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큰 고목 서 있는 터가 명당자리 |
작성자 : 고제희 등록일 : 2013.08.29 조회수 : 227 |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황제였던 유비가 짚신과 돗자리를 엮어가며 생계를 꾸려가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의 집 울타리 옆에는 높이가 다섯 장(약 12m)쯤 되는 뽕나무 거목이 있었는데 가지와 잎이 무성해 마치 작은 수레 덮개와도 같아 보였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기이하게 여겼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집에서 틀림없이 귀인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유비 역시 이 나무 아래에서 놀면서 '나는 반드시 깃털로 장식한 개거(蓋車ㆍ천자의 마차)를 탈거야'라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다. 수령이 많고 커다란 나무를 노거수(老巨樹)라 부른다. 유서 깊은 마을은 동구 밖에 동제를 지내는 당산나무가 서 있고 오랜 세월 모진 풍상을 헤치고 사는 동안 마을의 전설이 깃든 나무를 신성시했다. 지금의 장년층은 대개 이 나무 밑에서 뛰놀던 추억이 있으므로 고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정자나무다.
이 땅을 짓밟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곽재우 장군이 뜰 앞의 나무에 북을 매 달고 의병을 훈련시켰다는 의령의 현고수(懸鼓樹), 오랑캐의 발 뿌리를 노리던 강화의 탱자나무, 임금님의 행차를 돕기 위해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높은 관직을 하사받은 정이품송 등 우리 주변에는 선현들과 호흡을 같이 한 늙은 나무 들이 함께 자라고 있다. 이 중에는 수령이 수백 년 혹은 1000년을 넘긴 것도 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 돼 보호받는 나무도 상당수다.이들 노거수가 묘목이었을 당시 주변에는 같은 수종의 나무 여럿이 함께 자랐을 것이다. 나무는 한곳에 붙박이처럼 고정돼 살아간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다른 나무 는 모두 죽었는데 특정 나무만은 지금도 살아남아 문화재로 지정받는 사례가 있다.
나무가 위치한 땅이 다른 곳보다 가뭄에 견딜 만큼 물이 적당하고 병충해에도 내성이 강하도록 양분이 알맞으며 땅 위 조건도 태풍에 쓰러지지 않을 만큼 바람이 휘몰아치지 않고 햇빛도 알맞은 곳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한곳에서 1000년을 넘도록 살았으니 그곳은 나무가 건강하게 사는 데 필요한 다양한 요소와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라 볼 수 있다. 만약 그곳에 사람이 집을 짓고 살았다면 사람 역시 장수와 복록을 누렸을 것이 틀림없다. 또 나무의 중심가지가 뻗은 방향은 그 나무가 최적의 양기를 얻고자 하는 방위 가 분명한데 풍수학적으로는 양기의 흐름을 살펴 주택의 좌향을 놓아야 할 방위와 서로 일치한다.따라서 노거수가 입지한 터는 생기(生氣)가 충만한 풍수 적 명당이란 등식이 성립된다. 사람도 나무와 같이 지기와 바람의 기운에 의해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 생명체 인 까닭이다. 노거수를 바라보면 '나는 운 좋게 이 자리를 차지한 나무야. 사람들아, 이 자리가 바로 그대들이 찾는 명당 터가 아니겠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대동풍수지리연구원 고제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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