분의1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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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손수레를 끌고 찻길을 걷는 할아버지. /사진=김노향 기자 |
◆교통사고 위험 높아… 사회지원 필요
우리나라에서 폐지 줍는 노인의 수는 폐지재활용업체 추산 약 150만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추산 8만2000명이다. 민간과 정부간 격차가 18배를 넘는다. 통계청의 최신 조사결과 2015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수는 361만8287명이다. 민간 추산에 따르면 노인 2.4명 중 1명꼴로 폐지를 줍는 셈이다.
폐지 줍는 노인 대부분이 70대 이상이다. 80대나 90대도 간혹 있지만 일의 양이나 성과는 젊은 노인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다. 폐지 줍는 노인들의 생계가 위태로운 것은 불 보듯 훤하다. 수원시 조사결과 시내 폐지 줍는 노인 548명 가운데 저소득층이 444명(81%)에 달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28.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빈곤층으로 분류하는 하위소득 가구가 52.6%다.
많은 노인이 십수년째 자식과 연락이 끊긴 채 홀로 살아간다. 정부지원금만으로 생계유지가 힘든 노인들, 정부지원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인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범했던 가장들이다.
폐지 수거는 법에 저촉되거나 사회질서를 해하는 일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도심환경을 정비하고 자원재활용사업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많은 노인이 교통사고의 위험 등에 노출된 상태다. 정부와 지자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또 폐지 줍는 노인은 우리 부모의 미래,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최근에는 폐지 수거 노인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지자체와 기업이 늘었다. 수원시는 올 겨울을 앞두고 지역 내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방한복을 지급했다. 2011년부터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야광조끼 등을 지급하고 안전교육도 실시했다. 벤처기업 러블리페이퍼는 노인들이 수거한 폐지를 고물상 시세의 10배로 매입한 후 재활용해 예술작품이나 인테리어소품으로 재판매한다.
새해 들어 소주병값이 40원에서 100원으로, 맥주병값이 50원에서 130원으로 올랐다. 정부당국은 빈 병 회수율과 자원재활용을 높이는 정책이라고 밝혔지만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는 된서리나 다름없다. 주택가에서 빈 병이 자취를 감추고 음식점이나 술집들도 좀처럼 빈 병을 내놓지 않는다. 반대로 종이상자 등 폐지값은 떨어졌다. 1㎏당 폐지값이 3년 전 140원에서 최근 100원으로 낮아졌다. 플라스틱병은 300원에서 150원으로, 장판은 700원에서 80원으로 급락했다. 불경기라 장사가 안되니 폐지 수마저 줄어 폐지 줍는 노인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진다.
폐지값은 가난한 노인의 생계지수로도 불린다. 폐지 줍는 노인은 다른 나라에도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수가 많지 않다. 서울연구원의 보고서 ‘폐지수집 여성노인의 일과 삶’은 노인의 폐지 수거를 이렇게 표현했다. ‘노인복지정책의 미비와 일자리 문제가 만들어낸 하나의 변종직업’.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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