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70년대엔 '전경련'을 옮긴듯 |
작성자 : 고제희 등록일 : 2006.06.14 조회수 : 1772 |
장충동(奬忠洞)은 은 구한말의 애국지사 즉 을미사변과 임오군란 때에 순 직한 충신ㆍ열사들을 제사지내는 장충단(奬忠壇)이 있어 생긴 지명이다 .
남산에서 흥인지문 북쪽인 낙산으로 이어지는 서울 성곽의 남동 능선 에 자리해 도성 내에서 드물게 북동향을 한 마을이다.
그렇지만 이 마을 은 북한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북쪽의 높은 산 능선을 한쪽으로 비 껴 바라보는 유일한 곳이라 서울 내에서 시야가 가장 넓고 길다.
남산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 장충동은 조선시대에 한양 외곽을 수비하던 어영청에 속한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곳으로, 앞쪽에는 군대가 주둔한 형세와 같은 둔군안(屯軍案)이 있고, 왼쪽에는 깃발이 나부끼는 형태의 기고사(旗鼓砂)가 북한산에 즐비해 소위 '장군이 앉아 지휘하는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의 명당이다.
만물을 탄생시켜 길러내는 어머니와 같은 땅은 개성이 무척 강한 생명 체로 땅의 성격에 맞춰 땅을 이용할 때만 지기가 발동해 복을 준다.
장충동은 천하를 호령할 위대한 인물이 배출될 땅으로 무장들과 소응이 잘 맞는다.
장군은 휘하에 용맹스러운 병졸들이 포진해야 위엄이 살며 지덕(地德) 도 발동하는데, 공원을 찾아 즐기는 사람들은 풍수적으로 이 땅의 소응 에 관계된 병졸로 해석함직하다.
지기는 그 땅을 사용하는 사람과도 서로 궁합이 맞아야 발복도 커지는 데, 장충동은 군대가 주둔할 정도로 기가 거센 땅이다.
따라서 무인적 기질이 적은 학자나 예술가, 그리고 기업인들이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 번성하기 어렵다. 반면 칼과 창 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직업이나 사업은 크게 번창할 터다.
장충동 족발골목은 한국전쟁 중에 피란 온 사람들이 하나 둘씩 족발집 을 내면서 족발 명소가 됐다.'족발장'이란 물에 푹 삶아낸 족발은 비 릿한 맛이 전혀 없고 고기 살은 쫀득쫀득하다.
길고 짧은 칼을 이용해 족발에서 고기 살을 발라내는 매운 손맛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시 한 번 이곳이 군인의 땅임을 마음속으로 가득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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